[아래는 제가 2018년부터 작성해 온 글로써, 매년 조금씩 교정하여 다시 올리고 있습니다.]
(눅 14:16) 이르시되 어떤 사람이 큰 잔치를 베풀고 많은 사람을 청하였더니
(눅 14:17) 잔치할 시각에 그 청하였던 자들에게 종을 보내어 이르되 오소서 모든 것이 준비되었나이다 하매
(눅 14:18) 다 일치하게 사양하여 한 사람은 이르되 나는 밭을 샀으매 아무래도 나가 보아야 하겠으니 청컨대 나를 양해하도록 하라 하고
(눅 14:19) 또 한 사람은 이르되 나는 소 다섯 겨리를 샀으매 시험하러 가니 청컨대 나를 양해하도록 하라 하고
(눅 14:20) 또 한 사람은 이르되 나는 장가 들었으니 그러므로 가지 못하겠노라 하는지라
(눅 14:21) 종이 돌아와 주인에게 그대로 고하니 이에 집 주인이 노하여 그 종에게 이르되 빨리 시내의 거리와 골목으로 나가서 가난한 자들과 몸 불편한 자들과 맹인들과 저는 자들을 데려오라 하니라
(눅 14:22) 종이 이르되 주인이여 명하신 대로 하였으되 아직도 자리가 있나이다
(눅 14:23) 주인이 종에게 이르되 길과 산울타리 가로 나가서 사람을 강권하여 데려다가 내 집을 채우라
(눅 14:24)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전에 청하였던 그 사람들은 하나도 내 잔치를 맛보지 못하리라 하였다 하시니라
가끔, "왜 하나님은 그냥 모든 사람을 구원하지 그러시냐"는 질문을 받기도 합니다. 그런데 그것은 몰라서 하는 소리입니다. 싫다는 사람들 데려다가 앉혀 놓은 들, 서로 힘들 뿐입니다. 가족들을 억지로 교회를 끌고 갔더니 관계만 더 안 좋아진 경우도 있으셨을 겁니다. 싫다는 사람에게 계속 말씀을 전하는 것만큼 괴로운 일도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천국에 갔더니 천국이 싫고, 하나님이 싫다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곳이 천국이겠습니까? 지금도 적극적으로, 자기 의지로, 삼위일체 하나님을 욕하고 모독하는 영상들이 유투브에도 가득합니다. 그런 사람들이 천국에 온다면 거기는 이 땅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싫다는 사람의 결정을 존중하시는 이유 중 가장 큰 것은 그것이 하나님의 성품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자유의지를 주셨습니다. 그런데 거절하고, 안 믿겠다고 하고, 싫다는 사람을 '사랑의 하나님' 이미지를 고수하기 위해 억지로 천국에 데려가신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성품에 정면으로 반대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렇게 하실 수가 없습니다.
오늘 말씀 본문을 잘못 이해하다 보니, 싫다는 사람들을 억지로 교회로 끌고 가야 하는 것으로 이해했고 그러다 보니 전도가 점점 싫어졌던 것입니다. 결국 싫다고 하지 않는 사람들에게까지 전도하지 않는 결과가 오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사단의 전략은 교묘합니다.
거절하는 사람은 어쩔 수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전도는 적극적이어야 합니다. 전도는 복음의 말씀을 전하는 것이기에 길거리에서 전도지를 나눠주는 것만을 말하지는 않습니다. 적극적으로 말씀을 전해야 합니다. 강요는 못 하지만 적극적으로 '강'하게 '권'해야 합니다.
'삶으로 전도한다'는 개념을 전달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물론 우리 삶이 하나님의 편지가 되어야 하고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어야 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전도는 아닙니다. 전도는 말로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성경 어디에, '너희들은 말보단 삶으로 전도해라'라고 하신 부분이 있습니까? 우리는 세상의 빛과 소금이기 때문에 우리의 삶을 통해 사람들에게 감동을 줄 수는 있겠지만, 지금까지 저의 삶을 보고 스스로 감동하여 예수님을 영접한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습니다. 제가 복음을 설명하고 영접 기도로 인도해야 했습니다. 아무리 훌륭한 사람이라도 그냥 그 사람의 삶만으로 사람들이 알아서 예수님을 영접하지는 않습니다. 예수님도 삶이 아닌 말씀을 선포하심으로 전도하셨습니다.
전도를 어려워하는 것은 첫째로 복음을 잘 설명할 만큼 훈련받지 못해서이고 둘째는 거절감에 대한 두려움입니다. 그것이 어려우면 전도지를 나눠주거나 교회로 초대하는 방법도 있겠지만 가장 좋은 것은 내가 직접 설명하고 그 자리에서 영접을 하도록 인도하는 것입니다. (영접 기도문은 어제 큐티에 있습니다.) 그리고 제 경험으론 '때'가 정말 중요합니다. 가장 적절할 때 성령께서 인도하시고 임재하셔서 그 시간을 이끌어 주십니다.
저희 엄마는 장로교 권사님이신데 직접 말로 전도하고 영접시키는 것이 자신 없어서 매주 거리에서 전도지를 나눠 주는 교회 전도팀에서 활동하셨습니다. 제 생각에는 길거리에서 모르는 사람들에게 전도지를 나눠 줄 바에 차라리 아는 사람에게 직접 말하는 게 낫다고 생각이 되지만 사람마다 다 다르기 때문에 각자의 방법이 있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길거리에서 전도지를 나눠 주는 것이 무슨 효과가 있겠나 싶었는데 거절하는 사람, 욕하고 가는 사람이 있어도 빠지지 않고 성실하게 전도팀에 나가신 우리 엄마에게도 하나님께서 상급을 준비해 두셨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가 접촉하는 사람들 중에서는 그 어떤 그리스도인도 만나주지 못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 글을 읽고 계신 분들 중에 제가 아니었으면 앤드류 워맥 목사님께서 수고하신 것들의 유익을 보지 못하셨을 분들이 많습니다. 앤드류 워맥 목사님이 저를 통해 여러분들께도 영향력을 미치신 것이지요. 그것처럼 제가 아무리 노력해도 못 만나지만 여러분들은 만나실 수 있는 분들이 계십니다. 우리는 이 복음을 맡은 자이기 때문에 거절하는 것은 상대방의 몫이고 전달하는 것은 내 몫임을 알고 적극적으로 전해야 합니다.
물론 은사가 각자 다 다를 수 있습니다. 저는 불신자에게 전도하는 것보다는 교사로 부르심을 받았다고 생각합니다. 성도들을 말씀으로 세워서 그분들이 세상에서 사람 낚는 어부로 잘 활동하실 수 있게 돕는 역할을 맡았습니다. 하지만 그랬다고 제가 전도하는 책임에서 제외되는 것은 아닙니다. 전도를 주 은사로 받은 분 만큼은 못 하겠지만 저에게, 그리고 모든 그리스도인에게는 사람들을 주님께 이끌 책임이 있습니다. 사실, 전임사역자가 되기 전에 저는 대학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을 했었는데 당시 학생들을 많이 전도했고, 나름 성과가 있었고, 보람도 있었고, 또 그 일이 재밌었습니다.
오늘 내가 성령의 역사를 통해 영향을 미쳐야 할 사람이 누군지 알려 달라고 성령께 구합시다. 항상 싫다고 하는 그 사람에게 너무 질린 나머지 준비된 사람까지 놓치는 일이 없도록 합시다. 다 익은 열매를 따지 않으면 땅에 떨어져 썩는 법입니다. 내가 순종하고 기도하면 성령님께서 알려 주실 것입니다. 내가 열매를 수확하는 사람이 아니라 씨를 심는 사람이 될 수도 있습니다. 어떤 방법이든지(직접 설명하던지, 전도지를 주던지, 책을 소개하던지, 유투브 영상을 소개하던지) 나에게 주어진 것으로 하나님께 드리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축복합니다. 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