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이야기]
골프필드에서 은퇴하는 수퍼땅콩
김미현
"24년 필드인생 후회 없다"
'김미현 골프아카데미' 설립… "세계 톱 노리는 선수 키울 것"
민학수 기자/조선일보 : 2012.09.27.
선수 시절엔 지독한 승부사, 155cm 작은 키 핸디캡 극복 "美서 성공 꿈꾸며 도전했던 '헝그리 골퍼' 시절 그리워…"
작은 키에 야무지고 정교한 플레이로 '땅콩'이란 애칭으로 불리며 국내와 미국 여자프로골프 무대 정상에 섰던 김미현(35)이 24년간 정들었던 필드를 떠난다. 김미현은 앞으로 주니어 선수와 프로 선수들을 대상으로 하는 '김미현 골프아카데미'를 설립해 자신보다 더 나은 선수들을 기르는 데 힘을 쏟겠다고 26일 밝혔다.
3년 전부터 고질적 부상 부위인 왼쪽 발목과 무릎 통증에 시달리던 김미현은 올해 초 수술을 받고 재활에 힘을 쏟아왔다. 인천 남동구에서 부친이 운영하는 골프연습장 '김미현 골프월드'에서 만난 김미현은 "지난 8월까지도 재활에 최선을 다했지만 이제는 그동안 쌓은 경험을 후배들과 나누는 게 더 의미 있는 일이라는 판단이 들었다"고 했다.
국내 투어 11승과 미 LPGA투어 8승을 올린 김미현은 박세리(35), 박지은(33)과 함께 'LPGA 1세대'로 한국 여자 골프의 인기를 한 단계 끌어올린 스타였다.
155cm의 작은 키를 극복하기 위해 체격에 비해 엄청나게 큰 오버스윙을 하면서도 또박또박 정교하게 코스를 공략해가는 김미현의 '땅콩 스타일'은 서양 선수들과 체격과 거리에서 전혀 밀리지 않던 박세리와는 또 다른 즐거움을 줬다. 특히 아이언샷처럼 정확하게 그린 위에 공을 세우는 김미현의 우드 실력은 화제였다. 초등학교 6학년 때 골프를 시작한 그녀는 "어린 시절 연습장에서 우드로 공을 멀리 치면 어른들이 칭찬하고 박수를 쳐주셨는데 그게 그렇게 좋았다"며 "워낙 많이 연습하다 보니 우드도 아이언처럼 다룰 줄 알게 됐다"고 했다.
골프 인생의 라이벌이자 친구 사이인 박세리가 최근 국내 대회에서 우승하는 모습을 보면서 다시 필드에 서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았을까. 김미현은 "세리와 난 주니어 시절 참 지독하게 훈련했다"며 "그런 정신력과 기본기가 있기 때문에 세리가 띠동갑(12세 아래)보다도 어린 후배들을 누르고 정상에 서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그녀는 "섭섭하긴 하지만 현역 시절 후회 없이 훈련하고 경기했기 때문에 미련은 없다"고 했다.
김미현과 박세리는 같은 1977년생이지만 1월에 태어난 김미현은 박세리보다 한 학년 위였다. "박세리가 2년 4개월 전 LPGA 투어에서 25승째를 올릴 때도 한 콘도에서 묵으며 내가 끓여준 꼬리곰탕을 먹었다"며 "세리가 내 퍼터가 마음에 든다고 하면 거리낌 없이 줄 정도로 마음이 통하는 사이였다"고 했다. 김미현은 "겉보기는 내가 여성스럽고 세리는 씩씩한 스타일이지만 사실은 정반대"라며 "세리가 부상 없이 현역 생활을 멋있게 마무리하면 좋겠다"고 했다.
김미현은 1999년 후원사 없이 미 LPGA 투어에 진출했을 때 아버지가 모는 차를 타고 햄버거와 라면으로 끼니를 때우며 투어를 도는 모습이 국내에 알려지면서 '헝그리 골퍼'란 이미지를 강하게 남겼다. 김미현은 "도전 정신으로 가득 차 있던 그때가 참 즐겁고 행복했던 때"라고 했다.
1999년 김미현이 LPGA 투어 '올해의 신인상'을 받고 난 뒤 미국 골프채널은 그녀의 이름 앞에 '피넛(땅콩)'이란 수식어를 즐겨 붙이곤 했다. 한 해설자는 아예 "땅콩"이란 한국 발음으로 그녀를 부르기도 했다. 신체적 조건을 꼬집어 불쾌할 수도 있는 '땅콩'이란 별명을 김미현은 정말 좋아했다고 했다. "인기가 있어야 별명도 있는 것 아닙니까. 이 별명은 고등학교 때 송암배에 출전했을 때 대구CC 우기정 회장(한국골프장경영협회 회장)께서 지어주신 것입니다. '껍질은 부서지기 쉽지만 속은 야무지면서도 달콤한 땅콩 같은 아이'라며 방학 때면 필드에서 마음껏 훈련할 수 있도록 지원해주셨어요." 2007년 셈그룹 챔피언십에서 줄리 잉스터를 연장에서 꺾고 미 LPGA 투어 8승째를 올린 김미현은 상금 10만달러를 토네이도 피해자들에게 기부하면서 '기부천사'로도 미국에서 유명해졌다.
귀여운 외모와 달리 그는 지독한 승부사였다. 1995년 한국여자아마추어선수권 때는 엄청난 복통을 참아가며 우승하고 난 뒤 병원에 실려가 맹장수술을 받았고, 1999년 미 LPGA 투어에서는 고열에 시달리면서도 플레이를 강행하다 라운드 도중 병원으로 후송되기도 했다.
김미현은 "정신력이 있어야 기술도 발휘할 수 있는 것"이라며 "앞으로 운영할 아카데미도 꼭 세계 정상에 서겠다는 굳은 의지를 지닌 선수들을 대상으로 할 것"이라고 했다.
김미현은 인터뷰하기 전 네 살배기 아들(이예성)을 어린이집에 데려다 주고 왔다. 장난감 골프채로 공을 치는 걸 좋아한다는 예성이가 골프선수가 되고 싶다면 적극 후원해줄 생각이라고 했다.
"골프는 정말 좋은 스포츠잖아요. 한 라운드에 4~5시간씩 나흘간 꾸준히 자신의 힘과 정신력, 지혜를 쏟아붓고 평가를 받는 정직한 운동이니까요."
김미현은 평생 골프를 떠날 수 없을 것 같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