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본 제갈량의 권력 조정 수완 : 관우의 텃세를 없애라>
조조를 떠나면서 관우는 통행증을 미처 발급받지 못한다. 이 때문에 도중의 관문을 지키는 조조의 장수들만 애꿎은 목숨을 잃게 된다. 이것이 그 유명한 오관(五關) 참육장(斬六將) 사건이다. 다섯 관문을 통과하면서 여섯 명의 장수가 관우를 가로막다가 은월청룡도의 칼날 아래 전사함으로써 관우의 대명을 천하에 드날리게 하는 데에 제물이 되고 말았다.
수경 선생 사마 휘의 조언에 따라 유비가, 남양의 융중에 칩거하여 천하를 조망하고 있는 제갈량을 삼고초려 하여 찾아갈 때, 성질 급한 장비의 거친 태도와는 달리 관우는 유비의 깊은 뜻을 이해하고 진중한 태도로 말없이 잘 따라 주는 군자의 풍모를 보여주었다.
적벽대전의 막바지, 최후의 승리를 갈무리하기 위한 제갈량의 귀신같은 전술이 펼쳐질 때, 모든 장수에게 전장의 상황을 손금 보듯 일러주고 세세한 작전과 행동 요령을 하달하면서 관우에게만은 아무런 임무가 주어지지 않았다. 이제나저제나 임무가 주어지기를 고대하던 관우는 견디지 못하고,
“군사(軍師), 나는요? 내 임무는 무엇이오?” 하면서 머쓱한 표정으로 나선다.
“아! 관장군은 그냥 쉬세요.”
“예?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지금까지 소장은 모든 싸움에 앞장서기를 빠진 적이 없는데 어찌하여 저만 뺀단 말입니까?”
이때 유비마저도 알 듯 모를 듯한 표정으로 말이 없다. 관우가 유비에게 구원을 청하는 마음이지만 고개를 저을 뿐이다. 작전 지시는 내 소관이 아니니 군사(軍師)인 제갈량한테 물어보라는 뜻이었을 것이다. 제갈량도 계속 시치미를 뗀다.
관우는 애가 탔다. 애원하듯이 매달린다. 이 중차대한 적벽대전의 마무리 전투에서 소외된다는 것이 말이 되는가.
“꼭 임무를 받아야 하겠소이까?”
“이를 말씀입니까?”
“그렇다면 임무가 하나 남아 있긴 한데, 관 장군께서 그 일을 완벽하게 수행하지 못할까 두렵소이다.”
“무슨 말씀을 그리하십니까? 맡겨만 주십시오. 반드시 완수하리다!”
“그러면 말씀드리리다. 조조는 여러 번의 고비를 넘긴 후, 화용도로 도망쳐 올 것입니다. 그곳은 외길이므로 입구를 지키고 있으면 반드시 조조를 생포할 수 있을 것이요. 할 수 있겠습니까?”
“당연하지요! 내 반드시 조조를 잡아 오겠소이다!”
“관 장군은 과거 조조에게 항복해 있을 때, 많은 은혜와 신세를 입어서 그를 놓아 보낼 것 같아서 그 임무를 줄 수가 없었던 것이오.”
“무슨 말씀입니까? 절대로 그런 일은 없을 것입니다! 소장은 이미 관도대전에서 안량과 문추의 목을 벰으로서 은혜를 갚았습니다. 맡겨만 주시오!”
“군령장을 쓸 수 있습니까?”
“물론입니다!”
관우는 군령장을 써서 제갈량에게 제출하면서 질문을 한다.
“그런데 군사, 과연 조조가 화용도로 오기는 오는 겁니까?”
“그렇습니다.”
“만일 오지 않으면 어떻게 되는 겁니까?”
“그럴 일은 없습니다! 저도 군령장을 쓰지요!”
그 이후의 이야기는 모두가 주지하는 대로, 조조는 화용도로 도망쳐 왔고 꼼짝없이 잡혀서 죽게 되었으나, 조조의 진심인지 사심인지, 관우의 인정에 호소하는 심리전의 간계인지, 관우는 머뭇거린다. 조조는 관우 앞에 목을 드리우고 불쌍하게 보이는 상황을 연출하여 인정 많은 관우의 관용으로 탈출하고 만다. 관우의 참모인 관평과 주창이 군령장을 상기시키면서 조조를 놓아 보내서는 안 된다고 간절히 말린다. 하지만 결국 관우는 은혜에 대한 의리와 약자에 대한 인정을 이기지 못하고, 자기의 죽음을 각오하는, 그야말로 믿을 수 없는 결단을 내리는 것이다.
전쟁이 마무리되고 모든 장수의 논공행상이 있을 때, 제갈량은 군령을 어긴 관우를 처형하려 한다. 유비와 장비는 의형제로서 동시에 죄를 지었다고 말하며 그의 구명을 호소하는 소동이 일어난다. 결국 관우는 훗날 공을 세워 죄를 씻기로 하고 그의 처형은 겨우 무마된다.
이때 관우의 구명에 공이 있는 사람은 ‘형주 반환’을 협상하러 온 오나라의 노숙이다. 제갈량은 관우를 마지 못해 조건부 용서해 주면서, 노숙의 체면을 보아 용서한다는 핑계를 댄다. 이 대목에서 제갈량은 이미 여러 가지를 주도면밀하게 고려하는 책략가임을 우리는 눈치챌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이 사건에서 우리가 이미 알고 있거나, 알아야 할, 숨은 속뜻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제갈량이 관우에게 군령장을 받고, 그를 조건부로 출전시키고 나서 주군인 유비에게 이렇게 고한다. 그 내용이 걸작이다. 제갈량이 천문을 보니 조조가 아직 죽을 운명이 아니더란다. 그래서 관우가 은혜에 대해 의리를 지키는 성품이고, 약자에게 모질지 못한 성품인지라 막다른 골목에 놓인 조조를 놓아 줄 것이다. 이렇게 진작에 예측하였다고 한다. 그래서 관우로 하여금 은혜를 갚는 기회가 되도록 배려했다는 것이다. 유비는 제갈량의 재능과 심모원려(深謀遠慮)에 더욱더 감탄하고 신뢰하게 된다.
둘째는, 유비의 삼고초려에 의해 팀에 합류한 제갈량은 유비의 지나치리만큼 지극한 애정과 배려 하에 밤낮으로 밀착하여 지내고, 숙식도 부부처럼 같이할 정도로 가까이하는 바람에, 의형제인 관우와 장비의 질시를 받게 된다. 이런 분위기는 제갈량의 신출귀몰한 용병술과 전략을 여러 번 확인하고 인정할 때까지 계속된다. 유비의 전폭적인 신뢰와 지지가 없이는, 새로 입사한 제갈량의 능력이 아무리 뛰어나더라도, 촉나라 촉한 건립의 공동 오너(owner)라 할 수 있는, 유비의 좌우 동생들을 복종시키고 지휘하기가 매우 힘이 들었을 것이다. 안 보아도 뻔한 사실이다. 일반 기업체에서도, 새로 입사한 나이 어린 전무에게 오너의 동생인 이사들이 진심으로 복종했겠는가. 전권이 주어졌다 하더라도 새로 온 전무가 느끼는 텃세는 엄청났을 것이다.
유비 휘하에서 제갈량이 관우와 장비에게서 느낀 텃세가 바로 이러한 것이었다. 화용도 사건은 제갈량에게 있어서 관우를 마음으로 복종시킬 절호의 기회가 되었을 것이다. 제갈량이 느끼기에, 성격이 급하고 단순한 장비는 오히려 다루기가 쉬웠다. 문제는 관우였다. 정사(正史)에서도 관우는 성격이 굳세고 자긍심이 매우 높은 사람이라고 평가되어 있다. 무예뿐 아니라 학문에서도 경지에 오른 관우는 새로 입사한 나이 어린 전무에게 복종하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권력관계의 구도 속에서 잠재되어 있던 이러한 난제가 화용도 사건으로 어느 정도 해결되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이것이 나의 합리적 추론이다. 내 생각은 그러하다. .
첫댓글 법해 최수모의 평론가다운 날카로운 면모가 보이기 시작하는 글입니다.
이제부터는 우리가 통념으로 지니고 있는 관우에 대한 인식을 전복시키는 법해의 예리한 분석이 나타납니다.
법해의 글을 다듬어 연재하는 것도 앞으로 몇 차례 남지 않았습니다. 잘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젝갈량의 지혜에 감탄했습니다. 그나저나 유비는 천하의 책략가와 용맹한 장군을 곁에 두었으니 그의 품격 또한 대단해 보입니다.
수모씨 덕분에 삼국지 줄거리를 대충 미루어 짐작할 수 있게 되어 감사할 따름입니다.
박교수님, 수고하십니다.
안개 여사, 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