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와 연락이 닿지 않는다. 전화를 받았다가 끊어버리시거나, 수신 거절 하신 게 일주일이 넘었다. 김민정 씨는 매일 전화하고 싶다고 하시는데, 아버지가 그냥 끊으실 때마다 실망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혹시 입원을 하셨나 싶어 요양보호사 선생님께도 전화를 했다. 선생님 전화는 자주 꺼져 있어서 통화가 더 어려웠다. 그나마 간간이 수화기 너머로 들리는 TV 소리로 아버지의 안부를 확인할 수 있었다.
‘오늘은 받으실 때까지 전화를 하자’고 마음먹었다. 12월에 가겠다고 말씀은 드렸지만 아직 날짜를 확정하지 않았다. 그래서 오늘은 꼭 통화를 하고 싶었다.
“김민정 씨, 우리가 다음 주에 생일 앞두고 아버지 댁에 가기로 했잖아요?”
“네. 아빠.”
“네, 아버지도 뵙고, 김민정 씨 좋아하시는 케이크도 먹고요.”
“네. 후후.”
“네, 케이크요. 아버지랑 오늘은 꼭 통화가 되어야 하는데…. 혹시 연결이 안 되더라도 실망하지는 마세요. 제가 오늘은 꼭 연결이 될 때까지 해 볼게요!”
“네, 네.”
오전 내내 전화는 연결되지 않았다. 수신 거절을 하시는 듯하다. 점심을 먹고 힘내서 또 전화하자고 이야기했다. “네, 네.” 하는 김민정 씨도 힘내고 싶은 것 같다.
오후에도 여러 차례 통화를 시도했다. 계속 받지 않으시다가 전화를 다섯 번쯤 했을 때 드디어 연결이 됐다!
“누고? 와 전화하노?”
“아빠.”
“….”
딸의 목소리에도 반응이 평소와 다르다. 약간 화가 나신 것도 같다. 수화기 너머로 TV 소리만 들린다.
“김민정 씨, 제가 말씀드릴까요?”
“네.”
김민정 씨 표정이 어두워서 재빨리 전화를 넘겨받았다.
“아버님, 안녕하세요? 잘 계시죠?”
“누고? 와 계속 전화하노?”
“아버님, 김민정 씨 지원하는 직원입니다. 다름이 아니라 12월에 찾아뵙기로 한 것 때문에 전화 드렸어요.”
“고마 오지 마라! 만다꼬 온다 하노?”
“아버님, 민정 씨 생일이라 다음 주에 찾아뵙겠습니다.”
“….”
“19일에 아버님 댁으로 갈게요.”
“….”
수화기 너머에는 계속 TV 소리만 들린다. 아버지가 화를 내실 때마다 김민정 씨 몸이 움츠러든다. 김민정 씨께 인사드리고 다음 주에 또 전화하자고 권유했다. “안녕.”하는 인사를 하고 전화를 끊었다.
‘아, 어쩌지….’ 싶었다. 너무 자주 전화했던 게 화근이었나? 별별 생각이 다 스쳤다. 우선 김민정 씨에게 설명부터 해야지.
“김민정 씨, 아버지가 오늘 안 좋은 일이 있으신가 봐요.”
“네.”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다음 주에 다시 전화하면 또 다를 수도 있어요.”
“네, 아빠.”
“네, 다음 주에 또 전화해 봐요.”
“네.”
“다음 주에 전화했는데도 오지 말라고 하시면….”
김민정 씨가 눈치를 살핀다. 가지 말자고 할까봐 긴장하시는 것 같다.
“그래도 가요.”
“네, 네.”
“그래도 가야지. 생일인데…. 아버지 얼굴이라도 보고 와요. 설마 거창에서 온 딸 쫓아내기야 하시겠어요?”
“네, 네. 히히.”
저렇게 말하고 나니 정말 그런 생각이 들었다. 설마 아버님이 딸을 쫓아내기야 하시겠나 싶은…. 다음 주에 다시 전화해서 여쭤보고, 또 화를 내시면 그래도 가겠다고 말씀드려야겠다.
2024년 12월 12일 목요일, 구주영
'그래도 가요.' 이렇게 말씀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민정 씨도 그렇게 생각할 겁니다. 신아름
아버지 말씀에 염려했고, 구주영 선생님 말씀에 감사했습니다. 김민정 씨도 저와 같았을 거라고 짐작합니다. '그래도 가요.' 정말 고맙습니다. 월평
첫댓글 『사회사업은 '서로 연락하거나 만나거나 왕래하면 좋을 사람, 함께하거나 돕거나 나눌 만한 사람'과의 관계에 주안점을 두고 돕습니다. 복지요결, 사회사업 주안점, 관계』 당사자의 인간관계는 지금 이 복지뿐 아니라 다른 때 다른 복지까지 이룰 수 있는 바탕이 된다고 합니다. 이점에도 '그래도 가야지'하며 아버지를 만나러 가도록 주선한 일에 큰 의미가 있습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