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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전주 경원 동에 있는 전성교회를 1998년도 등록해서 신앙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 후 주일 학교를 봉사를 하면서 여러 가지로 주변에 어려운 아이들도 만났고,
특히 남노송동 중심으로 풍남초등학교 어린이들이 너무 어려운 가정 들이 많이 있었다.
돌아보면 저 자신의 마음이 너무 아프기만 했다. 어떻게 개인적으로 도와주고 싶지만,
한 두 명도 아니고 또 저에 개인에 형편상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교회에 주일 학교 편에 도움을 청하여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에게 도움을 주게
되였다.
물론 지구상 60억 인구 중에 아마 한국 땅은 축복의 땅이라
할 수가 있다. 잘 살고 살기 좋은 곳 이라 볼 수가 있다. 그 외도 어렵게 힘들게 고센 땅
에서 살아가는 아이들이 너무 많다 우리는 배불리 먹고 남고 살아 갈 만큼이나 축복
받은 땅 이다. 여기서 우리는 감사해야 한다.
내가 만난 아이보다 물론 지구상에 버려진 아이들 많고 고아도 많다.
지구 상에 버려진 아이도 많은데 이것이 얼마나 그렇게 가슴 아픈 일인가 할 수도 있다.
물론 그 아이들에 비하면 뭐 그렇게 별거 아닐 수도 있다.
모든 일이란 이루어 질수 도 있고 또는 이루어 지지 못 할 수도 물론 있다.
어느 일에 이유가 없는 것은 없다. 뜻이 아니기에 그러할 수도 있을 것이다.
사람들은 어떤 일들 그냥 가볍게 생각하기도 하고 쉽게 말하는 경우도 있다.
남에 일이기에 쉽게 말하고 생각하기 때문 일수도 있다.
우리는 살면서 여러 가지 일들을 때론 만나고 직접 체험하기도 한다. 그 과정을 두고
물론 마음 아프게 살아가는 사람도 있고, 또는 쉽게 잊어버리고 살아가는 사람도 있다.
살면서 일을 만나는데 오늘 여기에 누가 이 아이를 만날 줄이야 알게 했을까 만나서
사랑하고 정들고 할 줄을 누가 알겠느냐 말이다.
나는 예쁘고 귀여운 수영 이를 만났다. 아이를 만나게 된 일은 이러하다.
수영 이를 만나고 알게 된 일은 어느 날 이였다. 내가 다니는 교회에 부목사님
께서 수요예배를 마치고 집으로 갈려고 교회 밖을 나서는데 갑자기 부목사님은
박 집사님 하고 저를 불렸다. 예 목사님 ! 저 좀 잠깐 보고 가세요, 예 그러지요,
저는 교회 마당에서 잠깐 기다리고 있었다.
잠시 후 부목사님께서 봉투를 들고 나오시면서 집사님 제가 늦은 시간이라
가지 못하겠어요,
이것문화상품권인데 집사님이 가시는 길에 이 것 좀 갔다 드리세요,
누 굴 드리시며 되나요,
거기 봉투에 수영이 할머니 집사님전화번호가 있으니까 가시다가
전화해서 갔다 드리시면 되요, 집사님 동네에 사세요, 예 그렇게 할게요,
나는 가방에 넣고 저녁시간 집으로 가는 버스에 올랐다.
버스를 타고 가면서 나는 생각 했다 우리 동네에 사시는 분인데 어찌 한 번도
얼굴을 보지도 못했을까 교회를 가끔 다니시나 보다 하고 생각했다.
버스는 20분경에 내가 살고 있는 곳 부근에 도착했다.
버스에서 내려 집근처에 나는 도착했다.
동네에 발걸음을 멈추고 여기쯤 되겠지 하고 폰으로 전화를 먼저 걸었다.
전화별은 세 번 정도 울리더니 어느 노인께서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하고 예 안녕하세요, 저는 전성교회 다니는 박영생 집사입니다.
교회에 부목사님께서 심부름을 시켜 대신 전해 드리고자 잠깐 드리고 갈려 구요,
지금 어디계신가요, 예 저는 지금 여기 동네 슈퍼마겥 앞에 와 있습니다.
지금 나 갈께요, 잠깐 기다리세요, 전화는 끊고 난 후 몇 분 안 되어서 저 앞
에 어떤 노인께서 걸어오고 있었다. 나는 감을 잡고 먼저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좀 전에 전화 드렸던 분입니다.
인사를 하고 가방에 봉투를 꺼 내여 이 것 좀 갔다
드리라고 해서요, 이게 뭐요, 예 문화상품권 이 다고 하시면서 부목사님께서
직접 못 오시고 그래서 또 추석 무렵이라 시간이 없으시다 고 하셔서 대신
전해 드리게 되였어요,
할머니께서는 그러세요, 감사할 일이네요, 고맙다고 전해드리세요,
예 할머니 할머니께서 직접하시지요, 말씀드렸더니 그냥 그쪽에서 하세요,
그렇게 말씀드리겠습니다.
할머니께서는 저에게 물으신다 댁은 어디에 사세요, 예 저는 저기 위 로 좀 올라가면
성원반촌아프트 살고 있습니다, 아 그러세요,
할머니는 자기가 어디 산다고 말씀하셨다.
나는 저 아래 좀만 가면 반쪽짜리 전세를 살고 있어요, 간단하게 본인에 이야기만 하고
그럼 조심해서 살펴 가세요,
하시면서 할머니는 인사로 하고 돌아간다.
나는 가시는 할머니께 인사를 한다. 다음에 시간 내서 놀러 갈게요 그렇게 하세요,
나는 인사를 마치고 집으로 발걸음은 옮긴다. 가는 발걸음은 왼지 무거운 걸음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등을 돌리고 가시는 할머니를 생각해보니 돌아가신 저에 어머니생각이 났다.
수요예배를 마치고 집에 와 보니 좀 늦은 저녁시간 자녀들은 방안에서 공부를 하고 있었다.
아내는 아직 일터에서 돌아오지 안했다.
아내는 늦게 일터에서 돌아 왔다.
오늘 있었던 일을 아내에게 잠깐 들여 주었다. 아내는 그러냐고 하고 묵묵히 서로가
긴 이야기 할 형편도 아니라 더 이야기는 하지 안했다.
다음날 아침 출근을 하기위해 버스를 타고 사무실로 발걸음은 향했다.
일과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던 길 발걸 음은 어제 할머니하고 만났던 그곳 에
발걸음은 멈추었다.
생각나서 한번 집으로 가보고 싶어 어제 했던 전화를 다시 걸었다.
전화 별소리는 울리면서 어제 전화를 받은 할머니 목소리였다.
나는 인사를 하면서 할머니 안녕하세요, 저 기억하시죠,
어제 부목사님에 심부름 했던 분입니다.
퇴근길에 할머니 뵙고 갈려고 여기 와 있습니다.
할머니께서는 그러세요, 저가 나갈게요, 이쪽으로 내려오세요,
할머니께서는 집근처에 저를 맞이했다.
나는 할머니와 함께 집으로 들어섰다.
작은 대문은 반절 열려져 있었다.
나는 할머니 뒤를 따라 방안으로 들어 셨다.
할머니께서는 말씀하신다.
이렇게 누추한 곳을 아닙니다. 할머니께서는 제를 안으로 들어오시라고 안내를 하였다.
방안 문을 열고 보니 어느 한 예쁜 여아 아이 3,4살쯤 되어 보이는 아이가가 방안에 놀고 있었다.
할머니는 아랫목으로 앉으세요, 친절하게 마주했다. 감사합니다. 하고 인사를 한 다음 제는 물었다
손 주 인가요, 했더니 예 할머니는 꼬마에게 어른이 오면 인사를 해야지 그러고 있어 할머니는 꾸짖어 뭐라고 했다
아니에요, 저는 아이에게 인사를 받고 나는 아이에게 물었다.
아이에게 네 이름이 뭐니 하고 물었더니 잘 말을 하지 않자 할머니가 말씀했다.
어른이 물으면 예 누구입니다 라고 했어 안했어 그때서야 아이는 수영이에요,
하면서 제 앞무릎에 턱 앉았다. 나는 좀 당황해서 그냥 안아 주었다. 네 이름이
수영이라고 했지 성은 뭐냐 했더니 박수영 하고 말했다. 아이는 부끄러움 없이 저
무릎에 앉아 있었다.
나는 할머니와 간단하게 서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할머니께서는 지금 살아 온 일들과 사연들을 제에게 어느 정도 말씀하고 계셨다.
영감은 몇 년 전에 암으로 세상을 떠나고 나서 이렇게 전세로 와서 살아가고 있었다.
그 전에는 30평정도 되는 저 위에 아파트에서 살았다고 하면서,
여기 손 주에 대해서는 잘 말씀이 없어서 제가 좀 물어 보았다.
할머니 수영이 에 대해 좀 알려 주시면 안 되시나요,
별 말하고 싶은 생각이 없네요, 차츰 알게 되겠지요, 그러세요,
아이는 제 품에 떠나지 않고 가만 앉아 있었다. 20분정도 있다가 이만 가보겠습니다.
방안에서 일어서면서 박수영아 또 놀러 올게 잘 있어 하고 방문을 나가고 수영이도
따라 나오면서 나를 바라보면서 손을 흔들어 주었다 잘 가세요,
어린아이에 목소리는 힘이 없는 것 같이 가늘 한 말로 잘 가세요,
그래 수영아 안녕 수영 이는 내가 시선이 벗어나는 곳 까지 나와서 손을 흔들어 주었다.
어두운 조명 보안등아래 수영 이는 들어가지 않고 그 자리에 서있었다.
할머니도 함께 같이 서서 저가 길 모퉁이로 돌아 갈 때 까지 바라만 보고 있었다.
나는 계속 뒤를 돌아보면서, 웃음으로 같이 손을 흔들어 주면서 뒷 걸음질 했다.
길모퉁이 로 돌아서고 다시 보고 싶어 수영이 가 살고 있는 집 담벼락을 보았더니
불빛에 서 있던 두 사람은 안으로 들어가고 없었다.
일을 마치고 들어온 아내에게 이야기를 했다 우리 집 근처에 우리 교회 다니는 어떤
할머니집사님과 손 주와 같이 살고 있대 거기 잠깐 갔다 왔는데 아이는 참으로 예쁘고
귀엽고 한 4살 정도 되었던데 말을 이야기를 했더니 그러시냐고 하고 끝마무리를 한다.
나는 또 다음날 일을 마치고 퇴근길에 수영이가 보고 싶어 주변 마트에서 수영이가 좋아
하는 것 또 할머니가 좋아 하는 것을 사가지고 집으로 갔다.
수영이집 담벼락에서 수영아 하고 불렀다. 수영 이는 예 하고 기다린 듯이 대문을
열어 주고 할머니한테로 좋아서 뛰어 간다. 할머니 왔어 할머니는 누가와 하고
방문을 연다.
할머니께서는 일찍이 저녁을 드셨고 작은 티브이만 보고 계셨다.
피곤하실 텐데 또 오셨어요.
아닙니다. 수영이 한번 보고 갈려고 왔어요,
여기 아래로 앉으세요. 하시면서 나는 내가 사온 맛있는 것 을 꺼내어 놓고
수영아 이것 먹어 수영이가 좋아 하는 것 사가지고 왔어
수영 이는 기뻐서 또 힘이 나서 응 하고 과자를 먼저 내 입에부터 넣어 준다.
나는 고마워하고 받아먹었다. 수영 이는 할머니에게도 입에다 넣어 준다.
수영 이는 과자를 먹으면서 내 무릎에 앉는다. 나는 아이를 안아 주면서 수영아 맛있니
하고 물었다.
수영 이는 응 하고 말하자 할머니께서 응이 뭐야 어른한테는 예하고 그래야
한다고 안 그랬어, 나는 그냥 두세요, 차츰 좋아 질 것이에요,
할머니께서는 경우가 바른 분이셨다.
수영 이는 과자를 먹으면서 물었다 나 아빠라고 부르면 안 되 하고 물었다.
나는 그래 수영이가 부르고 싶은 대로 해 괜 찬아 하면서 수영이를 꽉 안아 주었다.
나는 다시 수영이에 대해 긍금 해서 물었다 할머니는 수영이에 대해 천천히 말을
하기 시작했다.
애기 아빠는 없고 아이를 고아원으로 보내라고 하면서 아이 엄마는 집을 떠나갔어요,
어찌 피 덩어리 을 고아원으로 보내겠어요, 천벌을 받을 까봐 보내지 못하고 이렇게
키워 왔어요,
그러세요, 애기 아빠는 안 계신다고 하셨는데 무슨 일이 있으신지요,
그냥 없어요, 거기 까지만 아세요, 그러세요, 수영 이는 돌아앉자 나를 안아 주었다.
수영 이는 아빠 냄새가 좋아 하면서 내 가슴에 코를 비비고 얼굴을 푹 짚어 넣었다.
할머니께서는 수영 이에게 수영아 그만 다리 아프니까 바닥에 내려앉자 말하면서
수영 이는 바닥에 내려앉았다.
나는 수영이 집에 온지 한시간정도 되어서 일어나야 할 시간이 왔다.
그래서 수영아 갈게 우리 다시 만나자 할머니께 이만 갈게요, 하고 일어서는데 수영 이는 다리를 잡고 나주지를 않았다.
아빠 여기서 놀다가 좀 있다 가 좀 있다 응 수영 이는 자꾸 못 가게 한다.
수영이 눈에는 벌써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나는 수영 이에게 수영아 왜 울어 응
울지 마 수영이가 웃어야 또 놀러 오지 안 돼 나랑 놀아 아빠 하고 울고 있었다.
할머니께서는 수영 이을 혼내고 야단이다 나는 수영 이에게 우리 만날 거야 하고
아이에 손을 잡고 안아 주면서 울 지마하고 달래고 나서 대문을 나셨다.
수영 이는 내 바지를 잡고 같이 나셔는데 할머니가 수영이 손목을 잡고 방으로 들어
간다.
나는 대문을 나서면서 수영이 때문에 그만 눈물을 흘렸다.
저 어린 아이에 사랑이 얼마나 그리웠을까 아빠라고 불러 보고 싶었을까 내 마음은
찌 저지는 아픔을 나는 느끼면서 집으로 돌아 왔다.
그래서 더 수영 이을 위해서 아빠에 자리가 되어 주고 싶은 마음으로 나는 수영이을 더
많이 사랑해야하겠구나 하는 것을 알았다.
시간이 허락 한다면 그 시간만큼 이라도 잘 해 주고 싶은 마음이다
그래서 아이를 데리고 제 집으로 왔다.
수영아 여기가 우리 집이야 다음에 시간나면 어린이 집에 만 놀지 말고
우리 집에 놀러 와 혼자 있으면 심심하지 같이 놀아 줄게 하면서 집에서 아이와 집
밖으로 나가 놀이터와 그리고 야산에도 가고 손을 잡고 재미있게 아이와 같이 놀아 주었다.
수영이는 또 확인을 하는 것이었다.
수영이 입에서 갑자기 나 아빠라고 불러도 돼
그래 불러도 괜 찬아 수영 아 나는 수영 이을 꼭 안아 주었다.
어느덧 시간이 다 가고 해가 지고 그래서 아이가 살고 있는 집집으로 데리고 갔다.
할머니는 집에 와 계셨다 할머니 오늘 수영 이와 재미있게 놀고 이제 왔어요,
할머니한테 승낙도 하지 않고 그래서 미안해요 수영이가 다니는 유아 방에 가서
말씀드려 데리고 놀았어요,
할머니는 잘 하셨어요, 앞으로 시간 나시면 그렇게 하셔도 되요,
할머니는 일하고 오후 늦게 돌아 왔다. 무슨 일을 하시는지 여쭈어 보았다.
아파트 청소하려 다녀요, 벌어서 생활비도 쓰고 그래야 해서요, 할머니에 나오는
돈은 수급자이시고 그 돈 가지고는 생활비까지 부족하시다고 한다.
그래서 교회에서 일년에 상품권으로 쌀이나 식품으로 쓰신다고 하셨다.
낮에는 수영이가 집 근처에 있는 유아원에서 보내고 주말이면 집에 혼자 남아
있다 집에서 혼자 어린애가 티브이도 보고 동네 유아 방 친구들 하고 놀고 이렇게
아이는 일과이다. 수영 이는 내 손을 잡고 방안으로 오라고 하면서 손을 잡아당긴다.
아빠 좀 놀다가 가 음 그래 하고 할머니는 놀다가 가요, 예 할머니 아이는
정신없이 앉아 마자 내 품에 안고 아빠 우리 뭐하고 놀까 음 장난 치고 놀자
무슨 장난 음 간지럼피우기 말 태워 주기 하자 나는 간지럼 많이 타는데 그래 하자,
우리는 작은 방안에서 웃고 뛰고 동네 주변에 골목 까지 아이에 웃음소리가 퍼져 나갔다.
수영이 간지럼어디가 타나 보자 아이는 간지러워죽겠다고 웃음이 말이 아니였다.
울다가 웃다가 놀고 있다가 할머니는 저녁밥상을 작 그만하게 봐 오셨다.
별거 아니지만 드세요, 하면서 감사합니다.
하고 수저를 드는데 수영이가 얼른 아빠 하고 수저에 밥을 떠가지고 입에다 넣어 주었다.
나는 음 그래 맛있다.
수영 이는 식사를 마치는 저를 바라만 본다. 아빠 지금 가야 할 시간이네 갈 거야
안 갈 거야 나는 음 사랑하는 수영 이와 놀다가 가야지 수영 이는 눈치를 채고
벌써부터 못 가게 얼른 무릎에 앉아 버린다.
나는 수영 이에게 낼 또 오면 되지 오늘은 집에 가고 수영 이는 자고 가면 안돼
아빠 랑 자고 싶어 응 그것은 허락을 해 주는 집사님 아내에게 물어 봐야 돼
지금 안 될 것 같아 수영 이는 싫어 나 아빠 보내지 안 을 거야 우리아빠지 안아
다음에 꼭 올게 수영 이는 안돼 하고 울기 시작한다.
어쩔 수 없이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앞으로 수영이가 이러면 아빠는 못 와 이러면
안돼 할머니가 뭐라고 하는 바람에 손을 놓자 아이에 눈에는 눈물이 글썽 이였다.
수영아 또 우리 만나자 낼 교회같이 가자 우리 손잡고 버스도 타고 음 알겠지
그래 아빠 잘 가 낼 봐 음 그래 안녕 낼 아침에 올게 집으로 돌아 왔다.
자녀들은 학원에서 집으로 와 있었다. 아빠 어디 다녀오세요,
음 저기 아래 할머니 좀 뵙고 오니라고 하면서 나는 자녀들한테 이야기를 털어
놓고 해야 했다.
우리 시험도 보고 바빠요, 엄마하고 의논하세요, 그리고 저희들은 싫어요,
토요일 저녁에 집사람이 들어왔다
집사람에게 저번에 말했던 것 있지 않아 오늘 그 아이와 놀아 주었네 아내에게
이야기를 했으나 별로 생각이 없는 것 같았다.
주일 아침 우리는 아내와 같이 자녀들과 수영이네 집 쪽 으로 가는 길에
수영 이는 집밖에 나와 기다리고 있었다. 집사람은 아이를 보고 있었고 수영 이는
어색하게 안녕하세요,
아이는 인사를 했지만 아내는 그리 기뻐하지 않고 사랑으로 안아주지도 안했다.
응 네가 수영이야 물으니 아이는 예하고 고개를 끄떡 이였다. 우리는 첫 날 같이
할머니와 아이를 데리고 우리는 같이 버스에 올라 교회로 갔다.
수영 이는 버스에서 아내에게 옆에 앉지 않고 나에게 와서 앉았다.
아이는 고개를 귀 뚱 하고 팔을 잡고 아이와 버스를 타고 갔다.
이렇게 시내버스로 몇 번 타다가 교회버스가 생기게 되었다.
집에서 좀만 내려가면 교회버스를 타게 되어 다소 불편함은 지나갔다.
수영 이는 제 아내와 약간 좀 친해져 갔다. 하지만 그렇게 빨리는 못했다.
좀 어색한 느낌으로 서로가 받아 드렸다.
제 집사람도 그렇게 썩 좋아 하고 예뻐하고 그러는 편이 아니었다.
나를 더 많이 좋아 했다. 어린 아이도 눈치가 있는 것 같았다.
이렇게 같이 다니다 보니 교회에 또는 주변에서 수양딸인 줄 알고 있었다.
다들 수영 이을 보고 예쁘고 귀엽다고 인기가 말이 아니었다.
다음날 평일이면 매일 퇴근길에 가서 보고 가야 했다.
아이는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고 문을 열고 들어가는 순간 달려 와 껴안고
아빠하면서 나도 안아주고 우리는 서로 정도 많이 들었다. 수영이 을 보고 가면
수영 이에 얼굴은 눈물로 헤어지기 실어서 울며
어느 날은 이렇게 수영이가 말했다. 아빠 자고 가면 가 면 안 돼 아빠랑
한번만이라도 같이 자고 싶어 아빠랑 같이 있고 싶어 음,, 아빠 졸라 나는
눈에는 그만 눈물이 나오고 말았다.
수영아 좀만 기다려 봐 우리가 이렇게 같이 함께 잘 날이 있을 것 야 할머니는
아이를 혼내기도 하고 나는 할머니에게 어린 아이가 뭘 안다고 혼내세요, 그냥 두세요,
달래며 다시 집으로 돌아 갈 때도 있었다.
어는 날 이였다. 수영이가 저녁에 제 집을 갑자기 찾아 왔다
누군가가 초인종을 눌러 보았더니 수영 이였다. 어서 들어와 아빠 보고 싶어서 왔어
저희가족들은 멍하게 찾다만 보고 있었다. 집사람도 좀 어색한 눈빛에 할말을
잃어버린 듯이 어휘 없어 하는 얼굴빛으로 바라만 보았다.
집사람도 어쩔 수 없이 아이가 오는 것에 처음이라 그렇게 싫어하지는 않았다.
집사람도 아이를 안아 주었다 아이는 엄마 하고 처음으로 말했다.
집사람도 엄마 하는 소리에 그냥 나쁘게 받아 주지 않았다.
그러나 집사람은 어딘가 모르게 부담이 오고 있었다. 어는 날 제에게 물었다
어떻게 하려고 이렇게 하는지 책임을 어떻게 질러고 ... 나에게는 그 만큼의
능력이 없는 것 또한 아니었다. 딸 하나 수양하는 마음으로 갖는다면..
그러냐고 나는 그 말에 이렇게 말했다 그냥 우리가 받아 드리고 잘 키우면 안 될까
이렇게 정도 들고 그랬는데 이제 와서 어떻게 하겠냐고
엄마 아빠 하는 상황이 왔는데 불쌍하니까 그냥 그대로 받아 주자고 했더니 그것은
안 된다고. 우리 형편이 어려운데 어떻게 제 아이를 키울 수 있겠냐고 시간을 두고 봅시다.
하고 그만 말 을 마무리 하게 했다. 그 후 집사람은 갑자기 그 아이를 싫어하게 되었다.
저희 집을 오는 수영 이을 자녀들도 싫어하고 아내도 싫어했다. 그러면서 어린 아이에게
야! 오지 마 그만 와 빨 랑 너 네 집에 가버려 아이에게 혼내기도 했다.
아이는 놀라 얼른 울면서 현관 밖으로 나가 버렸다. 나는 나도 멍 하게 충격을 받고
화도 났다.
나는 이런 과정들을 지켜보면서 괴로워했고 아무 말 없이 밖으로 나가 놀이터에서
그만 울었다. 수영 이는 어디론가 가 버렸는지 눈앞에 보이지 않았다.
만약에 내가 낳은 아이라면 이 아이가 내 피를 가진 아이라면 다들 어떻게 할까
버려야 할까 거두 워 야 할까 이것도 생각 했다.
아이와 할머니는 우리 가족들과 어느 정도 정이 들며 서로 왕래 하면서 저녁도
드시고 아이도 우리 집에서 놀다가 집으로 돌아가고 이렇게 잘 지내고 있었다.
그런데 어는 날 아이가 우리 집사람이 쉬는 날에 우리 집에 놀러 왔다.
어는 날 아내는 말했다.
갑자기 화를 내면서 아이를 오지 말라고 내 쫓아 버렸다. 나도 당황하며 집사람에게
물었다 왜
어린 아이에게 그렇게 할 필요 없는데 왜 그러냐고 당신도 애 한 테 정 그만 주라고 하면서 화를 내었다.
제 마음은 그 말에 괴로워하며 수영 이는 울면서 현관문으로 나갔다.
나는 아아 와 같이 문밖으로 나갔다.
수영 이을 안고 같이 울었다. 수영아 정말 미안해 내가 잘 못했어 아이는 아냐 내 때문에
그런 것 나 두 알아 아이를 달래서 일단 근처 야산으로 놀러 갔다.
아이는 갑자기 물었다 아빠 나 버리고 갈 거야
나는 아냐 왜 수영 이을 버려 그러지 않을 것 야 하고 말을 돌려보았어요,
저는 고민에 빠지고 괴로워하며 어떻게 할까 ?.
많이 힘들었다. 여기서 어떻게 해야 할지 시간만 가고 있었다.
수영 이는 나를 아빠라고 부르고 이미 정이 들었고 날마다 눈에 눈물만 남기게 만들어
가고 있었고 제 아내는 어떻게 받아 드리지 않아 이러다가 큰 문제가 되어
버리지 않을 까 염려와 근심에 쌓이게 되었답니다.
매일 아이를 바야 함에 마음이 노이고 그렇지 못하면 서로가 아픔이 있으니까요,
정말 제 마음은 괴로워 미칠 정도 되었답니다.
어느 날 가을 이였습니다.
수영이가 다니는 유치원이 쉬는 날 토요일 날 나는 토요일이라 출근을 하고 아이는
아침 일찍 저에 집을 찾아와 놀아 주라고 하자 응 수영아 그러면 아빠 사무실에
가서 놀다 오자 응
하고 길을 나서는 수영 이는 기뻐 뛰면 손을 잡고 버스를 타고 같이 출근길에 올랐습니다.
버스를 타고 20분정도 가면 사무실로 가야 할 거리였습니다.
도중에 버스를 타고 가는데 수영이 표정이 이상했다..
얼굴에 힘이 들어가고 수영아 너 왜 그러니 하고 물었더니
아빠 나 응아 하고 싶은데 버스는 사무실 쪽 가까운 곳에
도착하고 야 좀 만 참아 우리는 버스에서 내려 화장실을 급히 찾아 지만 집마다
문을 잠근 상태에 딱 한집에 문이 열려 져 있었다. 거기 야외 화장실로 급히 가서 보니
아이는 이미 옷에다 변을 보았다 이게 어쩌나 하고 마침 주인집을 노크를 하고 도와
달라고 했더니 그 집은 앞 에 북문교회 전도사님 사택 이였습니다.
아이를 얼른 데리고 세면장으로 갔다.
똥 냄새와 진독한 아이를 아래옷 을 벗기고 대충 내 손으로 씻어 주어 하도 냄새가 심해 대충하고 옷을 올리고 다시 저에 집으로 택시를 타고 달렸습니다. 출근은 좀 늦고 전화로 말씀드리고 한두 시간 늦겠다고 말씀드리고 집으로 데리고 갔다.
가서 씻기고 옷을 입혀 달라고 저 아내에게 부탁을 드리고 저는 그만 사무실로 다시 돌아
갔습니다. 일을 마치고 집으로 와 아이와 재미있게 놀았습니다.
아이는 몇 살 먹더니 이제 입학도 해야 하고 그래서 어는 날 수영이가 1학년 입학을 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출근 때문에 못 가고 할머니만 보내고 말았다.
수영 이는 아빠가 보이지 않아 고개를 이리 저리 돌리며 아빠를 찾았다.
할머니 말에 수영 이가 많이 기다렸다고 했다.
그 자리에는 다들 엄마 아빠 손을 잡고 입학식에 오는데 수영 이와 몇 사람은 그 장소에서
이였답니다.
저는 그 후로 선생님을 찾아 갔습니다. 나이 드신 선생님 이였습니다.
사정을 충분히 말씀드리고 선생님은 예 걱정 마세요, 잘 지도 하겠다고 다짐을 했다.
수영 이는 아빠를 찾는 날이 더 많아 지고 그리고 할머니에게는 영세민 아파트가 당첨이 되어서 또 좋은 일이 생겼다.
이사날도 잡히고 준비하는 시간도 있고 나는 점점 괴로워하면서 보내야 하나 안보내야
하나 할머니에게는 수영이가 필요하고 어떻게 할까 망설이고 있었다.
나는 수영 이에게 이렇게 말했다. 수영아 이렇게 하자 할머니에게는 네가 필요하고 또 할머니도 아파트에서 살아야 해 그래야 좋아
너도 좋고 아빠와 수영 이와 가까운 곳은 아니지만 매일 보러 가지는 못 하고 일주일 한번 보려 갈게 하고 아이를 달래면서 아이는 내 말을 잘 들어 주는 편이였다.
이사할 날이 왔다 이사 가는 날 저는 출근을 하고 할머니께 이사 후 찾아뵈겠습니다.
간단하게 인사를 하고 출근을 했다.
사랑하는 수영 이와 멀리 떨어져 있자니 나는 마음이 아프면서 괴로워했다.
서로가 이루어지지 못하고 이대로 끝나야 하는지 너무 아프다.
버스를 타고 45분정도 거리 평화동 주공으로 옮기게 되었다.
수영이가 이사를 한 뒤 3일후 나는 수영이 있는 곳으로 갔다.
수영 이가 이사를 가고 바로 찾아 갔다,
그날은 마치 토요일 주말이다. 버스를 타고 전화를 했다 수영 이는 전화를 잘 받고
수영아 아빠야 보고 싶었지 아빠 지금 가고 있거든 몇 분 있다가 어디로 나와 하고
평화동 홍지서림에 앞에서 버스에서 내리는데 저 앞 10미터에서 수영이가 미리 나와
기다리고 있었다 할머니랑 수영 이는 뛰어오면서 아빠 하고 달려와 안았다. 나는 수영 이을
안고 한 바뀌 돌아 수영아 사랑해 보고 싶었지 하고 물었다. 수영 이는 응 나 아빠를 많이
많이 하늘만큼이나 보고 싶었다. 아빠도 보고 싶었지,
길에서 한바탕 눈물로 울고 뛰면서 기쁘고 울었다 슬퍼했다가 날 리가 아니었다.
지나가는 사람들도 처다 보고 뭐하냐 하듯이 멍하게 보고 있는 분들도 있었다.
수영아 우리 뭐 먹을까 수영이가 먹고 싶은 것 많이 사줄게 우리 먹고 수영이가 좋아
하는 책 그리고 옷도 사 줄게 응 그래 할머니와 수영이랑 함께 맛있게 먹고 옷도 사서
입히고 할머니랑 재미있는 시간을 가졌다.
놀다가 걷다가 보니 다리도 아프고 수영 이는 업어 달라고 하자 너 초등학생인데 업어
창피해 했더니
다리가 아파서 그래 아빠 한 번만 업어주라 그래 한번이다. 수영 이는 등에 업히고 아이는 팔을 목을 감았다.
수영 이는 아빠 등에 업인 체 이렇게 말했다. 아빠는 나 안보고 싶어 아니 아빠도 얼마나
보고 싶었고 오고 싶었는지 기다렸지 수영아 우리 보고 싶을 때는 전화도 해
좋아 하는 것 사줄게 음 저기로 가자, 우리 먹으면서 웃다가 또 울다가 장난도 치다가 시간이 되어서 집으로 데리다
주며 이별하는 모습에 또 눈물로 서로가 헤어져야만 했다. 이렇게 보내는 날도 몇 개월 몇 년이 되자 아이는 점점 성숙해져 가고 고학년이 되니까 아빠에 마음을 알고 어느 정도 이해가 되었다.
이런 일이 몇 년 몇 개월로 끝나는 것은 아니다 나에게는 남아 있다.
저 아이 하나 따뜻하게 맞이해 주지 않았던
가족들 자기만을 알고 이웃에 소홀히 하는 각자에 마음 그것이 중요했던 것인가,
우리는 때로 불쌍한 여건을 만날 때도 있다. 내 욕심만 생각을 하지 말고 먼저
손 내밀어 주어야 한다.
비록 그 아이가 내 가정으로 되지 않았지만 저에 마음에 자리하고 그 아이도 아마 마음에
늘 생각 하면서 살아 갈 수도 있지 않을 까 본다.
나는 가끔 아이를 보면 그 때 그 일들이 생각한다. 그 뿐 아니다 수영이가 생각 날 때가
있다. 지금이로서 잘 마무리 되지 못하고 끝나는 끝점으로 돌아가겠지만, 아쉬움도 남아
있다.
아마 지금 수영 이는 많이 자라서 고등학생이 되었을 것이다. 예전에 가끔 전화를 했지만 수영 이는 공부 하는 니라고
바쁜 시간들을 보내고 있었다.
미안하기도 하다. 이렇게 끝나는 게 할머니도 아파했고 원치 아니 했다. 할머니는 손 주를
저에게 부탁 까지 하기도 했다.
저 가정 입장에서는 거절로 결론짓고 말았고 저 또한 아내가
왜 그렇게 냉정하게 거절 로 끝나게 되였는지 나는 마음이 아프다.
나는 가 끔 가다가 수영이이야기를 나도 모르게 꺼내기도 한다. 그것은 보고 싶고
생각나서이다.
여기서 아내는 지나간 이야기를 뭐하려 끄집어 내야고 한다.
하지만 나에게는 평생 상처로 가슴에 남아 있으며, 아내는 쉽게 잊어버리겠지만,
나는 아니다. 누구나 그렇게 남에 일에 무관심과 냉정 할까, 그것은 아닐 것이다.
그 속에 다 이유가 있겠고 사정이 있을 것이다.
나는 평생 살아가면서 아마 수영 이는 가슴에 남아 있을 것이다.
나에게 처음으로 경험한 인생에서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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