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반도체 백혈병 산재인정 항소심 판결
근로복지공단은 1심에 이어 2심에서의 산재인정 판결을 즉각 수용하라.
삼성전자는 산업재해 인정하고 제대로 사과하라
- 2014. 8. 21. 삼성반도체 백혈병 사건에 대한 서울고등법원 판결에 대한 반올림 입장
오늘(2014. 8. 21.) 서울고등법원(2심법원)은 삼성반도체 기흥공장 백혈병 사망노동자 고 황유미, 고 이숙영 님에 대하여 1심에 이어 또다시 업무상 재해임을 인정하는 판결(2011누23995)을 내렸다.
이번 판결은 2011년 6월 23일 서울행정법원이 고 황유미, 고 이숙영 님에 대하여 산업재해 라는 판결(2010구합1149)을 내린 것에 대해, 근로복지공단이 항소를 제기하는 바람에 3년이라는 긴 시간동안 또 한번의 법정 공방 끝에 내려진 판결이다.
이번 판결의 영향으로 고 황유미 님과 같은 일을 하였던 또 다른 삼성반도체 백혈병 사망노동자 고 김경미님(2013년 10월 1심에서 산업재해 인정판결(2013구합51244))의 항소심 판결에도 결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또한 이미 삼성반도체 공장에서만 백혈병, 악성림프종 등 중증 림프조혈계질환 피해자가 70여명이 드러난 상황이다. 이번 판결로 또 다른 피해자들에게도 산업재해 인정이 길이 열리길 바란다.
삼성반도체 공장에서 일했던 20대의 건강한 노동자들이 수많은 유해 화학물질들을 취급하며 주야간 교대근무와 생산량 경쟁 등 격무에 시달렸다. 특히 이들의 작업환경에서 벤젠, 전리방사선 등 백혈병을 비롯한 여러 암을 일으킬 수 있는 발암물질에 노출되었다는 것이 이번 산재인정 판결의 주요한 근거이다. 따라서 이 분들의 백혈병이 직업병 즉 업무상 재해라는 판단은 지극히 합리적이고 상식적인 판결이다.
산업재해 인정 판결을 받기까지의 과정은 실로 험난하였다. 노동자(유족)측이 산업재해 입증의 책임을 지는 현행 법제도 하에서 산재임을 증명할 방법은 많지 않았다. 과거와 달라진 반도체 공장의 작업환경 및 부실한 역학조사로 인한 증명의 어려움, 삼성전자 측의 정보 은폐와 사실왜곡에 더하여 근로복지공단의 보조참가인으로 참여한 삼성 전자측의 방대한 반박 주장에 맞서 싸워야 했다. 그러나 산재인정 한번 받기 위해 이렇게 오랜 시간이 걸리고 증명책임까지 노동자에게 부과되어서는 ‘아프고 병든 노동자와 그 가족을 보호’하기 위한 산재보험 제도와는 너무도 거리가 멀다. 따라서 이번 산재인정 판결을 환영하면서도 노동자에게 산재임을 입증하라는 현행 법제도는 하루빨리 바꾸어야 한다.
근로복지공단은 지난 과오에 대해 진심으로 사죄하고 이번 판결의 결과를 겸허히 받아들여야 한다. 근로복지공단이 애초에 재해노동자들의 업무환경에 대한 조사를 철저히 하였더라면, 업무관련성 판단을 내릴 때 반도체 산업의 특수성과 사측의 정보 은폐 상황 등을 감안하여 산재보상보험제도의 취지에 입각한 적극적인 판단을 하였다면 유족들의 고통을 이미 오래전에 덜 수 있었다.
근로복지공단은 오늘 판결에 다시 상고함으로써 유족들의 고통이 더 길어지도록 해서는 절대 안 된다. 고 황유미의 아버지 황상기 님이 2007년 6월 홀로 근로복지공단을 찾아 산재신청을 한 지 벌써 7년 3개월여가 흘렀다. 산업재해보상보험법 제1조 목적에 따라 ‘신속한 보상’을 중요시 여겨야 하는 근로복지공단이 이에 반하여 원심의 산재인정 판결에 대해 항소를 하는 바람에 또다시 3년이라는 긴 시간이 걸렸는데 이번에도 또다시 근로복지공단이 상고를 한다면 근로복지공단 스스로 법을 무시하고 기업주를 위한 기관임을 선언하는 것이다.
유족들의 이러한 오랜 고통에 대하여는 삼성의 책임이 가장 크다. 삼성전자는 노동자들을 유해 위험한 업무환경에 내몰았을 뿐 아니라 산재 승인을 적극적으로 방해해 왔다. 따라서 삼성전자는 이 모든 사태에 대한 책임을 지고 오늘 판결에서 승소한 당사자들 뿐 아니라 모든 피해자에 대하여 합당한 사과와 보상을 하여야 한다.
억울하게도 함께 재판을 받아온 고 황민웅(삼성반도체 기흥공장 백혈병 사망노동자, 설비유지보수 엔지니어. 유족 정애정)님과 김은경(삼성반도체 온양공장 백혈병 투병노동자), 송창호(삼성반도체 온양공장 악성림프종 투병노동자)님에 대해는 산업재해를 인정하지 않았다. 백혈병 등을 일으키는 발암물질에 노출되었는지 여부에 대한 증명이 부족하다는 이유이다. 그러나 수백 여종의 유해요인에 복합적으로 노출될 수 있는 반도체 공정의 특수성과 입증 곤란의 상황이 벌어지게 된 경위에 대하여 고려하지 않은 탓이다. 최근 대법원은 업무상 질병 인정 소송에서 입증의 정도를 크게 완화하는 판결을 여러 차례 내렸다. 유해요인의 존재와 노출량을 모두 간접 증거로 추단할 수 있다는 취지의 판단들이 있었다. 오늘 산재불승인 판단을 받은 세 명의 노동자에 대하여도 같은 취지에서 업무관련성이 인정되었어야 한다. 또한 노동자에게 증명책임이 있다는 현행 법제도는 당장 개선되어야 한다.
반올림은 오늘 판결에서 패소한 세 명의 노동자들도 직업병 인정을 받을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할 것이다.
2014. 8. 21.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 반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