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7년 8월 박정희 대통령이 한창 ‘잘 살아보세’라는 구호아래 새마을 운동을 강조하던 시절 충남 청양 구봉 광산에서 김창선의 이름을 지닌 한 막장 광부가 수직갱도의 붕괴로 120미터 아래에 갇히는 일이 있었습니다. 다행히 그 곳에는 전화가 있어 그가 살아있다는 소식이 온 나라에 퍼지게 됩니다.
그러나 언제까지 버틸지도 모르는 한 사람을 위해 열악한 장비로 수많은 사람이 투입되어야 하고 막대한 돈이 들어야하는데 구조를 하는 것이 현명한 일이냐고 반대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이에 전 국민에게 그 가족들이 나서서 자신들의 남편이자 아버지를 살려달라고 빌었습니다. 결국 모든 것을 제쳐놓고 구출작업을 하는 것으로 결론이 났고, 2,200여 명이 투입되어 16일째 되는 날 마침내 구조에 성공하게 됩니다. 김찬선씨는 떨어지는 물방울을 옷에 묻혀 그 옷을 씹으며 15일을 버텼습니다. 그가 절망에 빠질 때 가족들은 온 국민이 기도하고 있다고 힘을 주었습니다. 이는 갱도 밑에서 세계에서 가장 최장시간을 버틴 기록이 되었는데 구출 당시 김씨는 건강도 정신도 또렷한 상태였습니다. 전 국민의 관심이 쏠렸었기에 가능한 일이었고 잠시나마 무엇이 잘 사는 것인지를 되새겨볼 수 있게 만든 엄청난 사건이었습니다.
예배가 무엇일까요? 예배는 관계입니다. 예배가 없으면 관계도 없는 것입니다. 사람과의 관계도 서로 간에 해 주어야 하는 최소한의 예의가 필요합니다. 그 의무를 다 할 때 그 관계가 깊어지는 것이고 그렇게 상대를 위해 예배를 드려주는 것입니다. 그 의무란 ‘상대가 원하는 무엇’입니다. 상대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그대로 해 주는 것이 상대에 대한 예의고 예배인 것입니다.
그런데 상대의 마음과 하나가 되는 데는 어떤 도움이 필요합니다. 이를 ‘사랑’이라고 합니다. 그 사랑이 오고가며 두 사람의 마음을 하나로 만들어놓습니다. 김창선씨가 그 어두운 땅 밑에 갇혀 있을 때 그 아내나 자녀만큼 김창선씨의 마음과 같이 느낀 사람들이 있을까요? 이것이 관계의 깊이인 것입니다. 상대의 마음과 하나로 느낄 수 있는 힘은 바로 사랑인 것입니다. 그 사랑을 지닌 사람이 참된 예배자입니다. 이는 지식적으로 ‘나는 가족이니까 사랑해야 돼!’라고 배워서 되는 것이 아닙니다. 가족을 사랑해야 하는지 알면서도 몸이 그렇게 따라주지 않아 가족이 슬픈 결말을 맺는 경우도 많습니다.
우리는 관계를 위해 우리 마음을 하나로 만들어주는 사랑을 우리 가정에 불러들여야합니다. 우리는 그 사랑을 성령이라고도 부르고 은총, 하느님의 선물이라고도 부릅니다. 주님의 성령이 우리 안에 내리면 그때서야 그 사랑이 마치 피처럼 서로를 관통하며 하나로 묶어줍니다. 그래서 상대가 느끼는 것을 나도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오로는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가 받은 성령을 통하여 하느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어졌습니다.”(로마 5,5)
그렇다면 이제 우리는 오늘 독서에서 바오로 사도가 ‘참된 할례 받은 사람’에 대해 이야기 할 때 “하느님의 영으로 예배하는 자”라고 한 말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할례는 육체로 받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받는 것입니다. 마음이 민감해져 상대의 감정을 함께 느끼는 것입니다. 그 능력이 바로 하느님의 영 덕분인 것입니다. 이는 인간과 하느님과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인데 우리가 하느님의 마음을 성령으로 아는 것이 참된 예배이기 때문입니다. 그분의 마음도 몰라주고 행하는 예배는 더 껍데기에 불과하고 그분께서 즐겨 받으시지 않으십니다. 예수님은 사마리아 여인에게 참된 예배, 참된 주님과의 관계에 대해 이렇게 일러줍니다.
“하느님은 영이시다. 그러므로 그분께 예배를 드리는 이는 영과 진리 안에서 예배를 드려야 한다.”
하느님은 영이시니, 그 영을 받아야 하느님을 알게 됩니다. 하느님의 마음도 몰라주고 내 마음만 알아달라고 강요하니 참된 예배가 되지 않는 것입니다. 하느님이 아파하시는 것도 모르고 나만 즐거워하는 것이 할례 받지 않은 이방인과 같은 삶입니다. 따라서 주님의 마음을 알게 해주시는 성령을 받지 않으면 참된 예배가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느님의 영이 아니고는 하느님의 마음을 알 방법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 사람 속에 있는 영이 아니고서야, 어떤 사람이 그 사람의 생각을 알 수 있겠습니까? 마찬가지로, 하느님의 영이 아니고서는 아무도 하느님의 생각을 깨닫지 못합니다.”(1코린 2,11)
참된 예배는 참된 관계의 보증입니다. 그리고 모든 관계는 성령의 도우심이 없으면 온전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성령은 육정과 반대됩니다. 육체가 원하는 것을 행하면 성령의 불이 꺼집니다. 반면 육체를 이기면 성령께서 하느님도 인간도 마음으로 알고 느끼게 해 줍니다. 따라서 세례는 바로 이 성령으로 자신의 마음을 상대의 마음을 느낄 수 있도록 예민하게 만드는 할례와 같은 것입니다. 이렇게 육을 이기며 주님 안에서 성령으로 예배하는 이들이 참된 할례를 받은 사람들인 것입니다.
“하느님의 영으로 예배하고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자랑하며 육적인 것을 신뢰하지 않는 우리야말로 참된 할례를 받은 사람입니다.”
첫댓글 육을 이기며 주님 안에서 성령으로 예배하는 이들이 참된 할례를 받은 사람들인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