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범도 장군 유해, 서거 78년만에 고국 품으로
광복절 도착… 18일 대전현충원 안장
청산리-봉오동 전투 승전 이끈 영웅
스탈린 강제이주로 카자흐에 묻혀
文대통령, 현지에 특사단 파견… 건국훈장 최고등급 대한민국장 추서
일제강점기 청산리·봉오동전투를 승전으로 이끌었던 독립운동가 홍범도 장군(1868∼1943·사진)의 유해가 서거 78년 만에 광복절인 15일 고국으로 돌아온다.
박경미 청와대 대변인은 12일 브리핑에서 “카자흐스탄 카심조마르트 토카예프 대통령이 문재인 대통령의 초청으로 16, 17일 우리나라를 국빈 방문한다”며 “토카예프 대통령 방한과 연계해 카자흐스탄 키질로르다에 안장돼 있는 여천 홍범도 장군의 유해를 모셔올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어 “15일 오후 도착하는 홍 장군의 유해는 16, 17일 이틀간 국민 추모 기간을 거친 후 18일 대전현충원에 안장된다”고 밝혔다.
문 대통령은 유해 봉환을 위해 14일 황기철 국가보훈처장을 특사로 하는 특사단을 카자흐스탄에 파견할 예정이다. 특사단에는 홍범도장군기념사업회 이사장인 우원식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국민대표 자격으로 신흥무관학교사업회 홍보대사인 배우 조진웅 씨가 참여한다. 앞서 문 대통령은 2019년 4월 카자흐스탄 국빈 방문 당시 홍 장군의 유해 봉환을 요청했고 이후 정부가 카자흐스탄 측과 실무협의를 진행해왔다. 정부는 지난해 봉오동전투 승전 100주년을 맞아 유해 봉환을 추진했으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영향으로 미뤄졌다.
강신철 대통령국방개혁비서관은 “홍 장군은 연해주에 거주하던 1937년 스탈린의 한인 강제 이주정책에 따라 카자흐스탄으로 이주됐고 다음 해 카자흐스탄 키질로르다에 정착한 뒤 1943년 세상을 떠났다”며 “홍 장군이 1921년 연해주로 이주한 지 100년 만에 고국으로 돌아오는 만큼 이번 유해 봉환의 의미는 더욱 크다”고 말했다. 이어 “홍 장군은 민족정기 선양과 국민 애국심 고취, 고려인의 민족 정체성 함양뿐 아니라 한국과 카자흐스탄 간 우호 증진에 기여한 공적을 새롭게 인정받아 이번에 건국훈장 최고등급인 대한민국장이 추서되기 때문에 유해 봉환의 의미가 더욱 크다”고 했다. 홍 장군은 1962년 건국훈장 2등급인 대통령장을 받은 바 있다.
한편 토카예프 대통령 방한은 2016년 이후 5년 만이다. 지난해 1월 코로나19 사태가 시작된 이후 해외 정상의 첫 국빈 방한이다. 박 대변인은 “카자흐스탄은 중앙아시아에서 우리의 최대 교역국이자 투자 대상국으로 신북방정책 추진의 핵심 협력국”이라며 “교통·인프라·건설, 정보통신기술(ICT), 보건, 환경 등 다양한 분야에서 양국의 실질 협력을 확대하는 방안을 논의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양국은 내년 수교 30주년을 맞는다.
박효목 기자
78년 만의 유해 봉환
구한말 강원도와 함경남도 개마고원 등에서 신출귀몰하던 홍범도의 항일 의병대는 일본군에게 위협적인 존재였다. 일제는 토벌 작전이 번번이 실패하자 급기야 1908년 가족을 동원한 회유에 나섰다. 하지만 홍범도 장군의 부인은 “내가 설혹 (회유) 글을 쓰더라도 영웅호걸인 그는 듣지 않을 것”이라며 버티다 고문 후유증으로 옥중에서 숨졌다. 홍범도는 맏아들이 일제가 쓴 부인의 가짜 귀순 권유 편지를 들고 오자 엄하게 꾸짖으며 총까지 쐈다. 총알이 귀를 스쳐 생명을 건진 아들은 의병이 됐고, 바로 그해 일본군과 싸우다 전사했다. 만 16세의 어린 희생이었다.
▷1868년 평양에서 머슴의 아들로 태어나 일찍 부모를 여의고 머슴, 식객승, 포수를 전전하며 천대와 멸시 속에 살았던 홍범도. 그러나 1895년 명성황후가 시해되자 의병의 길에 투신했다. 간도로 건너간 선생은 1920년 우리 독립군이 일본 정규군을 처음 꺾은 봉오동 전투를 승리로 이끌었다. 김좌진 장군과 함께 청산리 대승도 견인했다. ‘하늘을 날고 축지법을 구사하는 장군’ ‘호랑이 장군’으로도 불렸다. 일제에게는 공포였지만, 고국의 민초들에게는 희망이었다.
▷하지만 해방이 되자 장군은 남북에서 모두 외면당했다. 남한은 소련 공산당에 가입하고 레닌에게 자금을 받았다는 이유로 공산주의자 낙인을 찍었다. 북한은 ‘비호(飛虎) 장군’이라 부르기도 했지만, 김일성과 비교된다는 이유로 부각시키지는 않았다. 앞서 선생은 1937년 소련의 강제이주정책으로 카자흐스탄 키질로르다로 이주했다. 병원 경비, 극장 수위 등으로 일하다 광복을 두 해 앞둔 1943년 세상을 떴다. “독립을 최후까지 외치다가 죽은 후에야 그쳐야 한다”고 열변을 토했던 항일 전사의 쓸쓸한 마지막이었다.
▷카자흐스탄에 있던 홍범도 장군의 유해가 제76주년 광복절인 15일 한국으로 봉환된다. 러시아 연해주로 건너간 지 100년, 서거한 지 78년 만에 조국 땅을 밟는다. 앞서 김영삼 정부 때 유해 봉환이 시도됐지만 북한의 조직적인 반대와 카자흐스탄의 미온적인 태도로 미뤄지다가 이제야 결실을 맺었다. 유해는 18일 국립대전현충원에 안장된다.
▷일제가 만든 ‘조선폭도토벌지’에 따르면 1906년부터 1911년까지 항일 의병 1만7779명이 순국했다. 일제강점기 전부를 더하면 피해는 더 클 것이다. 우리가 누리는 자유와 번영이 수많은 이름 모를 의병의 희생과 헌신 위에 가능했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홍 장군을 기리는 독립된 추모공원과 추모비는 카자흐스탄에는 있지만 국내엔 아직 없다. 후손 될 자격이 있는지, 부끄럽다.
황인찬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