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댓글레그니차 전투에서 무슨 헝가리 군대가 20만명? 기껏해봐야 4만명(이건 판타지 라이브러리 전쟁 천재들의 전술에서 나온 가정)이나 그 이하 밖에는 안 됩니다만 그리고 헝가리 군대도 아니고 독일기사단+폴란드 군대라고 봐야 더 낳습니다. 그리고 신성로마제국군하고 몽골군하고 싸운 적이 없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초토화가 되었겠지요. 무엇보다 현재 유럽이 중동 및 아시아를 넘어서는 일이 안될것 같군요. 칭기츠칸과 바투칸, 몽케칸의 대진격으로 인하여, 중동 및 아시아와 유럽은 동등한 상태에서 출발하게 되었습니다. 모든것이 동등해져 버린것입니다. 몽골이 물런 기록대로 파괴와 살육을 한것은 아니지만, 분명 각국의 문화와 인구에 심각한 타격을 입힌것은 사실입니다. 바그다드, 고려, 사마르칸트등 중세 중요도시 및 국가들은 상당한 타격을 받았습니다. 이에 비해 유럽은 강한충격만 받고, 살아남았습니다. 그리고, 새로운충격을 많이 받습니다. 그리고 3개의 문명권은 동등한 출발선상에 놓이게 되고, 그후 유럽이 승승장구하게 되죠. 그러나
바투칸이라고 부르기는 뭐합니다. 물론 훗날 바투가 몽골울루스 서북부의 드넓은 초원지역을 장악하는 조치울루스를 건국한 인물인 것은 맞고 그의 울루스를 비롯해서 칭기즈의 아들들이 세운 국가들이 모두 '~한국(汗國)'이라는 칭호가 붙었지만 바투가 있었을 무렵에는 칸은 오로지 하나였습니다. 오히려 아카(Aka)라는 칭호가 더 낳지 않을런지 ..
바투칸이 유럽에 난입하였다면, 이제 막 암흑시대를 벗어날려고 하는 유럽은 더욱 암흑시대로 돌입했을 것입니다. 크리스트교에 대한 영향이 더욱 강해질 것이고, 그교리는 더욱 강력해졌을 것입니다. 어쩌면 유럽은 현재 아프리카처럼 됐을 수도 있죠. 우리는 백인들을 무시하고, 동남아, 중동사람들에게 호감을 가지고, 친절히해주고, 중동지역에 유학가고, 어쩌면 중국어나 아랍어를 세계어로 인식하고, 배우고 있을수도 있죠. 분명 유럽에겐 몽골의 세계충격은 많은 이득을 가져다 주었습니다. 중동 및 아시아 문명의 추락, 유럽에 새로운충격이 와서 유럽이 깨어나는데 결정적인 일이 되죠.
아시아의 몰락이 몽골의 팽창 때문이었을까요? 고대에 중국에만 세계 부의 50%가 몰려있던 적도 있습니다. 일부 지역에서 파괴가 벌어진 것은 사실이지만 오히려 실크로드 교역의 안정성 확보로 아시아 지역이 더욱 부유해지는 계기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유럽이 몽골과의 접촉으로 깨어나게 되었다는 데에는 동의하지만 아시아의 몰락의 원인이 몽골의 원정에 있다는 것은 조금 성급하지 않을까 합니다.
몽골군이 헝가리 군을 전멸시킨 전투는 모하이(또는 사요강) 전투입니다. 여기에 동원된 군사는 약 7만에서 10만이고 약 7만의 헝가리군(사실은 유럽 다국적군)이 전사하였습니다. 헝가리군 20만설은 몽골군에게 쫓기던 쿠만족 20만을 두고 한 이야기가 아닌가 생각이 됩니다.
꼭 몽골이 유럽으로 진격했다고 해서 몽골이 승승장구했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그렇게 말하자면 훌레구가 이끄는 몽골의 중동 원정군은 실제 전투력도 우수했고 그 당시 아랍지역은 통일된 하나의 조직체가 거의 전무한 상태였는데 어떻게 이안 잘루트에서 맘룩조의 군대에게 패배했을까요?(물론 훌레구는 도중에 돌아가버렸고 실제로 이안잘루트 전투에서 몽골군을 지휘한 것은 키트부카였지만요) '몽골군=최강'이라는 공식은 절대로 성립하지 않습니다. '만약~'은 상관없지만 '그렇게 되었겠지' 이런 식은 섣부르다고 생각되네요
그래도 몽골기병은 그 당시 매우 막강한 전투력을 소유한 것 만은 사실인듯 보입니다. 절대 강자라고 말하지는 못하더라고 매우 강력한 기병대를 보유했다고는 할수 있겠죠. 그렇지 않고서는 어떻게 그렇게 큰 나라를 세울 수 있었겠습니까? 그리고 그 당시 유럽군은 몽골기병대에 쩔쩔 멘 것은 사실이지 않나요? 오죽했으면 바투를 지옥에서 온 악마 라는 뜻의 타타르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지옥에서 온 악마가 이끄는 부대는 곧 지옥에서 온 악마기병이겠지요 ^^
그렇다면 이안잘루트에서 몽골군이 패배한 것은 어떻게 설명하실 수 있으시겠습니까? 몽골군이 아랍 지역을 침공했을 무렵에는 아직 십자군 전쟁이 이어지고 있던 상황이었고 십자군의 기병들은 아랍 기병들을 여러번 격파하기도 했습니다. 최강이라는 것은 상대적인 것이지 절대적이 될 수 없습니다.
글쎄 몽골군이라는 것이 순수 몽골기병으로만 이루어진 것도 아니고(거란을 흡수하기 이전만 하더라도 순수 몽골인 출신 기병은 9만명 정도 이후 거란 흡수해서 12만 정도로 그 군세가 불렸습니다).. 그리고 몽골인들을 비롯한 유목민들은 자신들에게 가장 적합한 전투 방법을 택해서 싸운 것이지 그들이 근접전에 약했다고는 볼 수 없습니다. 유목국가들도 돌격을 담당하는 중장기병들을 갖추고 있었으니깐요
분명 유럽은 초토화가 됐겠지만..... 유럽의 역사가 완전히 뒤바뀔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고.... 발전이 꽤나 늦춰질 거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실제로 몽고가 침입해서 국토를 황폐화 시키고 항복을 받아내기는 해도, 그들은 철저하게 간접통치 지배방식을 취하기 때문이죠. 러시아, 고려 등이 그 예입니다. 그리고 실제로 중동지역에서도 각 한국들도 내부분열로 얼마안가 멸망하지 않습니까. 분명 피해는 막대했을 것이고 역사는 늦춰졌을 것이나, 유럽문명이 완전히 파괴되거나 하지는 않았을 겁니다. 실제로 240년간 통치를 받았던 러시아는 문화를 존속시켰고 지금은 몽골이 러시아의 간섭을 받고있는 걸로 봐서.....
몽골군이 이집트를 정복하지 못한 것은 전력의 부족이라기보다는 제국의 분열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당시 전방에서 맘루트조 이집트군과 대치중인 상황에서 동유럽과 러시아를 통치하고 있던 킵차크 한국은 갑작스럽게 페르시아 칸국의 수도 타브리즈를 압박하기 시작합니다. 같은 이슬람국가인 이집트와 교감이 있었는지는 아직 증거가 나오지 않았지만 이로인해 몽골군의 전력은 분산되었고 이것이 이안잘루트에서 맘루트조 이집트에게 패하게되는 더 큰 원인이 아니었을까 합니다.
첫댓글 레그니차 전투에서 무슨 헝가리 군대가 20만명? 기껏해봐야 4만명(이건 판타지 라이브러리 전쟁 천재들의 전술에서 나온 가정)이나 그 이하 밖에는 안 됩니다만 그리고 헝가리 군대도 아니고 독일기사단+폴란드 군대라고 봐야 더 낳습니다. 그리고 신성로마제국군하고 몽골군하고 싸운 적이 없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음..그렇군요. 제가 잘못 알고 있었나 봅니다. 4만 명이 맞네요
그리고 바투가 몽골로 돌아간 것은 칭기스만의 장자인 주치 일족의 장자로써 새로운 칸 선출을 위해 간 것입니다만 .. (훗날 4대 칸인 뭉케가 칸 위에 오를 때 바투가 막후에서 도왔고 바투는 죽을 때까지 사실상 2인자로써 활약.)
초토화가 되었겠지요. 무엇보다 현재 유럽이 중동 및 아시아를 넘어서는 일이 안될것 같군요. 칭기츠칸과 바투칸, 몽케칸의 대진격으로 인하여, 중동 및 아시아와 유럽은 동등한 상태에서 출발하게 되었습니다. 모든것이 동등해져 버린것입니다. 몽골이 물런 기록대로 파괴와 살육을 한것은 아니지만, 분명 각국의 문화와 인구에 심각한 타격을 입힌것은 사실입니다. 바그다드, 고려, 사마르칸트등 중세 중요도시 및 국가들은 상당한 타격을 받았습니다. 이에 비해 유럽은 강한충격만 받고, 살아남았습니다. 그리고, 새로운충격을 많이 받습니다. 그리고 3개의 문명권은 동등한 출발선상에 놓이게 되고, 그후 유럽이 승승장구하게 되죠. 그러나
바투칸이라고 부르기는 뭐합니다. 물론 훗날 바투가 몽골울루스 서북부의 드넓은 초원지역을 장악하는 조치울루스를 건국한 인물인 것은 맞고 그의 울루스를 비롯해서 칭기즈의 아들들이 세운 국가들이 모두 '~한국(汗國)'이라는 칭호가 붙었지만 바투가 있었을 무렵에는 칸은 오로지 하나였습니다. 오히려 아카(Aka)라는 칭호가 더 낳지 않을런지 ..
바투칸이 유럽에 난입하였다면, 이제 막 암흑시대를 벗어날려고 하는 유럽은 더욱 암흑시대로 돌입했을 것입니다. 크리스트교에 대한 영향이 더욱 강해질 것이고, 그교리는 더욱 강력해졌을 것입니다. 어쩌면 유럽은 현재 아프리카처럼 됐을 수도 있죠. 우리는 백인들을 무시하고, 동남아, 중동사람들에게 호감을 가지고, 친절히해주고, 중동지역에 유학가고, 어쩌면 중국어나 아랍어를 세계어로 인식하고, 배우고 있을수도 있죠. 분명 유럽에겐 몽골의 세계충격은 많은 이득을 가져다 주었습니다. 중동 및 아시아 문명의 추락, 유럽에 새로운충격이 와서 유럽이 깨어나는데 결정적인 일이 되죠.
이런 상상은 즐겁기도 하죠. 전투력에 관해선 최강을 자랑하는 그들이 깨졌을까 이겼을까를 상상해 보는것이.. 즐겁습니다 ㅋㅋ
아시아의 몰락이 몽골의 팽창 때문이었을까요? 고대에 중국에만 세계 부의 50%가 몰려있던 적도 있습니다. 일부 지역에서 파괴가 벌어진 것은 사실이지만 오히려 실크로드 교역의 안정성 확보로 아시아 지역이 더욱 부유해지는 계기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유럽이 몽골과의 접촉으로 깨어나게 되었다는 데에는 동의하지만 아시아의 몰락의 원인이 몽골의 원정에 있다는 것은 조금 성급하지 않을까 합니다.
몽골군이 헝가리 군을 전멸시킨 전투는 모하이(또는 사요강) 전투입니다. 여기에 동원된 군사는 약 7만에서 10만이고 약 7만의 헝가리군(사실은 유럽 다국적군)이 전사하였습니다. 헝가리군 20만설은 몽골군에게 쫓기던 쿠만족 20만을 두고 한 이야기가 아닌가 생각이 됩니다.
꼭 몽골이 유럽으로 진격했다고 해서 몽골이 승승장구했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그렇게 말하자면 훌레구가 이끄는 몽골의 중동 원정군은 실제 전투력도 우수했고 그 당시 아랍지역은 통일된 하나의 조직체가 거의 전무한 상태였는데 어떻게 이안 잘루트에서 맘룩조의 군대에게 패배했을까요?(물론 훌레구는 도중에 돌아가버렸고 실제로 이안잘루트 전투에서 몽골군을 지휘한 것은 키트부카였지만요) '몽골군=최강'이라는 공식은 절대로 성립하지 않습니다. '만약~'은 상관없지만 '그렇게 되었겠지' 이런 식은 섣부르다고 생각되네요
그래도 몽골기병은 그 당시 매우 막강한 전투력을 소유한 것 만은 사실인듯 보입니다. 절대 강자라고 말하지는 못하더라고 매우 강력한 기병대를 보유했다고는 할수 있겠죠. 그렇지 않고서는 어떻게 그렇게 큰 나라를 세울 수 있었겠습니까? 그리고 그 당시 유럽군은 몽골기병대에 쩔쩔 멘 것은 사실이지 않나요? 오죽했으면 바투를 지옥에서 온 악마 라는 뜻의 타타르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지옥에서 온 악마가 이끄는 부대는 곧 지옥에서 온 악마기병이겠지요 ^^
그렇다면 이안잘루트에서 몽골군이 패배한 것은 어떻게 설명하실 수 있으시겠습니까? 몽골군이 아랍 지역을 침공했을 무렵에는 아직 십자군 전쟁이 이어지고 있던 상황이었고 십자군의 기병들은 아랍 기병들을 여러번 격파하기도 했습니다. 최강이라는 것은 상대적인 것이지 절대적이 될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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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쎄 몽골군이라는 것이 순수 몽골기병으로만 이루어진 것도 아니고(거란을 흡수하기 이전만 하더라도 순수 몽골인 출신 기병은 9만명 정도 이후 거란 흡수해서 12만 정도로 그 군세가 불렸습니다).. 그리고 몽골인들을 비롯한 유목민들은 자신들에게 가장 적합한 전투 방법을 택해서 싸운 것이지 그들이 근접전에 약했다고는 볼 수 없습니다. 유목국가들도 돌격을 담당하는 중장기병들을 갖추고 있었으니깐요
분명 유럽은 초토화가 됐겠지만..... 유럽의 역사가 완전히 뒤바뀔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고.... 발전이 꽤나 늦춰질 거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실제로 몽고가 침입해서 국토를 황폐화 시키고 항복을 받아내기는 해도, 그들은 철저하게 간접통치 지배방식을 취하기 때문이죠. 러시아, 고려 등이 그 예입니다. 그리고 실제로 중동지역에서도 각 한국들도 내부분열로 얼마안가 멸망하지 않습니까. 분명 피해는 막대했을 것이고 역사는 늦춰졌을 것이나, 유럽문명이 완전히 파괴되거나 하지는 않았을 겁니다. 실제로 240년간 통치를 받았던 러시아는 문화를 존속시켰고 지금은 몽골이 러시아의 간섭을 받고있는 걸로 봐서.....
몽골군이 이집트를 정복하지 못한 것은 전력의 부족이라기보다는 제국의 분열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당시 전방에서 맘루트조 이집트군과 대치중인 상황에서 동유럽과 러시아를 통치하고 있던 킵차크 한국은 갑작스럽게 페르시아 칸국의 수도 타브리즈를 압박하기 시작합니다. 같은 이슬람국가인 이집트와 교감이 있었는지는 아직 증거가 나오지 않았지만 이로인해 몽골군의 전력은 분산되었고 이것이 이안잘루트에서 맘루트조 이집트에게 패하게되는 더 큰 원인이 아니었을까 합니다.
그당시는 아직 타브리즈가 수도는 아니었습니다... 당시 훌레구의 사촌이자 킵착한국의 칸인 베르케는 카프카스 이남의 초원지대를 노리려고 남하했죠. 그리고 이안잘루트에서 몽골군 패배는 프랑크와의 동맹이 파기되었다는 것도 있습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