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 한바퀴
연일 내리는 비로 습도가 높다. 후덥지근, 이럴땐 비맞은 개꼴이어도 한바탕 쏘다녀야 속이 시원하다.
옛날부터 비오는 날 남의집 방문은 No Thank You다. 축축히 젖은 바지가랭이 좁은 처소에 서로가 마주보기 민망했고, 비오는데 뭐라도 만들어 내려면 여자들은 남새밭을 나가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의식있는(?) 사내들은 사랑방에 어우러져 시간을 보냈다.
우산을 들고 동네 탐방에 나섰다.
백화점 패스트푸드점에는 점심 손님이 삼분의 일가량 좌석을 채웠다. 그런데 100% 아가씨들이다. 이 낮시간에 남자가 머무를 공간은 아닐 듯하다.
여객터미널 입구에는 단골 피서객 예닐곱이 앉았다. 간단한 빵 과자 부서러기와 소주병까지...왜 바깥에 앉아 있을까? 그 이유를 금새 알수 있었다.
대합실엔 높지않은 기온탓으로 에어컨 가동이 중지되어 휴덥지근 한데 비하여 바깥엔 그런대로 바람이 불었기 때문이다. 눈치로 틈새를 사는 사람들이 그걸 모를리 없었다.
그래도 메인 TV앞에는 단골손님(?) 여나믄명 보금자리 선점을 유지했다.
사람들은 드문드문 자리를 잡았다. 휴대폰을 만지는 사람, 간식을 먹는 사람, 수다를 떠는 사람...어디로 떠나갈 사람들일까? 누구를 마중나온 사람들일까?
앞에 앉은 두 할머니들의 이야기가 흥미 있어 귀를 기우렸다. 지인이 아들 장가간다고 돈 100만원을 빌려달라해서 주었다가 갚으라고 하니 옷통을 벗고 배째라며 내밀더란다. 자신의 아들도 장가를 못간단다.
지금은 보증금 1000만원 월세 50만원 임대주택에 사는데, 아는 언니가 자신의 집에 와서 살라고 한다나.
그런데 방은 짐둘곳도 없고, 호의를 베푸는건 자신이 죽고나면 그동안 일하여 모아둔 통장 차지할 속셈 같다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이때쯤 비가 올거라더니 오는둥 마는둥, 서울행 13시 버스가 플랫홈을 나선다. 승객은 대여섯명, 기름값이나 건지려나?
그러나 자가용 없는 늙은이들 자식집 오가려면 그게 유일한 교통수단이다. 그래서 비효율적이나마 정부의 보조금 지급으로 그 명맥을 잇고 있다.
경제는 갈수록 어려운 모양이다. 터미널내 전자오락실과 약국이 문을 닫았고, 커피점과 도넛점이 겨우 버티어 간다.
이렇듯 승객 적은 터미널은 을씨년스럽고, 언제 차례가 올지 모르는 택시들만 길게 줄을 서서 세월을 낚는다.
플랫홈으로 발걸음을 옮겼더니 이웃 사는 터미널 관리인이 먼곳에서 손짓 하며 다가왔다.
나이 60쯤 되었을까? 어머니를 모시고 사는 효자다. 형님은 간부직 공무원을 지냈다고 하니, 뭔가 자신에 부족한게 있는 듯한 모양이다.
우리집 애 엄마는 그가 싫단다. 아무때나 다가와서 말을 걸기 때문이란다. 나는 호의를 악의로 받아들이지 말라고 하였다.
그는 나만보면 어디서건 다가온다. 그리고 서울행 버스애기다. 차 시간이 바뀌었다. 리무진으로 대체가 되었다...나는 그런걸 알기에 먼저 이야기 꺼리를 만들어 낸다. 그래봤자 금새 대화 내용이 바뀌어 버리지만...
터미널 밖으로 나오니 바람이 시원하다. 더울때 덥더라도 우선은 시원해서 좋다. 한여름 작은 선풍기 바람마져 인공적인걸 싫어하는 나에겐 이순간이 축복이다.
전국이 물폭탄 아수라장으로 변해간다. 다지어 놓은 농사, 진열한 상품들, 물에 잠긴 주차장과 생활터전...
인간이 저지른 업보가 크니 하늘을 원망할 수도 없겠다. 그래도 못난자식 부모앞에 엎드리듯 안녕을 기도 해야할 것이란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