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이는 하루 배달하는 물건이 300개란다.
추석 대목이라서다.
올해는 추석이 예년보다 일러 배달 물량이 막판에 몰렸다고 했다.
햇과일은 적고 김이나 건어물 택배가 많은 것이 그나마 고맙단다.
덜 무거워서다.
물건하나 배달할 떄마다 택시기사에게 떨어지는 돈은 700원,
한 개라도 더 배달해야 목돈을 쥘 수 있으니 어깨에 짐을 얹은 기사는 쉴 새 없이
휴대폰을 눌러 고객이 집에 있는지 확인한다.
사람 사는 정이 예전 같지 않아 시원한 물 한잔 얻어 마시기도 어렵다.
"수고했다"는 인사만 들어도 황송하고, 배송아 왜 아렇게 늦었냐는 항의만 받지 않아도 다행이다.
점심은 김밥이나 빵으로 떄운다.
오줌 눌 시간도 아깝다.
택배기사의 치열한 하루를 다룬 다큐멘터리를 보다 얼굴이 화끈했다.
'물건을 집'안에 들옂지 않고 대문 앞에 달랑 놓고 내뺐다며 분개했던 일이 떠올랐다.
"땀 흘린 만큼 돈을 받을 수 있으니 뿌듯하다"는 40대 중년 기사의 말이 가슴에 꽂힌 건,
엊그제 국회 위원회관 앞에 산더미처럼 쌓인 추석선물 풍경을 보았을 때다.
지난 넉 달 싸움만 했지 통과시킨 법안은 단 한 건도 없이 세비만 받아 챙긴
국회의원들에게 웬 선물은 그리도 많이 오는지, 품목도 다양해서 어지간한 동네마트 하나는 낼 정도란다.
국정감사를 앞두고 피감기관들, 이해관계 얽혀 있는 지역구 사람들이 보내온 게 대부분이다.
발송자가 누군지 알 수 없게 명함을 뒤집어 놓은 경우도 허다하다.
땀 흘린 만큼, 발품을 판 만큼 버니 고달파도 행복하다는 택배기사들에겐 올 추석 가장 씁쓸한
배달물이었을 테다.
하루 종일 가야 택배기사 전화 안번 받아볼 길 없는 서민들은 이래저래 억장이 무너진다.
"요즘처럼 경기 어려울 떈 서로 안 보내고 안 받는 게 도리"라며 위로하지만 섭섭한 마음 숨길 수 없다.
그 알랑한 택배 상자는 왜 늘 가는 집 대문앞에만 쌓이는지.
만년 월급쟁이 남편 둔 친구는 "이번 추석에도 동서들 앞에 자랑할 건덕지가 없어 걱정"이라고 푸념했다.
가난했던 1960~1970년대 서울서 일하던 여공들은 쥐꼬리만 한 봉급을 아끼고 아껴
추석 명절 아버지 드릴 담배 한 보루를 샀다.
어머니를 위해선 서울 여자들 마시는 '코피' 한 병을 챙겼다.
공부하는 남동생에겐 카세트리코더 사서 부쳐주려고 식권값 주려가며 할부대금을 치렀다.
비누 한 통, 참기름 한 병이라도 주는 이의 사랑과 진심이 담겨야 훈훈한 선물이 된다.
여의도의 힘 있는 분들은 이번 추석 국민들께 택배할 마음의 선물이나마 있기는 한 건가.
김윤덕 논설위원 문화부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