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근대 한국의 시간 - 질적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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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경사회에서는 고을마다, 계층마다 서로 시간이 달랐다. 농촌과 어촌, 산간마을과 평지의 시간리듬이 달랐고, 상인과 농민의 시간감각이 같을 수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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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확한 시각을 몰라도 일상생활에는 별다른 지장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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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적 시간관념은 좋은 날과 나쁜 날 등과 같이 선,악 개념과 연결되어 일상의 삶을 규정하였다. 길일을 택하는 것은 곧 나쁜 날을 피하고 좋은 날을 선택한다는 것으로 매일 매순간이 동일한 의미를 지니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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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적으로 농경 사회에서 시간은 미래를 향해 일직선으로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순환한다고 생각되었다. 전근대사회는 아직 시간이 사람들의 삶을 촘촘하게 지배하지 못하는 상태였다.
자본주의 한국의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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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적 노동과정은 최대한의 생산성을 위해 고도로 정확한 시간측정과 동작관리를 추구했다.
1940년대 초반부터 잊 징용등으로 100만명 이상의 동원 노동자들은 기숙사제를 통해 기상에서 취침까지 노동자의 하루 생활을 빈틈없이 통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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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규모 방직공장에서는 여성 노동자의 70 - 80%가 기숙사 생활을 했다. 이들은 작업장, 기숙사, 식당이라는 제한된 공간에서 시간표에 따라 움직이는 죄수 같은 존재가 되었다.
당시 신문지상에는 여공들의 '탈출'기사가 심심치 않게 눈에 띈다. 공장은 탈출해야 할 감옥이 되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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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적 시간은 기본적으로 직선적인 시간관념이며, 좋은 시간, 나쁜 시간이 있는 것이 아니라 모두 같은 시간으로 간주되며, 따라서 양적으로 표시할 수 있게 된다.
이에 따라 자본주의에서는 시간을 특정 노동에 대응하는 형식으로 화폐로 계산할 수 게 되었다. 시간의 절약은 돈의 절약이고 시간의 낭비는 돈의 낭비가 된 것이다. 이제 시간은 돈이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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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사회에서 시간은 학교에서 배우고 익혀야 하는 것이 되었다. 자본주의 사회가 요구하는 시간리듬과 시간의식은 훈육과 교육, 체벌과 포상을 통해 정신 뿐만 아니라 신체에 깊숙이 각인해야 하는 것이 되었다.
학교에서는 학기 단위, 1주일, 하루 동안의 세밀한 시간표가 자여지고, 학생들은 이에 따라 움직여야만 한다. 개인적 선택의 여지는 없다.
이제 학생은 내일의 학습을 위해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난다'고 하는 건전한 가정생활로 강제되고 이런 학교 생활의 규율은 가정까지 뻗치게 된다.
잠꾸러기는 국가와 사회로부터 추방되어야 마땅하다고 훈육되었다. 어른들은 '새벽종이 울렸네' 를 들으며 근대적 노동, 시간 규율을 체화하도록 훈육, 강제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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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모든 주요 역사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하는 것은 시계탑이다. 대부분의 역전 약속 장소는 시계탑으로 결정되며 가장 확실하고 절대적인 시간약속의 기준처럼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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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1년부터는 '국민생활 시간조사'가 이루어지고 있다. 하루 24시간을 15분 단위로 나누어 분석하며, 잡다한 일, 취사, 청소, 심지어 동사무소 가기, 개인적 교제, 여가 활동 등 모든 사회적 개인적 생활 시간을 조사한다.
즉 근대적 시간은 지식에 의해 과학적으로 조사, 분석되어 권력의 통제,관리, 조작 대상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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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적 시간은 이제 형벌로도 확장된다. 근대 이전에는 징역형이라는게 없었다. 춘향이는 징역형을 받은게 아니라 참수형을 위해 잠시 구금된 것이었다.
그러나 근대사회의 가장 일반적인 처벌방식은 징역형이다. 일정한 시간동안 인간을 특정 공간에 감금하는 것이 곤장, 태형 등 신체형을 대신한 것이다.
개인이 처분할 수 있는 '시간'을 압수하여 국가가 강제적으로 관리하는 '시간' 속에 배치는 것이 것이 주요한 '처벌'이 된다는 것은 시간규율을 통해 권력이 개인을 어떻게 통제, 관리하는가를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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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리안 타임은 미군정 시기에 나온듯 한다. 의도적으로 확산된 말일 가능성이 크다. 즉 철저한 근대적 시간리듬을 전 사회적으로 관철하는 것이 필요햇던 사회 지배세력은 자연적 리듬에 길들여진 전국민을 대상으로 일종의 '부정의 캠페인'을 전개한것이다.
-> 수천년동안 농촌에 길들여진 한국인들이 지금처럼 바뀐것은 이처럼 가혹하고 잔인한 '시간 길들이기'가 집중된 시기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세뇌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그러한 세뇌의 상징물이 바로 '시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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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계의 진정한 가치는 그것이 금이나 다이아몬드로 된 것이냐에 있지 않다. 시계의 진정한 의미는 근대적 시간이 작동하는 데 그것이 필수불가결한 요소라는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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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체의 자연적 리듬과 분리된 시간, 곧 기계적 시간, 시계에 의한 기계 시간은 이제 인간의 노동을 분할하고 재구성하는 것을 가능하게 되었다.
-> 근대의 시간은 곧 '시계'다. 시계의 발전사를 보면 한국 자본주의의 발전을 읽을 수 있다. 그 상징물은 '손목시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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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에 시계생산이 본격화되어 , 1988년에는 5천만개를 돌파했다. 시계의 보급과 관련해 주목해야 할 것은 손목시계 이다. 이전까지 대부분의 시계는 청각만을 대상으로 하던지 시각과 함께 청각을 강조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손목시계는 거의 시각만을 대상으로 한 시계이다. 이제 시간은 수동적으로 들리는 것이 아니라 능동적으로 보아야만 하는 것이 되었다.
즉 개개인은 시계를 항상 휴대하고 스스로 매 순간마다 시간을 확인하면서 본,초 단위 까지 세분화된 시간리듬 속에서 살아야만 하게 되었다.
/ 한국역사연구회 '우리는 지난 백년간 어떻게 살았을까
- 황병주 '근대적 시간의 등장'
덧글 : 블루비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