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구 밖을 나서
통합창원시 관문은 여러 군데다. KTX열차가 드나드는 기찻길이 있다. 진해나 마산의 바다일 수도 있다. 남해고속도로가 지나기에 고속도로 진출입로도 된다. 그물망처럼 된 국도도 관문이 될 수 있다. 남북으로 종단하는 홀수 국도 25호선은 진해에서 밀양을 거쳐 칠곡을 지나 청주에 이르는 노선이다. 창원 동쪽의 동읍과 대산면 끝은 낙동강이 흘러내리는 수산대교와 맞닿는다.
시내버스는 일반버스와 좌석버스로 나뉜다. 그 밖에도 공단 출퇴근용 버스가 있고 농어촌버스가 있다. 안민고개나 주남저수지 등으로 일요일만 운행하는 맞춤형버스도 있다. 승합차형 미니버스로 운행하는 마을버스도 있다. 1번 마을버스는 창원역에서 가술을 거쳐 일동 신전까지 운행하는 노선이다. 중간에 용잠삼거리에서 신방마을을 지나 주남저수지를 거쳐 대산 들판을 지나간다.
일월 중순 수요일이었다. 도계동 만남의 광장에서 1번 버스를 탔다. 종점이 가까워지는 가술을 지나 북모산마을에서 내렸다. 북모산마을 뒤로는 낙동강 강둑이다. 강둑을 올라서서 수산대교 곁으로 갔다. 근래 4대강 자전거길이 완공되면서 강둑에서 수산대교로 바로 잇는 데크 진출입로를 만들어 놓았다. 교량을 질주하는 자동차들을 피해 자전거족이 안전하게 다닐 수 있도록 했다.
나는 자전거를 타지 않고 수산대교 자전거길을 걸어서 건넜다. 나처럼 그 길을 걸어서 건넌 사람은 아주 드물 것이다. 강 건너가 밀양 수산이었다. 내가 강을 건너 수산으로 간 것은 밀양쪽 강둑 따라 자전거길을 걷고 싶어서다. 4대강 사업이 시작 되지 전 수산에서 명례 오산을 지나 강둑 따라 밀양역까지 걸어간 적 있다. 새롭게 단장한 자전거길 따라 한 번 더 걸어볼 요량이었다.
걸어 건너기에 한참 걸린 수산대교였다. 강심 일부는 얼음이 얼어 있고 얼음이 얼지 않는 수면엔 청머리오리들이 헤엄을 치고 놀았다. 수산쪽 둔치엔 체육시설들이 들어서 있었다. 수산에서 명례까지 길고 넓은 둔치엔 수산강변공원이 조성되어 있었다. 4대강 사업이 시작되기 전에는 푸성귀를 가꾸는 경작지였다. 폐비닐이나 빈농약병 등이 널브러져 있던 모습과는 전연 달라졌다.
강 건너 유등 북부마을 뒤에도 대산문화체육공원이 조성되었다. 야구장 5면, 축구장 2면을 비롯한 여가를 즐기는 공간으로 만들어 놓았다. 가깝고 먼 강변 풍광은 엷은 안개가 끼어 한낮으로 다가가는 즈음에도 몽환적 분위기였다. 신공항 부지로 거론된 백산들녘엔 비닐하우스가 끝없이 펼쳐져 있었다. 한 주민에게 물었더니 비닐하우스 안엔 딸기와 토마토와 감자를 키운다고 했다.
명례마을 앞 미르피아 오토캠핑장은 공사를 마무리 짓고 있었다. 군데군데 소나무가 보이고 메타스퀘어 숲길도 조성되어 있었다. 강변 야트막한 둔덕의 작은 성당은 순교자를 기리는 천주교 성지였다. 조선말 병인박해 때 이 마을 출신 천주교 신자 손석복은 강 건너 김해 가산에서 붙잡혀 대구 감영으로 이송되어 처형되었다. 경남에서 가장 오래된 성당으로 순례자들이 발길을 잇는다.
명례를 지나 해동과 오산마을 앞까지는 명례강변공원이었다. 천연의 갯버들을 살렸고 단풍나무와 왕벚나무 숲길을 만들어 놓았다. 강 건너는 화포천이 빠져나오는 지점은 낙동강에서 가장 큰 한림배수장이었다. 낙동강 본류는 배수장 부근 암벽에 부딪혀 삼랑진 뒷기미로 방향을 틀었다. 오산마을 앞 샛강엔 가마우지들이 떼 지어 놀았다. 밀양강은 뒷기미에서 낙동강 본류와 만났다.
세 갈래 물길을 바라보는 정자에서 도시락을 비웠다. 이후 평촌 앞들을 지났다. 자전거길은 잠수교 따라 삼랑진 거족마을로 건너갔다. 강바닥 야생으로 자란 갓이 있어 조금 캤다. 길고 긴 강둑을 따라 하염없이 걸었다. 예림다리를 건너 밀양역전으로 가 연락이 닿은 지인을 만나 국수와 파전을 들며 안부를 나누었다. 짧은 시간 환담을 나누다 작별하고 열차를 탔더니 금세 창원이었다. 13.01.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