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정군인 환송과 송충이 구제
당시 일본은 무모하게도 지나(支那:중국) 미국 영국 등 열강을 상대로 싸우다가 패색이 짙어지자 부족한
인적 자원을 보충하기 위하여 우리 동포를 끌고 가려고, 동조동근(同祖同根)이니 내선일체(內鮮一體)니
하며 온갖 술책을 다 쓰고, 창씨개명(創氏改名)이라 하여 성명을 일본식으로 고치게까지 했다.
나는 춘농고에 입학하던 해에 창씨개명을 했는데 모토무라(元村)라고 성만 갈고 이름은 그대로 썼다.
당시 한반도는 <조선총독부>에서 관장을 했는데, 그들은 징병령을 내려 한국의 청장년을 마구 끌고 갔다.
1924년생이 이른바 징병 제1기인데 나도 이에 해당되어 징병검사를 받았으나 제2을종의 판정을 받아
군대 가는 것을 가까스로 면했다.
한 달에도 몇 번씩 청년들은 군인으로 출정(出征)을 했으며, 한국의 청년들도 그 틈에 끼어 전선으로 끌려
갔다. 청년들이 출정할 때에는 온 시민이 춘천역까지 나가서 이들을 환송했는데, 도청에 다니는 우리
관리들도 각자 일장기(일본기)를 들고 <武運 長久>라고 쓴 현수막을 들고 나가 환송을 하였다.
일본 여인들은 천인 바늘(千人針) 수건을 만들어 출정하는 청년의 이마에 머리띠로 매 준다.
이 머리띠는 무명 수건에 붉은 실로 일장기인 붉은 원을 수놓고, 그 좌우로 역시 붉은 실로 <武運> <長久>
라고 수를 놓은 것인데, 이 수(繡)는 한 사람이 놓는 게 아니라 천 명의 손으로 놓는 것이다.
그래서 이 수건을 천인 바늘이라고 한다. 일본인들은 일 천 명의 손으로 수놓은 천인 바늘 띠를 두르고
전쟁터에 나가서 싸우면 천 명의 힘에 의해서 전사하지 않고 승리할 수 있다고 믿고 있어서, 출정하는
청년의 머리에 매주는 것이다.
여름이 되면 송충이 구제에도 동원된다. 봉의산을 비롯한 춘천 근교에는 소나무가 잘 자라고 있었는데,
여름이 되면 송충이가 창궐하여 솔잎을 갉아먹는다.
그러면 소나무가 죽기 때문에 우리는 송충이를 잡는 것이다. 송충이 구제 방법은 통조림 깡통에 진흙을
넣고 여기에 물을 약간 넣어서 휘휘 저어서 팥죽처럼 만든다. 이 진흙 깡통을 가지고 산으로 올라가서,
젓가락만한 나무토막 끝에 진흙을 묻혀서 송충이에 대면 송충이가 나무 끝 진흙에 붙어서 솔잎에서
떨어진다. 그러면 그 송충이를 깡통에 넣어서 잡는 것이다.
우리는 산에 올라가서 소나무 옹이를 자르고 관솔을 캐는 데에도 동원이 되었다.
일본은 전쟁 필수 물자의 하나인 유류가 부족하므로 그 대책의 하나로 소나무 옹이와 관솔을 숯처럼
만들고, 그때에 나온 송탄유(松炭油)를 이용하기 위해서 소나무 옹이와 관솔을 채취했던 것이다.
감사 합니다.
카페지기
첫댓글 왜정시대에 출정하는 청년들 환송하던 것이. 요즙은 군대입소 장소까지 부모형제가 따라
가는 풍습이 되었나 봅니다.다 큰아들 집 대문앞에서 잘다녀 오라구 하면될거 같은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