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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03월09일(토요일) 수원 [화성&서호공원&여기산&여기산 공원] 탐방일정
탐방지 : 수원 화성(華城)
[세계문화유산 수원화성(사적 제3호)
수원화성은 정조의 효심이 축성의 근본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당쟁에 의한 당파 정치 근절과 강력한 왕도정치의 실현을 위한 원대한 정치적 포부가 담긴 정치 구상의 중심지로 지어진 것이며, 수도 남쪽의 국방 요새로 활용하기 위한 것이었다.
정조 18년(1794년)에 축성공사를 시작, 2년 뒤인 1796년에 완공했으며 정약용이 성을 설계하였다.
수원화성은 거중기, 활차, 녹로 등 신기재의 발명과 활용, 동서양 축성술을 집약한 축성방법 등 18세기 과학과 건축, 예술을 살필 수 있는 대한민국 성곽 건축사상 가장 독보적인 건축물로 평가받고 있다.
「수원화성」은 방어 기능과 성벽안에 갖추어진 4개의 성문을 비롯해 각기 다른 모양과 특성을 지닌 건축물의 가치를 인정받아 1997년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대한민국 으뜸 관광 명소’, ‘CNN선정 한국에서 가봐야 할 아름다운 곳 50곳’, 2012 한국관광을 빛낸 ‘한국관광의 별’로 선정되는 등 한국 전통역사문화의 아이콘으로 떠오르며 세계적인 관광명소로 거듭나고 있다.]
탐방코스: [ 화서역 4번 출구~(2.4km)~화서공원~(170m)~수원화성 서북각루~(221m)~화서문~(138m)~서북공심돈~(292m)~북포루~(176m)~북서포루~(209m)~북서적대~(171m)~장안문~(169m)~북동적대~(148m)~북동치~(172m)~북동포루~(201m)~화홍문(북수문)~(161m)~동북각루(방화수류정)~(66m)~북암문~(131m)~동북포루~(208m)~동암문~(208m)~동장대(연무대)~(185m)~동북공심돈~(87m)~동북노대~(145m)~창룡문~(251m)~동일포루~(164m)~동일치~(153m)~동포루~(155m)~동이치~(161m)~봉돈~(149m)~동이포루~(164m)~동삼치~(80m)~동남각루~(354m)~남수문~(320m)~팔달문~(257m)~남치~(129m)~남포루~(130m)~서남암문~(207m)~서남각루(화양루)~(314m)~서삼치~(196m)~서포루(西舖樓)~(165m)~서암문~(77m)~팔달산 정상~(71m)~서장대~(1.2km)~화성행궁 매표소~화성행궁 탐방(행궁 내 이동거리 1.0km)~화성행궁 매표소~(0.4km)~팔달산 대승원~(0.8km)~서장대~(69m)~서노대~(104m)~서이치~(350m)~서포루(西砲樓)~(166m)~서일치~(82m)~서북각루 ] (13.326km)
탐방일 : 2024년 03월 09일(토요일)
탐방코스 및 탐방구간별 탐방 소요시간 (총 탐방시간 5시간20분 소요)
06:00~07:15 구산역에서 6호선을 타고 합정역으로 가서 2호선으로 1차 환승하여 신도림역으로 간 후 1호선으로 2차 환승하여 화서역으로 이동 [1시간15분 소요]
07:15~07:20 화서역 4번 출구로 이동
07:20~08:00 경기 수원시 팔달구 화서동 387-6 번지에 있는 화서역 4번 출구에서 탐방출발하여 경기 수원시 팔달구 화서동 26-35 번지에 있는 화서공원으로 이동
08:00~08:03 경기 수원시 팔달구 화서동 26-58 번지에 있는 수원화성 서북각루(西北角樓)로 이동
[서북각루(西北角樓)는 성곽의 비교적 높은 위치에 세워져 주변을 감시하고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시설이다.
비상시 각 방면의 군사지휘소 역할도 하였다. 서북각루는 화성의 4개 각루 중 하나로 숙지산이 마주 보이는 자리에서 화서문 일대의 군사를 지휘하기 위해 만들었다.]
08:03~08:06 경기 수원시 팔달구 장안동 331 번지에 있는 수원화성의 西門인 화서문(華西門)으로 이동
[화서문(華西門)은 화성의 4대문 중 서쪽 대문이다.
1795년(정조 19) 7월 21일 공사를 시작하여 1796년(정조 20) 1월 8일 마쳤다. 화성 서쪽의 남양만과 서해안 방면으로 연결되는 통로 역할을 하였다. 원래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어 보물 제403호로 지정되었다.
편액은 초대 화성유수였던 채제공(蔡濟恭)이 썼으며 옹성 안 홍예문 좌측 석벽에는 성문공사를 담당하였던 사람과 책임자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08:06~08:15 사진촬영 후 휴식
08:15~08:17 경기 수원시 장안구 영화동 372-1 번지에 있는 서북공심돈(西北空心墩)으로 이동
[서북공심돈(西北空心墩)
공심돈은 적의 동향을 살핌과 동시에 공격도 가능한 시설로 수원 화성에서만 볼 수 있다.
1796년(정조 20) 3월 10일 완공된 서북공심돈은 3층 건물로 아래쪽 부분의 치성(雉城)은 석재로, 위쪽 부분의 벽체는 전돌로 쌓았다.
내부는 전투에 편리한 구조를 갖추었으며 계단을 통해 오르내렸다.
1797년(정조 21) 1월 화성을 방문한 정조는 서북공심돈을 보고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만든 것이니 마음껏 구경하라”며 매우 만족스러워했다고 한다.]
08:17~08:21 경기 수원시 장안구 영화동 320-3 번지에 있는 북포루(北舖樓)로 이동
[북포루(北舖樓)는 북서포루의 서쪽 129보 5척의 거리에 있다. 치(雉)가 성 밖 19척까지 튀어 나왔다. 외면의 너비 27척, 5량 집을 지었다. 사방 2간인데, 구조는 동북포루와 같다. 3면의 평평한 여장은 누의 바닥과 이어지며, 각각 포를 쏘는 구멍을 내었고 안쪽에 나무사다리를 설치했다.]
08:21~08:24 경기 수원시 장안구 영화동 320-2 번지에 있는 북서포루(北西砲樓)로 이동
[북서쪽에 위치한 북서포루(北西砲樓)는 검정 벽돌을 쌓에 치성과 같이 성밖으로 돌출시키고 내부는 나무판을 이용하여 3층으로 구획하였으며 포혈을 만들어 화포를 감추어 두고 위와 아래에서 한꺼번에 공격할 수 있도록 하였다.
북서포루는 성밖으로 약 8.8m 돌출되어있으며 지붕의 형태가 성안쪽은 맞배지붕형식, 바깥쪽은 우진각 형식으로 된 것이 특징이다.]
08:30~08:33 경기 수원시 팔달구 장안동 332 번지에 있는 북서적대(北西敵臺)로 이동
[북서적대(北西敵臺)는 장안문의 북서쪽 약 62.5m 지점에 있으며 1795년(정조 19년) 화성 축성과 함께 축조되었다.
적대란 성곽의 중간에 약 82.6m의 간격을 두고 성곽보다 다소 높은 대를 마련하여 화창이나 활과 화살 등을 비치해 두는 한편 적군의 동태와 접근을 감시하는 곳으로 옛날 축성법에 따른 성곽 시설물이다.
화성 축성 때에는 이미 총포가 전쟁에 사용되던 때이지만, 옛날의 축성법에 따라 적대를 만들어 창과 활 대신 총포를 쏠 수 있도록 총안을 마련하였다.]
08:33~08:36 경기 수원시 팔달구 정조로 910(장안동 329) 번지에 있는 수원화성의 北門인 장안문(長安門)으로 이동
[장안문(長安門)은 화성의 4대문 중 북쪽 문으로 수원화성의 정문이다.
1794년(정조 18) 2월 28일 공사를 시작하여 9월 5일 마쳤다.
장안이라는 말은 수도를 상징하는 말이자 백성들의 안녕을 의미한다.
장안문은 우진각 지붕(지붕면이 사방으로 경사지게 되어있는 형태)으로 규모가 웅장하다.
성문의 바깥에는 반달모양의 옹성을 쌓았는데 이것은 항아리를 반으로 쪼갠 것과 같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으로 성문을 보호하는 역할을 한다.]
08:36~08:50 사진촬영 후 간식
08:50~08:53 경기 수원시 장안구 영화동 136-1 번지에 있는 북동적대(北東敵臺)로 이동
[북동적대(北東敵臺)
적대는 성문과 옹성에 접근하는 적을 막기 위해 성문의 좌우에 설치한 방어 시설물이다.
포루와 치성은 성곽밖으로 완전히 돌출된 반면 이 적대는 시설물의 반만 외부로 돌출되고 반은 성안으로 돌출되어 있다.
적대는 성곽보다 높게 만들어서 적군의 동태와 접근을 감시하였으며 총안등을 만들어 유사시 적을 공격할 수 있도록 만들어졌다.]
08:53~08:55 경기 수원시 팔달구 북수동 420 번지에 있는 북동치(北東雉)로 이동
[북동치(北東雉)는 북동적대 바로 옆으로 적대와 서로 이어져 있다.]
‘치’란 일정한 거리마다 성곽에서 바깥으로 튀어나오게 만든 시설이다.
성벽 가까이에 접근하는 적군을 쉽게 공격하고 성벽을 보호하기 위한 것으로 화성에는 10개의 치가 있다.
치(雉)는 꿩을 의미하는데 꿩이 자기 몸은 잘 숨기고 밖을 엿보기를 잘하기 때문에 그 모양을 본따서 '치성'이라고 이름 붙인 것이다.]
08:55~08:58 경기 수원시 장안구 영화동 145-12 번지에 있는 북동포루(北東砲樓)로 이동
[북동포루(北東砲樓)는 화성의 5개 포루(砲樓) 중 장안문과 화홍문 사이인 북동쪽에 위치하고 있으며 1794년(정조 18) 9월 23일에 완공되었다.
포루는 적이 성벽에 접근하는 것을 막기 위해 화포(火砲)를 쏠 수 있도록 만들었으며 성벽의 일부를 바깥으로 튀어나오게 만든 치성의 발전된 형태이다.]
08:58~09:01 경기 수원시 팔달구 북수동 9000-1 번지에 있는 화홍문(북수문)으로 이동
[북수문(北水門) - 화홍문
화성을 남북으로 가로질러 흐르는 수원천 위에는 북수문과 남수문 두 개의 수문이 있다.
북수문은 1794년(정조 18) 2월 28일 공사를 시작하여 1795년(정조 19) 1월 13일에 완성되었다.
별칭은 화홍문으로 화(華)자는 화성을 의미하고, 홍(虹)자는 무지개를 뜻한다.
장쾌한 물보라가 수문으로 넘쳐나는 모습이 아름다운 곳이다.]
09:01~09:15 사진촬영 후 휴식
09:15~09:17 경기 수원시 장안구 연무동 190 번지에 있는 동북각루(東北角樓)로 이동
[방화수류정으로 부르는 동북각루(東北角樓)는 1794년(정조 18) 10월 19일 완공되었다.
주변을 감시하고 군사를 지휘하는 지휘소와 주변 자연환경과 조화를 이루는 정자의 기능을 함께 지니고 있다.
“꽃을 찾고 버들을 따라 노닌다(訪花隨柳)”라는 뜻을 지닌 방화수류정은 독특한 평면과 지붕형태때문에 바라보는 위치에 따라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이것은 화성에서 가장 뛰어나며 다른 성곽에서는 볼 수 없는 독창적인 건축물로 평가되고 있다.]
09:17~09:18 경기 수원시 장안구 연무동 27-18 번지에 있는 북암문(北暗門)으로 이동
[북암문(北暗門)은 동북각루의 동쪽 40보 되는 벽돌로 쌓은 성 사이에 있다. 안과 밖의 홍예 역시 벽돌로 쌓았다. 안쪽은 너비가 4척 6촌 높이가 6척 5촌이고, 바깥 쪽은 너비가 4척 높이가 6척이다. 문 위에는 둥근 여장을 설치했는데 제도는 동암문과 같다.
홍예 사이에는 돌계단을 설치하여 들어가는 곳은 높고 나오는 곳은 낮게 만들었는데, 지세가 그러하기 때문이다.]
09:18~09:40 경기 수원시 장안구 연무동 196 번지에 있는 동북포루(東北鋪樓)로 이동
[동북포루(東北鋪樓)는 각건대(角巾臺)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방화수류정 동쪽 135보 4척쯤 되는 거리에 있다.
지세가 별안간 높아져서 용두(龍頭)를 눌러 굽어보고 있다.
『성서(城書)』에 이르기를, "치성의 위에 지은 집을 포(鋪)라 한다"고 하였다.
치성에 있는 군사들을 가려 보호하려는 것이다.
치성이 성 밖으로 18척 5촌이 튀어 나왔는데, 외면의 너비는 24척이고, 현안(懸眼) 1구멍을 뚫었다. 5량으로 집을 지었는데, 판자를 깔아 누를 만들었다.]
09:30~09:33 경기 수원시 팔달구 매향동 157 번지에 있는 동암문(東暗門)으로 이동
[동암문(東暗門)은 동장대 서쪽 166보 되는 곳에 있다.
동쪽에 자리잡고 북쪽을 향하여 있으며 벽돌로 안과 밖의 홍예를 만들어 말 한필이 지나갈 수 있다.
안쪽 너비는 7척 높이는 8척이고 바깥은 너비가 6척, 높이가 7척 5촌입니다. 문 위는 벽돌을 깔았고 누는 세우지 않았다.
다만 오성지와 한 개의 큰 둥근 여장을 설치하였는데 마치 나무로 만든 전붕(戰棚)의 제도와 같다.]
09:33~09:36 경기 수원시 팔달구 창룡대로103번길 20(매향동 3-32) 번지에 있는 연무대(鍊武臺)로도 불리는 동장대(東將臺)로 이동
[동장대(東將臺) - 연무대
장대란 성곽 일대를 한눈에 바라보며 화성에 머물던 장용외영 군사들을 지휘하던 지휘소이다.
화성에는 서장대와 동장대 두 곳이 있다.
동장대는 1795년(정조 19) 7월 15일 공사를 시작하여 8월 25일 완공되었다. 무예를 수련하는 공간이었기에 연무대(鍊武臺)라고도 부른다.
이곳의 지형은 높지 않지만 사방이 트여 있고 등성이가 솟아 있어서 화성의 동쪽에서 성 안을 살펴보기에 가장 좋은 곳이다.]
09:36~09:45 사진촬영 후 휴식
09:45~09:48 경기 수원시 팔달구 매향동 157 번지에 있는 동북공심돈(東北空心墩)으로 이동
[동북공심돈(東北空心墩)은 노대의 서쪽 60보쯤 되는 거리에 있다.
성탁(城托)의 위 성가퀴 안에, 요동(遼東)에 있는 계평돈(平墩)을 본떠서, 벽돌로 쌓아서 둥그렇게 돈(墩)을 만들었는데, 겹으로 둘렀다.
높이 17척 5촌, 바깥 원 둘레 122 척, 벽돌로 된 부분의 두께 4척, 안쪽 원 둘레 71척, 내원과 외원 사이에 가운데 4척 5촌의 공간을 비워두고, 2 층 덮개판으로 둘렀다. 아래 층 높이 7척 3촌, 가운데 층 높이 6척 5촌인데, 모두 군사들의 몸을 숨길 수 있게 하였다.]
09:48~09:49 경기 수원시 팔달구 매향동 157 번지에 있는 동북노대(東北弩臺)로 이동
[동북노대(東北弩臺)는 창룡문의 북쪽 96보의 거리에 있다.
치(雉) 위에 벽돌을 쌓아 대(臺)를 만들었는데, 대 아래의 석축 높이 13척, 대의 높이 18척이다.
벽돌로 쌓는 방식은 사각형이지만 모서리를 깎아 벌의 허리처럼 만들어서 모를 죽였다. 안쪽 너비 17척 4촌, 바깥쪽 너비 19척, 성밖으로 나온 부분이 25척 5촌, 2개의 현안을 뚫었고, 위에 둥근 여장을 만들었다.]
09:49~09:51 경기 수원시 팔달구 남수동에 있는 수원화성의 東門인 창룡문(蒼龍門)으로 이동
[창룡문(蒼龍門)은 화성의 4대문 중 동쪽 문으로 1795년(정조19) 5월 8일 공사를 시작하여 10월 17일 마쳤다.
창룡은 곧 청룡으로 풍수지리상 좌청룡이며 동쪽을 의미한다.
성문을 보호하기 위한 옹성을 반달모양으로 쌓았는데 장안문, 팔달문과 달리 한쪽을 열어놓았다.
옹성 안 홍예문 좌측 석벽에는 공사를 담당하였던 사람과 책임자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09:51~09:55 사진촬영
09:55~09:59 경기 수원시 팔달구 남수동 11-160 번지에 있는 동일포루(東一舖樓)로 이동
[동일포루(東一舖樓)
포루는 성곽을 돌출시켜 만든 치성 위에 지은 목조건물이며 초소나 군사대기소와 같은 곳이다.
동일포루는 화성의 5개 포루 중 동쪽에 위치하고 있으며 1796년(정조20) 7월 10일 완공되었다.
평탄하고 넓은 지형에 위치하고 있으며 서북쪽의 포루와 다르게 성벽에서 많이 돌출 되었으며 판문이 설치되어있지 않다.]
09:59~10:01 경기 수원시 팔달구 남수동 153 번지에 있는 동일치(東一雉)로 이동
[동일치(東一雉)는 동일포루에서 봉돈 쪽으로 125보(148m)의 거리에 있다.]
‘치’란 일정한 거리마다 성곽에서 바깥으로 튀어나오게 만든 시설이다.
성벽 가까이에 접근하는 적군을 쉽게 공격하고 성벽을 보호하기 위한 것으로 화성에는 10개의 치가 있다.
치(雉)는 꿩을 의미하는데 꿩이 자기 몸은 잘 숨기고 밖을 엿보기를 잘하기 때문에 그 모양을 본따서 '치성'이라고 이름 붙인 것이다.]
10:01~10:03 경기 수원시 팔달구 남수동 153 번지에 있는 동포루(東砲樓)로 이동
[동포루(東砲樓)는 화성의 5개 포루 중 동쪽 동일치와 동이치 사이에 위치하고 있으며 1796 (정조20) 7월 16일에 완공되었다.
포루는 적이 성벽에 접근하는 것을 막기 위해 화포를 쏠 수 있도록 만든 시설물로 치성의 발전된 형태이다.
화성의 포루는 모두 벽돌을 사용하여 만들었으며 공심돈과 같이 안을 비워 적을 위와 아래에서 동시에 공격할 수 있게 하였다.]
10:03~10:05 경기 수원시 팔달구 남수동 153 번지에 있는 동이치(東二雉)로 이동
[동이치(東二雉)는 동포루(東砲樓)와 봉돈의 중간 지점에 있다.]
‘치’란 일정한 거리마다 성곽에서 바깥으로 튀어나오게 만든 시설이다.
성벽 가까이에 접근하는 적군을 쉽게 공격하고 성벽을 보호하기 위한 것으로 화성에는 10개의 치가 있다.
치(雉)는 꿩을 의미하는데 꿩이 자기 몸은 잘 숨기고 밖을 엿보기를 잘하기 때문에 그 모양을 본따서 '치성'이라고 이름 붙인 것이다.]
10:05~10:07 경기 수원시 팔달구 남수동 153 번지에 있는 봉돈(烽墩)으로 이동
[1796년 6월 17일 완성된 수원 화성 봉돈(烽墩)은 일반적인 봉수대(烽燧臺)가 주변을 잘 살필 수 있는 산 정상에 별도의 시설로 만들어진 것과 달리 화성 성벽에 맞물려 벽돌로 만든 것이 특징이다.
우리나라 성곽 양식에서는 보기 드문 형식으로 마치 예술작품처럼 정교하게 만든 수원화성의 대표시설이다.
평상시 남쪽 첫 번째 화두(火竇: 횃불구멍)에서 횃불이나 연기를 올려 용인 석성산과 흥천대 봉화로 신호를 보냈다.]
10:07~10:09 경기 수원시 팔달구 남수동 153 번지에 있는 동이포루(東二舖樓)로 이동
[동이포루(東二舖樓)는 화성의 5개 포루 중 동쪽에 위치하고 있으며 1796년 (정조 20)7월 3일에 완공되었다.
포루는 성곽을 돌출시켜 만든 치성 위에 지음 목조건물이며 초소나 군사대기소와 같은 곳이다.
평탄하고 넓은 지형에 위치하고 있으며 봉돈을 방어하기 위하여 설치하였다.
서북쪽의 포루와 다르게 성벽에서 많이 돌출되었으며 판문이 설치되어 있지 않다.]
10:09~10:11 경기 수원시 팔달구 남수동 153 번지에 있는 동삼치(東三雉)로 이동
[동삼치(東三雉)는 동이포루와 동남각루의 중간지점에 있다.]
‘치’란 일정한 거리마다 성곽에서 바깥으로 튀어나오게 만든 시설이다.
성벽 가까이에 접근하는 적군을 쉽게 공격하고 성벽을 보호하기 위한 것으로 화성에는 10개의 치가 있다.
치(雉)는 꿩을 의미하는데 꿩이 자기 몸은 잘 숨기고 밖을 엿보기를 잘하기 때문에 그 모양을 본따서 '치성'이라고 이름 붙인 것이다.]
10:11~10:12 경기 수원시 팔달구 남수동 11-350 번지에 있는 동남각루(東南角樓)로 이동
[동남각루(東南角樓)는 성곽의 비교적 높은 위치에 세워져 주변을 감시하고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건물이다.
비상시 각 방면의 군사지휘소 역할도 하였다.
동남각루는 화성의 4개 각루 중 성 안팎의 시야가 가장 넓은 곳이다.
남수문 방면의 방어를 위하여 남공심돈과 마주보며 군사를 지휘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10:12~10:17 경기 수원시 팔달구 남수동에 있는 남수문(南水門)으로 이동
[남수문(南水門)은 수원천이 화홍문에서 남쪽으로 흘러 내려와 성곽과 다시 만나는 지점에 만든 수문이다.
수원천 하류 수량 증가에 대비하여 9개의 홍예수문으로 되어 있으며, 수문 위에는 성밖 적들의 침입을 방어하기 위한 포사가 세워져 있어 비상시에는 군사들이 대기 하거나 공격할 수 있도록 하였다.
남수문 복원을 위해 지난 2004년 남수문터에 대한 발굴조사에 나섰고, 2012년 6월 복원을 완료하였다.]
10:17~10:22 경기 수원시 팔달구 정조로 780(팔달로2가 138) 번지에 있는 수원화성의 南門인 팔달문(八達門)으로 이동
[팔달문(八達門)은 화성의 4대문 중 남쪽 문으로 남쪽에서 수원으로 진입하는 곳에 위치하고 있다.
정조대왕과 당대 국왕들이 현륭원을 가기 위해 이곳을 통과했다고 한다.
1794년(정조 18) 2월 28일 공사를 시작하여 9월 15일에 완공하였다.
팔달문은 모든 곳으로 통한다는 '사통팔달'에서 비롯한 이름이며 축성 당시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어 보물 제402호로 지정되었다.]
10:30~10:40 사진촬영 후 휴식
10:40~10:44 경기 수원시 팔달구 교동 6-197 번지에 있는 남치(南雉)로 이동
[남치(南雉)
‘치’란 일정한 거리마다 성곽에서 바깥으로 튀어나오게 만든 시설이다.
성벽 가까이에 접근하는 적군을 쉽게 공격하고 성벽을 보호하기 위한 것으로 화성에는 10개의 치가 있다.
치(雉)는 꿩을 의미하는데 꿩이 자기 몸은 잘 숨기고 밖을 엿보기를 잘하기 때문에 그 모양을 본따서 '치성'이라고 이름 붙인 것이다.
남치는 팔달문과 남포루 사이에 위치하고 있다.]
10:44~10:48 경기 수원시 팔달구 교동 6-197 번지에 있는 남포루(南砲樓)로 이동
[남포루(南砲樓)
포루(砲樓)는 성벽의 일부를 밖으로 돌출시켜 치섬과 유사하게 축조하면서 내부를 공심돈과 같이 비워 그 안에 화포 등을 감추어 두었다가 위. 아래와 삼면에서 한꺼번에 공격할 수 있도록 한 시설이다. 성곽시설물 중에서 가장 중무장된 시설이라 할 수 있다.
화성에는 벽돌을 사용하여 모두 5개의 포루(남포루, 서포루, 북서포루, 북동포루, 동포루)를 만들었는데, 서포루만 약간 작고 4개의 포루는 동일한 규격이다.]
10:48~10:53 경기 수원시 팔달구 교동 6-197 번지에 있는 서남암문(西南暗門)으로 이동
[서남암문(西南暗門)은 서암문의 남쪽 367보 되는 곳에 있는데 용도(甬道)가 실지로 시작되는 곳이고 화양루의 통로가 된다.
벽돌로 된 홍예는 안쪽의 너비가 7척 높이가 8척 5촌이고 바깥 너비 6척 높이 8척이다.
위에는 안팎으로 평평한 여장을 설치하였으며 그 안에다 집을 지었는데 이것이 포사(鋪舍)이다.
서남포사는 암문 위에 있어 높은 곳에 의거해서 멀리까지 볼수 있기 때문에 군졸을 두어서 경보를 알리기에 알맞게 되어 있다.]
10:53~10:56 경기 수원시 팔달구 교동 6-196 번지에 있는 화양루(華陽樓)로 불리는 서남각루(西南角樓)로 이동
[서남각루(西南角樓)는 화양루(華陽樓)라고도 하는데, 용도(甬道)의 남쪽으로 멀리 떨어지고 높은 지점 경치좋은 곳에 따로 우뚝 서 있다.
누의 규모는 6간인데 남북 21척, 동서 14척, 남쪽으로 2간은 판자를 깔고 난간을 둘러치고, 삼면에 판문을 내었다.
그리고 북쪽에는 분합을 내고, 분합의 밖으로 4간에는 네모난 벽돌을 깔았다.
이 벽돌로부터 판자를 깐 데까지의 높이 1척 7촌 석체(石)에서 벽돌을 깐 데까지 높이 2척, 단청은 5토를 썼으며, 들보 위는 회를 발랐다.]
10:56~11:00 사진촬영
11:00~11:05 경기 수원시 팔달구 남창동 55-24 번지에 있는 서삼치(西三雉)로 이동
[서삼치(西三雉)
‘치’란 일정한 거리마다 성곽에서 바깥으로 튀어나오게 만든 시설이다.
성벽 가까이에 접근하는 적군을 쉽게 공격하고 성벽을 보호하기 위한 것으로 화성에는 10개의 치가 있다.
치(雉)는 꿩을 의미하는데 꿩이 자기 몸은 잘 숨기고 밖을 엿보기를 잘하기 때문에 그 모양을 본따서 '치성'이라고 이름 붙인 것이다.
서삼치는 서포루(西舖樓)와 서남암문 사이에 있다.]
11:05~11:08 경기 수원시 팔달구 남창동 55-24 번지에 있는 서포루(西舖樓)로 이동
[서포루(西舖樓)
포루는 성곽을 바깥으로 튀어나오게 만든 치성 위에 지은 목조 건물이며 군사들이 망을 보면서 대기하는 곳으로 화성에는 5개의 포루(舖樓)가 있다.
서포루는 서암문이 적에게 발각되어 공격받는 것에 대비하여 설치되었다.]
11:08~11:10 경기 수원시 팔달구 남창동 55-23 번지에 있는 서암문으로 이동
[서암문(西暗門)
암문은 성곽의 깊숙하고 후미진 곳에 적이 알지 못하도록 만든 출입구이다.
사람이나 가축이 통과하고 군수품을 조달하기 위한 목적으로 설치된 문이다.
화성에는 5개의 암문이 설치되어 있다.
서암문은 자연 지형을 이용하여 만들어졌기 때문에 가까이 접근하기 전에는 암문이 있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감춰져 있다.
1796년(정조 20) 6월 18일 완공되었다.]
11:10~11:12 경기 수원시 팔달구 남창동 55-24 번지에 있는 팔달산(145.5m) 정상으로 이동
11:11~11:12 경기 수원시 팔달구 남창동 55-23 번지에 있는 서장대(西將臺)로 이동
[서장대(西將臺)
장대란 성곽 일대를 한눈에 바라보며 화성에 주둔했던 장용외영 군사들을 지휘하던 지휘소이다.
화성에는 서장대와 동장대 두 곳이 있다.
서장대는 팔달산 정상에 있으며 ‘화성장대(華城將臺)’란 편액은 정조가 친히 쓴 것이다.
1794년(정조 18) 8월 11일 공사를 시작하여 9월 29일 완성되었다.]
11:12~11:22 사진촬영 후 휴식
11:22~11:40 경기 수원시 팔달구 정조로 825(남창동 6-2) 1층에 있는 화성 행궁 매표소로 이동
11:40~12:00 화성행궁(華城行宮) 탐방 후 화성 행궁 매표소로 회귀
[정조의 원대한 꿈과 효심이 느껴지는 화성행궁은 전국에 조성한 행궁 가운데 가장 돋보이는 규모와 격식을 갖추었으며 경복궁만큼 아름다운 궁궐로 손꼽힌다.
華城行宮 | 사적 제478호 | 1796년(정조 20) 창건 | 2002년 복원
화성행궁은 조선 정조 13년(1789)에 정조의 아버지 사도세자의 무덤을 수원부 읍치 자리로 옮기고, 원래 수원부 읍치를 팔달산 아래로 옮겨 오면서 관청으로 사용하기 위해 건립되었다. 왕이 수원에 내려오면 머무는 행궁으로도 사용했다. 정조는 수원도호부를 화성유수부로 승격시켜 위상을 높인 한편, 1795년 화성행궁에서 어머니 혜경궁 홍씨의 회갑연을 치르기 위하여 건물의 이름을 바꾸거나 새로 지었다. 1796년에 전체 600여 칸 규모로 완공되었다.
행궁(行宮)은 왕이 지방에 거동할 때 임시로 머물거나 지방에 별도의 궁궐을 마련하여 임시 거처하는 곳을 말하며, 그 용도에 따라서 크게 세 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전쟁과 같은 비상시에 위급함을 피하고 국사(國事)를 계속 하기 위해 마련된 행궁으로는 강화행궁, 의주행궁, 남한산성행궁 등이 있고, 휴양을 목적으로 설치된 행궁으로는 온양행궁이 있다. 그리고 왕이 지방의 능원(陵園)에 참배할 때 머물던 행궁으로 화성행궁이 있다.
정조는 1790년 2월부터 1800년 1월까지 11년간 12차에 걸친 능행(陵幸)을 하였으며, 이때마다 화성행궁에 머물면서 여러 가지 행사를 거행하였다. 뿐만 아니라 정조가 승하한 뒤 순조(純祖) 1년(1801) 행궁 옆에 화령전(華寧殿)을 건립하여 정조의 진영(眞影)을 봉안 하였고 그 뒤 순조, 헌종, 고종 등 역대 왕들이 이곳에서 머물렀다.
화성행궁은 조선 시대 전국에 조성한 행궁 가운데서 가장 돋보이는 규모와 격식을 갖추었으며, 건립 당시의 모습이 『화성성역의궤』와 『정리의궤』에 그림으로 남아 있다. 그러나 화성행궁은 일제강점기인 1911년부터 병원과 경찰서로 쓰이기 시작했고, 1920년대 병원 건물이 신축되며 대부분 파괴되었다. 현재는 낙남헌과 노래당만 본래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 1919년 3월 29일에는 자혜의원에 검진을 받으러 가던 김향화를 비롯한 기생 30여 명이 경찰서(북군영) 앞에서 태극기를 들고 만세를 불렀다.
1980년대 말 지역 시민들이 복원추진위원회를 구성하여 복원운동을 펼친 결과 1996년 복원공사가 시작되고, 2002년에 중심권역의 복원공사를 마쳤다. 2016년부터 화성행궁 우화관과 별주의 발굴조사와 복원 사업이 진행 중이다.]
12:00~12:06 경기 수원시 팔달구 행궁로26번길 38(남창동 56-3) 번지에 있는 팔달산대승원(八達山大乘院)으로 이동
12:06~12:16 팔달산대승원의 황금미륵대불(1988년에 조성된 높이 19m의 대불)을 사진촬영
[수원 화성 관광오신 분들이 두번째로 많이 찾는 곳이 "팔달산 대승원(八達山 大乘院)"이라고 한다.
수원의 화성행궁에서 서쪽을 바라보면 팔달산 기슭에 거대한 황금색의 불상이 보인다. 이곳은 수원 화성 관광을 하는 사람들이 많이 찾는 곳 중 하나로 "팔달산 대승원(八達山 大乘院)"이라고 한다. 이 대승원에는 거대한 미륵황금불상이 있다.
대승원은 고봉(杲峰) 황성기(黃晟起, 1919~1979) 스님이 '마하사(摩訶寺, 지금의 대승원)를 창건해 대중교화에 힘썼다고 전한다.
팔달산 대승원은 어떤 종파에 속하지 아니한 무종파 사찰이다. 사찰로서의 기능도 하지만 불교사상을 교육하는 장소로서도 은연 중에 이름나 있다.]
12:16~12:29 경기 수원시 팔달구 남창동 55-23 번지에 있는 서장대(西將臺)로 회귀
12:29~12:30 경기 수원시 팔달구 남창동 55-23 번지에 있는 서노대(西弩臺)로 이동
[화성에는 서노대와 동북노대가 두 곳이 있다.
서노대(西弩臺)는 팔달산 정상에 위치하여 사방을 볼 수 있으며 정팔각형 평면이며 기와 벽돌로 쌓았다.
노대는 성 가운데서 다연발 활인 쇠뇌를 쏘기 위하여 높게 지은 시설이다.]
12:30~12:32 경기 수원시 팔달구 남창동 55-24 번지에 있는 서이치(西二雉)로 이동
[서이치(西二雉)는 서포루(西砲樓)와 서장대 사이에 있다.
‘치’란 일정한 거리마다 성곽에서 바깥으로 튀어나오게 만든 시설이다.
성벽 가까이에 접근하는 적군을 쉽게 공격하고 성벽을 보호하기 위한 것으로 화성에는 10개의 치가 있다.
치(雉)는 꿩을 의미하는데 꿩이 자기 몸은 잘 숨기고 밖을 엿보기를 잘하기 때문에 그 모양을 본따서 '치성'이라고 이름 붙인 것이다.]
12:32~12:37 경기 수원시 팔달구 화서동 26-60 번지에 있는 서포루(西砲樓)로 이동
[서포루(西砲樓)는 수원화성의 서쪽 성벽 서일치와 서이치 사이에 위치하는 포루로, 팔달산 중턱에 세워져 있다. 포루는 성벽의 일부를 돌출시켜 쌓고 상부에는 누각이 있는 치성을 말하는데 화포공격도 가능하도록 세운 시설물이다.
수원화성에는 5곳에 포루가 설치되었는데 서포루는 급경사지에 세워져 규모가 작고 화포와 총을 쏘는 구멍이 다른 포루에 비해 갯수도 적은 편이다. 전체 3층 구조로 아래 2개 층에는 화포와 총을 쏘는 구멍이 있고 상층에는 누각이 있다.
1796년(정조20)에 창건하고 1975년 복원되었다. 벽돌로 쌓은 하부층은 훼손되지 않은 상태의 창건 당시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으며 상부층의 누각은 이후 복원한 것이다.]
12:37~12:39 경기 수원시 팔달구 화서동 26-59 번지에 있는 서일치(西一雉)로 이동
[서일치(西一雉)는 서북각루와 서포루(西砲樓) 사이에 있다.]
‘치’란 일정한 거리마다 성곽에서 바깥으로 튀어나오게 만든 시설이다.
성벽 가까이에 접근하는 적군을 쉽게 공격하고 성벽을 보호하기 위한 것으로 화성에는 10개의 치가 있다.
치(雉)는 꿩을 의미하는데 꿩이 자기 몸은 잘 숨기고 밖을 엿보기를 잘하기 때문에 그 모양을 본따서 '치성'이라고 이름 붙인 것이다.]
12:39~12:40 경기 수원시 팔달구 화서동 26-58 번지에 있는 서북각루(西北角樓)로 원점회귀하여 수원화성과 행궁을 탐방 완료
탐방지 : 수원 [서호공원&여기산&여기산 공원]
탐방코스: [수원화성 서북각루~(3.2km)~서호공원~(1.4km)~여기산~(1.7m)~화서역 5번 출구] (6.3km)
탐방일 : 2024년 04월 06일(토요일)
탐방코스 및 탐방구간별 탐방 소요시간 (총 탐방시간 2시간30분 소요)
12:40~13:30 경기 수원시 팔달구 화서동 26-58 번지에 있는 서북각루에서 경기 수원시 팔달구 화서동 436-1 번지에 있는 서호공원(西湖公園)으로 이동
[서호공원(西湖公園)
위치 : 경기 수원시 팔달구 화서동 436-1
서호공원(西湖公園)은 서호천이 유입되는 저수지인 축만제(祝萬堤) 주변에 조성된 공원으로, 경기도 수원시 팔달구 화서동 일대에 있다. 축만제는 원래 1799년(정조 23)에 화성을 쌓을 때 축조한 저수지로, 서호(西湖)라는 이름으로 농촌진흥청에서 관리하고 있다. 2020년에 공식적으로 서호는 축만제로 명칭이 환원되었다. 서호공원의 서호는 인공호수치고는 상당히 큰 규모이다. 서호호수를 한 바퀴 돌면서 산책을 할 경우에 보통 50분 이상 소요된다. 서호공원은 기러기, 청둥오리, 가마우지, 중대백로, 물닭, 흰뺨검둥오리 등등 다양한 철새들이 찾는 규모 있는 철새도래지이다. 서호의 대부분이 얼지 않기 때문에 수많은 무리의 철새들이 찾아온다.
수원팔경 중 하나인 서호 낙조가 아름답다. 서호저수지 둘레길로 수원 팔색길이 있어 산책하기 좋다.]
13:30~14:00 휴식
14:00~14:25 경기 수원시 권선구 서둔동 256-1 번지에 있는 여기산(104.8m) 정상으로 이동
[여기산(麗岐山)은 경기도 수원시 권선구 서둔동 농촌 진흥청 구내에 위치하고 있는 해발 104.8m의 산이다.
'화성성역의궤'에는 '여기산(如岐山)'으로 기록되어 있지만 산세가 크지 않고 산의 모습이 기생의 자태와 같이 아름다워서 '여기산(麗岐山)'으로 붙여지게 되었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산의 정상부에는 산성이 조성되어 있는데 해발 104.8m로부터 10여m 아래에 쌓여 있는 것이 특색이다. 전형적인 머리띠 모양의 테뫼식으로 성 길이는 약 453m이다.
또한 숭실대학교 박물관에서 1979~1984년까지 4차에 걸친 발굴 조사 결과, 청동기 시대 및 초기 철기 시대의 토기, 철촉, 방추차, 온돌 구조 및 집자리가 발견되어, 청동기 시대 중기부터 초기 철기 시대까지 중부 지방의 대표적인 생활 유적지로 확인되었다. 수원 팔경 중의 하나로 꼽히는 '서호낙조(西湖落照)'는 여기산과 서호에 비치는 저녁 노을의 아름다움을 말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국철인 화서역에서 구운동 방향에 있는 여기산 공원은 축구장, 게이트볼장, 익스트림 스포츠 연습장 등 체육시설과 산책로가 조성돼 있는데 경기도는 문화재위원회를 열고 수원시 팔달구 화서동 436 일대 서호저수지 33만2천997m2와 여기산 선사유적지 22만5천828m2를 경기도 기념물 제200호와 201호로 지정하였다.
여기산 서호방면에는 우장춘 박사의 묘와 그의 석상이 위치해 있다.]
[수원 여기산 선사시대 유적
경기도 수원시 권선구 서둔동(西屯洞)에 있는 청동기~초기 철기시대의 유적지로 모두 7기의 집터 유적이 발견되었다.
경기도 수원시 권선구 서둔동에 있는 여기산(麗妓山)의 정상 부근에서 발견된 선사시대 유적이다.
이 유적은 숭실대학교 박물관 발굴단에 의하여 1979년부터 발굴이 시작되었다. 출토된 유물은 민무늬토기와 김해식토기 그리고 이와 관련된 집터 등이 있다. 이를 통해 청동기시대부터 초기 철기시대의 유적지임을 알 수 있다.
모두 7기의 집터가 발견되었다. 그 중 초기 철기시대의 집터인 4호 집터에서는 지붕 서까래가 불에 탄 채로 무너져 숯으로 남아 있었으며, 서까래의 사이사이에서는 갈대로 보이는 긴 숯이 깔려 있어 마치 이엉을 엮어 덮은 오늘날의 초가지붕을 연상케 한다.]
14:25~14:40 사진촬영 후 간식
14:40~15:10 여기산공원을 경유하여 경기 수원시 팔달구 화서동 460-12 번지에 있는 화서역 5번 출구로 이동하여 탐방 완료
15:10~15:25 화서역에서 신도림역으로 가는 1호선 전철 승차 대기
15:25~16:45 화서역에서 1호선 전철을 타고 출발하여 신도림역으로 가서 2호선으로 1차 환승하여 합정역으로 이동한 후 6호선으로 2차 환승하여 역촌역으로 이동 [1시간20분 소요]
수원 화성 안내도
대승원 위치도
수원 [서호공원&여기산] 지도
우장춘 박사 묘 위치도
수원 여기산 선사유적지 위치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