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삼성전자에서 일하다 병에 걸렸다며 산업재해를 신청한 46명 중 단 10명(21.7%)만 삼성이 제시한 피해보상 기준을 충족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삼성전자는 최근 직업병 협상을 진행하는 조정위원회에 '조정 안건에 대한 제안서'를 보내 피해보상 기준을 제시했다. 삼성전자가 “회사 성장에 기여한 (직업병) 당사자와 가족의 고통을 덜기 위해 제안서를 마련했다”고 밝힌 것과 달리 피해자들을 울리는 기준이 될 것으로 우려된다.
20일 <매일노동뉴스>가 입수한 삼성전자 산업재해 신청자 현황(지난해 10월 기준)에 따르면 삼성전자 반도체·LCD 생산공정에서 일했던 노동자 46명이 산재를 신청했다. 이들은 혈액암과 뇌종양·백혈병·다발성 경화증·유방암·루프스 등 다양한 질환을 앓고 있다. 이들 중 삼성전자가 제안서에서 제시한 기준을 통과한 산재 환자는 10명에 불과했다. 삼성전자는 직접고용돼 있을 것과 혈액암 등 7종의 질환일 것, 재직기간이 일정 기간 이상일 것, 특수건강진단을 받았을 것 등의 보상 기준을 마련했다.
산재 신청자 중 80%는 보상 기준 충족 안 돼
배제된 노동자들에게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었다. 삼성반도체 온양공장에서 근무한 이아무개씨는 삼성전자가 정한 보상기준을 충족하지 못한다는 소식을 접한 후 잠을 못 이루고 있다. 이씨는 2013년 1월 뇌종양 판정을 받고 투병 중이다. 종양 제거 수술 당시 시신경 일부를 제거해 시력의 절반을 잃었다. 이씨는 2005년부터 2008년까지 3년밖에 근무하지 않아 보상대상에서 제외된다.
삼성전자는 뇌종양의 경우 5년 이상 근무하고, 퇴직 후 10년 이내 발병한 피해자에 한해 보상하겠다는 기준을 냈다. 1년 이상 근무하고, 10년 이내 발병한 경우 보상하는 혈액암과 달리 뇌종양과 유방암은 기준을 달리했다. 이씨는 “회사에 다닐 때 화학물질 사용 주의사항을 알려 주지도 않았던 회사가 단서조항을 달아 선별적으로 보상한다고 하니 안타깝다”고 토로했다.
이씨처럼 산재를 신청한 피해자 중 삼성전자의 보상기준을 충족하지 못하는 피해자는 부지기수다. 33명은 특수건강검진을 받지 않았거나 받은 이력이 확인되지 않아 보상대상이 아니다. 갑상선암·루푸스 등에 걸린 18명은 삼성전자가 인정한 7종(혈액암·뇌종양·유방암)의 질병이 아닌 다른 질병에 걸렸고, 6명의 피해자는 재직기간과 발병시기를 이유로 보상 대상이 아니다. 피부암에 걸린 황씨 등 5명은 협력업체 소속이기 때문에 보상을 못받는다. 2014년 10월까지 반도체 노동자 건강과 인권 지킴이 반올림에 피해사례를 접수한 제보자만 170명(사망 62명)이나 되는데 이들 중 상당수는 보상 기준을 충족하지 못할 것으로 예상된다.
삼성 “조정위에서 협의할 수 있어”
삼성전자가 지난 9일 조정위원회에 제출한 제안서를 두고 반올림은 “보상 기준이 협소하다”고 비판했다. 삼성전자의 보상기준에 따라 피해보상이 이뤄질 경우 상당수의 직업병 피해자가 제외되기 때문이다.
이종란 공인노무사는 “종양 형태의 고형암은 암덩어리가 될 때까지 10년 이상 걸린다”며 “유해물질에 5년 이상 노출돼야 뇌종양·유방암과 연관성이 있다고 판단하는 것은 자의적이고 근거 없는 기준일 뿐”이라고 지적했다. “피해자 중 다발성경화증과 웨게너씨육아종처럼 희소질환으로 고통을 받고 있는 사례가 있는 만큼 보상질병과 기준을 확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삼성전자가 조정위에 제출한 제안서는 최종안이 아닌 초안인 만큼 앞으로 논의해 갈 부분”이라며 “백혈병에서 뇌종양·유방암까지 보상질병 범위를 넓혔고, 조정위를 통해서 이견을 좁히면서 협의해 갈 예정”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