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구(撞球) 한 큐
장석민
예전엔 아침에 잠자리에서 일어나 거실로 나오면 잉크 냄새 풍기는 신문을 펼쳐 드는 것이 습관이었는데 이제는 신문을 보는 사람들은 그다지 많지 않은 듯하다.
그 대신 컴퓨터 혹은 핸드폰으로 인터넷 접속을 한다.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가 한 눈에 들어오기 때문에 인터넷을 보게 된다.
어느 날 인터넷에 접속했는데 호기심을 자극하는 기사가 보인다.
“당구 캄보디아댁 누적 상금......”
당구면 당구고, 캄보디아면 캄보디아지 ‘캄보디아댁’은 뭐지 하면서 기사를 열어 본다.
캄보디아의 어느 농촌에서 태어난 스롱 피아비라고 하는 여자는 스무 살 때 자신보다 28살이 많은 한국 남성과 국제결혼하여 한국에 왔다.
남편은 충북 청주에서 인쇄업을 하는 사람이었다.
남편이 당구를 즐겼는데 어느 날 당구장에 남편과 함께 가서 당구 치는 것을 구경하다가 남편의 권유로 배우기 시작했는데 소질이 있는 것을 알고 꾸준히 연습을 하여 당구 선수가 되었고, 프로당구 3쿠션 최강자가 되었다는 것이다.
그녀의 당구 치는 영상을 보니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모든 스포츠가 그렇지만 꾸준히 노력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런데 더 중요한 것은 타고난 재능이다.
똑같은 시기에 똑같은 코치에게 똑같은 시간 동안 지도를 받는다고 해도 서로 다른 결과가 나오는 것이다.
타고난 재능이 있는 사람은 조금만 훈련해도 큰 성과가 나오는 반면, 재능이 없는 사람은 많은 시간 훈련해도 좋은 결과가 나오지 않는다.
그렇게 보면 캄보디아댁은 타고난 재능이 있었던 것이다.
그 재능을 알아보고 선수로 키운 남편의 공이 크다고 할 수 있다
캄보디아댁이 프로당구 선수로 활동할 수 있는 것은 남편의 헌신적인 외조덕분이라고 한다.
그 남편이 대단한 사람이라고 생각 된다.
나는 당구를 잘 치지도 못할뿐더러 당구장에 가는 것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그 이유는 오래전 젊은 날의 당구장에 대한 기억이 그다지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지 않기 때문이다.
산골에서 태어나 시골에서 학교를 다녔고, 당구라는 것을 알지 못했다.
그런데 고등학교 때 소위 좀 ‘논다’는 아이들은 당구장을 들락거린 모양이다.
키도 크고 덩치 큰 아이들은 자기네들끼리 모여 당구 얘기를 하곤 했다.
관심이 없으니 그런 것이 있나 보다 하고 지나쳤는데 학교 졸업하고 서울에 와서 직장생활 할 때 일과 끝나면 당구 치러 가는 사람들이 있었다.
나는 당구를 칠 줄 모르고 관심이 없었으니 그냥 퇴근 하곤 했는데 어느 날 동료 한 사람이 당구 치는데 같이 가자고 한다.
저녁 내기 당구인데 구경하고 밥이나 먹고 가라고 한다.
그래서 따라 갔는데 구경하고 있다 보니 잠깐 쉴 때 당구 치는 방법을 가르쳐 주기도 한다.
그런데 생각보다 어렵고 잘 맞지 않는다.
그 뒤로 몇 번 따라가서 배우긴 했는데 전혀 진도가 나가질 않고 흥미가 나질 않았다.
본래 공을 가지고 하는 운동엔 소질이 없어서 그런지 점점 흥미를 잃었다.
그래서 당구 배우는 것을 포기 했다.
그 당시 사람들이 하는 얘기를 들으면 “당구 점수 100을 올리는데 소 한 마리 값 들어간다”고 하였다.
그만큼 많은 투자를 해야 성과가 난다는 것이었다.
아무튼 당구 배우는 것을 포기하고 가끔씩 동료들이 당구 치러 간다고 하면 따라가서 점수판 봐주고 경기 끝나면 저녁밥이나 얻어먹곤 했다.
그런데 그 당시의 당구장은 그 안에서 담배를 피우던 때였으므로 환기도 잘 안되어 공기도 좋지 않고 쵸크라고 하는 것을 큐대 끝에 문지르면 가루가 날려 실내 공기가 그다지 좋지는 않았다.
간혹 그 동네의 소위 “어깨”들이 들락거려 분위기도 그다지 좋지는 않았다.
그래서 당구장에 잘 가지 않았다.
그렇게 당구장을 몇 번 들락거리다가 세월이 지나면서 당구치는 사람들도 줄어들고 당구장도 줄어들어 당구와는 멀어졌다.
오랜 세월이 흘러 당구라는 것을 잊고 있었는데 당구에 대한 관심을 갖게 하는 기사를 보게 된 것이다.
당구에 대한 설명은 이렇게 되어 있다.
“우단을 깐 네모난 대(臺) 위에서 상아나 플라스틱으로 만든 몇 개의 공을 큐 끝으로 쳐서 승부를 가리는 실내 오락” 이라고 국어사전에서는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당구도 스포츠의 한 분야다.
당구는 벨기에의 국기(國技)라고 하며 벨기에에는 왕립 당구학교가 있다고 한다.
당구 역사는 기원전 400년 전 고대 그리스에서 둥근돌을 나무봉으로 쳐서 원추형 모양의 목표지점에 맞혀 공으로 쓰러뜨리는 것이 당구의 기원이라고 하며 당구의 최초 시작 이었다는 설이있다.
현재 사람들이 가장 많이 알고 있는 당구의 역사는 프랑스에서 기원한다.
13세기 프랑스 왕족과 귀족들 사이에서 크로케(croquet)라는 스포츠가 유행 했다.
직사각형 잔디 경기장 위에 박혀 있는 네모형이나 아치형 관문에 망치 모양의 막대기로 공을 때려 통과 시키는 스포츠였다.
실외에서 경기를 하다보니 날씨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실내로 옮겨 경기를 즐겼는데 경기장이 너무 커서 불편하였다.
15세기 프랑스의 왕 루이11세가 실내에 크로케 경기장 그대로 만든 직사각형 판에 잔디색의 천을 씌우고 테이블을 만들게 하였다.
현대 당구 테이블의 시초였다.
프랑스에서 유행한 당구는 유럽의 왕족과 귀족들 사이에서 성행하였고 세월이 흘러 서민들도 즐기게 되었다고 한다.
당구공은 석재나 목재로 사용했었는데 17세기에 상아로 만들기 시작했고 지금은 플라스틱으로 만든 공을 사용한다.
18세기에는 Mase라 불리던 초창기 큐대는 공을 때리는 용도였는데 점차 개선되어 공을 찔러 치는 큐대로 발전한 것이다.
우리나라에 당구가 들어온 것은 19세기 말 일본을 통해서 당구가 전파되었다.
처음으로 조선에 들어온 당구는 당시 ‘옥돌’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1909년 창덕궁 내 인정전에 옥돌실이라는 황실 당구장이 마련되어 순종이 당구를 즐겼다고 한다.
고종은 덕수궁에 옥돌대를 설치하고 당구를 쳤다고 한다.
얼마 전부터 인터넷 TV를 설치하여 채널을 검색하다 보면 프로당구 중계를 해주어서 가끔씩 보기도 한다.
당구를 칠 줄을 모르지만 프로선수들이 치는 것을 보면 재밌는 장면이 연출되기도 하여 보게 된다.
캄보디아댁의 당구에 대한 기사를 보고 당구에 대한 오래된 작은 추억과 당구에 대하여 다시 한 번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된 듯하다.
첫댓글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신문이 사라지고
휴대폰으로 세상을 보는 요즘
저도 그러며 지냅니다 ㅎㅎ
敍琳 선생님!
감사합니다.
예전엔 전철에서도 신문을 읽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이제는 모두 스마트폰 화면을 보고 있는 세상입니다.
나도 몇 번 따라가 보기는 했는데 배우진 못했어요.
체스, 바둑도 범스포츠에 포함되던데 당구는 당연히 스포츠겠죠.
고스톱이 스포츠가 되면 우리나라 팬이 많을 것 같은데 종목에 끼어주지 않으려나? ^^
開東 선생님!
감사합니다.
저는 당구를 치지는 못하지만 요즘 중계방송 해주는 것을 가만히 보고 있으면 재밌기도 합니다.
예전엔 당구장 분위기가 그다지 좋지 않아서 안 좋은 기억이 오래 남아 있었지요.
친구들과 당구 가끔 쳐요!
어른 놀이를 통해 친구들과 교감하고 우정을 나누는 시간~ㅎㅎ
당구 기승전결 잘 읽었습니다!
회장님!
감사합니다.
당구는 나이 들어서도 즐길 수 있는 스포츠라고 하죠.
워낙 운동신경이 둔해서 당구를 배우지 못한 것이 아쉬울 때도 있습니다.
당구공이 상아로 만들어졌군요.
하기사 귀족, 왕족들이 만든 놀이이니
알만하긴 한데 코끼리의 희생물이라니,
인간의 손이 안뻗친 데가 없네요.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다솔 선생님!
감사합니다.
예전엔 상아를 이용해서 당구공 뿐만이 아니고 온갖 공예품을 만들던 시대가 있었죠.
엄청난 수의 코끼리가 죽어가고, 동물단체에서 지속적으로 문제를 제기하여 요즘은 코끼리를 보호하고 있다고 하네요.
TV를 통해 동물들이 학대 받는 것을 보다가 느낀 것인데요
예전에 각 나라에 있었던 노예들, 일제강점기 때 일본놈들에게 끌려가서 희생 당한 우리 나라 백성들, 학대 받다가 죽어간 동물 들이 오버랩 되는 것을 느꼈습니다.
인간의 잔인성은 끝이 없는 듯합니다.
저도 당구장 선입견이 있는 편이네요.
아침에 출근하면
부서별 신문함에서 신문을 꺼내와
회의용 탁자 위에 보기좋게
깔아놓는게 첫일과였죠.
조선,중앙,동아, 국민, 한겨레, 경인, 인천... 이름 뿐인 지방지...
과장님 의식의 흐름따라 펼쳐놓아야 승진도 잘하고 이쁨받고...
줄서기와는 거리가 멀었으니..
윤슬 주간님!
감사합니다.
요즘엔 당구장에 안 가봐서 모르겠는데 예전엔 그다지 좋은 환경은 아니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신문이 많은 정보를 제공하던 시대가 있었죠.
줄서기 잘 하는 사람들이 있죠.(타고난 감각(?)이라고 해야 할까요)
꾸준한 노력과 타고난 재능, 가족이나 선생님을 비롯한 후원자와 긍정적인 주위 환경 등이 중요하지요.
최근 각광 받고 있는 다중지능 이론에 의하면, 타고난 재능이 성장의 상한선을 결정해준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라고 합니다.
즉 누구나 노력하면 할수록 능력이 발전하지만, 사람마다 그 상한선이 다르다는 것이죠.
화원 선생님!
감사합니다.
부단한 노력을 해야 하겠지요
그렇지만 그 결과는 사람마다 다르다는 것을 느꼈는데
다중지능 이론이 있었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