쉼
요즘 주위를 둘러보면 "안녕하세요."
라는 말보다 "바쁘시지요?" 라고 인사
하는 경우가 늘어가는 것 같습니다.
'바쁜 것'이 마치 열심히 성실하게 사는 것처럼 보이고, '바쁜 사람'은 사회적으로 성공하거나 중요한 사람으로 여겨지기도
합니다.
이런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아무것도 하고 있지 않으면 왠지 나태한 것으로 비춰지고, 일상에서 쉼을 찾는 삶이 오히려 낮설게
느껴지기까지 합니다. '쉼'은 '열심함'의 반댓말이 아닌데, 근면하게 게으름 피우지 않고 최선을 다하는 것이 곧 선이라 알고
살아온 우리에게 쉰다는 것은 부수적인 차원에 머무는 경우가 많습니다.
핀란드 격언에 이런 말이 있다고 하지요. "하느님은 바쁨을 창조하지 않았다." 이 말을 곱씹어 보니, 하느님이 창조하신 세상은
원례 바쁘지 않은데 인간만 스스로 바쁜 것이 아니던가?'라는 생각이 듭니다 창세기가 이야기하듯이, 하느님은 이 세상을 창조
하시면서이랫날에 모든 일을 마치고 쉬셨습니다. 당신께서 창조하신 모든 결과를 보시고 음미하는 시간을 가지셨다는 것입니
다.탈출기는 창조주 하느님의 쉼의 시간을 보내셨다는 것을 근거로 안식일을 지키라고 말합니다. 이런 점에서 안식일은 하느님
의 쉼에 참여하는 날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물론 성경에서 말하는 안식익은 단순히 아무런 활동을 하지 않거나 생산력을 증대시키기 위해 휴식을 갖는 차원을 넘어섭니다.
안식일(Sabbath)의 히브리어 어원이 "멈추다'라는 뜻을 갖고 있듯이, 안식일의 의미는 자기 활동을 멈추고 하느님 안에 머물며
그분과 이웃과의 관계를 살피는 데 있습니다. 다시 말해 안식일은 자발적인 자기 멈춤이으로 자신을 벗어나 하느님과 타자와의
관계를 쇄신하는 날인 것이지요. 『찬미받으소서』회칙의 가르침에 따르면, 이러한 안식은 '인간의 활동을 공허한 행동주의로부
터 보호 "하고, "우리가 베타적 개인적 이득만을 추구하도록 이끄는 끝없는 탐욕과 고립감을 막아 줍니다.'(25항)
아름다운 음악은 '소리'로만 이루어지지 않고, 필요한 때 멈춤과 쉼.을 통해 만들어집니다. 화려한 멜로디로 가득한 곡도 그 악
보에 쉼표가 없으면 소음이 되고 맙니다. 쉼표가 있어야 그 곡에 여운이 생기고, 쉼이 있어야 그 음악은 완성됩니다.
우리네 삶도 마찬가지가 아닐까요? 부지런히 최선을 다해 일하는 것도 좋지만, 우리에게는 가만히 멈추어 서서 주의를 살피고
자신을 돌아볼 시간이 필요합니다. 성장과 발전에 끊임없이 매진하고 앞만 향해 달리는 대신, 하느님의 쉼표를 따라 멈추고 쉬며
성찰하는 시간을 가질 때, 우리네 삶은 좀 더 풍요로워질 것입니다.
쉼은 우리네 인간에게만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사람이 그러하듯 지구도 쉴 수 있을 때, 그 생명력이 유지되고 회복될 수 있습니다.
성경의 안식일 계명은 이 점을 관가하지 않고 인간뿐만 아니라 동물과 땅도 쉬도록 배려합니다. 더 넓은 시각으로 다른 존재들의
권리에 대해 새로운 감수성을 갖게 해 줍니다. 하지만 이러한 안식일 정신과는 달리 인류의 과도한 활동은 그동안 지구에 쉼을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마치 지구 자원을 무한히 이용할 수 있고 그것을 쉽게 재생할 수 있으리라 믿으며 우리는 지구에 계속
생산만 강요했습니다. 그 결과 지구 공동체는 생명력을 잃어가고 있습니다.
자신을 쉬게 하고, 다른 존재를 쉬게 할 수 있는 '쉼의 영성'이 필요합니다. 오늘날 적지 않은 생태 이야기들이 '무엇을 실천해야
하는지'에만 집중하는 경향이 있는데, 때로는 무엇을 해야 한다는 의무감을 내려놓고 잠시 멈출 수 있어야 합니다.
단순히 일을 더 잘하려고 힘을 보충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 자체로 하느님 창조 질서인 쉼의 시간에 순응하자는 것이지요.
그렇게 멈추고 쉬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 있을 것입니다. 허겁지겁 살아온 날들 속에 놓친 것들이 무엇인지, 우리가 가야할
길은 어디인지 보일 것입니다. 일상 곳곳에 쉼표를 심어두면 가능한 일입니다.
무더운 여름, 쉽게 지치고 일의 능률도 오르지 않아 창밖을 바라보고 있으니 문득 이런 생각이 듭니다. 이 더위는 좀 쉬어 가라는
자연의 신호가 아닐까? 나도 쉬고, 너도 쉬면서 쉬엄쉬엄 함께 가라는 초대가 아닐까?
그래요 오늘은 날도 더우니 하루 쉬어야겠습니다.
글. 송영민 아우구스티노 신부 / 한국천주교회의 /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사무국장
2024년 7월호 월간빛 책자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