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두호 기자의 "별들의 고향"
엠마 프라이징거 여사는 ‘한국판 테레사’ 였다
사랑 합니다
묵은 취재 노트를 뒤지다가 엠마 프라이징거 여사를 만났다.
지금의 근황이 궁금해 검색창을 열었다.
지난해 6월 1일 호암 사회봉사상을 수상한 기록이 떠있다.
필자가 그분을 만나 인터뷰를 한 것이 1978년 6월 10일이었으므로 꼭 30년 전이다.
그 때 47세였는데 지금은 77세가 되었다.
아직도 자신의 모국으로 돌아가지 않고 대구근교인 칠곡의
한센인(나환자)마을에서 살며 봉사활동을 하신다니 그저 숙연해진다.
그분의 고향은 아름다운 숲과 음악의 나라 오스트리아의 찰스부르크였다.
누군가가 한마디로 그분을 소개할 수 있는 말을 묻는다면 필자는
‘한국판 테레사 수녀’라고 자신 있게 표현할 수 있다.
한 평생 인도의 불행한 사람들을 돌본 테레사 수녀는 생전에 노벨평화상도 받았고
사후에도 인류의 성자로 추앙을 받는 분이지만
엠마 여사는 한국에서도 아직 잘 모르는 사람이 많다.
엠마 여사는 일생의 대부분을 자신이 설립한 칠곡 가톨릭피부과의원에서
한센인을 치료하고 틈나는 대로 그들의 마을을 찾아다니며
고통과 가난을 함께 하는 봉사의 삶을 살았다.
가톨릭피부과의원도 엠마 여사가 1965년 오스트리아
가톨릭부인회의 지원을 받아내 설립한 한센전문 치료시설이다.
필자가 엠마 여사를 인터뷰하기 위해 찾아갔을 때도
엠마 여사는 가톨릭피부과의원 원장으로 80여명의 환자를 돌보고 있었다.
어둠이 깔린 늦은 저녁 직원들은 모두 퇴근하고 없었고
병원 숙소에서 환자들과 저녁식사를 함께 하고 있었다.
“김치보다 콩자반이 더 영양이 많아요. 많이많이 드세요.”
엠마 여사는 능숙한 우리말로 환자들의 식사뒷바라지를 했다.
그녀는 한센병이 치료가 가능한 피부병인데
무서운 병으로 자포자기하거나 경계하는 인식부터 바꾸어야 한다고 말했다.
친부모처럼 따뜻하게 대해주는 엠마 여사를
환자들은 숫제 이름과 비슷하다고 ‘엄마’라고 불렀다.
엠마 여사는 29살 때인 1961년
오스트리아에서 해외 순회봉사 길에 한국에 왔다.
비엔나 간호대학을 다닌 엠마 여사는
그 학교에 교수로 있다가 귀국한 한국인 신부를 통해
한국에서 가장 불행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한국을 찾았다.
직업도 백의의 천사였고, 마음씨도 천사였던 엠마 여사는 2년을 예정했다가
결국 환자들을 두고 떠날 수 없다고 생각해 그대로 그들 곁을 지켰다.
그렇게 봉사활동을 해온 지 47년,
엠마 여사는 어느 덧 흰머리의 팔순을 바라보고 있다.
사랑 합니다
엠마 여사는 한센인을 도우는 ‘릴리회’라는 모임을 만들어
자신의 봉사 정신을 사회적인 운동으로 발전시켜 가난하고 어렵던 시절에도
온정의 물결이 불행한 환자들에게 미치도록 브리지 역할을 했다.
보호자가 없는 환자가 눈을 감으면 장례식을 치러주고
무덤을 찾아 성묘하고 벌초까지 했다.
필자가 인터뷰를 하면서 고향과 가족이 그립지 않느냐고 물었다.
“우리 가족이 사는 고향은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에 나오는
찰스부르크에 인접한 엡스랍니다.
유명한 건축가인 아버지와 8남매 중 내가 둘째지요.
모두 행복하게 잘 살고 있어서 내가 없어도 괜찮아요.
나를 필요로 하는 곳에서 기도하며 살아야지요.”
아마도 지금은 부모도 계시지 않을 것 같다.
그녀는 자신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위해 결혼도 포기하고 독신으로 살아왔다.
젊은 시절 엠마 여사는 늘씬한 키에 부드러운 인상의 서양 미녀였다.
고국과 고향과 사랑하는 가족을 잊어버리고 한국에서 봉사의 일생을 살고 있는
‘한국판 테레사 수녀’ 엠마 프라이징거 여사는
아직도 손가락과 발가락이 온전치 못한 환우들과 은양원이라는 마을에서 살고 있다.
하느님의 현존 안에 사는 삶은
우리의 마음을 기쁨으로 가득 차게 해줍니다.
그분과의 일치에서 오는 기쁨,
그분의 현존 안에 사는 데서 오는
기쁨을 누리십시오.
여기서 말하는 기쁨이란
큰 소리로 웃는 것,
떠들썩한 무언가를 의미하는 게 아닙니다.
이것은 참기쁨이 아니지요.
오히려 위장되어 있는 기쁨입니다.
참 기쁨이란
가장 깊고 고요한 데서 오는 내밀한 기쁨.
그래서 우리의 눈에, 얼굴에, 태도에, 몸짓에
즉시 나타날 수밖에 없는 그런 기쁨을
의미합니다.
- '모든 것은 기도에서 시작됩니다' 에서 -
첫댓글 저는 칠곡가톨릭병원과 칠곡피부과병원을 같이 관리하는 관리과 직원입니다. 근무한 지는 약 8년이 되었네요. 작년 추석전 점심식사 후 병원 뒷산에서 조용히 걸으며 묵주기도를 바치고 있는데 벌초하시는 할아버지 한분이 제 작업복을 보시고 엠마원장님 잘 계시는지 물었습니다. 어떻게 아시냐고 반문하니 약 30여년 전에 키가 훨칠한 서양여자는 이 주위에서 그 분 밖에 없었다고, 처녀의 몸으로 우리나라에 오셔서 봉사하고 있다고, 환갑잔치때 나도 초대받아 갔다고...등등 많은 회상을 하셨습니다. 물론 칠곡가톨릭피부과병원은 대구대교구에 넘겨주시고 아직까지 나병환자를 위해 봉사하고 계시지요.
평생을 나병환자와 함께하신 엠마님은 예수님 말씀대로 왼손을 잘 쓰시는 분 같습니다. 저도 같은 병원에 근무하고 있지만 아직 얼굴도 직접 보지 못했습니다. 영광은 철저히 주님께 돌리시는 엠마 프라이징거 여사님을 존경합니다.
존경스러운 분이 참 많이 숨어 계시네요.이런 분들이 앞으로의 세상에서 주님과 더불어 영생을 누리시겠지요.고맙습니다.^^*주께 영광!
가슴이 뭉클합니다......... 좋은 글 주심에 감사드리며 주님의 자녀로 산다는 것이.........주님의 향기를 전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온 삶으로 보여주신 엠마 여사님의 건강과 행복한 삶을 기도합니다.......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