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샘단상 69/시사만평전]박재동 화백의 “한판 붙자!”
사람이 사람으로부터 위안을 받을 때처럼 기분 좋은 일은 없다. “세상은 역시 살만한 것”이라고 느껴지기 때문이다. 생각해 보면 이제껏 살면서 그런 날들이 종종 있었다. 그중의 하나를 예로 들겠다. 그러니까 1992년 12월 21일(?) 아침, 한겨레신문 2면에 실린 만평漫評 한 컷이 그것이었다. ‘시사만화의 대부’라 불리던 박재동 화백은 대통령 선거에 세 번째 떨어지고 정계은퇴를 선언한 김대중 선생의 쓸쓸한 뒷모습에 아낌없이 꽃을 뿌려 드렸다. 같은 정치9단인 YS에 패배한 참담한 상황. 그때 어느 신문사 편집국에서는 부국장이라는 사람이 지팡이 짚고 절뚝절뚝 걷는 DJ의 모습을 기자들 앞에서 흉내냈으며, 네 칸짜리 만화가는 ‘2번’을 연상하게 그린 지팡이가 뚝 부러진 장면을 그리며 ‘실패한 정치인’을 한껏 비웃었다. 나는 얼마나 화가 나고 속이 상했으면 그들을 단매에 때려죽이고 싶었다. 인간적으로도 그럴 수는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당시 박화백의 만평 한 컷에 한없이 위로를 받았던 기억이 생생하다. 알아주는 분이 그래도 있으니 얼마나 고마웠던가.
그때로부터 30년이 지난 그제(14일 월요일) 오후, 인사동 한 갤러리에서 박화백을 처음으로 대면, 그때의 만평 얘기를 하며 치하를 드리니 어렴풋이 기억한다고 하여 기쁘고 반갑고 고마웠다. 이달 26일까지 전시하고 있는 <박재동 시사만평전-한판 붙자!>의 현장이었다. 게다가 즉석에서 공짜로 나의 캐리커처를 그려줄 줄이야. 이 만화전을 기획한 ‘갤러리 모나리자 신촌’의 엄길수 관장께도 감사의 말씀을 드렸다. 엄관장은 “미술 관람객에게 공정과 상식의 의미와 올바른 시대정신을 보여주고 싶어 전시회를 기획했다”며 겸손해 했다. 박화백은 더더욱 단호했다. “깨어있는 시민들이 잘못된 적폐세력에 대항해 싸워야 한다. 이것이 최후의 민주화 권력”이라며 “촛불세력이 국정농단 세력과 한판 붙자는 의미로 제목을 ‘한판 붙자’고 붙였다”고 했다. 역시 그다웠다. 잠깐 짬을 내준 박화백에게 막 읽고 있던 『윤석열 X파일』의 몇 가지 내용을 들려드리니 100% 공감한다며 혀를 내둘렀다.
그는 전두환-노태우로 이어지는 엄혹한 시절 <한겨레 만평>을 8년 동안 연재하며 나같은 독자들의 사랑을 받은, 진정한 의미의 시사만화가였다. 물론 그전에도 백인수라는 화백이 <동아희평>을 수십년간 그리며 ‘촌철살인寸鐵殺人’ ‘정문일침頂門一鍼’의 만평을 선보이기도 했다. 만평 한 컷, 그림 한 장이 시국을 냉정하게 진단하고 시시비비를 알게 하는데 어떤 매체나 장르보다 더 공헌하는 바가 클 때도 있다 하겠다. 만화 몇 컷은 구매하고 소장所藏 욕심까지 있지만 ‘한 장(100만원)’이라는 말에 그만 주눅이 들고만다. 그려주신 캐리커처나 오래 보관해야겠다. 아내는 나와 코 부분만 좀 닮은 것같다고 하지만. 내가 보기엔 ‘범생의 표본’으로 그려주신 것같다. 박화백이 그리면서 관장에게 한 농이 기억난다. “이 분의 육질은 농촌에서 살아서 그런지 1등급이야. 우리는 3등급이잖아”라면서 당신의 얼굴을 문지르며 웃었다. 내가 1등급 육질肉質의 소유자란 말인가? 아무튼, 화백님 그림은 못사드리지만 캐리커처도 그려주셔 정말 고맙습니다.
많은 분들이 이 ‘귀한’ 전시회를 관람하면 좋겠다. 포스터의 김민웅 교수 격려글도 인상적이다. 아니, 너무나 당연한 멘트이다. “검찰 쿠데타의 정치적 완성을 저지하지 못하면 이 나라가 두려움에 떨며 숨죽이며 사는 끔찍한 세상이 오게 된다. 정면승부이다. 법을 가장한 폭력배의 집권은 대한민국의 발전을 완전히 정지시키고 말 것이다” 백퍼(100%) 공감한다. 상황이 자못 엄중하다. 그래, 한판 붙자! 이 알량한 기득권쉐끼아! 모조리, 싸그리 덤벼라. 이 가당치 않은 나쁜 넘들아! 역사가 두렵지 않느냐! 민심이 천심이거늘.
첫댓글 워매, 이 캐릭터. 누구셔! 암만봐도 안 어울려.
그래도 우천과 뭔가 좀 닮았으니 인정함세.
일등급 육질에 범생 우천으로 진화중으로 받아들이면 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