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시장 150곳 중 62곳 ‘기능 상실·쇠퇴’ 골목 상권 붕괴
서민들에게 전통시장은 유통 공간, 상(商)행위 장소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시장은 서민들에게 소통과 교제의 공간이고 공동체적 정서를 공유하는 장소이기 때문이다.
골목 경제의 보루이자, 마을 경제의 핏줄인 대구의 전통시장들이 무너지고 있다. 대구시 자료에 따르면 2019년 대구 지역 등록 시장 150곳 중 39곳이 시장 기능을 상실한 것으로 알려졌다. 여기에 시장 기능이 ‘쇠퇴’한 23곳을 더 하면 전체 시장의 41%가 제기능을 못하고 있는 셈이다.
도심 시장의 쇠퇴는 단순한 유통 공간의 몰락을 넘어, 서민들 생계, 일자리와 경제공동체의 구심점이 무너진다는 점에서 그 피해는 더 심각하다. 무너지는 대구의 전통시장 그 현장을 돌아보았다.
◆150곳 중 39곳 기능 상실... ‘기능 쇠퇴’도 23곳=도심 시장의 몰락과 관련해 가장 언론에 언급되는 곳이 달서구 송현시장이다. 도시철도 1호선과 3분 거리에 위치한 대구 송현시장은 높은 접근성에도 인근에 대형마트가 들어서며 점포 78곳 가운데 도로변 6곳을 빼고는 모두 문을 닫았다.
취재진이 이곳을 방문했을 때 시장 곳곳엔 건축 폐기물과 방치된 점포 구조물이 쌓여 출입이 불편할 정도였다. 이 시장은 2018년 국가화재안전 조사에서 최하등급을 받는 등 안전성도 위협받는 상황.
송현시장에서 30여 년간 장사를 해 온 한 상인은 “1990년초 장사를 시작할 때만 해도 사람이 많았지만 인근 대형마트가 들어선 후 손님이 뚝 끊겼다”며 “저렴한 월세와 단골 덕에 장사는 하고 있지만 개선될 여지가 없어 앞으로가 더욱 문제다”고 토로했다.
성당동 구마시장의 경우도 6개 점포에 상인 6명이 종사하는 것으로 나타났지만, 실제로는 모두 문을 닫고 임차인을 구하고 있는 상태였다. 본리동 본리시장도 점포 2개 외에 모두 문을 닫아 시장 기능을 상실한 상태.
이 외에도 달서종합시장, 죽전시장, 송남시장, 효신시장, 중구 중앙시장 등이 ‘기능 상실’ 시장으로 나타났다.
일부 시장에서 슬럼화 해소를 위해 자체 정비사업을 추진하고 있지만 이마저도 지원 요건이 까다로워 무산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남구 대명동 광덕시장의 상인회장은 “상인회에서 시장 재정비 추진을 시작한 지 4년이 되었지만 사업면적이 3천㎡를 확보되어야 사업이 가능한데 이 기준에 미달돼 한걸음도 못나가고 있다”고 말했다.
◆대구시 2000억 투자 했지만 시장 몰락 못 막아= 전통시장의 몰락에 대구시의회도 대책 마련에 나섰다. 정천락 대구시의원은 전통시장 관리에 책임이 있는 대구시의 관리 부족을 지적했다. 대구시가 20년 동안 지역 전통시장 95곳에 국비 1,368억원 등 2,233억원을 투입했지만 기능상실 시장은 이 사업에서 소외됐다고 평가했다.
정 의원은 “이 시장들은 지원 사업을 추진할 상인회도 없고, 상가도 대부분 임대 상인이 운영하고 있어 현실적으로 사업에 참여할 수도 없다” 고 말한다.
반면에 기능상실 시장들의 입지가 대부분 좋고 도시재생사업 관점에서 활용도가 높아, 대구시가 정책적으로 접근한다면 다양한 육성책이 나올 수 있다고 강조했다.
대구시는 그동안 시장 기능을 상실한 전통시장이나 낙후된 상권의 회복을 위해 다양한 육성정책을 펼치고 있다.
대구시는 2019년 12월 ‘기능 상실’ 상태였던 두류동 옛 내당시장에 ‘창업인프라 지원 지식산업센터’를 건립했다. 이 사업은 시장기능을 상실한 내당시장에 봉제공장 등 소규모 영세기업을 위한 사업 공간을 확보하고 지역주민의 생산적 일자리를 창출하기 위해 추진됐다.
또 산격종합시장에 청년몰, 동성시장에 문화예술특화거리, 서부시장·신평리시장·두류종합시장·동대구시장에 청년상인 창업공간 등을 조성해 전통시장 활성화와 관련된 다양한 아이디어사업을 펼치고 있다.
이밖에 시는 ▶기능상실 시장 점포를 매입·임대해 주민공동 이용시설·생활 SOC 복합건물을 조성하고 ▶상가 리모델링 ▶가로환경 정비 ▶주차장·공원조성 ▶각종 정부공모사업 등 다양한 도시재생 사업을 추진한다는 계획이다.
◆상당수 점포주들 재건축, 재개발 노리고 방치도=전통시장의 발전을 가로막는 요소는 또 있다. ‘기능 쇠퇴’ 전통시장 상당수의 점포주들이 재건축, 재개발, 재정비사업을 노리고 상가를 방치하고 있다는 점이다. 송현시장처럼 방치된 시장들이 생활의 중심지에 위치해 상당한 투자 메리트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안지랑역 부근의 한 전통시장 상인회장은 “우리시장 점포 가동률이 30%에도 못 미치지만 상가 주인들이 상가활성화나 재정비사업에 아무도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고 말한다. 점포주들은 차라리 역세권 입지를 기반으로 재건축, 재개발을 기대하는 편이 상가를 활성화해서 얻는 이익보다 크다고 생각한다는 것.
이 상인회장은 “전통시장들이 기준면적 미달이나 용도변경 등에 걸려 재개발, 재정비사업이 추진되지 못하는 경우도 있지만, 상당수 시장들은 점포주들이 재건축, 재개발을 노리고 일부러 소극적인 경우가 상당수”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