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더워요 봉혜선
에어컨을 5단으로 틀고 차로 한강을 지나오고 있었다. 콘크리트 건물 숲 속을 헤치며 시원함을 즐기고 있는데 전과 다른 모습이 유독 눈에 들어왔다. 비스듬히 기운 몸을 세우고 전후좌우 차창 밖을 돌아보았다. 멀리 한강변에 나무가 듬성듬성 서 있다. 마치 잘못 자리한 듯 외롭고 지쳐 보인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건물이 그렇게 보였다. 우후죽순처럼 한강변을 장식한 빌딩 숲. 아뿔싸, 건물에 포위당해 있다.
지구촌은 ‘경제 발전’이라는 하나의 목적 아래 이념이나 사상을 버리고 일사분란하게 움직이고 있다. 작년에는 장마가 오래도록 이어졌다. 어느 곳이 장마이면 거기서 발생하는 바람의 영향으로 다른 어느 곳에서는 폭염으로 인한 피해가 일어난다고 한다. 세계 도처에서부터 당도하는 산불 소식이 결코 남의 일 같지 않다. 예전과는 다르다. 지구촌이라는 단어가 의미하는 대로 산불 열기가 실시간으로 전해지고 있는 실정이므로. 여기, 지구 끝 구석에서도 실감하기에 충분하다.
에어컨을 틀어놓거나 넉넉한 물로 샤워를 할 수 있다. 경제 발전 덕이다. 그러나 거리를 걸을 때 그늘을 찾느라 건물 옆으로 다가가면 상가마다 내어놓은 에어컨 실외기 열기 때문에 더 덥다. 드물어진 나무 그늘 대신 쳐놓은 신호등 옆 쉼터 겸용 그늘막 아래 들어서면서도 걱정이 앞선다. 몇 년 간 태양열을 막다 폐기되면 쓰레기가 될 텐데 어디다 버려야 할까? 거리에 난무한 현수막이 바람에 찢어지고 선거철이 지나 방치되어 있는 것을 볼 때도 든 생각이다.
자연의 법칙을 따라 4계절은 어김없는 순환을 거듭해야 한다. 지구 역사는 ‘기후’가 관장해 왔다. 가장 최근에 멸종 위기를 맞은 빙하기는 4도가 낮아져 나타난 현상이다. 이후 1만년마다 1도씩 높아지는 지구 평균 기온은 15~16˙C이다. 인간이 나타난 인류세 동안 지구 양극 지역의 빙하와 적도 부근 섬들이 공존하며 다양한 사람들이 어울려 지내기에 적당하고 유일한 이곳에 최근 비상벨이 켜졌다.
무분별한 개발과 발전을 앞세운 사람들의 욕망으로 인해 멸종하는 동식물종이 늘어나고 지구 전체 균형이 깨져가고 있다. 기후는 식량 수급에도 막대한 영향을 미친다. 벌이 없어져 식물들이 수정이 안 되어 수확량이 급감하고 있다는 소식은 피부에 와 닿듯 가까운 장바구니 피해 사례이다. 자멸을 초래하는 기온 상승을 막아야 한다는 경각심이 구체적인 모습으로 나타나야 한다. 대략 300만 년 전부터 지구에서는 빙하기와 간빙기가 반복됐다. 우주로 시선을 돌리면 물리적 조건이 엇비슷한 금성·화성과 달리 지구에서만 생명체가 생겨날 수 있었던 건 우연이 겹친 기적의 산물이었다. 대기과학자 조천호박사의 『파란하늘 빨간 지구』는 지구의 기후가 원래 안정적이지 않다는 데서 출발한다.
도서관에서 기후 변화 시대에 생존하기 위해 몇이 모여 『파란 하늘 빨간 지구』 『탄소 사회의 종말』 두 권을 읽었다. 『파란 하늘 빨간 지구』에서 조천호 박사는 지구 기후 변화 온도표를 진파랑에서 연하게, 연빨강에서 진빨강으로 그려내어 지금보다 2도가 높아지면 초래될 전 지구적, 전 인류적 위험을 경고했다. 총 6장으로 나누어 온 지구인이 처한 위험을 알리고 있다. 구체적인 기후변화 실례를 들었고 원인을 파헤쳐 해결책을 향해 전력투구해야 함을 호소하고 있다. 내가 발표를 맡은 장(章)은 제5장 ‘대응, 기후 변화 시대에 대처하기 위하여’이다. 제5장의 내용을 살펴보기로 하자.
‘근대 과학은 “모든 것을 의심하라”라는 르네 데카르트의 회의론에서 진리를 찾으려는 노력을 했다. 갈릴레오, 뉴턴, 다윈, 아인슈타인이 그 증거이다. 정상적 회의론은 증거를 고려한 후 결론에 다다른다. 부정론은 결론을 부정한 후 신념과 상반되는 모든 증거를 무시한다. 과학은 객관적인 학문이지만 이익이 걸리면 문제는 달라진다. “의심이 우리의 상품이다”라는 주장에 힘입어 기후변화 부정론자들은 기후변화가 없다고 한다. 태양이나 화산 활동 등의 자연 현상의 결과와 10만년 주기의 빙하기–간빙기 순환에 의해 이산화탄소 농도의 증감이 일어났다는 것이다. 인간 활동이 이유가 되지 않는다고 주장하고 있다. 온실가스 배출이 온난화를 발생했다고 인정하더라도 적응으로 발생하는 미래비용이 현재 화석 연료 사용을 줄이는 것보다 더 적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무 대응으로 인해 발생하는 해수면 상승, 사막화, 극한 날씨, 생물 멸종, 대규모 기후 난민 등의 비용을 간과한 처사이다. 온실 가스를 많이 배출해 기후 변화 원인을 제공했으나 피해를 적게 받는 온대, 아열대 지역 무임 승차국, 즉 선진국이 국가가 저위도 열대 지역에 위치해 계절과 날씨 변동이 적어 기후변화에 더 예민한 강제 승차국보다 돈을 더 내는 것이 정의다. 해수면 상승으로 존재 자체가 사라질 위험에 처한 태평양, 인도양 섬나라, 농업 의존률이 높은 아프리카, 아시아 가난한 나라, 같은 나라 안에서도 소득 수준, 건강 상태, 거주 환경에 따른 불평등이 발생한다.
기후변화를 대응하는 방법으로 1) 적응: 이미 배출한 온실가스로 인해 기후변화를 피할 수 없는 상황에서 부정적 결과를 줄이는 정책. 2)저감: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이는 정책. 세대 간 정의를 구현하기 위한 정책을 제시했다. 세계는 이미 기후 상승에 대처하기 위해 범국가 간 협약을 맺어왔다. 유엔기후변화협약(UNFCCC)에서 주최한 국가 간 협약, 교토의정서(1997), 파리기후변화협약(2015)이 그것이다. 존 던의 시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중 ‘만일 흙덩이가 바닷물에 씻겨 가면 우리 땅은 그만큼 작아지며’에서 보듯 산업화 이전 시기보다 지구 평균 기온 상승을 2도 이하로 유지해야 멸망을 막을 수 있다.
기후변화는 결핍이 아니라 과잉에서 발생한다. 지금의 생산만으로도 충분하다. 욕심을 줄이고 현재의 생활 방식과 산업 구조를 바꿔내는 사회 변혁으로 해결해야 한다. 기상 관측 이래 여름철 최고 폭염이 2015년 이후에 나타나 우리 수준이 드러나고 있다. 최근 맹위를 떨치고 있는 바이러스도 안식처를 잃은 야생 동물에서 비롯되었다. 전체 생물 중 3%에 불과한 야생 동물의 경고를 무시한다면 인류의 멸종도 얼마 남지 않았다. 기후환경의 가치는 높아져야 한다.
기후변화 대응이 곧 국가 안보다. 안보에 대한 인식 변화 즉, 기후변화, 환경오염, 자원 부족, 인구 증가 등의 지구 위기가 국가 간 군사 위협보다 더 경쟁과 갈등을 초래한다. 수단 다르푸르 분쟁, 시리아 내전으로 인해 발생한 기후 난민, 우리나라 1998 금융 위기 당시 이산화탄소 배출량 감소-산업의 감소-GDP와의 상관관계. 가치관의 기준이 바뀌는 등의 전반적인 변화를 가져올 수밖에 없다.
또한, 같은 기온의 무더위라도 사회경제적 수준, 주거 유형, 연령층, 남녀 차이에 따라 민감도가 다르다. 우리나라의 경우 가난한 독거노인, 부부 노인의 경우 폭염에 취약하다. 문제는 노령층이 급증하고 있다는 것이다. 공적 시스템을 통한 ‘사회적 돌봄’이 폭염으로 인한 사망자를 줄일 수 있다.
지구공학이 기후변화를 막아낼 수 있을까? 라는 난도 주목해야 한다. 지구공학, 혹은 기후공학으로 불리는 기후 조절 기술은 경제와 기후 양쪽의 희생 없이 지구를 지켜내는 기술로 첫째, 태양 복사에너지 조절로 성층권 에어로졸 주입 방법. 둘째, 이산화탄소 포집·저장 기술로 이미 배출돼 공기 중에 떠다니는 온실 가스를 포집해 땅속, 심해저에 저장하는 기술이다. 하나 뿐인 지구와 인류를 대상으로 하기에는 둘 다 불안전하고 실험해 볼 수 없으며 위험하고 비경제적이다.
갱년기 없이 지난다고 큰소리치며 여름을 잘 지내고 있었다. 지난겨울은 집에서 꼼짝하지 않는데도 유독 추웠다. 수영장 몇 바퀴만 돌면 겨울은 물론 코앞에 닥친 감기도 가볍게 넘어갔었는데 의외로 계절을 진하게 체감했다. 지금은 너무 더운 여름이고 세계적인 전염병이 겹친 재앙의 시절이다. 여럿이 모여 하는 운동 몇 가지를 쉰 지 1년 반이 넘어가고 있다. 지구를 건강하게 회복시켜야 한다. 에너지 수요를 줄여야 한다. 공룡이 사라진 때로부터 4만 년이 지났다. 제5차 대 절멸의 시기를 최대한 늦춰야 하지 않겠는가.
*글을 쓰고 있는 동안 2도의 위험성이 세계적으로 1.5도 상승 안으로 좁아졌다. 탄소 배출을 줄이는 일환으로 전기차로 바꾸었다. 에어컨 없이 시작하는 아들의 신혼 생활이 무탈하기를.
<<수필과 비평 10월>>
서울 출생 한국산문 2019.12 <투명함을 그리다> 로 등단 한국 문인 협회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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