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몰지 / 김기택
풀이 땅에 구멍을 뚫고 있다
땅속에 숨통을 심고 있다
수백 개의 콧구멍이 흙덩어리 숨을 들이쉬다가 멈춰 있는 곳 놀란 순간이 떨어지고 있는 흙으로 덮인 채 눈 뜨고 있는 곳 뒤틀리는 살덩어리와 흙 먹은 비명이 막힌 숨을 뚫고 나가려다 굳어있는 곳 필사적인 꿈틀거림이 두꺼운 살갗에 숨구멍을 뚫다가 부러져있는 곳 다 썩지 못한 가죽과 팔다리가 검은 핏물과 악취 가스가 되어 땅속을 발버둥으로 긁어대는 곳 한 삽 흙을 뜨면 두개골과 다리뼈가 뿌리처럼 우두둑 뜯겨 나올 것 같은 곳 봄이 되면 땅속을 긁는 발톱들 때문에 땅거죽에 소름이 돋는 곳 바람도 부스럼이 생겨 가려운 등을 나무와 바위에 비벼대는 곳 진저리치던 뿌리가 맹렬하게 말라 죽어 가는 곳
풀이 썩은 어둠에 푸른 파이프를 박고
여린 숨을 퍼 올리고 있다
-- <애지> 2022년 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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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기택 시인
1957년 경기 안양 출생. 중앙대학교 영어영문학과 및 경희대학교 대학원 국문과 졸업
1989년 〈한국일보〉신춘문예 시 당선.
시집 『태아의 잠』 『사무원』 『소』 『껌』『갈라진다 갈라진다』 『울음소리만 놔두고 개는 어디로 갔나』
경희사이버대학교 미디어문예창작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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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 사회는 돈의 광기에 사로잡힌 미치광이들의 사회이며, 오직 돈을 위하여 부모형제와 모든 인간 관계를 파탄시킨 사회라고 할 수가 있다. 자기 자신에 대한 반성과 성찰도 없고, 타인들과 지구촌의 환경에 대한 반성과 성찰도 없다. 잠시 잠깐 동안의 휴식도 모르고, 그 모든 것을 한 걸음 뒤로 물러나서 생각해보는 여유도 없다. 시간도 돈이고, 모든 생명체들도 돈이다. 청량한 바람과 햇빛도 돈이고, 강과 바다도 돈이다. 인간도, 다만 착취의 도구에 지나지 않으며, 수많은 산과 바위도 돈벌이의 대상에 지나지 않는다. 오직 자나깨나 돈 쌓이는 속도가 느리다고 투덜대며, 앞으로의 전진과 또 전진 밖에는 모른다. 자본주의의 모든 상품들은 대부분이 일상생활의 필수품이 아닌 사치품이며, 이 사치품들을 생산하기 위하여 끊임없이 대량생산과 대량소비의 체제를 가동시켜 나간다. 자본가들이 가장 싫어하는 것은 매출의 감소, 즉, 이익의 감소이고, 자본가들이 가장 좋아하는 것은 매출의 폭발적인 증가와 함께, 너무나도 엄청난 영업 이익이라고 할 수가 있다.
현대 자본주의 사회는 풍부함의 사회라고는 하지만, 그러나 대부분의 인간들이 절대 빈곤 속에 신음하고 있는 것과 함께, 인류의 역사상, 전무후무한 초고령 사회를 창출해냈다고 할 수가 있다. 돈놀이의 최종 목적지도 금융자본가의 주머니이고, 자동차 산업의 최종 목적지도 산업자본가의 주머니이다. 라면도, 맥주도, 우유도, 치킨산업의 목적지도 그렇고, 석유도, 곡물도, 로버트도, 인공지능의 목적지도 그렇다. 모든 생명공학도 돈벌이가 최종 목표이고, 그 결과, 지구촌의 인구는 어느 덧 80억 명 정도까지 불어난 것이다. 70, 혹은 8~90세의 노인들은 너무나도 끔찍한 유령들에 지나지 않으며, 모든 요양원과 요양병원은 반인륜적인 혐오시설에 지나지 않는다.
100여 년 전만 하더라도 인간의 평균 수명은 5~60세에 지나지 않았으며, 지구촌의 인구는 20억 명 정도에 지나지 않았다. 불과 100여 년 만에 60억 명의 인구가 증가한 것이고, 이 인간들이 먹어 치우는 식량과 천연자원은 감히 상상할 수조차도 없을 정도라고 할 수가 있다. 80억 명의 인구가 먹고 살기 위해서는 과연 소와 돼지와 닭과 양과 오리들이 얼마나 필요한 것이고, 80억 명의 인구가 먹고 살기 위해서는 쌀과 보리와 밀과 콩과 채소와 과일들이 또한, 그 얼마나 필요한 것이란 말인가? 오늘날 자연의 동식물들은 30% 이상이 소멸되었지만, 그 빈 자리에 오직 인간을 위한 곡물과 가축떼들로 넘쳐나게 되었다. 자연은 만물의 터전이며, 자연은 인간보다 더 크고, 자연은 반드시 우리 인간들에게 복수를 하게 되어 있다. 자연의 파괴와 생태환경을 교란시킨 대역죄에 대한 심판은 반드시 물과 불로 하게 되어 있는 것이다. 엘리뇨와 라니냐와 함께, 대규모의 지진과 화산폭발이 바로 그것이며, 지구촌의 대재앙은 바로 눈앞에 닥쳐왔다고 할 수가 있는 것이다.
김기택 시인의 [매몰지]는 현대 자본주의 사회의 음화이며, 반생명적인 죽음의 땅을 ‘풀의 생명력’으로 되살리는 과정을 노래한 시라고 할 수가 있다. 여기도 쓰레기이고, 저기도 쓰레기이며, 지구촌 전체가 일테면, 생활용품과 산업폐기물과 음식물 쓰레기들로 넘쳐나고 있다고 할 수가 있다. “수백 개의 콧구멍이 흙덩어리 숨을 들이쉬다가 멈춰 있는 곳”이고, “뒤틀리는 살덩어리와 흙 먹은 비명이 막힌 숨을 뚫고 나가려다 굳어있는 곳”이다. “썩지 못한 가죽과 팔다리가 검은 핏물과 악취 가스가 되어 땅속을 발버둥으로 긁어대는 곳”이고, “한 삽 흙을 뜨면 두개골과 다리뼈가 뿌리처럼 우두둑 뜯겨 나올 것 같은 곳”이다. “봄이 되면 땅속을 긁는 발톱들 때문에 땅거죽에 소름이 돋는 곳”이고, “바람도 부스럼이 생겨 가려운 등을 나무와 바위에 비벼대는 곳”이다.
자연이 팔과 다리를 잘린 채 신음을 하고 있고, 풀과 나무들이 식음을 전폐한 채 몸살을 앓고 누워 있다. 물이 끓어 오르고, 가스가 폭발하고, 이글이글 활화산이 타오른다. 과연 어느 누가 이 성스러운 자연을, 모든 만물의 터전인 대자연을 이처럼 더럽고 추하게 오염시켜 놓았단 말인가? 소떼들인가, 호랑이들인가? 늑대인가, 나무들인가? 개미인가, 벌과 나비떼들인가? 대답하라, 대답하라! 만물의 영장이란 우리 인간들은 이 더럽고 추한 매립지의 참상에 더 이상 할 말이 없을 것이다.
풀이 땅에 구멍을 뚫고, 땅속에 숨통을 심고 있다. 풀이 썩은 어둠에 푸른 파이프를 박고, 여린 숨을 퍼 올리고 있다. 풀은 성자이며, 모든 기적의 연출자이다. 진저리치던 뿌리가 맹렬하게 말라 죽어가는 곳에다가 매립지의 숨통을 뚫고, 또, 뚫으며, 끝끝내는 그 매립지를 만물의 터전으로 되살려 놓는다.
김기택 시인은 풀이며, 성자이고, 기적의 연출자이다. 불모의 땅- 죽음의 땅을 극사실적으로 묘사하면서도 그곳의 참상을 자연과학적, 혹은 역사 철학적인 지식으로 밝혀내고, 그 불모의 땅- 죽음의 땅을 푸르고 푸른 동산으로 살려 놓는다.
김기택 시인의 언어는 풀씨이고, 풀이며, 그 고귀함과 거룩함으로 시의 열매를 맺는다.
- 반경환 (평론가) 명시 감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