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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고대의 이상사회와 현대한국의 이상정치 비교>
올바른 정치형태는 무엇일까? 이에 대해서 철학사에서는 다양한 입장을 보인다. Platon은 철학자가 다스리는 국가를, J. Rawls는 공정으로서의 정의가 이루어는 사회를 이상적으로 보았다. 그렇다면 동양에서는 어떠할까? 동양의 이상적인 사회는 시경에 나타나는 요순지치(堯舜之治)의 사회이다. 이를 가장 잘 나타내주는 것이 바로 고복격양(鼓腹擊壤)이다. 그 한자를 있는 그대로만 해석을 한다면 ‘배를 두들기고 땅을 치는 사회’정도로 해석할 수 있다. 그렇다면 고복격양의 사회는 단순히 생산물이 풍부하여 모든 국민들이 배불리 먹고 또 즐겁게 일하는 사회에 불과한 것일까? 중요한 것은 이러한 사회를 지향한 사람은 패도정치를 배척하는 공자였다. 공자는 많은 이들이 알다시피 군주의 인간다움, 즉 인에 바탕을 둔 통치, 도덕정치를 주장한 사람이다. 그러나 생산물이 풍부한 사회는 도덕정치보단 패도정치, 즉 힘으로 이루는 것이 오히려 효율적일 것이다. 그렇기에 고복격양을 단순히 생산물이 풍부한 사회로 볼 수는 없다. 고복격양의 숨은 일화는 다음과 같다.
“어느 날 보통차림으로 혼자 몰래 민정 시찰에 나섰다. 그러다 마을 끝에 다다랐더니, 늙은 노인이 나무 그늘에 드러누워 손으로 자기 배를 두드리고 발로 땅을 구르며 한가하게 다음과 같이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日出而作 日入而息 : 해가 뜨면 일하고 해가 지면 쉬네
耕田而食 鑿井而飮 : 밭을 갈아 먹고 우물을 파서 마시니
帝力何有于我哉 : 임금의 힘이 나에게 무슨 소용인가?
듣기에 따라서는 임금의 권위를 무시하는 불경한 언사라고 할 수 있었다. 그렇지만 워낙 너그럽고 어진 요임금의 생각은 달랐다. 한낱 백성이 임금의 권위 따위는 전혀 의식하지도 않고 ‘배를 두드리고 발을 구르며 흥겨워하는 모습’이야말로 자기가 선정을 베풀고 있고 그것이 백성들에게 고루 혜택을 주고 있는 증거라고 본 것이다.”
이는 임금의 권력이 백성에게 미치지 않고 또 백성 또한 그것의 영향을 받지 않는 그러한 무위지치(無爲之治)의 사회이다. 이러한 무위지치의 사회는 동시에 당위가 적절히 이루어진 사회이기도 하다. 공자는 정명(正名), 즉 존재와 명제의 일치를 이야기하였다. 이는 군군신신부부자자(君君臣臣父父子子), 즉 군주는 군주답게 신하는 신하답게 부모는 부모답게 자녀는 자녀다움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이는 보통 유위(有爲)적으로 해석할 수 있으나, 동시에 당위가 극에 달하면 무위가 될 수 있다고 해석해볼 수 있다. 예를 들어 나무는 스스로 나무답게 되고자 하지 않는다. 그저 자신의 자연스러움을 다하여, 나무는 나무의 이름을 다할 수 있는 것이다. 즉 정명을 무위로써 행할 수 있는 것이다. 이처럼 요임금은 임금의 권위를 살리지 않고, 오히려 무위적으로 임금의 일을 하였기 때문에 가장 이상적인 군주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이는 군주의 자연스러운 자각을 요청한다. 군주라는 이름은 일종의 문명에서 나온 것이기 때문에 순수하게 자연스럽게는 할 수 없다. 따라서 스스로 군주임을 깨닫고 자연스럽게 군주가 해야만 하는 일(當爲)을 자연스러움에 맞게(無爲)하는 것으로 고복격양을 해석할 수 있다.
이와는 달리 현대한국사회는 민주주의사회를 지향한다. 특히 우리나라는 1년 전 거대한 정치적 변동을 겪으며, 더욱 올바른 민주주의에 대한 바람이 증대되었다. 민주주의, democracy는 민중에 의한 지배를 의미하는 것으로 링컨의 연설, ‘of the peopleㆍby the peopleㆍfor the people’이라는 말로 요약할 수 있다. 다시 말해 그 국가의 모든 국민이 공동체의 복지를 위해 민중에 의한 통치를 하는 것이다. 어떤 관점에서 보자면 이는 백성을 정치의 객체로 보는 전통적인 통치형태와 대비된다고 볼 수 있다. 고복격양에서도 분명히 임금과 백성이 구분되며, 백성은 단지 정치의 객체, 그 이상이 될 수 없고, 국가의 모든 행정과정이 임금에 의한 중앙집권화의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이러한 점에서 보면 고복격양의 사회와 민주주의의 사회는 결코 양립할 수 없는 사회이며, 현대사회는 민주주의로 가야하고 고복격양의 사회는 그저 과거의 유산에 불과하다고 비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고복격양과 민주주의사회를 다음과 같은 관점에서 볼 수 있다. 물론 고복격양은 임금과 백성이 구분되어있고, 민주주의사회는 구분되지 않고, 군주가 곧 백성이다. 그리고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현대 많은 사람들은 군주정이 아닌 민주정을 옹호한다. 그렇다고 하여 고복격양사회의 덕목이 민주주의사회에서 전혀 필요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민주주의사회의 모든 시민이 모두 시민다운 것은 아니다. 오히려 수많은 시민들은 자신이 정치의 주체라는 점을 자각하지 못하거나 자각하더라도 자신의 당위를 다하지 않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이러한 사회에 고복격양의 무위적인 정명이 필요할 것이라고 예상된다. 모든 국민은 백성인 동시에 군주이다. 그렇기에 모든 국민은 자신이 이 나라의 군주임을 자각하고, 군주다움, 즉 공동체적인 당위를 행해야 한다. 이러한 당위가 반복이 된다면 소강사회가 대동사회가 되듯이, 자연스러운 당위의 사회, 억지로 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자신의 양심과 도덕성을 발휘하고, 공동체적 책임을 다하는 사회가 도래할 수 있을 것이라 예상된다.
첫댓글 무위지치는 권력을 가진 자의 책무가 "당위가 성취되도록 하는 데" 있고, 따라서 권력을 가진 자가 그 권력을 오용하는 경우는 없어야 한다는 인식을 기초로 한 것입니다. 이 점을 고복격양의 고사를 통해 잘 풀어낸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의 민주정치에서 자신에게 주어진 권력을 오용하지 않고, 당위가 성취되도록 하는 데 쓰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에 대해서는 좀 더 구체적인 방안을 제시해주었으면 좋았겠습니다. 자각만으로, 그리고 공동체적 당위를 강조하는 것만으로는 현실의 문제를 해결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