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어찌 이런 음악이 존재할 수 있는가?
내 인생 처음으로 <말러 교향곡 3번>을 들으며 감탄에 감탄을 거듭하다가 마지막 6악장 코다에서 끝내 눈물을 흘렸던 그날, 그 순간이 떠오른다. 그때 들었던 음반은 클라우디오 아바도와 베를린필의 런던 로열앨버트홀 실황이었다. 지금은 이 연주를 선명하지 않은 녹음 탓에 그다지 즐기진 않지만 당시 나에게는 가슴 뭉클한 충격이었다. 이후, <말러 교향곡 9번>의 격정적인 4악장 '아다지오'에 온전히 몰입된 이후, 작곡가 말러에 오롯이 경도되었다. 지금 이 순간, <말러 교향곡 9번>을 다시 들으며 내가 오래전에 느꼈던 그 짜릿한 엑스터시를 상기시켜 본다.
말러는 자신의 현실 속 고통과 죽음을 노래했지만 그의 음악은 감상자를 완벽히 다른 차원으로 인도한다. 그건 천상의 세계도 아니고, 처해진 현실도 아니며, 아마도 꿈결처럼 잡을 수 없는, 환영 같은 세계이다. 이곳은 순수한 감정의 세계이면서 뜨거운 쾌락과 차가운 고요가 공존하는 이상향이다.
오로지 말러의 음악을 통해서만 우린 이 공간에 닿을 수 있다. 그리고 그 세상에 도달했던 이들은 그 세계를 잊을 수 없기에 누구나 다시 문을 두드린다. 그러나 늘 그곳에 도달할 수 없어 애타는 마음으로 새로운 시도를 갈구한다. 그러다 접점에 닿아 유체이탈의 신세계가 열리면 비로소 격한 쾌감에 사로잡힌다. 어쩌면 인간의 정신을 조정하는 위험한 음악인 것이다. 이러한 점이 말러가 얼마나 인간의 삶을 풍요롭게 하는가 하는 극단의 역설을 보여주는 것이다.
세상은 '말러를 아는 자'와 '모르는 자'로 구분된다고 단언한다. 아니다, '말러가 이끄는 세계를 경험한 자'와 '그렇지 않은 자'로 구별한다고 하는 게 더 정확하겠다. 흐르는 눈물과 격정적이고 폭발적인 감정이 뒤섞여 진정한 쾌락으로 향하는 통로이기에 한번 경험하면 결단코 빠져나갈 수 없는 마약이다. 현실로부터 벗어나려는 순간, 말러를 만난 당신은 구원받은 사람이다.
삶은 지속되고 말러의 음악은 영원하다. 힘겨운 인생의 무게가 말러의 음악을 통해 위안과 쾌감으로, 성령이 강림하는 순간을 당신의 삶에서도 함께 하길 기원한다. 말러는 마음을 정화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자 영혼의 동반자이다.
#GustavMahler
첫댓글 이런 음악유산을 남긴 말러에게 감사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