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GA투어 첫승 란토 그리핀의 긴 기다림
14일(한국시간) 미국 텍사스주 험블의 휴스턴 골프클럽에서 열린 PGA투어 휴스턴오픈 마지막 라운드 리더보드에 오른 이름들은 한국 골프팬들에겐 매우 낯설었다.
오는 17일 제주도에서 열리는 PGA투어 더CJ컵과 이어 일본에서 열리는 조조 챔피언십을 앞두고 톱 랭커들과 한국 선수들이 휴식과 대회 대비를 위해 아시아로 이동한 탓에 얼핏 무명들의 대회같은 분위기가 들 정도였다.
리더보드 첫 페이지에 오른 선수들은 해리스 잉글리시(30·미국·PGA투어 2승)를 빼곤 모두 PGA투어 우승 경험이 없는 무명선수들이다.
우승자 란토 그리핀(31)은 물론 공동 2위 마크 허바드(30·미국)와 스콧 해링턴(38·미국), 중국의 장 시준(32), 텔러 구치(27·미국), 카를로스 오티즈(28·멕시코), 세프 스트라카(26·호주), 버드 콜리(29·미국) 등 나이는 이미 신인을 훨씬 지난 중견선수들이지만 우승경력이 없어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물론 이번 대회에 닉 와트니, 러셀 녹스, 스코티 셰플리, 스투어드 싱크, 카메렌 트링갈리, 부 위클리, 카일 스탠리, 카메런 챔프 등 지명도 있는 선수들도 출전했지만 모두 중하위권으로 밀렸다.
리더보드 상단에 오른 선수들 모두 10년 가까이 PGA투어 첫 승의 희망을 버리지 않고 버텨온 선수들이라 우승 열망만큼 경쟁이 뜨거웠다. 특히 란토 그리핀, 스콧 해링턴, 마크 허바드 등 3명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긴장감 넘치는 경기를 펼쳤다.
1타 차 단독 선두로 출발한 그리핀은 4라운드에서 버디 5개와 보기 2개로 3타를 줄이며 공동 2위 마크 허바드와 스콧 해링턴을 1타 차로 따돌리고 우승을 확정했다.
유명 선수가 없었지만 우승 없이 10여년 이상을 버텨온 선수들의 고난에 찬 골프 여정은 감동을 주기에 충분했다.
191cm의 장신에 골프하기 좋은 체격을 지닌 란토 그리핀이 31세가 되어서야 첫 우승을 했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는다. 그만큼 골프의 변방을 전전했다는 뜻이기도 하다.
캘리포니아의 시골 마운트 샤스타에서 자란 그는 학창시절 골프를 즐겼지만 대학에 들어가서야 본격적으로 골프를 익혔다. 버지니아 커먼웰스대학에서 마케팅을 전공한 그는 푸에르토리코 출신 동창생 라파엘 캄포스(31)와 한방에 침대 두 개를 놓고 쓰며 열심히 골프를 쳤다. 주말마다 대학 근처에 있는 9홀 짜리 퍼블릭코스를 찾아 45홀을 돌았다니 골프열정을 짐작할 만하다.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프로로 전향했으나 이렇다 할 성적을 내지 못했다. 2013년 소규모 대회인 NGA투어에서 프로 첫 승리를 맛봤으나 미국에서 뿌리내리지 못하고 중국으로 건너갔다. PGA China 투어에서도 뚜렷한 성적을 거두지 못하고 PGA투어 라틴아메리카 투어로 무대를 옮겨 1승을 올린 뒤 PGA 2부 투어인 콘페리투어에 입성했다. 여기서 2승을 거둔 그는 상금순위 6위로 2018년 PGA투어에 입성하는데 성공했지만 두각을 보이지 못하다 지난 9월부터 상위권에 진입하며 희망을 보았다.
밀리터리 트리뷰트 엣 그린브라이어 대회 13위, 샌더슨 팜스 챔피언십 공동 11위, 세이프웨이 오픈 공동 17위, 슈라이너스 아동병원 오픈에서 공동 18위에 오른 뒤 프로 전향 9년만에 PGA투어 첫 우승의 감격을 누렸다.
그의 우승을 가장 기뻐한 사람은 눈물 젖은 빵을 나눠 먹던 그의 친구 라파엘 캄포스다. 이번 대회에서 공동 59위에 머물렀지만 이번 시즌 3개 대회 컷 통과에 성공해 상승기류를 타고 있다.
육식을 못하고 생선과 야채를 먹는다. 미국에 중국의 신비주의를 정착시킨 로드 란토(Lord Lanto)를 정신적 스승으로 존경해 이름으로 택했다.
란토 그리핀의 우승을 보면 유명 선수들이 빠진 대회를 통해 얼마나 많은 무명선수들이 절치부심하며 우승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가를 실감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