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0){this.width=500;} " [안내]태그제한으로등록되지않습니다-xx[안내]태그제한으로등록되지않습니다-xx[안내]태그제한으로등록되지않습니다-xx[안내]태그제한으로등록되지않습니다-xx[안내]태그제한으로등록되지않습니다-xx[안내]태그제한으로등록되지않습니다-xx[안내]태그제한으로등록되지않습니다-xx[안내]태그제한으로등록되지않습니다-xx[안내]태그제한으로등록되지않습니다-xx[안내]태그제한으로등록되지않습니다-xx[안내]태그제한으로등록되지않습니다-xx[안내]태그제한으로등록되지않습니다-xx[안내]태그제한으로등록되지않습니다-xx[안내]태그제한으로등록되지않습니다-xx[안내]태그제한으로등록되지않습니다-xx[안내]태그제한으로등록되지않습니다-xx[안내]태그제한으로등록되지않습니다-xx[안내]태그제한으로등록되지않습니다-xx[안내]태그제한으로등록되지않습니다-xx[안내]태그제한으로등록되지않습니다-xx[안내]태그제한으로등록되지않습니다-xx[안내]태그제한으로등록되지않습니다-xx[안내]태그제한으로등록되지않습니다-xx[안내]태그제한으로등록되지않습니다-xx[안내]태그제한으로등록되지않습니다-xx[안내]태그제한으로등록되지않습니다-xx[안내]태그제한으로등록되지않습니다-xx[안내]태그제한으로등록되지않습니다-xx[안내]태그제한으로등록되지않습니다-xx[안내]태그제한으로등록되지않습니다-xx[안내]태그제한으로등록되지않습니다-xx[안내]태그제한으로등록되지않습니다-xx[안내]태그제한으로등록되지않습니다-xx[안내]태그제한으로등록되지않습니다-xx[안내]태그제한으로등록되지않습니다-xx[안내]태그제한으로등록되지않습니다-xx[안내]태그제한으로등록되지않습니다-xx[안내]태그제한으로등록되지않습니다-xx[안내]태그제한으로등록되지않습니다-xx[안내]태그제한으로등록되지않습니다-xx[안내]태그제한으로등록되지않습니다-xx[안내]태그제한으로등록되지않습니다-xx[안내]태그제한으로등록되지않습니다-xx[안내]태그제한으로등록되지않습니다-xx[안내]태그제한으로등록되지않습니다-xx[안내]태그제한으로등록되지않습니다-xx[안내]태그제한으로등록되지않습니다-xx[안내]태그제한으로등록되지않습니다-xx[안내]태그제한으로등록되지않습니다-xx[안내]태그제한으로등록되지않습니다-xx[안내]태그제한으로등록되지않습니다-xx[안내]태그제한으로등록되지않습니다-xx[안내]태그제한으로등록되지않습니다-xx[안내]태그제한으로등록되지않습니다-xx[안내]태그제한으로등록되지않습니다-xx[안내]태그제한으로등록되지않습니다-xx[안내]태그제한으로등록되지않습니다-xx[안내]태그제한으로등록되지않습니다-xx[안내]태그제한으로등록되지않습니다-xx[안내]태그제한으로등록되지않습니다-xx[안내]태그제한으로등록되지않습니다-xx[안내]태그제한으로등록되지않습니다-xx[안내]태그제한으로등록되지않습니다-xx[안내]태그제한으로등록되지않습니다-xx[안내]태그제한으로등록되지않습니다-xx[안내]태그제한으로등록되지않습니다-xx[안내]태그제한으로등록되지않습니다-xx[안내]태그제한으로등록되지않습니다-xx[안내]태그제한으로등록되지않습니다-xx[안내]태그제한으로등록되지않습니다-xx[안내]태그제한으로등록되지않습니다-xx[안내]태그제한으로등록되지않습니다-xx[안내]태그제한으로등록되지않습니다-xx[안내]태그제한으로등록되지않습니다-xx[안내]태그제한으로등록되지않습니다-xx[안내]태그제한으로등록되지않습니다-xx[안내]태그제한으로등록되지않습니다-xx[안내]태그제한으로등록되지않습니다-xx[안내]태그제한으로등록되지않습니다-xx[안내]태그제한으로등록되지않습니다-xx[안내]태그제한으로등록되지않습니다-xx[안내]태그제한으로등록되지않습니다-xx[안내]태그제한으로등록되지않습니다-xx[안내]태그제한으로등록되지않습니다-xx[안내]태그제한으로등록되지않습니다-xx[안내]태그제한으로등록되지않습니다-xx[안내]태그제한으로등록되지않습니다-xx[안내]태그제한으로등록되지않습니다-xx[안내]태그제한으로등록되지않습니다-xx[안내]태그제한으로등록되지않습니다-xx[안내]태그제한으로등록되지않습니다-xx[안내]태그제한으로등록되지않습니다-xx[안내]태그제한으로등록되지않습니다-xx[안내]태그제한으로등록되지않습니다-xx[안내]태그제한으로등록되지않습니다-xx[안내]태그제한으로등록되지않습니다-xx[안내]태그제한으로등록되지않습니다-xx[안내]태그제한으로등록되지않습니다-xx[안내]태그제한으로등록되지않습니다-xx[안내]태그제한으로등록되지않습니다-xx[안내]태그제한으로등록되지않습니다-xx[안내]태그제한으로등록되지않습니다-xx[안내]태그제한으로등록되지않습니다-xx[안내]태그제한으로등록되지않습니다-xx[안내]태그제한으로등록되지않습니다-xx[안내]태그제한으로등록되지않습니다-xx[안내]태그제한으로등록되지않습니다-xx[안내]태그제한으로등록되지않습니다-xx[안내]태그제한으로등록되지않습니다-xx[안내]태그제한으로등록되지않습니다-xx[안내]태그제한으로등록되지않습니다-xx[안내]태그제한으로등록되지않습니다-xx[안내]태그제한으로등록되지않습니다-xx[안내]태그제한으로등록되지않습니다-xx[안내]태그제한으로등록되지않습니다-xx[안내]태그제한으로등록되지않습니다-xxxx[안내]태그제한으로등록되지않습니다-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onclick="showImgWin(this)">
빈야봉 낙조
천왕성모(天王聖母) 전설 & 기우제(祈雨祭)
천왕봉 일출
천왕봉.
1967년 12월 29일 우리나라 최초의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지리산.
3개도(경상남도, 전라남·북도), 1개시, 4개군, 15개 읍·면의 행정구역.
면적 483.022㎢로 22개 국립공원 중 가장 넓은 면적의 산악형 국립공원. 지리산(智異山)은 "지혜로운 이인(異人)의 산" 이라 한다.
여느 산보다 많은 은자(隱者)들이 도를 닦으며 정진하는 곳.
금강산, 한라산과 함께 삼신산의 하나로 민족 신앙의 영지(靈地).
지리산 주봉 천왕봉에는 1천년전부터
성모사 사당이 세워져 성모석상이 봉안되었고.
노고단에는 신라 선도성모를 모시는 남악사가 있었다.
반야봉, 종석대, 영신대, 노고단과 같은 이름들도 신앙을 상징. 구름 위에 떠 있는 고봉 준령마다 영기가 서리고,
계곡은 웅장하면서도 유현(幽玄)함을 잃지 않는다.
천왕봉에서 노고단에 이르는 주 능선의 거리가 25.5km.
지리산 둘레는 320km로 800리쯤 된다.
지리산의 너른 품 안에는 해발 1,500m가 넘는
20여개의 봉우리가 천왕봉(1,915m), 반야봉(1,732m),
노고단(1,507m) 3대 주봉을 중심으로 20여 긴 능선이 있다.
그 품속에 칠선계곡, 한신계곡, 대원사계곡,
피아골, 뱀사골 등 큰 계곡이 있으며, 아직도
지명이 없는 봉우리나 이름 없는 계곡이 많다. 이렇게 넉넉한 지리산의 웅장하고 아늑한 산세는
영·호남의 지붕으로서 이 지역 사람들의 삶의 터전.
지리산 북쪽으로는 만수천-임천-엄천강-경호강-남강-낙동강
지리산 남쪽으로는 섬진강이 흘러 생명수를 제공하고 있으며,
천왕봉 아래 천왕샘을 비롯, 주능선 곳곳에서 샘물이 솟아난다.
경남의 하동, 함양, 산청,
전남의 구례, 전북의 남원,
3도 1시 4군에 걸쳐있는 지리산.
지리산은 단지 크고, 깊고, 넓은 것만으로
설명이 안되는 다른 매력이 넘치는 산이다.
천왕봉에서 바라본.,반야봉.
반야봉 설경.
노고단에서 바라본., 반야봉.
구례2경 - 반야봉 낙조.
반야봉 정상
반야봉 운해
뱀사골에서., 반야봉 함박골(출입금지 구역)
반야봉 폭포수골
...............................
...............................
'반야봉의 운해(雲海)는
어떤 까닭으로 형성될까?
'좌측에 뱀사골이 있어서일까?'
'우측에 달궁계곡이 있어서일까?'
'좌청룡 우백호' 계곡을 거느린 산세.
그외에도 '반야봉의 함박골,
폭포수골 등 수많은 계곡들과
지리산 주능선 북서면의 계곡들.
................
................
그 물줄기들이
모두 모여드는
반야봉 일대 산세.
반야봉은 그로 인하여
운해에 휩싸이는 것일까?'
반야봉의 낙조(落照)는
왜 핏빛처럼 붉은걸까?
.............................. ..
................................
하늘나라 신선들의 놀이터.,뱀사골.
뱀사골은 반야봉과 토끼봉 사이에서
반선마을까지 뻗어내린.,9.2㎞골짜기.
곳곳에 기암괴석과 깊은 소(沼)들.
그곳마다 전설과 전쟁의 아픔들이
아직까지도 깃들어 있는 지역이다.
뱀사골의 지명은 뱀이 많아서가 아니라
1300년전 계곡 입구 송림사 전설에서 유래.
지금은 이미 사라지고 없는.,'폐사찰' 송림사.
송림사에서는 매년 칠월 백중날(음력 7월15일)
승려 한 명을 신선바위에서 기도하게 하는 풍습.
그런데, 이튿날 아침이면 흔적없이 사라진 그 승려.
사람들은 그 승려가 신선이 되어
승천했다고 굳게 믿었다고 전한다.
그러던 어느해 한 승려가 이를 이상히 여겨
기도하게 된 승려의 옷에 독을 발라 놓았다.
이튿날 신선바위로 올라가자.,죽어있는 이무기.
그후 이 계곡은 이무기(뱀)가
죽은(死) 골짜기 뜻말.,‘뱀사골’
마을 사람들은 이무기의 밥이 된 스님들의
넋을 위로하기 위해 죽은 스님들이 절반쯤
신선이 되었다 하여 계곡 앞.,반선(半仙)마을.
전설들이 깃들어 있는 만큼 계곡 주변에는 볼거리도 많다.
캠핑장을 지나 데크길을 걸으면 계곡 쪽에 큰바위 틈 석실.
석실은 작은 공간으로 이태 자전소설 ‘남부군’에도 등장한다.
빨치산들이 신문과 선전물을 인쇄해
대민공작에 사용하기 위한.,작업공간. 계곡 따라 오르다 보면 와운(臥雲)마을에 당도한다.
구름이 누워 있다는 의미의 와운마을 앞에 있는 요룡대는
용이 머리를 흔들며 승천하는 모습처럼 보인다는 뜻말 이름.
와운골과 뱀사골의 물이 합수되는 곳.,요룡대.
와운마을이 유명한 것은 이 마을에 천년송 때문.
천연기념물 424호로 매년 정월 초사흘에 태평 기원.
와운마을 주민들이 겨울이면 산 아래로 내려가 살다가
봄이면 돌아왔는데 이젠 겨울에도 마을을 떠나지 않는다.
와운마을 일대는 1970년대에만 해도 나무없는 민둥산이었다.
주민들이 화전을 일군 까닭에 비가 조금만 와도 산사태
불어난 물에 사람이 떠내려가는 사건이 심심치 않게 발생.
1950년대까지만 해도 낮이면 토벌군에,
밤이면 산사람(빨치산)에 시달렸던 마을.
“관광객들이 몰려들기 전인 1980년대까지만 해도
산길에서 등산객들 상대로 간단한 음식과 술을 팔거나
양봉을 하고 나물을 뜯어 팔었던 산내면 부운리 와운마을.
...............................
................................
반야봉은 조선시대에 들어와 성리학의 산실. 유교 불교 도교 한계선을 넘어선 사상의 산실. 우리나라 민족 사상을 선도하는 곳으로 자리매김.
16세기 초 성리학이 전성기일 무렵 불교는 쇠퇴. 반야봉은 불교의 산실에서 성리학의 산실로 탈바꿈. 성리학자가 깨닳아야 할 사상과 철학이 담겨진.,산세.
41세 서경덕이
반야봉을 오른 후
깨달음을 표현한 말. "태허는 말끔하여 형체가 없다. 이를 선천이라고 하는데 그 크기는 끝이 없고 과거에 시초가 없었으며 앞으로도 한끝을 모른다. 말끔하게 허하고
고요한 것이
기의 시원. 끝없이 넓은 우주에 꽉 들어차서 빈틈이 없고 털끝 하나도 드나들 수 없다. 그것을 끌어당기려면 허하고 잡으려면 잡을 것이 없다. 그런데도 사실은 차 있으니 없다고 할 수 없다. 한계가 없는 것을 태허라 하고 시초가 없는 것을 기(氣)라고 하니 허(虛)가 바로 기(氣)이다. 허가 본래 무궁하고 기 역시 무궁하니 기(氣)의 근원은 처음부터 하나." ....................기일원(氣一元)의 철학....................... 서경덕은 만물의 근원과 운동변화를 기(氣)로써 설명, 그 기를 능동적이고 불멸하는 실체로 본데 특징이 있다. 그는 세계의 시원을 허(虛) 또는 태허(太虛)라고 보았다. 여기에서 그가 말한 태허는 곧 물질적인 기이며 이와 같이 만물의 근원을 기로 설명했을 뿐 아니라 인간의 정신, 천지만물은 기로 이루어진다고 보았다. 하나의 기가 나뉘어 음양이 될 때 양이 변화를 극한 것이 하늘이 되고 음이 모이고 응결한 것의 극이 땅이 된다. 양의 정수가 맺혀 해가 되고 음의 정수가 맺혀 달이 된다. 나머지 기운이 별이 되고 땅에서는 물과 불이 된다. 물질적인 기는 시작도 종말도 없으며, 따라서 창조도 소멸도 없다는 전제로부터 사물은 소멸되어도 물질적인 기는 흩어질뿐.
기가 소멸되지는 않는다는
그 주장은 당시 독창적인 것. 한편, 인성론에서는 전통적인 성선설을 주장하고, 聖人이 되기 위한 수양방법으로 주정(主靜)을 제시 서경덕의 학설은 그무렵 이황 이이의 비판을 받았다. 조선시대 최초로 전개한.,기일원론. 박주(朴洲) 박순(朴淳) 허엽(許曄) 남언경(南彦經) 민순(閔純) 이지함(李之) 이구(李球) 박민헌(朴民獻) 홍인우(洪仁祐) 장가순(張可順) 이중호(李仲虎) 등 그의 문하로서 많은 학자들과 관인들이 배출되었다. ......................................................................
유학사상 철학문제를 제기하고, 기철학 체계를 완성. 박연폭포 황진이와 함께 송도삼절(松都三絶)로 불렸다. 1509년(중종 4) 요양을 위해 경기 영남 호남을 유람. 1519년 조광조에 의해 실시된 현량과에 으뜸으로 천거 사퇴하고 화담에 서재를 지어 성리학 연구를 계속했다. 1522년 속리산 지리산 명승지 답사후 기행시를 남겼다. 당시 선비들이 사화로 참화를 당하자 벼슬을 하지 않았다. 1531년 어머니 명으로 생원에 합격 벼슬길에 나가지 않았다. 1540년 김안국(金安國) 등에 의해 조정에 추천되고, 1544년 후릉참봉에 제수되었으나 사양하고 성리학 연구 이해에 병이 깊어지자 원이기(原理氣) 이기설(理氣說) 태허설(太虛說) 귀신사생론(鬼神死生論) 등을 저술했다. 이듬해 중종이 죽자 대상복제(大喪服制)에 대한 상소 백성 생업에 지장없게 3년상을 3개월로 고칠 것을 주장. 1567년(명종 22) 호조좌랑, 1575년(선조 8) 우의정에 추증 개성 숭양서원(崧陽書院) 화곡서원(花谷書院)에 제향되었다.
'산은 옛 산이로되.'는 '황진이'가 '서경덕'의 죽음을 애도한 시.
'산은 옛 산이로되 물은 옛 물이 아니로다. 주야(晝夜)에 흐르니 옛 물이 있을소냐 인걸도 물과 같도다. 가고 아니 오노매라.' - 황진이 -
16세기 초에 태어나 중종, 인종, 명종, 대에
송도 기생으로 명성을 떨치며 살다 간.,인물.
그녀에 관한 대부분 기록은 멸실된듯 여겨진다.
그녀의 작품들은 대부분 유실 또는 멸실되었다.
작품은 연석(宴席), 풍류장(風流場)에서 지어졌고,
기생 작품이란 제약 때문에 많이 전해지지 못하였다.
사후 음란하다는 이유로 사대부들에게 지탄을 받았고,
사대부들에 대한 조롱과 풍자, 유혹 등 언급이 금기, 기피.
임진왜란, 병자호란을 겪으며 그녀의 작품은 대부분 사라졌다.
화담 서경덕(1489,성종 20년- 1546, 명종 1년).
당대의 대석학이었고 그 문하생이 된.,황진이.
그후, 화담의 문하생 배출에 크게 일조하였다.
토정 ( 土亭 ) 이지함 ( 李之函 ),
격암 ( 格菴 ) 남사고 ( 南師古 ),
수암 ( 守菴 ) 박지화 ( 朴枝華 ),
박순 ( 朴淳 ), 허엽 ( 許曄 ),
한백겸 ( 韓百謙 ), 정개청 ( 鄭介淸 ),
황진이 등이 화담학파 문하생들.
생전에 서경덕이 제자들에게 자주 했던.,말 .
“ 글이라는 것은 깊이 깊이 생각하면서 읽으면 ,
반드시 터득할 수 있는 것이다 .” - 화담 서경덕 -.
기일원론 ( 氣一元論 ) 자 화담의 문인 중에는
박순이나 허엽 같은 정치 거물들도 있었지만 ,
서기 ( 徐起 ), 황진이 등 천민, 기생도 끼어 있었다
청학동 청학상인은 그의 제자들과 더불어
담소를 나눌 때 , 화담에 대해 이렇게 평했다 .
“ 산림 ( 山林 ) 에는 이름 없는 고사 ( 高士 ) 들이 많으나 ,
화담의 이름이 후세에 빛나게 된 것은 그 제자들 때문.
특히, 박순 ( 朴淳 , 1523 ∼ 1589) 은 당대 영의정이었으며 ,
허엽 ( 許曄 , 1517 ∼ 1580) 은 동인 ( 東人 ) 의 영수 ( 領袖 ) 로서
홍길동전의 저자 허균과 여류시인 허난설헌의 부친이었다 .
이렇듯 화담 자신은 정치에 관심을 끊고 지냈지만 ,
그 제자들은 정계에 나가 뜻을 펼치고 세상에 일조 .
황진이도 화담의 이름을 후세에 빛나게 하는데 일조.
........서경덕1489(성종 20)~1546(명종 1)............ 할아버지는 순경, 아버지는 수의부위를 지낸 호번(好蕃). 송도(松都:지금의 개성) 화정리(禾井里)에서 태어났다. 양반이지만 할아버지와 아버지는 무반 계통의 하급관리 남의 땅을 부쳐먹을 정도로 형편이 어려웠고 18세에 대학을 읽다가 격물 이치에 몰두했다. 이때문에 건강을 해쳐 1509년(중종 4)에 요양. 경기·영남·호남 지방을 유람하고 돌아와 1519년 조광조에 의해 실시된 현량과에 천거 사퇴하고 화담에 서재를 지어 연구를 계속했다. 1522년 속리산·지리산을 유람하며 기행시를 남겼다. 당시 선비들의 사화를 보고 과거에 뜻을 두지 않았다. 1531년 어머니 명으로 생원에 합격했으나 벼슬길을 사양. 1540년 김안국(金安國) 등에 의해 조정에 추천되고, 1544년 후릉참봉 제수를 사양하고 성리학 연구에 전력. 이해에 병이 깊어지자 〈원이기 原理氣〉·〈이기설 理氣說〉 〈태허설 太虛說〉·〈귀신사생론 鬼神死生論〉 등을 저술했다. 이듬해 중종이 죽자 대상복제(大喪服制)에 대한 상소를 하여, 생업에 종사하는 백성들에 맞게 3년상을 3개월로 고칠 것을 주장. 서경덕은 만물의 근원과 운동변화를 기(氣)로써 설명 그 기를 능동적이고 불멸하는 실체로 본 기철학을 주장. 그의 학설은 당시 주조를 이룬 이황 이이의 비판을 받았다. 서경덕은 우리나라 성리학 최초로 기일원론의 체계적인 전개 1567년(명종 22) 호조좌랑, 1575년(선조 8)에는 우의정에 추증. 개성 숭양서원, 화곡서원에 제향되었고 저서로 화담집〉이 있다. .....................................................................................
......................반야봉(般若峰)........................ 전북 남원시 산내면과 전남 구례군 산동면 경계 산.
지명의 유래는 지리산에서 불도를 닦고 있던 반야가
지리산의 산신이면서 여신인 마고할미와 결혼을 하여
천왕봉 백무동에서 살았다는 전설에서 유래되었다는 설.
어떤 영험한 스님이 뱀사골에 있는 이무기를
불도와 합장으로 쳐부수고 절의 안녕을 가져왔다는
의미에서 반야심경에서 이름을 따 반야봉이라 지었다는 설.
.
천왕봉의 마고할미와 관련된 전설에 따르면
천신의 딸인 마고할미는 지리산에서 불도를 닦던
반야를 만나 결혼한뒤 천왕봉 또는 백무동에 살았다.
슬하에 여덟 명의 딸을 두었는데,
그뒤 반야가 더 많은 깨달음을 얻기 위해
처와 딸들을 뒤로 하고 반야봉으로 들어갔다.
마고할미는 백발이 되도록 남편이 돌아오지 않자,
반야를 기다리며 나무껍질을 벗겨 남편의 옷을 지었다.
그리고 딸들을 팔도로 내려 보내고 홀로 남편을 기다리다
지쳐 남편을 위해 만든 옷을 갈기갈기 찢어버린뒤 운명한다.
.
이때 갈기갈기 찢겨진 옷은 바람에 날려
반야봉으로 날아가 풍란이 되었다고 한다.
훗날 반야가 불도를 닦던 곳을 반야봉으로 불렀으며,
그의 딸들은 팔도 무당의 시조가 되었다고 전해온다.
그후 반야봉 주변에 안개와 구름이 자주 끼는 것은
저승에서나마 반야와 마고할미가 상봉 할 수 있도록
하늘도 애틋하게 여겨 도와주기 때문이라고 전한다.
......................................................................
전라북도 최고봉이며 지리산에서 두 번째로 높다.
반야봉은 '노고단~천왕봉' 주능선에선 벗어나 있다.
노루목에서 좌측능선을 따라가야 반야봉에 오를 수 있다.
.
반야봉 반야낙조와 운해의 절경은 지리산 8경 중 하나.
운해가 펼쳐지면 온 사방이 흰 솜구름바다에 앉은듯하다.
맑은 날에는 반야봉에서 동해와 남해가 멀리서도 보일 정도.
뱀사골 쪽의 사면들은 북서사면과 남동사면이 서로 비대칭.
북서사면이 동사면보다 완만하면서 균등한 사면을 유지하고
동사면은 더 가파르고 균등하지 않으며 원시림이 뒤덮고 있다.
심원마을과 달궁마을이 서사면에 자리하고 있으며,
'달궁~성삼재~구례' 지방도 861호 지리산 관광도로가
서쪽능선을 따라 나있으며 '달궁마을~ 반야봉' 8㎞ 정도.
반야봉에서의 일출.
'함박골 이끼폭포~폭포수골'
'박영발 비트'로 가는.,들머리.
반야봉 폭포수골
폭포수골., 반야 비트
반야 비트
폭포수골.
반야봉.,박영발 빨치산 비트
위로 더 올라가면., 심마니능선
뱀사골능선과 나란히 있는.,초암릉.
휴식정년제 적용구간이라
등산객 출입금지 구역이다.
진시황이 서불에게
불사초를 찾아 온다면
진나라 절반을 주겠다 약속.
그후, 서불은 일본으로 귀화 하였고
진시황은 불로초를 복용 못한채 운명.
혹시, 내가 그곳에 가면 찾을 수 있을까?
나는 가끔 안방에 텐트치고 누워서
상상 속에서 심마니능선을 쏘다닌다.
그러면, 꿈속에서도 간혹 그곳을 누빈다.
심마니 발길조차 끊어진지
이미 오래되어 인적 없는 곳.
전설 속 지리산 천왕성모.
그녀의 영원한 젊음의 비결은
반야봉 산삼을 복용한 덕분 아닐까?
.
천왕봉이 지리산 제1봉이라면.,반야봉은 제 2봉.
지리산에서 반야봉보다 높은 봉은 여러 곳 있지만
반야봉은 그 높이와 관계없이., 제 2봉이라고 부른다.
천왕봉과 반야봉을 이어주는 마야부인 전설이 있기 때문.
반야봉은 공(空)의 사상 및 성리학의 산실이자.,불교의 성지.
조선시대 불교탄압으로 폐사찰터 500 여곳이 전해오는 지리산.
지리산 깊고 깊은 산속에
조선시대 궁궐의 규모만한
폐사찰 터들도 헤일 수 없이
많다는 사실이 놀랍기만 하다.
아득한 옛날 그 옛날에 지리산자락 깊은 산속에
어떤 목적으로 누가 지었던 폐사찰 터 흔적들일까?
삼국시대부터 지리산은 불교의 성지였던 흔적들 같다.
한달에 한번쯤 1박2일 일정으로.,지리산 답사여행.
몇년을 하고나니 지리산 구석구석은 거의 다 가본듯.
답사여행 희망자 4명이 모이면, 승용차로 1박2일 여행.
새벽 4시 전후 출발해, 다음날 밤늦게 귀경하면
지리산은 물론, 그 주변의 많은 것들을 볼 수 있다.
답사여행을 떠나면, 늘 지리산 둘레길에서 아침식사.
남원, 구례, 하동, 진주, 함양, 산청,
또는 여수, 삼천포에서의 아침식사.
여수 바닷가 복지리 아침식사.,No 1.
아침식사 후, 지리산 둘레길에서
지리산자락 골짜기 안으로 들어가서
그곳 끝자락에 주차 후, 배낭 메고 답사.
지리산종주는 십수년 간.,매년 연례행사.
차가 들어갈 수 있는 산간도로는 물론이고
일반적으로 알려진 등산로는 거의 다 다닌듯.
조선시대 옛 등정로로 몇차례 답사한 적도 있다.
'불교의 성지(聖地)' 관점에서 본다면
반야봉은 당연하게도 지리산에서.,제1봉 위상.
반야봉은 불교와 관련 깊은.,'천왕성모' 전설의 고향.
천왕성모 전설에는 반야봉은 물론
백무동의 가네소폭포를 비롯하여
제석단 통천골 천왕봉에 이르기까지
지명 유래를 비롯한 흔적들이 남아있다.
오늘날까지도 중산리 산간마을을 비롯하여
지리산 주민들에게 천왕성모는 '신앙의 대상'.
천왕성모는 민간신앙의 대상으로 정착되어 있다.
반야봉은 반야심경 불교경전에서부터 유래된 지명. 대승불교에서 반야란 반야경 불교경전 속 공(空)의 사상. "어리석은 자가 머물면 무심의 지혜를 득하게 된다."는 의미.
'모든 법은 반야에 의해 밝혀진다.'
반야경은 통일신라시대 경전이다.
반야봉은 진성여왕 재위 무렵 지명.
진성여왕(재위 887∼897)
신라 3 여왕 중 마지막 여왕.
887년(진성여왕 2) 2월 숙부(叔父)이자 남편이던
상대등 위홍(魏弘)이 죽고난 이후에 사랑을 위하여
897년 6월 조카인 헌강왕의 아들 요(효공왕)에게 양위.
그해 12월 운명 후, 황산(黃山)에 장사 지냈다.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 비련의 주인공인., 여왕.
과거, 신라불교의 성역이었던.,경주 남산
진성여왕 시대에는 신라불교의 성역.,지리산.
'천왕봉 ~ 반야봉'에서 불교 성역 제1봉.,반야봉.
'지혜의 완성'을 뜻하는.,
'반야바라밀다(般若波羅蜜多)'.
"자비로운 관세음보살"이라는 뜻말.
아제아제바라아제바라승아제보리사바하
(揭諦揭諦波羅揭諦波羅僧揭諦菩提娑婆訶)
고대 인도 힌두교도 아리아(산스크리트 문자).
'도달한 때, 도달한 때, 피안에 도달한 때,
피안에 완전히 도달한 때 깨달음이 있나니,
축복하소서!'(온갖 고통을 진정시켜주는 주문).
산스크리트 문자는 BC1800년 인도 북서부 방언.
이태리 독일 영국을 포함한.,모든 문자의 어머니
BC 500년경부터 '인도 이란' 어파에 속하는 언어.
반야봉은 불교적 관점에서 지리산 제 1 봉. 반야봉은 반야심경 머릿말 두 글자를 본딴 지명. 통일신라 <반야바라 밀다심경> 경전의 약칭.,반야경.
아울러, 유마경 무량수경 대일경 대반열반경 등
반야경 500~600편 경전의 총칭이기도 한.,반야경. 반야심경은 262 자이고, 불교의식에서 반드시 독송.
조선시대 불교탄압 및 폐불정책으로 축소된.,반야(심)경. "색즉시공(色卽是空), 공즉시색(空卽是色)" 잘 알려진 구절. "현상에는 실체가 없다. 실체가 없기 때문에 현상." 이라는 뜻말. 즉, 변하지 않는 실체란 있을 수 없고, 또 변화하기 때문에 현상으로 나타나며 중생은 그것을 존재로 파악할 수 있다는 말. 반야심경 경전의 핵심은 ‘공(空)의 사상. 바람은 모양을 볼 수 없고 붙잡을 수도 없지만 그렇다고 아무 것도 없는 것이 아닌..공(空)의 사상. 시시각각 변하는.,허공의 어느 시점, 어느 한 곳. 그것을 바람이라 해야 할까? 강물이라 해야 할까? 그러므로, 붙잡을 수 없고.. 파악 할 수도 없는 공(空) 아무 것도 가릴 것 없고 가진 것 없는.,무소유의 삶. 인간의 모든 감정과 물욕에서 벗어나려는.,구도자 모습. 마치, 알몸 여인이 무릎 꿇고 엎드려.,경배하는 듯한 산세.
'천신을 유혹하여 그 정기를
뿌리게 하고야 만다.'는 산세.
기우제 무당들이
엉덩이를 하늘을
향해 드러내는 곳.
'치성을 올리는 여성들의
엉덩이가 곱고 어여쁠수록
기우제 효험이 있다.'는.,반야봉.
엉덩이가 어여쁜 여자를
떠오르게 한다는.,반야봉.
'단군신화 훨씬 그 이전부터의
민간신앙.' 지모신(地母神)의 상징.
단군신화 이후 부계사회가 열리며 모계사회 쇠퇴
모계사회 부족장 여성 무당들은 남성 부족장에게 복속.
모계사회 씨족 지도자., 여성 무당은 오늘날 무당으로 전락.
부계사회에서는 늙은 할미에서 차츰 젊은 여성이 무당.
부계사회 남성 부족장., 힘을 미모로서 빌려야 했기 때문.
하여, 무당은 '몸으로 말하는 꽃.,혜어화'.,기생으로도 전락.
아비 父는 쌍도끼 상형문자로., 부계사회 남성 힘을 상징
어미 母는 어머니의 젖을 뜻하는., 모계사회 모성애를 상징
쌍도끼 힘의 권력에 눌려 권력을 잃고 만., 여성 부족장., 무당
상고시대 여신 지모신.,8도 지도자였던.,무당
조선시대 유교사회에 천민 신분., 무당으로 전락.
조선시대 폐사찰로 인해 몸 담을 곳 조차 없는 비구니.
왕실 종친의 하녀가 되거나, 기생이 되기도 하였다.
절대 권력 앞에 무릎 꿇고, 엎드린듯한 반야봉 산세.
조선시대 그나마 지리산에 남아있던 사찰은 산장 용도.
조선시대 마고신앙은 전설 속에서만 존재할뿐
마고 역시 '늙은 할미'란 뜻의 노고로 변모했다.
노고단은 원래 마고신앙 마야부인 제단이 있던 곳
반야봉과 노고단 사이에 위치한.,달궁.
'달의 궁전' 월궁(月宮)에서 유래된.,지명.
달궁 여근곡 안 깊고 깊은 곳에 있었던.,월궁.
달궁은 삼국시대 전.,마한 왕조의 별궁 터.
삼국시대 초기., 패망 마한 왕조의 피난 도성.
달궁을 병풍처럼 애워싼 산세는 천연적인 요새.
달궁계곡 깊고 깊은 곳에 위치한.,월궁 터.
사계절 변함없이 계곡물이 흐르는.,달궁계곡.
한여름에 폭우가 내리면, 계곡물이 차고 넘친다.
시작도 끝도 알 수 없는.,계곡.
덕두산, 바래봉, 세걸산, 고리봉, 정령치, 만복대, 성삼재, 반야봉.
달궁을 애워싼.,고산준령 고봉들. 병풍 같은 고산준령 중 만복대 가을경관이 아름답다. 가을 바람에 휘날리는.,'억새 평전' 은빛 물결의 바다. 젊은 여인이 풀어헤친 젖가슴인양, 탐스러운 아름다움.
달궁에는 마한 왕조 영화를 대변해주는 주춧돌들.
폐허로 변한 마한왕조 피난도성 흔적을 대변해준다.
달궁 계곡은 비경을 간직한 천연적인 자연환경 전통정원
기록 上., 2000년전 한반도 최초 전통정원
1241년 몽골은 20만 군사로 유럽까지 석권.
4세기~ 16세기 유럽은 암흑과 같았던 미개지.
아시아 선진문명 영향으로 미개에서 깨어난 유럽.
우리나라는 2천년 전부터 선진문명 보유국.
월궁은 2천년의 신비를 간직한 마한의 피란 도성. 기록 상 최초로 지리산에 사람이 들어와 살았던 곳. 달궁은 천연적 요새로 애워싸인 2천년 전 효왕의 별궁 연합군에 쫓긴 마한의 효왕 지리산 달궁에서 마지막 항전. 달궁을 애워싼 능선에 성벽을 쌓는다. 마한은 피란 도성인 달궁 궁전에서 패망.
남원군 산내면에서 노고단의 정령치 도로를 따라 가면 <반선>. 뱀사골 입구 지나면 <달궁마을>이고 그 주차장 아래가 <궁터> 쟁기소, 쟁반소, 와폭, 구암소, 청룡소 등이 아름다운., 달궁계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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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령치에서 남원 주천면 덕치리 사이 4km 구룡계곡
옛날 옛적 초 파일에 九龍이 승천했다는 전설의 고향.
정령치 계곡을 따라 남원 방향 육모정으로 내려가면
굽이치는 구룡계곡의 아름다운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구룡폭포가 있어 마한의 별궁터가 된듯 추정되는., 월궁.
제 1곡 약수터.
제 2곡 불영추.
제 3곡 학서대
제 4곡 구시소
제 5곡 유선대
제 6곡 지주대
제 7곡 비폭동
제 8곡 경천벽
제9곡 구룡폭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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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궁 야영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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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복대 억새
해질 무렵 황혼빛에 물든 황금빛 억새물결. 멀리 바람 결에 들려오는 으악새 우는 소리 자연의 소리가 가슴을 애닯게 하여 주는 月宮. 자연환경이 지닐 수 있는 최고의 별천지. 월궁 1km 지점 넓은 반석 가운데 <쟁기소> 자연이 빚어낸 걸작. '신비로운 여인의 비밀'. 지리산 끝자락까지 진한군에게 쫓긴 마한왕조. 월궁을 거점으로 <성삼재>능선에 3 장수를 파견. 8 명의 장수가 지켰던 <팔령치>. 정장군이 방어망 구축한 <정령치>. 월궁으로 숨었을 망정 만만하지 않았을 세력. 지리산 관광도로 정령치에서 성삼재까지 9 ㎞. <만복대>는 전형적인 억새밭 가을 산행 코스 만목대> 들머리 정령치는 기원 전 도성 유적지. 정령치는 마한의 효왕이 정(鄭)장군을 파견한 곳. 노고단 입구의 성삼재(姓三峙) 바래봉 남쪽의 팔랑재(八郞峙) 각각 3명 장군과 8명의 병사들 반야봉, 노고단, 만복대, 고리봉, 덕두봉에 싸인 달궁. 두 갈래 산 능선이 V 자로 벌어진 사이 깊숙한 은신처. 현재, 월궁은 잡초더미에 묻힌 돌더미와 주춧돌 잔해 뿐
반야봉, 노고단, 만복대, 고리봉, 덕두봉에 싸인 달궁. 두 갈래 산 능선이 V 자로 벌어진 사이., 깊숙한 은신처.
마치, 여근곡(女根谷)을 떠오르게 하는 깊고 은밀한 산세
월궁터에는 잡초더미에 묻힌 돌더미와 주춧돌 잔해 뿐 우리나라 고대사를 간직한 역사현장이 방치되어 있는 곳.
중요한 역사현장이라 하루 속히 복원되길 바라는 마음 뿐.
'월궁(月宮) 지명도 잊혀진듯 지금은.. 달궁(達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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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궁 옛이름은 .,달의 궁전.,월궁(月宮)
여성의 음부를 닮은 산세에 위치해.,月宮
노고단은 모계사회 부족장들의 회의장소.
동강 할미꽃.
늙은 할미 노고를 상징하는 야생화가., 할미꽃.
허리 구부러진., '늙은 할미' 노고(老姑)를 닮은.,꽃.
그래서, 할미꽃은, 애달픈 역사를 간직한.,전설의 꽃
주기만 하고 아무 것도 요구하지 않는다.- 할미꽃 꽃말.
반야봉에 옛부터 전해져오는., 마고부인 전설. 외래 종교 불교가 마고 전설에 기대어 정착한 곳. 반야봉의 낙조는 천신을 유혹하는듯 선정적인 경관.
시각적으로 성욕을 자극하는 노을빛.
여성이 성적 흥분을 감추려 만든., 노을 빛 립스틱. 엎드린 여성의 엉덩이 모양에서 유래된.,하트 문양. 하트 문양은 곧 사랑스러운 여성의 엉덩이를 뜻한다.
화살이 꽂힌 하트 문양은 성애를 상징. 천신의 정기를 갈구하는 반야봉 산세. '천신의 정기' 비는 모든 생명의 활력소. 하여, 반야봉은.,'토속신앙' 기우제의 산실.
반야봉 쌍곡선 산마루는 생명의 산실 같다. 대지를 촉촉하게 적시는 비는 곧 천신의 정기. 천신의 정기를 흩뿌리게 하고마는 유혹적 산세. 하늘을 향해 엉덩이를 드러낸채 엎드려 있는 여인. 천신 정기가 가뭄의 단비처럼 쏟아지길 비는 기우제.
엉덩이를 치켜든 기우제 무녀들이 일제히 산상에서 방료. 삼남지방 기우제 풍습의 산실., 반야봉. 젊은 미녀일수록 기우제 효험이 크다는 믿음. 가뭄일수록 더욱 유혹적이고 자극적인 기우제. 생명의 단비를 내려 달라 천신을 향해 갈구한다.
지리산 백무동계곡 가네소 폭포.,기우제.
아직도 남녀 혼욕 풍습이 남아있는.,가네소.
피부 미용에 좋다고 알려져 찾는 여성이 많다.
조선시대 가뭄때 기우제를 올리던 곳.,가네소.
전설 속 천왕성모와 반야가 처음 만난 곳.
길을 잃고 헤메던 반야에게 길을 알려준다.
'영원한 젊음' 그녀를 보고 한눈에 반한 반야.
반야는 그녀에게 결혼해 달라며 애걸복걸 했다.
두 사람은 백무동에서 살며 8딸을 낳았다고 한다.
그 8딸이 '팔도의 통지자' 무당이 되었다고 전해온다.
그후 득도를 위해 부인을 버리고 반야봉으로 떠난.,반야.
사랑을 버리고 득도의 길을 택해 천신이 된.,반야.
사랑에 빠져 젊음과 신통력마저 잃었다는 천왕성모.
사랑을 금기로 여기는 불교 교리가 빚어낸 전설 같다.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의 상징.,반야봉.
어리석은 자가 입산해도 득도한다는.,반야봉.
어리석음을 깨우쳐 준다는 곳이.,지리산 반야봉.
영원한 젊음, 신통력, 사랑 마저 잃고 운명한 천왕성모
천왕성모의 애통함을 담은 곡으로 하늘도 울게 하려는 기우.
하늘도 감읍하여 메마른 대지에 단비가 쏟아지게 하려는.,기우.
반야와 천왕성모 재회를 염원하는 가네소 기우제.
속치마만 입고 알몸으로 기우제를 올렸던 무당들.
방망이로 그곳 바위를 두드리며 애틋하게 곡을 했다.
천신을 유혹해 천신의 정기가 쏟아지길 염원하는.,기우.
삼남지방의 중심에 위치한.,지리산 백무동.
백여 무당이 모여드는 곳이라 하여.,백무동.
우리나라 민간산앙 무당의 산실이기도 하다.
모계사회 무당은 천신에게 엎드려 경배. 목욕재개 후에 천신의 정기를 애타게 갈구. 비를 불러 땅에 생명을 불어넣게 하려는 의식. 가뭄 때 무당들이 엉덩이를 드러낸 기우제 의식. 선정적인 자태일수록 효험 있다고 여기는 기우제. 모계사회의 통치자 무당의 기우 의식에서 유래된듯. 전북 남원 산내면 전남 구례 산동면 그 경계선 반야봉 <반야>란 우리말로 번역하면, <지혜>란 뜻이다. 어리석은 자가 머물면 무심의 지혜를 얻는다는 곳. 반야는., 지리산 지명의 뜻과 같은 의미를 품고 있다. 반야봉은 천왕성모와 반야 도사 전설의 고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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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왕성모'의 전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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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천왕봉에 살고있던 천신의 딸, 마야부인 지리산에서 불도를 닦던 도사 반야를 만나 결혼. 그녀는 반야와 함께 지리산에 살며 딸만 8명 낳았다. 그러던 어느날. 득도를 위해 반야봉으로 떠난 반야. 그러나, 백발이 되도록 돌아오지 않는 야속한 남편 반야 그녀는 나무껍질로 남편 옷을 지으면서 그리움을 달랜다. 그리고, 8딸을 팔도로 보내고나서도 마냥 남편을 기다린다.
(반야가 득도를 위해 처음 둥지를 틀었던.,백무동.)
(마야부인을 만나 처음 사랑을 나누었다는.,백무동.)
(훗날 8도 무당이 몰려들어 百여 당집이 있어.,백무당.) 남편 반야 옷을 늘 품에 안고 그리움을 달랜 그녀. 그녀는 산중턱에 앉아 오지 않는 반야를 기다린다. 그 때 꿈속에서도 그리던 반야가 손짓하며 다가왔다. 그녀는 바람에 나부끼는 꽃잎의 물결 속으로 달려갔다.
얼마나 그립고, 보고싶고, 기다렸던, 님인가? 반야 품에 안기려 허우적거리다가 제 정신이 든 그녀 그녀 손에 잡힌 것은 달빛 아래 흐느적거리는 쇠별꽃 뿐. 그곳 초원에는 바람에 흔들리는 쇠별꽃만 가득 피어 있었다.
봄이 오는 기목에 피는 쇠별꽃.
밤하늘 가득 수놓는 수많은 별들이
아침이 되면, 지상으로 내려와 피어난듯.
별을 닮은 '별꼴'.,쇠별꽃
"별꼴이야." 유래.,쇠별꽃
마야부인이 돌아오지 않는 반야를 기다리며 애타게 바라보았다는.,저멀리 보이는 반야봉. 하여, 반야봉은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의 상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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쇠별꽃의 하얀 물결을 반야 모습으로 착각한 그녀. 그녀는 두 손바닥에 얼굴을 파묻고 한없이 울었다. 기다려도 오지 않는 반야가 그리워 헛것을 본 그녀. 더 이상 참을 수 없는 그리움에 지친 그녀 그녀 마음 속엔 남편 반야에 대한 증오심 뿐. 사랑을 잃어버린 그녀는 삶의 전부를 잃은 듯. 천신이나 다를 바 없던 천신의 딸 마야부인. 사랑 앞에서는.,한낮 평범한 여자에 불과했다.
사랑에 빠져 영원한 젊음마저 잃어버린.,마야부인.
그녀는 쇠별꽃이 다시는 피지 못하게 없애버린다. 매일 얼굴을 비춰보던 산상 연못도 메꾸어버린다.
천왕봉 아래 장터목에 있는 산희샘이.,전설 속의 샘.
천왕봉 아래 天王聖母.,마야부인을 상징하는.,천왕샘.
샘은 크고 오래되었지만, 가뭄 때 마르는 경우가 잦다.
그에 비해 장터목샘은 작지만, 가뭄 때에도 샘물이 많다.
돌아오지 않는 약초꾼 애인을 기다리다가 지쳐 숨진 처녀.
훗날 약초꾼 애인이 그곳을 찾자 평평 눈물을 쏟은 처녀의 혼.
오늘날 천왕봉을 찾는 등산객들의 갈증을 씻어주는., 반가운 샘.
약초꾼 애인을 반기듯.,펑펑 샘물이 솟는.,장터목샘.
일명 산아가씨 샘이라 하여., 뫼山 아가씨 姬.,<산희샘>.
마야부인이 질투심에 못이겨 메꾸었다는 전설도 전해온다.
마야부인은 품속 반야 옷도 갈기갈기 찢어 바람에 날려 보낸다.
그녀가 늘 품에 안고 다닌.,남편의 옷
남편 반야가 다시 돌아오기를 기다리며
마야부인이 정성껏 지었다는.,반야의 옷.
바람에 날려가 반야봉에 뿌리내린.,풍란
오늘날 춘란이라 불리우게 되었다고 한다.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
'갈갈이 찢어진.,반야의 옷.'
슬픈 전설을 간직한.,풍란(춘란).
결국, 신통력마저 잃고 그녀는 그리움에 지쳐 죽는다. 사람들은 반야가 불도를 닦던 곳을 반야봉이라 불렀다. 반야와 그녀 사이에 난 8딸은 8도 무당의 시조가 되었다. 그후 반야봉 운해는 두 사람을 만나게 하려는 하늘의 배려. 하여, 반야봉 불꽃노을 위로 안개 구름이 자주 낀다고 한다. 이 전설 속의 주인공 마야부인은 일명 마고할미라고도 한다. 지리산에서 눈비가 제일 많이 오는 반야봉. 하늘마저 그녀의 슬픔을 위로해 비를 뿌린다는 민간신앙. 비는 그리움에 지쳐 죽은 그녀를 위로하려는 천신의 정기. 여성의 음기가 비를 부를것이라는 기우제의 산실., 반야봉. 여성의 둔부 같은 쌍곡선 산마루., 반야봉. 무릎꿇고 엎드려 엉덩이를 높이 치켜든 자태. 천신의 정기를 쏟아내게 할 만큼 고혹적 산세. 하여, 천신을 유혹해 비를 기원하는 기우 풍습. 훗날, 다양한 우리나라 기우풍습으로 정착. 부녀자들이 산상에 앉아 일제히 쉬이 하는 방료기우. 부녀자들이 강물을 키에 떠 담고 백사장을 달리는 기우 쌍둥이 딸을 낳은 부녀자가 비싼 품삯을 받고 하는 기우. 알몸 속치마 차림 여인들이 방망이로 땅을 두드리는 행위. 애통한 마야부인 대신 반야를 유혹해 하늘도 울게 하는 행위. 고장이까지 벗은 미모의 무당들에게 집단으로 춤추게 하는 행위. 여성의 음기가 강할수록 효험이 있다는 믿음.
천왕봉에서 멀리 동떨어져 마주보는.,반야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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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야부인은 '지리산 女神' 천왕봉 천왕성모. 그 여신은 선도성모 또는 마고(麻古), 노고(老姑) 등 여러 이름으로도 불리우는 천신(天神)의 딸이다.
달맞이꽃
얼마나 기다리다 꽃이 됐나 달 밝은 밤이 오면 홀로 피어 쓸쓸히 쓸쓸히 미소를 띠는 그 이름 달맞이꽃 아 아 서산에 달님도 기울어 새파란 달빛 아래 고개 숙인 네 모습 애처롭구나 얼마나 그리우면 꽃이 됐나 반 새벽 올 때까지 홀로 피어 쓸쓸히 쓸쓸히 시들어 가는 그 이름 달맞이꽃 아 아 서산에 달님도 기울어 새파란 달빛 아래 고개 숙인 네 모습 애처롭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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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마야계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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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천왕봉 아래 있는.,마야 계곡(중봉골)
전설 속 마야부인이 살았던 곳으로 알려졌다.
하여, 아직까지도 그 계곡의 지명은.,마야 계곡.
천왕동릉
중봉골(마야계곡)
중봉샘
마야계곡
마야계곡(순두류계곡)
마야계곡 신선너덜.
신선폭포
마야 독탕
순두류 1km지점-능선-용추폭포- 마야 독녀탕 -윗용소
- 용추폭포-신선너덜-순두류 등산코스(3~4시간 거리).
지리산의 자연환경은., 그 자체가 곧, 문화유산. 자연환경은 후손 만대에 길이 물려줄.,고귀한 유산. 자연은 전설을 낳고., 풍습을 낳고., 문화를 낳는 때문. 풀 한포기에도 나름대로., 유래가 있고 전설이 있다. 지리산은 삼남지방.,풍습과 전설의 고향. 전라남북도 경상남도 3도에 걸쳐있는 산. 발걸음이 닫는 곳곳마다.,흥미로운 전설들
.
지리산에는 천왕성모(마야부인) 전설의 흔적이 많다. 백무동 - 가네소 - 제석단 - 천왕봉 - 유암폭포 - 유평리 마야계곡(중봉골) - 마야 독탕 - 순두류 신선너덜 - 중산리 . 천신과 인간의 중재자로 전해오는 천왕성모 옛부터 지리산 자락 주민에게 민간신앙의 대상
아직까지도 천왕성모 전설이 살아 숨쉬는 백무동.
한신계곡.,가네소 폭포
................가네소 폭포 기우제................. 신선 仙, 귀신 神, 제사祭.,字가 들어간 지명. 칠선봉 영신봉 촛대봉 삼신봉 연하봉 제석봉 그 봉우리 사이 北川들이 모여 드는 곳.,가네소 북천(北川)은 생명의 젖줄이라는 민간신앙 폭포는 천상을 연결하는 사닥다리. 폭포는 천신의 침소로 이어진다는 통로. 무당이 천신의 정기를 갈구하는 곳이.,폭포. 지성(至誠)이면 감천(感天).,’기우제. 생명의 단비를 내려달라는 기우제. 선녀 같은 여성들이 목욕 재개 후.,기우.
천신의 정기가 쏟아져내리길 바라는 의식.
조선시대 무당을 동원한 기우제 명소.
.
아직도 해마다 가뭄 때에는 기우제 의식. 여인들이 선정적인 모습으로 천신을 유혹. 알몸 속옷 차림으로 방망이를 두드리며.,哭 이색적인 기우제가 행해지는.,가네소폭포 비 = 모든 동식물의 젖줄이자 천신의 정기. 천신의 정기 = 대지에 생명을 불어넣는 근원. 북천(北川) 폭포 = 천신의 정기를 비는 기우 명소 천신이 반할 여인의 자태.,가네소폭포 ..................................................
.
가네소 기우제는
언제 어디에서부터
유래되어 전하는걸까?
.............백무동 천왕성모 전설................ 백무동은 천왕성모가 살았다는., 전설의 고향. 그녀는 그곳에 살며 주민을 잘 보살펴 주었기에 주민들은 그녀를 천신과 인간의 중재자로 섬겼다. 그 무렵 한 스님이 수도를 하기 위해 지리산에 입산. 동굴 속으로 들어가 좌선과 수도를 몇 년간 계속했다. 그러던 어느날, 동굴을 나와 산을 오르다가 길을 잃었다. "아!~ 어떻게 하면 좋을까? " 스님은 바위에 털석 주저앉아 고민 하다가 주민들의 소원을 잘 들어준다는 천왕성모에게 제발 길을 찾아 달라고 간절하게 빌고 또 빌었다. 그러자, 스님 앞에 나타난 복사꽃 뺨에 반달 눈썹의 처녀. 앵두 같은 입술로 말을 걸어왔다. "어떻게 하다 길을 잃으셨어요? 나를 따라 오십시요." "누구십니까?" "천왕성모입니다." "...???........." 이제까지 천왕성모를 주름투성이 할미로만 알았던 스님. 어여쁜 처녀가 천왕성모라기에 놀라 입을 다물 수 없었다. 스님을 동굴까지 인도한 처녀 천왕성모는 스님에게 말했다. "여기가 스님이 거주하는 곳이 맞지요. 저는 여기서 멀지 않은 백무동에 살아요." 그녀가 돌아간 후부터 수도에는 전혀 관심을 잃은 스님. 자나 깨나 그녀의 생각 뿐이었고 오직 그녀 만 보고 싶었다. 하여, 스님은 그녀에게 결혼 해달라고 빌고 빌었다고 전해온다. 스님의 간절한 염원이 하늘에 닿아 그녀는 청혼을 받아들였다. 그 후 스님과 천왕성모는 백무동에 함께 살며 딸만 여덟을 낳았다. 8 딸은 모두 무당이 되어 조선 팔도로 보내졌고, 각각 터전을 잡았다. 그 중 셋째 딸은 벽소령 넘어 청학동 삼신봉 거쳐 하동에 정착. 그후 하동은 무당이 하나 둘 늘어 무려 백 여명이 되었다고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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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동은 중국과 왜를 잇는 옛 해상 무역의 길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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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 선진문명이 한반도로 유입된..하동 포구. 가야국은 하동포구를 장악하며 급성장하게 되었고 백제에 하동 포구를 빼앗긴 후 쇠퇴의 길을 걷게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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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무동 용유담 성모상은
우리나라 무속신앙 산실
조선시대 천왕봉 성모사.,성모상
.................천왕봉 성모상................ 천왕봉 정상 성모사 터에 있었던 성모상 조선시대 무속신앙의 산실이었던 성모사. 조선 팔도 민간신앙 인파 발길이 들끓던 곳. 당시 남녀 기도객들이 천왕봉 추위에 떨며 혼숙 성모사는 풍기문란 온상이라 하여 조선시대 철거 그후부터 성모사 옛터에는 성모상 만 남게 되었다. 그러나, 성모상은 여전히 민간신앙의 대상 하여, 조선시대 마천 백무동 일대는 전국의 무속인들이 모여든.,당벌 장터 천왕봉 일출., 인파에게 민간신앙 대상 .......................................................
지리산 지모신으로 알려진 천왕성모(마야부인) 득도를 위해 백무동계곡에 입산한 구도자 반야 두 사람이 처음 만나서 사랑이 싹튼.,백무동계곡
백무동계곡 곳곳마다 민간신앙 흔적이 물씬거리는 지명. 이 계곡이 우리나라 민간신앙의 산실 임을 실감하게 한다 천왕성모의 전설이 오랜 세월 빚어낸 풍습과 지명인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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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왕봉 성모사터
1965년 6월 천왕봉 성모사
우리나라 조상들은 옛날부터 높은 산을 섬겼다. 산은 하늘로 통하는 지름길이라 여겼기 때문이다. 사람의 힘으로 어쩔 수 없는 일은 신의 섭리란 믿음. 천왕봉에는 하늘나라 선녀가 살고 있다고 믿어왔다. 엄천사 법우화상이 선녀와 결혼해 8 딸을 얻은 전설. 그 여덟 딸이 팔도의 무당이 되어 인간과 신의 중재자. 하늘나라 선녀가 늙어 죽은 후 천왕봉에 세워진 할미당이 성모사. 조선시대 학자 김일손은 그녀가 위숙왕후라 믿었다. 고려를 창건한 왕건의 어머니. 조선시대에도 천왕봉에서 제사를 엄숙하게 지냈다. 평소 제관은 남원부사, 나라에 큰일이 있으면 당상관. 조정에서 직접 파견하여 이곳까지 내려와 제사를 올렸다.
훗날 제관들은 이곳까지 오르기 벅차 '국가 제사' 사당을 종석대로 이전한다. 1737년 영조 13년 구례군 강의면 종석대. 제사를 맡은 제관 노고를 덜기 위한 조치. 조선 말, 국력이 기울어 종석대는 스님들에 의해 화엄사로 이전한다
조선8도 5악 중에서 지리산은 남쪽에 있기에 조선시대 지리산 노고단 절을 남악사라고 명명. 북한산.,중악
지리산.,남악 백두산.,북악 설악산.,동악, 묘향산.,서악. 조선시대 노고단으로 이전한 성모사.
신라시대 천왕봉에 모셨다는.,할미당 천왕성모는 천왕봉 전설 속 여자 주인공.
할미당 성모에 天王을 합쳐..천왕성모. '천왕봉은 언제부터 불리워진 이름일까?'
천왕봉 정상 '타원형 돌탑'에 새겨진.,문구.
'한국인의 기상., 여기서 발원되다.'
'천왕봉은 장장 1,621,5 km 백두대간의 시발점.' 행정구역상, 경남 산청군 시천면 중산리 산 208번지 천왕봉의 현주소 : 함양군 마천면 추성리 산 100번지
기우제(祈雨祭)
2017년 7월 현재, 104년만의 가뭄
...............................기우제(祈雨祭)..........................................
비에 의존하는 농업의 특성상 가뭄은 농경사회에서 가장 큰 재앙이었다.
따라서, 기우제는 조정이나, 백성, 나라 전체가 지내는 가장 큰 행사였다.
삼국시대에는 명산대천이나 시조묘에서 기우제를 지냈으며,
고려시대에는 불교식 법회인 태일이나 도교식 초제, 무당을 모아
지내는 취무도우 등 기우제의 가능한 모든 방법으로 강우를 빌었다.
조선시대 유교식 기우제를 중심으로
주술까지 동원된 기우풍습이 있었다. 민간에서도 다양한 기우 풍습이 있었다.
정초의 줄다리기는 줄을 용으로 인식하는
쌍룡상쟁의 상징으로서 기우를 비는 풍습.
전라도 지역 산상분화는
‘양(陽)’인 불을 지핌으로써
‘음(陰)’인 비가 내리기를 기대.
그러나 기우풍습은
현재 관개수리의 발달로
오늘날 거의 다 소멸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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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정사 기우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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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 천왕성모(天王聖母) 전설 & 기우제.
선경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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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7.03 0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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