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분이 계시는 곳
대구 송현 성당 프란치스코 협의회
홍 준 표 비오
자신의 생명이 다하면 시신을 거두어 달라고 그는 울면서 부탁을 했습니다.
중학교 2학년 어린 아들을 불러 놓고 유언처럼 함께 들었습니다.
마흔 두살.
시신을 거두어 줄 사람도 없는 아직도 젊은 생명이 아까워 죽겠습니다.
대부분의 사람이면 자신의 병명이 무엇인지도, 얼마를 더 살지도 환자가 알까 하는 쉬쉬하는데 두 달을 못 넘길 거라고 한 의사의 마지막 말을 오히려 자기 입으로 우리에게 말해야 했습니다.
겨우 넘긴 물 한 모금에도 뱃 속 물까지 토해내는 그의 모습을 보며 그리스도의 고통을 생각합니다.
우리를 대신해서 겪으시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바라봅니다.
빈첸시안은 어려움에 처해 있는 대상자들 안에서 가난하게 오신 그리스도를 바라봅니다.
우리의 위로를 받으시는 그리스도의 모습을 발견합니다.
그저께 우리 회원중의 한 자매님은 2개월도 못 남은 환자를 데리고 6시간 이상을 병원에서 보냈습니다.
치료도 입원도 안되고 보호자도 없는 말기 암환자.
그 사람 때문에 하루 종일 병원과 실랑이 하면서 이병원 저 병원을 옮겨 다니며 불쌍한 생명이 안타까워 온 종일을 아픈 마음으로 보냈습니다.
그런데도 그 어려운 수고를 천진한 웃음으로 받아넘기는 그녀가 천사처럼 보입니다.
함께 활동하는 우리들이지만 그녀의 가슴속에 살아있는 그리스도를 보았습니다.
빈첸시안은 회원 서로간의 모습에서 그리스도가 살아 있음을 보고 느낍니다.
빈첸시안은 그 분을 향해 가다가 함께 만난 사람들입니다.
우리 가슴 안에 그리스도는 이렇게 살아 계십니다.
주위 사람들은 우리의 모습을 보고 느끼는 것이 많다고 합니다.
빈첸시안은 자신의 활동을 일부러 공개하거나 자랑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많은 은인들의 도움으로 함께 하는 빈첸시안의 활동 속에서 그리스도 사랑의 모습을 찾아내게 합니다.
가난한 사람들 안에서, 회원들 서로의 모습속에서, 다른 이들이 바라보는 우리의 모습 가운데서도 그리스도는 함께 계십니다.
감실 안에 성체로 계시는 주님처럼, 사람의 마음 감실에서도 현존하고 계십니다.
빈첸시오 활동은 그리스도의 사랑을 이 세상에 뿌리는 것입니다.
그 분의 사랑을 실천하기 위하여 우리들 작은 힘이라도 함께 모아 그 분께 드리는 것입니다.
그 분이 바로 가난한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그를 바라보며
"내 병은 내가 만들었습니다. 잘 나가던 시절엔 내게 조금 해로운 말만 들어도 보복하려고 했습니다. 마음속엔 늘 분노가 많았고 용서를 몰랐기에 미움이 꽉 차 있었습니다. 이것들이 병이 되었습니다."
그는 알고 있었습니다. 자신이 어떻게 살아 왔는지...그리고 그것이 얼마나 소용없는 것이었는지...
남을 해치면서까지 돈을 벌려고도 했지만 그것도 내 입에 조금 맛있는 것이 들어갈 뿐이었다고 했습니다.
회원들이 방문할 때마다 달라지는 그의 모습은 정말 반가웠습니다.
"힘없이 누워 있는데 쥐새끼 한마리가 방안을 왔다갔다 하더군요. 방안에 쥐를 둘 수는 없어 잡긴 잡아야겠는데 힘이 없어 그냥 보고만 있었더니 쥐새끼가 겁도 없이 사람을 빤히 쳐다보았어요. 이러고 있으니 쥐새끼도 사람을 깔보았지요. 그랬는데 다음 날 억지로라도 기운을 차려야 하겠다 싶어 겨우 부엌에 나갔는데, 그 쥐가 찬장 옆에 있는 양동이에 빠져 있었습니다. 양동이 가를 뱅뱅 돌며 헤엄을 치다가 지치면 바라보고, 헤엄치다 또 바라보고... 물끄러미 보고 있는 나를 쳐다보는 까만 눈이 제발 살려달라고 간절이 애원하고 있었습니다. 괘심했지만 죽을 놈은 나인데 싶어 물을 쏟고 쥐를 살려 주었습니다. 그런데 그 쥐를 살려주고부터 좋은 일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집을 나갔던 아내에게서 연락이 오고 아이가 돌아왔습니다. 혈육도 친구도 버린 병든 자신을 찾아주는 여러분들 때문에 하느님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젠 사랑이 무었인지 알겠습니다. 모두에게 버림받은 사람에게 이런 좋은 것들이 찾아오다니...이게 사랑인가 봐요. 지난 날을 뒤돌아 보면 하루에도 몇가지씩 지난 잘못이 떠오르고, 그 잘못마다 용서받고 싶어요. 용서할 자격도 없지만 용서할 게 있다면 다 용서할 겁니다."
`세상에서 방황할때 나 주님을 몰랐네. 내 맘대로 고집하며 온갖 죄를 저질렀네.
예수여, 이 죄인도 용서 받을 수 있나요. 벌레만도 못한 내가 용서 받을 수 있나요.'
기타를 치며 가만이 성가를 불러 주었더니 어쩌면 자기와 똑같으냐고 하면서 다시 울었습니다.
그가 살려 준 쥐 한마리는 하느님이 이끌어 주신 새 삶의 시작이었습니다.
마지막 그의 삶에 계속 되는 좋은 일들은 하느님이 주신 선물이었습니다.
죽음을 앞두고 그의 마음이 어느덧 활짝 열려 갔습니다.
인간의 노력이 다한 곳엔 반드시 하느님의 은총이 있었습니다.
사랑이 낳는 기적이 있었습니다.
그와 함께 하는 우리 마음도 사랑으로 젖어 갔습니다.
하느님의 사랑을 느끼자 그는 대세를 받으려 했습니다.
생명이 다할 때까지 교리도 배우겠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우선 대세를 주었습니다.
그리고 고통에 몸을 가누지 못하면서도 방문 교리를 받고, 신부님께 보례도 받았습니다.
그가 세례를 받는 날 우리는 모두 함께 가서 축하해 주었습니다.
죽음을 앞 둔 그가 하느님의 자녀로 영원히 태어나는 기쁨을 함께 전하고 싶습니다.
대세를 받고 나서 "크리스마스까지는 살 수 있을 까요?" 하고 묻던 그가 신부님 보례를 마치고 수녀님과 회원들의 축하 속에 난생 처음 성체를 영했습니다.
벽에는 '축영세' 글자를 금종이로 붙이고 어두운 방안은 풍선과 기쁨으로 장식하고, 촛불 속에서 빛을 받은 하느님의 자녀로 태어났습니다.
축하 케익을 자르는 그의 모습에 죽음의 그림자는 없었습니다.
그가 새로운 생명으로 다시 태어 나다니 모두들 눈에 글썽이던 눈물을 기억합니다.
신부님에게도, 수녀님에게도, 마음 예쁜 우리 회원들에게도 모처럼 밝게 웃으며 병이 나으면 크게 한 턱 내겠다고 했습니다.
하느님의 자녀로써 첫번째 크리스마스를 지낼 수 있게 함께 기도 드려보자던 말이 생각났습니다.
요한으로 태어난 그의 즐거운 웃음에 하느님의 사랑이 깃들어 있습니다.
그가 보낸 편지
병이 더욱 깊어진 그를 호스피스 시설인 청주 성모 꽃마을로 보내고, 떨어지기 싫어하는 그를 안타까워하며 우리는 대구로 차를 몰았습니다. 그 곳 신부님의 배려로 선종을 위한 마지막 생을 정리하려고 합니다.
앙상한 어깨를 모두의 가슴에 묻으며 "감사합니다" 하며 작별하는 그를 감싸 안고 우리도 눈물을 감출 수가 없었습니다.
함께 갔던 회원들 모두 울음을 삼키며 어둠이 깔린 고속도로를 내쳐 달렸습니다.
우리 사랑보다 더 깊은 사랑이 그와 함께 할 것 입니다.
아내에게서 연락이 없자, 내려가겠다고 성화를 부리는 그를 달래 놓고 온지 며칠이 되지도 않았는데 어쩐지 걱정되었습니다.
과연 정오가 조금 지난 시간, 그가 선종 했다는 신부님의 전갈을 받았습니다.
그를 데려오기 위해 회원들이 청주로 올라 갔습니다.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올라갔던 그 길을 밤 2시가 넘은 시간, 뼈만 남은 차가운 시신으로 돌아왔습니다.
자기가 죽으면 꼭 땅에 묻어달라는 약속을 지키기 위해 우리는 장례식을 준비했습니다.
입고 갈 수의도, 장례의 모든 비용도 은인들의 도움으로 마련 했습니다.
함께 모여 연도를 드리는 데 죽은 그에게서 5통의 편지가 왔습니다.
편지를 쓴 날짜의 간격을 보니 죽기 이틀 전 온 힘을 다해 썼습니다.
향 연기 피어오르는 그 너머에서 얼굴 좋은 생전의 그가 오히려 편하게 우리를 보고 있습니다.
우리 가슴에 그를 묻었습니다.
"세상에서 조금만 더 일찍 형님을 만났더라면 저는 더 용기 있고 보람된 삶을 가져 볼 수 있었으련만..그것이 못내 아쉽군요. 제에게 주시려는 마음을 알고 있습니다. 말은 하지 않았어도 형님의 모습속에서 죽음을 잘 준비해 멋진 세상에서 잘 살라고 하며 토닥토닥 어루만져 주시던 손길을 알 수 있었습니다. 이제는 죽음 앞에서 무서움과 두려움은 다 사라져 버렸습니다. 우리 부부의 재회와 결혼 기념일까지 챙겨 주신 것 잊지 못합니다. 앞서 좋은 자리 만들어 놓겠습니다. 그 때 우리 다시 만나서 터놓고 이야기 합시다. 형님, 다 용서하라고 하셨지요. 오히려 다 용서를 부탁드립니다. 저는 이 곳이 이미 천국입니다. 크리스마스까지 살지 모르지만 그 때까지는 살 것 같아요. 형님, 그 때 크리스마스와 해피 뉴 이어 편지 할께요. 하느님의 축복과 은총이 형님 가정에 오시길 바라며 멀리서나마 안부 묻고 싶습니다."
2000년 12월 3일. 새벽. 요한
이틀 뒤 우리는 햇볕 잘 드는 군위 묘원 산자락에 그를 묻었습니다.
빈첸시안의 사랑도 묻었습니다.
하느님의 사랑도 함께 묻었습니다.
그리고 가슴엔 그를 묻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