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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산의 반열에 올려도 손색없을 하동 성제봉
헬기장에서 바라본 구름다리와 하동방면으로 굽이치는 섬진강
대하소설 토지의 주무대인 악양면 평사리
굽이쳐 흐르는 섬진강변을 따라 19번 국도를 타고 전남 구례군 토지면의 토지와 화개면의 화개를 지난 등산버스(A산악회 주관)가 최참판댁 이정표를 따라 좌회전을 합니다. 이곳은 소설가 박경리가 혼신의 힘을 다해 토해낸 민족소설인 "토지"의 배경을 그대로 재현해 놓은 최참판댁이 단장을 하고 여행객들을 맞이하고 있는 악양면 평사리입니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토지"는 구한말에서 해방 무렵까지 4대에 걸친 가족사를 통하여 우리의 민족문제를 일깨워 주었고, 그 무대도 이곳 평사리를 비롯하여 간도·진주·서울·만주·일본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하게 펼쳐지는 대하소설입니다.
평사리가 있는 악양은 중국의 악양과 닮았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며, 모래밭 안에 있는 호수를 동정호라 했습니다. 버스는 왼쪽으로 최참판댁을 지나 청학사이정표를 따라 안으로 들어갑니다. 평화로운 농촌지역의 드문드문한 민가가 따스한 봄의 향기에 취해 졸고 있는 악양을 지나 산행들머리인 매계리에 정차합니다(12:20). 서울(양재역)을 출발한지 5시간 만입니다.
청학동 지명의 위치와 청학사
이미 남쪽의 산하는 그동안의 우중충한 옷을 훨훨 벗어버리고 모두 산뜻한 초록의 옷으로 갈아입었습니다. 마을 들녘에는 벌써 보리가 피어 산들산들 부는 봄바람을 맞으며 이삭이 여무는 훈련을 하고 있습니다. 마늘밭도 짙푸른 잎사귀를 간직한 채 뿌리를 살찌우고 있는 중입니다. 산길을 가다가 다시 시멘트도로로 나오니 노전마을회관입니다. 민가를 지나자 청학사를 알리는 이정표가 장승처럼 서 있습니다(12:55).
산행을 시작하면서 뒤돌아 본 칠성봉
이미 이삭이 나온 보리밭
청학사 이정표
지리산 자락의 청학동은 지리산 남부에서 주능선을 조망할 수 있는 최고의 조망대인 삼신봉 산행을 하는 출발지로서, 인근에는 삼성궁이 있습니다. 그런데 청학동과는 한참 떨어져 있는 이곳에 청학사(靑鶴寺)라는 이름의 사찰이 있는 것이 아무래도 이상합니다.
무슨 사연이 있는지 알아보려고 인터넷으로 검색을 해보니 청학동이 어디인지는 일찍부터 그 주장들이 달랐다고 합니다. "도선비기", "청학동결", "파한집", "겸암일기" 등 청학동에 관해 언급한 책자와 고지도도 상당수에 이르는데, 주로 삼신동과 불일폭포, 세석고원, 그리고 악양이 후보지로 거론돼 왔습니다. 하지만 지명이 청학이골로 불려오는 곳은 악양뿐이랍니다.
지리산에는 청학동을 찾아내 신선이 된 인물로 최치원과 한유한이 있습니다. 전하는 말로는 신라말의 최치원은 불일폭포에서 신선이 되었다고 하고, 고려 무신정권 때의 한유한은 악양에서 신선이 되어 영생한다는 것입니다. 『지리산 도인을 찾아서』의 저자 일하 스님은 "전해오는 청학동의 지형 설명과 악양의 지형이 꼭 맞아떨어진다"고 주장합니다(자료 : 최화수의 지리산 이야기). 따라서 실제로 청학동은 현재 삼성궁이 있는 삼신봉 아래가 아니라 이곳 악양이라는 것입니다.
물론 땅이름에 대하여는 민속이름학자나 역사학자의 소임일 것입니다. 그런데 막상 바로 눈앞에 있는 청학사는 매우 소규모의 암자입니다. 대웅전 뜰에는 최근에 축성한 것으로 보이는 석탑이 서 있고, 위쪽에는 약사전이 보입니다. 그 앞에는 정성스럽게 쌓은 몇 기의 돌탑이 고즈녘한 산사의 분위기를 말해줍니다. 사진만 찍고는 그냥 지나쳤기에 언제 창건되었는지는 알 수가 없습니다.
청학사 석탑과 대웅전
청학사 약사전
죽음의 오르막 길
왼쪽으로 난 길을 따라 가니 큰 대나무 숲이 방문객을 환영합니다. 죽세공품의 주산지인 담양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그 규모가 엄청납니다. 오솔길을 따라 서서히 고도를 높이던 산길은 어느 순간부터 된비알로 변합니다.
대나무 숲
다리가 뻐근할 즈음 이번에는 큰돌이 제멋대로 놓여 있는 너덜길입니다(13:58). 물론 너덜의 규모는 설악산 서북능선상의 한계령에서 귀때기청봉을 오르는 길목의 그것보다는 작습니다. 그렇지만 이미 지친 상태에서는 발걸음을 옮기기가 쉽지 않습니다. 겉으로 흙만 있는 등산로에 느닷없이 큰 바위의 무리가 제멋대로 쌓여 있는 너덜지역은 참으로 불가사의한 대자연의 오묘한 조화입니다.
너덜길에서 뒤돌아 본 구재봉
호제비꽃
금년 봄 들어 처음으로 주말의 날씨가 전국적으로 맑고 화창한 이날, 얇은 상의 하나만 걸쳤는데도 불구하고 이마의 땀을 연신 훔칠 정도로 무덥습니다. 따라서 너덜겅을 지나 돌아가는 길목에 흐르는 생수는 그야말로 사막의 오아시스입니다(14:05). 평소 찬물을 잘 마시지 않는 필자도 오늘만큼은 예외입니다. 페트병에 담아 몇 모금 마시니 오장육부가 시원해집니다.
다시금 계속되는 된비알 오르막길. 뒤로 돌아서 숲 사이로 터지는 조망을 보노라면 눈이 즐겁지만 울창한 산죽 밭이 수시로 나타나는 오름 길은 한 마디로 고역의 길입니다. 고개를 높이 쳐들면 위쪽이 빤히 보여 곧 능선에 도달할 것 같은데도 산길은 이리 저리 굽이돌며 계속 고도를 높이니 체력의 진이 다 빠질 지경입니다. 고도시계를 가진 사람의 말로는 산행들머리의 해발이 160m라고 합니다. 성제봉은 높이가 1,115.5m이므로 1천 미터를 거의 수직으로 치고 올라야 하니 그렇게 만만한 코스가 결코 아닌 것입니다.
조망이 좋은 성제봉(형제봉)
드디어 능선삼거리에 도착합니다(14:46). 오른쪽에 우뚝 선 봉우리에는 먼저 오른 사람들이 모습이 보입니다. 정상 오름 길이 제법 가파릅니다. 팔과 다리에 힘을 주어 오르니 성제봉 철쭉을 알리는 안내 입간판만 있을 뿐 다른 이정표는 없습니다. 이곳에서 바라보는 조망이 기가 막합니다. 동쪽으로는 악양 계곡너머 칠성봉(899m)과 구재봉(768m)이 우뚝하고, 남쪽으로는 성제봉이 코앞에 있으며, 서쪽으로는 삼신봉(1,284m)이 지리산을 올려다보고 있습니다. 북쪽 능선을 따라 진행하면 패러글라이딩 활공장으로 연결됩니다.
처음 오른 봉우리의 철쭉 안내문
성제봉은 지리산 남부능선의 끝자락이 섬진강에 잠기기 전에 우뚝 솟은 봉우리로서, 멀리 천왕봉에서 제석봉과 촛대봉을 거쳐 비경의 남부능선을 따라 이어져 온 지리의 산세는 비옥한 대지를 빚어내는 성제봉∼신선봉을 끝으로 섬진강에 잠깁니다(자료 : 하동군 홈페이지).
위 봉우리를 내려와 나란히 있는 성제봉(聖帝峰)을 오릅니다(15:00). 성제봉을 형제봉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높이가 비슷한 두 개의 봉우리가 마치 형제처럼 나란히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됩니다. 한편 이 산의 이름이 원래는 "형제봉"이지만 경상도 사투리로 "형"을 "성"이라고 부르기 때문에 "성제봉"이라고 불린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그러나 한자는 성스러운 황제를 뜻하는 성제(聖帝)이니 어느 정도 믿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성제봉(1,155.5m) 정상에는 아담한 표석이 놓여 있는데 이곳에서는 남쪽 섬진강 방면으로 이어진 장쾌한 능선줄기가 기막힌 조망을 선사합니다. 어찌되었던 비슷한 높이의 봉우리 두 개가 있으니 성제봉의 북봉과 남봉 또는 성제봉과 형제봉으로 구분해서 불렀으면 좋겠습니다.
성제봉은 비록 지리산국립공원 내에서 벗어나 있지만 시종 섬진강의 푸른 물줄기를 바라보며 아기자기한 암릉으로 이어진 능선을 따라 내려서는 멋이 있는 산입니다. 구름다리 너머로는 백운산(1,218m)과 억불봉(962m)이 우뚝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북쪽으로는 지리산의 천왕봉을 비롯한 주능선이 하늘금을 그리고 있고, 반야봉과 노고단의 철탑도 눈에 들어옵니다.
성제봉에서 바라본 칠불봉
성제봉에서 바라본 구재봉
가야할 성제봉 남봉
성제봉 표석뒤로 보이는 섬진강
성제봉 표석 뒤로 바라본 북쪽 조망
지나온 북봉뒤로 살짝 보이는 지리의 천왕봉
지리산 주능선의 반야봉(중앙)과 노고단(왼쪽)
줌으로 당겨본 구재봉
외로운 철쭉제단
가까스로 흐뭇한 마음을 진정시킨 후 성제봉을 내려옵니다. 능선 양쪽으로 시원하게 펼쳐진 조망을 마음껏 즐기면서 발걸음을 옮깁니다. 봄에 아지랑이나 가스가 끼면 조망이 흐릿하지만 오늘은 정말 기가 막힌 날씨입니다. 태양 빛이 반사되는 남서쪽보다는 동쪽의 녹색빛깔이 더욱 선명하고 아름다워 보입니다.
뒤돌아본 성제봉
노랑제비꽃
헬기장에서 바라본 가야할 능선.
구름다리 뒤로 보이는 억불봉, 매봉, 백운산의 모습.
하동방면으로 굽이치는 섬진강줄기
동남쪽의 구재봉
헬기장(1,050봉)을 지나 내리막길에는 철쭉이 대규모(1만 5천 여평)로 서식하고 있지만 유감스럽게도 제철을 만나지 못해 이제 겨우 봉오리를 맺고 있을 뿐입니다. 하단에 놓여 있는 "성제봉 철쭉제단"이라는 대리석의 모습이 너무나 쓸쓸합니다. 그러나 앞으로 철쭉이 만개하게 되면 이곳은 전국의 철쭉명산 못지 않은 인기를 끌 것임을 확신합니다.
철쭉제단과 군락지
봉오리를 맺고 있는 철쭉 뒤로 보이는 구재봉
신선봉의 구름다리
규모가 작은 다리를 건너 급경사를 내려와 다시 길고 가파른 철계단을 오르니 명물 구름다리입니다(16:08). 이 다리는 튼튼한 철제빔으로 설치되어 외형상 매우 안전성이 있어 보이지만 출렁다리 형식이라 가운데 서니 상당히 흔들려 심지가 약한 사람은 약간 불안을 느낄 정도입니다. 필자도 다리 한가운데 홀로 서서 사방팔방으로 전개되는 조망을 감상할 여유도 없이 빨리 통과하고픈 마음뿐입니다. 재빨리 발걸음을 옮긴 다음 "휴∼"하고 한숨을 내쉬니 어느새 맞은편에 서 있습니다.
가야할 신선대 철계단
철계단에 올라 뒤돌아 본 지나온 암릉길
방금 지나온 구름다리
구름다리를 건너 오른 신선대꼭대기에서 하동방면으로 굽이치는 섬진강 물줄기를 바라보니 한 폭의 그림 그대로입니다. 신선대를 내려서 바위사이를 지나가려다 왼쪽의 바위 위로 오릅니다. 신선대의 남쪽 절벽 뒤로 펼쳐지는 백운산의 모습에 가슴이 활짝 열리는 기분입니다.
특히 거지가 들어와도 3년은 거저 먹고 산다는 비옥한 악양 벌판의 곡창지대에서 새파랗게 자라고 있는 보리밭을 바라보는 감회는 남다릅니다. 왜냐하면 어린 시절 시골에서 보리밥마저도 항상 부족하여 하루 세끼의 끼니를 해결하기가 어려웠던 때가 회상되었기 때문입니다.
신선대를 내려서 바라본 삼진강
전망바위에 올라 바라본 동쪽의 구재봉
신선봉을 내려서면서 바위사이로 바라본 억불봉(맨 뒤)
구례방면으로 흐르는 섬진강
비좁은 문 바위(통천문)
아기자기한 능선을 따라 점점 고도를 낮추며, 솔잎향기가 은은히 풍겨오는 송림 숲 속으로 몸을 숨깁니다. 암릉과 암봉으로 이어지는 능선의 멋진 모습에 취하여 발걸음이 한결 가볍습니다. 586봉을 지나니 두 개의 바위가 나란히 서 있는데 위쪽은 거의 붙어있고 아래쪽에 조금 벌어진 틈 사이로 등산로가 연결됩니다. 문 바위 또는 통천문이라고 불리는 이곳은 호리호리한 사람만이 겨우 지나갈 수 있는 좁은 문이므로 통과하면서 배낭이 양쪽의 바위에 닿지 않게끔 조심합니다(17:37). 그러나 인생의 좁은 관문은 이렇게 등짐만 조심한다고 해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기에 언제나 부단한 노력과 인내가 필요한 것이겠지요. 문득 <앙드레 지드>의 "좁은 문'이 생각나는 순간입니다.
하산하면서 자주 목격한 철쭉
각시붓꽃
통나무계단
뒤돌아본 신선봉과 하산길
지나가야할 문바위
문바위를 통과한 후 바라본 섬진강
선진강너머 매봉 뒤로 보이는 억불봉
초록의 세상으로 변해 있는 악양들녘과 구재봉
뒤돌아본 문바위
영남과 호남을 가르는 경계인 섬진강이 가까워질수록 폭이 넓은 강에 많은 물이 흘러 이 고장의 젖줄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음을 피부로 느낍니다. 그리고 넓은 강의 한쪽에는 광양만이 가까워서인지 부드러운 모래가 강바닥을 하얗게 물들이고 있어 꼭 바닷가 백사장을 바라보는 기분입니다.
신선대 구름다리를 지나 DSLR 카메라를 가지고 열심히 사진을 찍는 동행인을 만나 이런 저런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한동안 함께 하산을 합니다. 그러다가 필자가 여러 차례 사진에 몰두하는 사이 그 사람은 어느새 바람처럼 사라져 또 다시 나 홀로가 되었습니다.
민병일의 "평사리에서"
암릉이 이어지다가 멋진 조망터에 이르러 악양 들판과 섬진강줄기를 바라보면 아무리 감정이 무딘 사람이라도 문득 시심(詩心)을 떠올리게 됩니다. 여기서 시인 민병일이 지은 "평사리에서"라는 제목의 시 한 수를 감상해 보는 것도 매우 뜻 깊은 일일 것입니다.
평사리에서
악양 들녘 내려보는 마을에
어머니 눈웃음 닮은 돌각담길
조붓조붓 나 있습니다.
보리밭 실개천 지나
앵두가지 나무마다 불밝힌
오롯한 풍경을 보셨는지요.
돌각담 길에 들면
사람을 사랑할 수 있다는 것은
저렇듯 예쁜 돌각담 길 내어주며
끊어진 세상의 길을 잇는 듯 싶습니다.
슬픔과 절망도 약으로 달여 쓸 것 같은
봄바람 한 줄기
앵두꽃 등 켜진 돌각담 들어섭니다.
이 시를 읽으며 산행을 시작하면서 마을에 돌각담을 쌓아놓고 그 옆에 탱자나무가 자라는 돌담길을 지나왔음을 떠 올립니다.
호남관문의 복원된 고소성
아무리 발걸음을 옮겨도 능선으로 이어진 등산로는 끝날 줄을 모릅니다. 고도가 점점 낮아짐에 따라 듬성듬성 피어 있는 철쭉을 만납니다. 그러다가 고소성에 다다릅니다. 길을 안내하는 이정표(한산사 0.8km, 주차장 0.9km)가 세워져 있습니다(17:56).
산성 뒤로 보이는 섬진강
산성에서 바라본 매봉
사적 제151호인 이 성은 성제봉 중턱 해발 300m 고지에 있는데, 성벽은 둘레가 약 560m, 높이가 3.5∼4.5m에 이르며, 남북에 두 개의 성문이 있습니다. 이 성의 유래에 대해서는 여러 문헌에 전혀 기록이 보이지 않고 있지만 하동 지(誌)로 미루어 볼 때 서기 600년대 신라가 백제를 공격할 당시 나당연합군이 백제 원군의 섬진강 통로를 차단하기 위하여 구축한 것으로 추측되고 있습니다.
주차장 방향으로 오른쪽 산비탈에 쌓여진 고소성을 밟고 내려가니 등산로와 다시 만납니다. 새로 복원된 튼튼한 산성이 ㄷ자 모양으로 이어져 있습니다. 올려다보는 산성의 모습이 사다리와 흡사합니다. 앞뒤로 인기척이 전혀 없는 호젓한 등산로에는 송엽이 지천으로 깔려 있습니다. 성제봉에서 8km이상을 걸어 내려오려니 하산길이 멀게만 느껴집니다. 이리저리 등산로를 따라 하염없이 내려가니 드디어 차도입니다. 차도 끝 섬진강변 넓은 주차장에 도착하여 오늘 산행을 마무리합니다(18:22). 청학사 방면에서 산행을 시작한지 6시간이 지났습니다.
올려다본 사다리 모양의 산성
도로에서 바라본 삼진강
산행 지도
에필로그
과문한 탓인지는 몰라도 성제봉을 오르기 전에는 이 산에 대하여 잘 몰랐습니다. 북쪽으로는 어머니산인 지리산이, 남쪽으로는 광양 백운산이 늠름한 풍채를 자랑하며 도열해 있기에 그 유명세에 눌린 탓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막상 성제봉정상에서부터 고소성에 이르기까지 아기자기한 능선과 구름다리를 넘어오면서 바라본 조망과 느낀 감정은 이 산을 전국의 이름난 명산의 반열에 올려놓아도 전혀 부족함이 없을 것으로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특히 철쭉이 만개한 시기에 때맞추어 방문하는 사람은 경우 결코 잊지 못할 선물을 덤으로 챙길 것이기에 더욱 그러합니다(2007. 4. 29). 끝.
첫댓글 이석암 선생님! 안전산악회 등반대장을 맡고 있는 "백운산"입니다. 선생님께서 우리 안전산악회를 찾아 주셨군요. 정말 크나큰 영광이 없습니다. 선생님의 존함이야 "한국의 산하"에서 너무도 유명하기에 잘 알고 있습니다. 한국의 산하 오프라인 산행에 3회 정도 나갔습니다만... 선생님과는 대면을 못했었지요. "한국의 산하"에서 청파 윤도균 선생님, 산쵸스님, 불암산님, 운해님, 히어리님, 아산의 이상일님, 권경선 총무, 김현호 재무, 산사랑방 이동준님, 코스모스 구자숙님, 통영의 이수영님, 2500산 김정길 선생님, 순천의 최선호님 등등등 수많은 산님들과 형님! 아우 하면서 산행을 했었는데... 지금은 안전산악회 대장직을 맡고
있다 보니... 한국의 산하의 산님들과 함께 하지 못했습니다. 다시 한번 안전산악회 산행에 동참하신다면 정중히 인사를 드리겠습니다. 다시 한번 우리 안전산악회를 찾아 주셔서 대단히 감사드립니다. 아울러 깔끔한 산행기와 산행사진 잘 봤습니다. 감사드립니다. 항상 건강하시고... 안전한 산행... 즐거운 산행 이어가시길 바랍니다.
아이고!, 산행대장님, 별말씀을 다 하십니다. 졸필을 그렇게 평가해 주시니 몸둘바를 모르겠습니다. 제가 한국의 산하에 산행기를 올린 것은 약 2년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아직까지 한번도 오프라인 산행에 참가한 적이 없었는데, 백운산님은 기라성 같은 인재들과 교우를 하시는 군요. 산행코스가 맞는다면 다음 산행시 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