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 있는 모든 것은 그 자체로 존재의 타당성을 지닌다
마크 롤랜즈는 그의 저서 『동물의 역습』에서 평등을 이렇게 정의했다.
"도덕과 무관한 특성에 따라 차별하지 않는다."
이를 기반으로 그는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진다.
"종의 다름이 인간과 동물의 취급 차이를 정당화할 수단이 되는가?"
유구한 세월에 걸쳐, 인간의 영혼에 깊이 스며든 동물에 대한 도구적 관점에 던지는 질문이었다. 그해 겨울, 그러니까 구제역으로 수백만 마리의 소와 돼지들이 생매장을 당하던 '충격의 겨울'이 없었다면 나는 그의 질문을 진지하게 고민해보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영원히.
『28』의 시놉시스를 쓴 건 생매장 동영상을 접하던 밤이었다. 눈보라 치는 밤, 깊은 구덩이 안에서 죽음을 직감한 돼지 수백 마리가 두려움으로 날뛰고 살려달라고 울부짖었다. 산 채로 묻힌 그들의 울음소리는 이튿날 아침까지 지상으로 울려 퍼졌다고 했다. 참담한 심정이었다. 슬프고 부끄럽고 두려웠다. 돼지들의 비명과 울부짖음이 오래오래 귓가를 맴돌았다. 불편한 진실과 맞닥뜨릴 때마다 눈뜨고 깨어나는 양심이라는 파수꾼이 끊임없이 속삭여왔다. 우리는 천벌을 받을 거야. 나는 잠들기를 포기하고 책상에 앉아 노트를 폈다.
"만약 소나 돼지가 아닌 반려동물, 이를테면 개와 인간 사이에 구제역보다 더 치명적인 인수공통전염병이 돈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인간은 반려동물에게도 가축에게 했던 것과 똑같은 '짓'을 할까. 내 대답은 '그렇다'였다. 육식하는 자로서, 생태계 최고의 포식자로서, 저들의 삶을 지배하고 운명을 결정하는 변덕쟁이 폭군으로서 내린 결론이었다. 어떻든지 인간이 먼저 아니겠는가. 그럼에도 저 반대편에는 나와 다른 사람들이 있으리라는, 인간을 넘어 '생명'을 지키고자 헌신하는 이들이 있으리라는, 그럴 수 있는 존재가 바로 인간이라는 희망을 놓지 못했다. 이 이야기는 거기에서 출발했다. 그러므로 이것은 '인간에 대한 희망'의 이야기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우리의 이기심으로 참혹하게 죽어간 동물들에게 많은 것을 빚지고 있는 이야기기도 하다.
―정유정, 「작가의 말」『28』(은행나무, 2013)493~494p
십여 일 전에 주문해서 받아놨지만, 다른 책들을 먼저 읽느라, 읽지 못했던 책을 어제부터 꺼내들었다. 한 번 읽기 시작하면 다 읽을 때까지 책을 놓지 못하기에 휴가 마지막날, 책장에서 뽑아든 것이다. 인공 누액'티어린'을 넣어가며 어젯밤 세 시까지 읽다가 소파에서 잠들어버렸다. 아침 여섯 시 반에 눈을 떠, 어젯밤 늦게까지 읽었던 부분을 추스르고 다시 읽어나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495페이지 분량의 소설을, 저녁 먹기 전에야 다 읽을 수 있었다.
정유정 작가의 『내 심장을 쏴라』『7년의 밤』도 흥미롭게 읽었기에, 이번 작품 역시 상당한 기대를 가지면서 책장을 넘겼다. 그러나 이 작품을 쓰기 시작하여, "초고를 끝내는 데는 그리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지만, "수정을 시작하면서 갑작스럽고도 완강한 슬럼프가 찾아왔다"고 한다. "머릿속이 부옇게 흐려져 단 한 줄도 전진하지 못하는 날이 몇 개월이나 이어졌"고, "뭔가 잘못되었는데 그 뭔가가 뭔지조차 알 수가 없"어, "책상에 앉아 버티는 것마저 불가능했"다고 한다. "결국 짐을 싸서 지리산 어느 암자까지 찾아 들어"간 후에야, 그것이 "허무하리만치 단순하고 근본적인 문제"라는 걸 비로소 찾았고, "이러쿵저러쿵 떠든 초고를 엎어버리고 처음부터 다시 쓰기 시작"해서 2년 3개월을 『28』집필에만 몰두했다고 한다.
마지막까지 읽고 나서, 237쪽을 다시 펼치게 되었다. 그 문장이 뇌리에서 어렴풋이 솟아올랐기 때문이다.
"혹시 눈 덮인 철길을 따라가본 적 있어요?"
잠깐, 침묵이 지나간 후 재형이 물었다.
"집에서는 아주 멀리까지 왔구나, 하는 생각이 들 때까지."
"아뇨. 내가 사는 곳엔 기차가 다니지 않았어요."
기차는커녕 완행버스도 다니지 않는 곳이었다. 겨울이면 통행이 제한되고 인적이 끊겨 눈 속에 고립돼 버리는 동네였다. 겨우내 만나는 거라곤 먹이를 구하러 내려온 야생동물뿐인 마을이었다.
"어린 시절에, 그러니까 알래스카에 간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황야를 가로지른 철길로 걸어가본 적이 있어요. 레일을 따라 걷다가 마을이 보이지 않는 곳에 다다르자 손목시계를 풀어서 선로 위에 놔두었죠."
"왜요?"
"초바늘 똑딱이는 소리가 너무 크게 들려서. 해지기 전에 집으로 돌아가라고 하는 것 같았거든. 나는 좀 더 멀리 가보고 싶었고. 기찻길이 끝나는 곳까지."
"그래서 갔어요?"
"아니, 걷다가 멈춰 서서 귀를 기울이면 여전히 똑딱똑딱 소리가 들려왔어요. 귀에서 피가 도는 소리보다 더 크게. 열 발짝, 스무 발짝, 시계는 멀어질수록 더 큰 소리로 집으로 돌아가라고 일렀어요. 결국 집으로 돌아갔죠."
"시계는요?"
"화가 나서 선로에 그대로 두고 와버렸어요. 바람이 쓸어 가든가, 기차가 깔아버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죠. 다음에 황야로 갔을 때 또 나를 불러 세우지 않도록."
"다음에 갔을 때도 확인 안 해봤어요?"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눈에 묻혀서 보이지 않았어요. 바람에 날려갔다면 지금도 근처 어딘가에서 똑딱거리고 있을지도 모르지."
그녀는 <꿈의 나라>의 마지막 장면을 떠올렸다. 인간 없는 세상을 꿈꾼다던, 재형의 음울한 독백을 기억해냈다. 묻고 싶었던 것은 끝까지 묻지 않았다. 그 순간, 그 분위기에서 '누군가'가 누구냐고 묻는 것이 부질없는 짓처럼 느껴졌다.
.........................<중략>.......................................
눈 쌓인 선로는 저만치 멀어지고 있었다. 설원의 기찻길에 두고 왔다는 재형의 시계가 다시 생각났다. 어쩌면 그것은 시계가 아니라 시간이었을지도 몰랐다. 꿈꾸는 소년의 시간.
―정유정, 『28』(은행나무, 2013)237~238p
밑줄 친,
"인간 없는 세상",
그 화두가 가슴 한 켠에 애잔한 형상으로 자리를 틀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마지막 구절은 다음과 같다.
"재형 씨, 나, 간다."
윤주는 일어났다. 돌아보지 않으려 애쓰면서 묘지를 나갔다. 숲길을 내려가다가 나무에 묘지가 가려지는 지점에서 비로소 뒤를 돌아봤다. 재형의 연이 바람을 올라타고 손을 흔들듯 꼬박거리고 있었다. 매직으로 쓴 묘비명이 돋을새김처럼 또렷하게 올려다보였다.
서재형, 인간 없는 세상으로 가다.
―정유정, 『28』(은행나무, 2013)479p
다시, <작가의 말>을 마저 읽어 본다.
호시노 미치오가 쓴『알래스카, 바람 같은 이야기』에는 알래스카 인디언들의 고래사냥 이야기가 나온다. 고래를 잡으면 고기를 취한 후 "내년에도 또 오너라."라고 외치면서 턱뼈를 바다에 돌려준다는 것이다. 세상의 온갖 생명체, 물과 바람까지도 영혼을 가지고 존재하며 인간을 지켜보고 있다는 세계관과 자신들을 먹여 살려주는 자연에 대한 외경심에서 비롯된 풍습이란다. 따지고 보면, 우리는 모두 자연이 빚어낸 우연의 산물들이다. 서로 빚을 지고 갚으며 살아가는 존재다. 스스로 다짐하건대 내게 남은 나날, 그 점 잊지 않고 감사하면 살아갈 수 있기를…….
―정유정, 「작가의 말」『28』(은행나무, 2013)495p
읽기를 끝내고,
정유정 작가가 제목으로 삼은 '28'에 대해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었다.
겉표지를 감싼 띠지에는
"28일, 살아남기 위한 극한의 드라마가 펼쳐진다!"는 문구가 쓰여 있다.
책을 다시 급하게 훑었다.
'빨간 눈'사건이 진행되는 시점은 119구급대가 화양맨션에 출동했던, 2014년 1월 24일이었다.
(2014년 1월 14일 김윤주 기자가 쓴 한진일보 기사가 나오기는 하지만)
2월 20일, 남부 봉쇄선을 향해 평화 행진을 하는 화양시민들의 비참한 광경이 나오는 것으로 소설은 끝이 난다.
앞뒤 정황으로 보아도 28일이란 기간을 정확히 가늠하기가 힘들었다.
그래서 생각한 바,
'28'은 단순한 숫자 이십팔이 아닌,
'이 씨팔'은 아니었을까.
화양시민의 분노, 그들의 처절한 삶을 그만 목격해버린 독자의 분노,
어쩌면, 작가는 그런 계산된 의도로 제목을 붙였던 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이 씨팔'이라는 제목을---
첫댓글 모든 것은 서로 빚을 지고 갚으며 살아가는 존재다.
내게 남은 날들을 잊지 않고 감사하며 살아갈 일이다.
'28'이 '이 씨팔'이 되지 않도록...
윤작가님은 휴가도 독서로 보내는군요. ^^
인간만이 "저들의 삶을 지배하고 운명을 결정하는" 게 아니라,
"서로 빚을 지고 갚으며 살아가는 존재",
그 거부할 수 없는 명제지만,
인간은 늘 그 위에 군림하려 하고,
때로 그 명제 따위를 완강히 거부하기도 하죠.
사건의 나열이 일목요연하게 진행되는 게 아니고,
연관 관계를 가진 등장 인물에 따라 흐르더군요.
그래서 '28'이란 숫자의 의미가 그다지 효력을 발생시키지 못하더군요.
그렇기에 '이 씨팔'이라는 의미로 나름대로 해석해 본 겁니다. ^^
휴가, 잠깐 휴대폰 안 터지는 계곡에 가서
탁족으로 끝냈습니다.
계곡물에 풍덩 들어가는 건 하수들이 하는 짓이고,
고수들은 탁족으로 간단히 더위를 떨치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