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관의 부관으로 위만이란 자가 있었습니다. 자신이 모시던 상관이 하루 아침에 흉노로 망명해 버리자 위만은 진로를 놓고 고민하게 됩니다. 그는 흉노로 가는 것이 싫어서 결국 연나라 동쪽에 있는 조선의 변방에 와서 조선 준왕의 신하가 되었습니다."
이러한 표현은 송호정님의 책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역사 책에 이런 표현이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과연 위만이 노관의 부관일까요. 두 사람 사이에 어떤 관련이 있었다는 증거라도 있던 것일까요?
고조선이 일개 망명객 출신이 위만에 의해 멸망했다고 한다면 너무나 허망하지 않습니다.
한국 고대사 사료 가운데 제 1의 사료는 바로 사마천 史記의 조선열전입니다.
그곳에 첫번째 말은 朝鮮 王滿者, 故燕人也 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조선의 왕이 된 滿은 옛날 연나라 사람이라는 말입니다.
자 여기서 주목할 점은 故燕人이라는 말입니다.
기원전 194년경 한제국에는 연나라가 있었습니다. 그 연나라의 왕이 노관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위만이 노관의 부관이란 해석은 위만이 바로 한제국 내의 연나라의 관리라는 뜻으로 본 것이 됩니다.
그런데 문제는 위만이 연나라 사람이라면, 그냥 燕人이라고만 할 것이지, 굳이 고연인이라고 할 이유는 없는 것입니다. 고연인이란 말은 바로 기원전 223년에 멸망한 옛 연나라의 사람이란 뜻입니다. 그것은 위만이 노관의 직접 부하가 아니라, 옛날 연나라 사람으로 무려 20여년 이상을 요동에서 세력을 키워온 세력임을 말해주는 것입니다. 위만은 무리 1000명을 거느리고 올 만한 사람입니다.
그가 魋結蠻夷服을 한 것은 그가 본래 고조선의 유민 출신일 가능성도 더 큽니다.
위만이 노관의 부하라고 보는 것은 분명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왜 노관이 흉노로 도망가고, 위만은 고조선으로 이동해왔던 것일까요.
그것은 BC 195년 4월 한고조 유방이 죽자, 유방의 불알친구였던 노관은 권력을 장악한 여태후와 사이가 나빴기 때문에 흉노로 도망을 친 것입니다. 여태후는 노관이 유방과 어릴적 부터 기방출입을 함께 하는 등의 행동을 했기 때문에, 노관을 극히 싫어했습니다. 여태후는 유방의 친근 세력을 모두 제거하는 과정에서도 특히 노관을 제거하려고 노력했는데, 무려 20만명의 대군을 보내 노관의 연나라씨를 말리려고 했던 것입니다. 이런 침략을 받았기 때문에 연나라 변방에서 세력을 갖고 있었던 위만도 동쪽으로 도망을 했던 것입니다.
이런 전후 상황을 살펴보지 않고 왜 위만을 노관의 부하로 착각했던 것일까요.
그것은 사기 고조선의 첫 머리의 해석을 제대로 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한서 조선열전에서는 朝鮮王滿 燕人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윤내현 박사님도 중국정사조선전에의 번역에서 여기에 연인을 한제국 내의 燕國인으로 해석을 했습니다.
이 점부터 잘못된 셈입니다. 제대로 된 사료 해석이야 말로 역사 연구에 있어서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위만이 노관의 연국 내에 속했던 세력인지, 아닌지는 기록이 없어서 알 수는 없겠지만, 분명 위만은 20여년간 세력을 갖추었던 세력인 만큼, 일개 망명인으로 볼 수는 없는 것입니다. 한제국의 힘이 노관을 제거하기 위해 동쪽으로 대거 밀려오는 탓에 위만 역시 동쪽으로 밀려왔고, 그 위만의 속임수에 의해 고조선이 멸망했던 것이지요. 이 작은 해석의 차이는 고조선의 국가적 단계까지도 달리 해석할 여지를 주는 것입니다.
참고로 이 글은 오늘 서울랜드에서 열린 <세계유산 고구려 특별전>에서 만나 뵜던 서영수 단국대 교수님과 함께 서울역사발물관으로 오는 도중 차안에서 교시를 받았던 내용이며, 서영수 교수님은 이 내용을 학회에서 요약발표문 형식으로 얼마 전에 발표하신 적이 있었습니다. 그 내용을 듣고서 다시 사료를 찾아보고 위 글을 정리해본 것입니다. 따라서 이 글의 핵심 아이디어는 모두 서영수 교수님의 교시에서 나온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