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양들의 침묵 감상기
양들의 침묵이라는 영화가 개봉한 것이 1991년의 일이다.
개봉 당시부터 세간의 이목을 끌었고, 이후 TV나 케이블 방송을 통해 몇 번이고 방영되었을 이 영화를 16년이 지난 2007년에서야 비로소 보게 되었다.
1991년이면 내가 대학교 본과 2학년으로 때늦은 사춘기를 보내고 있었을 때이고 아마도 그 당시 이 영화를 보았다면 한낮 충격적인 범죄 스릴러의 영화 이상의 의미는 부여하지 못하였을 것이다.
서른아홉의 나이에 이 영화를 감상하면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느끼긴 했지만 이렇게 영화에 대한 감상기를 써야겠다고 마음먹은 것은 오늘 꾼 꿈 덕분이다.
사람들은 강박적으로 똑같은 내용의 악몽을 반복적으로 꿀 때가 있다.
한국이라는 곳에서 비슷한 상황을 체험한 우리들은 비슷한 두려움과 공포를 집단적으로 공유할 수밖에 없다.
언젠가 술자리에서 이와 같은 얘기가 나오고 각자 반복적으로 꾸는 악몽에 대한 내용을 이야기한 적이 있다.
한 친구는 마음이 괴롭거나 스트레스를 받으면 항상 군대에 다시 끌려가는 꿈을 꾼다고 한다. 당연히 십수년 전에 군 제대를 했지만 꿈에서는 국방부의 착오로 다시 영장이 나오고 억지로 군대로 끌려가는 꿈을 꾸는데 그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다고 한다.
아마도 한국에서, 젊은 나이에 보낸 군시절의 경험은 정도차이이지만 대부분 소통의 부재(不在), 보이지 않는 폭력과 비인간적인 대우에 대한 두려움과 연관된 어두운 모습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 이야기에 대부분의 우리는 자신도 그와 같은 꿈으로 괴로워했음을 토로하면서 묘한 동질감을 느꼈던 기억이 난다.
나는 시험과 관련된 악몽을 꾼다.
꿈에서 나는 고등학생이다. 곧 학력고사를 봐야 하는데 문제는 수학공부를 전혀 하지 않은 것이다. 문제지가 나오고 나는 단 한문제도 풀 수가 없다. 마음이 답답하고 무력감을 느끼고 괴로움에 시달리다가 꿈에서 깨는데 이 꿈을 반복적으로 꿀 때는 꿈에서 느끼는 두려움과 무력감에서 탈피하기 위해 옛날에 보던 수학 정석을 꺼내 다시 공부를 하는 편이 낫지 않을까 느낄 때도 있다.
학창시절에 나는 수학을 잘 하는 편이었고 학력고사를 볼 때 수학은 만점을 받았다.
그런데 왜 나는 특히 수학에 대한 악몽을 꿀까?
나에게 있어 대학시절은 전 생애를 통해 가장 끔찍했던 시절로 기억된다. 때 늦은 사춘기와 가정의 불화 등으로 마음은 대부분 소외감과 무력감, 두려움과 열등감으로 똘똘 뭉쳐 그 누구와도 긍정적인 소통을 하지 못했었다.
오늘 나는 시험과 관련된 대학생 시절의 나에 대한 꿈을 꾸었다.
학과 친구들은 모두 친한 사람끼리 모여 시험공부에 열중이다. 시험공부를 해야 하는 나에게는 시험날짜가 언제인지, 시험과목은 무엇인지, 시험과목의 범위는 어디인지에 대한 정보조차 없다.
나는 혼자다.
친구들은 저마다 자기들끼리 모여 공부하고 나에게는 결코 시험에 필요한 정보를 주지 않는다.
혼자인 나는 무섭고, 외롭고, 무력감을 느낀다.
혼자 외로이 교내 캠퍼스를, 크고 작은 도서관을 헤매이지만 시험에 대한 압박감과 정보 부재에 의한 두려움과 소외당한 열등감을 극복할 수가 없다.
이렇게 아침에 눈을 뜨고 나니 몸은 천근만근이다.
마음은 아직 외로움과 무력감의 기운이 남아있는 가운데 문득 드는 의문이 있다.
왜?
도대체 왜 아직도 이런 꿈을 나는 꾸고 있는거지?
그러면서 문득 수일 전 보았던 양들의 침묵이 떠오르고 이 영화가 시사하는 바가 퍼즐 맞추어지듯 영감이 떠오른다.
이 영화에는 조디 포스터가 맡은 스털링 요원과 안소니 홉킨스가 열연한 한니발 렉터 박사라는 영화사에 남을 멋진 캐릭터가 등장한다.
스털링은 10세에 부모님을 여의고 친척 집에 맞겨졌다가 두달만에 쫒겨나 고아원에서 자란 후 FBI에 입사하는 자수성가형 인물이다.
스털링은 왜 두달 만에 친척집에서 쫒겨나야 했을까?
스털링은 의지하던 아버지마저 자신이 10살 때 갑작스럽게 돌아가시고 천애고아가 된다. 그녀가 느꼈을 박탈감과 소외감, 두려움과 무력감을 나는 알 것 같다.
친척집에 가서도 제대로 적응할리 없을테고, 그러던 어느날 문득 새벽에 양의 울음소리에 잠에서 깬다.
양들이 갖혀 있는 우리에 가서 양들을 풀어주지만 양들은 빠져나가지 못하고 울기만 한다. 그 중 어린 양 한 마리를 안고 무작정 도망을 가지만 이내 경찰에 잡히고 절도범으로 몰려 자신은 고아원으로 보내지고, 양은 죽고 만다.
스털링은 다름 아닌 어린 양이다.
어린 양은 무력하고 무력하기에 보호가 필요하고, 보호받지 못하면 죽고 마는 존재다.
어린 양인 스털링은 스스로를 구원하려 하였지만 어리기에, 무력하기에 결국 자신의 영혼은 죽고 만다.
그 뒤로 스털링은 악몽을 꾼다. 어린 날 죽어버린 자신의 상처받은 영혼의 울음소리를 반복적으로 듣는 것이다.
세상에 자신을 드러낼 만큼 강해진 스털링은 스털링 요원이 되었다.
누군가를 구할 만큼 강해졌지만 아직 그의 영혼은 구원받지 못하였다.
이제 버팔로 빌이라는 연쇄살인범이 납치한 캐서린이라는 여인이 스털링 요원의 새로운 어린 양이 된다.
렉터 박사는 말한다.
“캐서린을 구하면 양들의 울음소리가 멈출까? 멈추게 되면 얘기해주게...”
스털링 요원은 캐서린을 구출해냄으로써 양들은 침묵하고 자신의 영혼은 구원받는다.
인간이란 참으로 오묘한 존재이다.
자신이 구원받기 위해서는 남을 구원해야 한다.
여기에 종교의 본질이 숨겨져 있다.
왜 남을 구원하는 것이 자신을 구원하는 것일까?
남을 구원하기 위해서는 자신을 버려야 한다. 자신을 버린다는 것은 남을 구원함으로써 얻을 반대급부들, 예를 들면 명예, 금전, 자신이 남을 위해 봉사했다는 생각 그 모든 것들을 버리는 것이다.
그 모든 것, 자신의 목숨마저 상대를 위해 내놓은 후 남는 마지막의 그것.
그것을 우리는 신성(神性)으로, 하나님으로, 부처로 명칭하는데, 바로 그것이 나를 대신해 드러나 진다.
내가 신성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내가 죽어 스스로 드러나는 것이 신성이다.
구원받을 내가 존재하지 않음을 아는 것이 깨달음이다.
그것을 깨닫게 해주는 것이 우리 앞에 서 있는, 우리 주위에서 우리의 사랑과 관심을 필요로 하는 인간들이다.
렉터 박사는 말한다.
“연쇄살인자인 버팔로 빌은 타고 태어난 희대의 살인자가 아니다. 우리 주위에 있는 평범한 사람이다. 이 어린아이가 어린 시절에 학대받고 상처받아 자기 스스로가 자신을 사랑할 수 없는 사람으로 변했고, 그러기에 자신은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이 되기를 원하였기에 그 결과가 연쇄살인이다.”
사람은 내면을 알고 나면 용서하고 사랑할 수밖에 없다.
세상의 아이러니는 소는 개울가에서 마신 물로 젖을 만드는데, 그 아래에 있던 독사는 같은 개울물을 마시고 독을 만들어낸다.
똑같은 불우한 어린시절의 결과로 스털링은 스털링 요원이 되었고, 빌은 버팔로 빌이 되었다.
하지만 나는 이 모든 것을 지극히 높이 계신 절대자의 사랑으로 받아들인다.
스털링이 스털링 요원의 역할을 하듯이, 빌은 버팔로 빌의 역할을 한 것뿐이다.
이 세상은 창조의 목적이 사랑과 두려움처럼 온갖 긍정적이고 부정적인 감정들의 체험장이기 때문이다.
이번 생에 버팔로 빌의 역할을 해봄으로써 사랑의 갈증에 목말라 보고, 다음 생에 스털링 요원의 역할을 해봄으로써 구원도 받아보고...
우리 모두는 각자 자신이 원하는 역할을 바꿔가며 체험해 보는 것이 지구에서의 삶이다.
그러면서 터득하는 놀라운 진실은 결국 사랑만이 남게 된다는 것이다.
사랑이란 두려움과 반대되는 감정이 아니다.
사랑이란 자신의 내면에 있는 버팔로 빌의 모습을 자각하고 자신의 못난 모습이 회피하거나 두려워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그것이 자신의 모습임을 스스로 인정하고 용서하고 받아들임으로써 자신에게 당당해지는 것이다.
아직 나는 내 자신에 당당해지지 못했다.
그것이 가능해 지는 날, 시험과 관련된 악몽에서 나도 벗어나게 될 것이다.
문득 지난 대학시절을 공유했던 친구들이 떠오른다.
그들에게 아직 나는 풀지 못한 감정이 남아있다.
그들도 모두 나처럼 상처받은 영혼들인데,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지...
2007년 2월 16일
첫댓글 공감되네요~
뭐랄까 묘한~ 느낌이 들면서 뭔가를 생각하게끔 해주네요~ 좋은 후기 잘 읽었습니다^^*
가히 NLP적 영화감상문이라 할만 합니다. 좋은 글 고맙게 잘 읽었습니다. 이제 그만 수학시험에서 벗어나시길... ㅎㅎ
저와 유사한 꿈을 꾸시네요. 준비되지 않은 수학시험을 치는 꿈, 전공 시험 치러 교실 찾아가야 되는데 시험시간표도 모르고 교실도 몰라 당황하는 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