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월 6일 현장, 아니, 대체 대국중에 사석을 내 돌통에 왜 넣느냐구...? | 16일 오후, 월간바둑 해설위원 김영삼 8단이 을지로 3가에 위치한 사이버오로 사무실에 들렀다. 월간바둑 마감상황도 볼 겸 겸사겸사 들른 김영삼 8단의 복장은 상당히 케쥬얼하다. 후배기사들과 운동을 하기로 했는데 시간이 어긋나 버림(?)받았기 때문이다.
김 8단은 유쾌하다. 유머또한 상당하다. 첫 인사가 이랬다. "아, 요즘 제 이름 검색하면 '큰 바둑' 뒀다고 나온대요. 나도 큰 바둑을 둬야 할 텐데."
가벼운 인사를 나눈 뒷, 해설위원에게 최근 이슈가 됐던 '김은선-루지아 사석처리 분쟁대국'에대해 의견을 물었다. - 사석분쟁이란 지난 8월 6일, 삼성화재배 예선에서 김은선과 루지아(中)의 대결에서 일어났던 사건이다. 루지아가 대국중 사석 하나를 김은선의 돌통에 넣었다는데, 계가해보니 김은선의 반집승이었다. 루지아는 사석하나를 넣어준 것 같다며 복기를 요청했고, 김은선은 입회인의 판정을 요청했다. - 해설위원이 있다는 것은 이럴 때 좋다. 무엇이든 일단 물어 볼 수 있으니까.
"박정상 9단의 멘트가 그 사건 터졌을 때 뉴스에 실렸었죠. 제 입장도 그것과 거의 같아요." 김영삼의 일성이다. 같다고는 했지만 김영삼 8단은 박정상 9단보다 약간 더 나아갔다.
"결국 심판위원들의 이야기를 듣고 재대국을 하게 됐지만 재대국 판정은 제 마음에 안듭니다. 그냥 김은선이 이겼다고 판정했어야죠. 2004년도에 김강근-황이중 건도 재대국으로 결정이 났었지만, 그 때는 전례가 없었던 사건이라 재대국이 가능했고, 이번 김은선-루지아 건은 전례가 이미 있는 사건이니까, 김은선의 승리로 판정하는 게 맞다고 봐요. 한국룰이잖아요. "
김영삼 8단은 한국대회에 참여하는 중국기사들이 한국의 계가방식이나 룰에 너무 모르는 채로 참여하는게 이런 분쟁의 원인이 될 수 있음을 강하게 지적했다.
"중국룰로 치러지는 대회에서 유명 한국기사가 중국식이기 때문에 패한일이 있어요. 한국식으로 계가하면 이기지만 중국식 계가로 하면 패하는 경우가 발생한 것이죠. (빅 같은 형태에서 그런 일이 벌어질 수 있다. 유창혁 9단에게 그런 경우가 있었다고 하는데 확인을 아직 못했다. ) 중국 기사들은 그런 경우의 계가에 훨씬 빠르니까 한국기사가 졌죠. 한국식 계가로 하면 물론 이기지만, 중국식 계가의 세세한 부분을 다 이해하지 못한 거니까 승복한거죠. 중국룰로 치러지는 중국대회잖아요. 대회규정에 그런 상황을 상세히 규정한 게 없으니까 승복 못 한다고 버틴다면 정말 이상하겠죠."
한편 중국에선 루지아가 김은선과 둔 바둑을 기보로 정리했고, 그게 뉴스(체단주보)에 또 실렸다. 기보로 정리하니 루지아의 반집승이고 결국 뉴스의 요지는 루지아가 억울하다는 이야기가 된다. 그 이야기도 김영삼 위원에게 해줬다. 김 위원이 듣고 나서 다시 이야기를 계속했다.
"마찬가지로 한국룰로 치러지는 대회에서 사석을 함부로 처리했다가, 나중에 복기를 해보겠다는 둥 이러면 아예 한국룰로 계가하지 않겠다는 것과 마찬가지 아닌가요. 그런데 이건 한국룰로 계가하는 한국대회잖아요."
"그리고 서로 끝까지 승복을 못하면 우리 대국규정은 판빅이 아닌이상, 재대국이 아니라 '양자패'죠. (현실적으로 문제가 일어난 현장에선 재대국이 합리적으로 보였겠지만) 누군가의 승을 판정하고, 이에 대해 승복하지 못하면 양자패를 시키는 게 오히려 맞는 것 같습니다. "
사석을 어디에 놔야 하는 명확한 규정이 없다해도 이미 대회규정에 한국식으로 계가한다는 것이 나와 있으므로 사석을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는 분명하다는 뜻으로 들렸다. 또 한국대회에 참여하면서 한국룰이는 것을 분명히 인지하지 않고, 사석을 잘 못 처리해서 계가 마지막에 불리한 상황에 처했다면 그를 인정해야 한다는 뜻 처럼도 들렸다. 물론 김강근-황이중 사건이 2004년에 있었으므로 그동안 이런 상황에 대한 세부규정을 잘 만들어 놨으면 결과적으로는 더 좋았을 것이다.
"중국기사들은 때론 끝내기 끝 부분에서 가일수를 해야 하는지 어떤지 주위에 물어보는 경우가 있었다고 해요.(중국룰에선 나중에 가일수해도 한 집 손해가 되지 않는다.) 한국룰 상황에서 가일수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니까 물어본 거였겠지만 한국규정은 이런 경우 '훈수'로 볼 수 있고, 반칙패로 처리할 수 도 있는 거거든요. 그럼 해당 한국기사는 이걸 입회인에게 이야기해서 항의를 해야되나 말아야 되나 하면서 대국 외적으로 스트레스를 받게 되죠. "
중국룰에 익숙한 중국기사들이 한국대회에서 참여해, 한국대회임을 별로 의식하지 않은 채 평소의 행동을 그대로 하기 때문에, 이 대국 습관들이 한국기사들에게 반상외적인 스트레스가 된다는 것이다. (일종의 문화충돌이다. 한국에서 남의 돌통에 사석을 넣거나 따낸 돌을 건네거나 하는 것은 돌 던질 때의 행동이다. 이런 경우를 한국기사가 목격하면 깜짝 깜짝 놀라거나, 불쾌해지기 쉬울 것이다. - 물론 중국에선 사석을 상대의 돌통에 건네주는 것이 나름의 '예의'인지는 모르겠으나 고의로 한 나쁜 행동은 아닐 것이다.)
"사석을 아무데나 막 놓거든요. 왼쪽에 놓았다가, 오른쪽에 놓았다가, 상대 돌 통에 넣어주지를 않나, 이런 거 한국프로 기사들한텐 아주 심란한 것이죠. (반상외의 심리적인 스트레스가 될 수도 있겠다.) 게다가 계가를 시작할 때 판을 확 밀고 중국방식으로 계가를 하려고 할때도 있고. "
단위차별을 없앤 한,중,일,대만 통합예선이 정착된지는 꽤 오래 됐다. 그동안에도 이런 분쟁소지가 많았을 텐데 왜 다들 그냥 넘어 갔을까? 막상 실전이 되면 입회인을 불러서 공식항의를 하기엔 너무 사소해 보이기도 하고, 귀찮기도 하고, 괜히 일을 크게 만드는 것 같고, 그렇기 때문이다.
"실전에선 항의를 하려 마음먹었다가도 이기면 이겼으니까, 졌으면 졌으니까 하고 그냥 넘어가기 쉽죠. 비슷한 경험을 한 사람은 많은데, 지고나서 따지면 시비거는 것 같아서 항의를 하지 않고, 이긴 사람은 어차피 이긴 바둑이니까 좀스럽게 또 그런 걸 지적하기는 싫은거죠."
마샤오춘이 김은선-루지아 사건에 대해 이야기한 내용에 대해서도 알고 있었다. 마샤오춘은 이 사건이 발생한 '삼성화재배'는 '억지배'로 이름을 고치라며 독설을 날렸다.
"마샤오춘은 중국기사잖아요. 그로선 그 정도는 충분히 할 수 있는 이야기에요. 원래 성향도 그랬잖아요. 독설 잘하고."
"(마샤오춘도 중국룰의 관점에서만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거죠.) 돌 뚜껑에 20개 이상씩 되는데 상대가 가진 사석을 어떻게 세어보느냐고 했는데, 별로 좋은 매너는 아니지만 사석이 많을 때 , 상대의 돌통에 놓인 사석을 가볍게 손으로 헤아리는 경우는 국내기사들끼리의 대국에서 종종 나와요. "
마지막으로 김영삼 해설위원이 한마디 했다.
"때론 참는 것도 좋은 것이지만 불만이 있으면 당연히 이야기를 해야죠. 그냥 가만히 있으면 누가 권리를 찾아주나요. 김은선의 경우, 결과적으로 한국의 다른 기사들을 대신해 그 이야기를 하게 된 것 뿐입니다.
PS 김은선-루지아 분쟁사건이란? (8/6 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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