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한 전환_칼 폴라니
제1부 국제 시스템
제1장 백년의 평화
19세기 문명을 떠받치던 네 개의 제도
첫 번째, 파괴적 전쟁을 막아준 세력 균형 체제(balance of-power system)
두 번째, 세계 경제라는 19세기의 독특한 조직체의 상징인 금본위제(international gold standard)
세 번째, 전대미문의 물질적 복지를 낳았던 자기조정 시장(self-regulating market)
네 번째, 자유주의적 국가(liberal state)
이중 금본위제가 결정적이었지만 19세기 체제가 나오게 된 원천이자 모태였던 것은 자기조정 시장이었다. 평화의 이면에는 통화가치 안정>>소득↑/일자리↑>>기득권 세력(정치체-세습 왕족과 세습 귀족)의 안정적 이익이라는 공감대로 세력 균형(balance of power)의 원리가 작동되었다. 신성동맹과 달리 느슨한 국가 연합에 불과한 유럽협조 체제(The Concert of Europe)를 대신해 글로벌 금융자본인 ‘오트 피낭스’(haute finace(당시의 로스차일드가))가 전 세계의 정치적 경제적 사회의 연결고리 기능을 했다(P105-119). 오로지 자신들의 이득을 위해.
19세기는 전쟁 중에도 경제 체제를 수호하기 위한 여러 조치를 권장하는 방향으로 결정적으로 전환된 시기였다. 1890년대 들어서면서 제국주의 팽창 경쟁(‘자기조정 시장’이라는 개념이 확장하면서 유럽 정치에서 세계 정치로) 때문과 견제로 인해 세력 균형의 메커니즘은 멈췄다. 100년의 평화가 깨진 것이다(119-123). 삼국협상⇔삼국동맹(p122 주석)
2장 보수적 20년대, 혁명적 30년대
금본위제가 사회적 메커니즘이라는 사실을 파국을 맞으면서도 인지하지 못했고 따라서 대처는 모순만 증대시킬 뿐이었다. 1930년대에 나타난 사회 전환은 제1차 세계대전의 결과인 듯 보이나 뿌리는 1900년 이래로 지속된 세계 경제 해체[경쟁과 견제로 세력 균형이 무너지는 과정]라는 정치적 긴장감 속에 있었다(134-137p).
제1차 세계대전 직후 패전국은 영구적 무장해제를 감수해야 했으며 이로 인해 세력 균형은 무너진 상황에서 무너진 체제를 다시 확립하는 것이 평화와 번영의 복구하는 유일한 길이라는 생각으로 어제의 체제들을 다시 세우는 쪽으로 귀결된다. 힌덴부르크, 윌슨, 레닌, 트로츠키 모두 넓은 의미에서 보자면 이러한 서유럽의 전통(보수적 20년대) 위에 서 있었다. 국제연맹은 1914년 이전의 국제연맹은 이전의 자유무역[자본주의] 질서 회복이 목표였고 금본위제에 대한 믿음은 ‘세계 경제와 연대의 상징’으로 그 시대의 신앙이 되었다(137-143p).
고정 환율제 복귀는 국내에 지독한 불황과 실업을 강요할 수밖에 없다. “최종 채무자”의 채무불이행은 월스트리트 파산을 의미하므로 월스트리트의 대형 은행자본인 제이피 모건이 나선다. 신디케이트 구성(syndicate)하여 ※미국 자금>>런던 금융 시장>>독일, 오스트리아, 동유럽으로 흘러가게 만든다(143-148p).
그러나 1920년 10월 월스트리트 주가 폭락으로 신용 경색>>자금을 회수>>영란은행, 베를린은행, 크레디트안슈탈트은행(비엔나), 동유럽 각국의 중앙은행 등, 줄줄이 유동성 위기>>각국은 금본위제 포기[영국, 미국, 일본, 독일]하고 경기부양 시작(영국 제외)한다. 이로써 “보수적 20년대”는 끝나고 새로운 정치경제 체제를 건설하자는 “혁명적 30년대”가 시작되면서 사회주, 파시즘, 뉴딜 등의 등장과 더불어 대규모 전쟁은 수반하게 되었고 문명을 초토화해 버린다. 장기적 요인들을 연구하려면 산업혁명의 고향, 영국으로 돌아가야 한다(148-153p).
제2부 시장 경제의 흥망 : Ⅰ. 사탕의 맷돌
제3장 삶의 터전이냐 경제 개발이냐
인간들을 통째로 갈아서 무차별 떼거리로 만들어버린 그 ‘사탄의 멧돌(163p 주석)’은 무엇이었는가?
16~17세기에 영주, 귀족, 향신, 상인들이 공유지에서의 점유권을 보장받았던 농민들을 알거지로 쫓아내고 “사적 소유”로 만들던 울타리 치기Enclosures(165 주석)와 ‘반동적 개입주의’가 문제가 아니다. 영국이 종획운동의 재난을 견뎌낼 수 있었던 것은 튜터 왕조와 초기 수튜어트 왕조가 왕의 권력을 발동하여 경제 개발의 속도를 사회가 견뎌낼 수 있을 만큼 늦춘 덕분이다. 변화의 과정 중에 재산을 빼앗긴 사람들이 변화된 조건에서 파생된 새로운 기회의 영역에서 새로운 생계 원천을 찾을 수 있을까, 없을까의 여부는 그 변화 속도에 달려있다. 영국의 양모산업의 발전이 나라 전체의 자산 증대였고 면화 산업의 확립으로 이어졌으며 산업혁명을 가져오게 했다. 역사는 궁극적으로 헌정주의와 의회권력 편으로 흘러갔다(163-173p).
시장 경제라는 제도는 산업혁명 시기 이전에 한 번도 나타난 적이 없었으며 그나마 부분적으로만 나타났었다. 시장 경제의 법칙들이란 오로지 시장 경제라는 제도적 환경 안에서만 의미 있다(172p).
파국은 경제적 발전이라는 광범위한 운동과 함께 일어났다. 산업혁명>>시장의 확장>>기계제 생산 출현; 기계 작동과 관련된 모든 요소가 시장에서 판매>>자기조정 시장 개념 수반한 조건들의 창출>>시장 경제의 확립>>사회 전환; 사람들의 생계유지 동기→이익 추구 동기[사람을 포함한 모든 요소의 상품화]>>산업 생활>>화폐제 도입>>‘시장 체제’ 확립==>>상인 겸 생산자의 판매 활동은 원자재와 노동의 구매 활동으로 이어진다. 즉 사회를 구성하는 인간과 자연은 조달상품이 된다(174-179).
제4장 사회와 경제 체제의 다양성 경제
애덤 스미스(1776 국부론 출간)의 노동 분업은 “어떤 사물을 다른 것과 물물교환·교역·교환하고자 하는 성향”에 달려있다는 주장은 훗날 ‘호모이코노미쿠스’ 개념으로 정립된다. 하지만 시장에 의해 통제되고 조절되는 경제란 우리 시대 이전에는 엇비슷한 모습조차 찾을 수가 없다. 스미스의 공리는 부지불식간에 시장주의에 유리한 쪽으로 추가 기울어졌고, 원시인이 거래와 교역을 통해 소유라는 개인적 이해를 지켜내기 위해 행동한다는 편견이 계속 대물림하게 된다(180-183p).
문명화된 민족과 ‘문명화되지 않은’ 민족들 사이에 존재하는 차이점은 과장되었으며 특히 경제 영역에서 그러하다. 최근 역사적·인류학적(고고학/문화인류학) 연구에서 나온 두드러진 발견은 인간의 경제는 일반적으로 인간의 사회관계 속에 깊숙이 잠겨 있다는 것이다[이러한 의미에서 인간 사회에서 경제는 사회 안에 “묻어들어embedded 있다”할 수 있다.] 인간은 사회적 지위, 사회적 권리, 사회적 자신이다. 물질적 가치 부여는 오로지 이러한 목적들에 도움이 되는 만큼으로 한정된다. 생산 과정도 분배 과정도(수렵 어로 공동체, 전제 왕국) 비경제적 동기들로 작동한다. 공동체 전체 차원에서 어떤 구성원도 굶는 일이 없도록 해주기 때문이다. 개인이 사회적으로 받아들여지는 명예나 관대함의 규약을 어기는 경우, 쫓겨나게 될 위험에 처한다. 장기적으로 사회적 의무란 모두 상호성을 가지고 있는 것이어서 그것을 제대로 지키면, 개인적 수지타산 차원에서 따져보아도 최선의 결과가 나오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은 개인들에게 계속 작용하여 의식 속에서 개인적 잇속이라는 생각을 제거하게 만든다. 마침내 행동의 의미를 자신의 이해와 연결해서 파악하지 못하게 만든다. 사회적 위신을 올려주는 물건들 말고는 이익이니 부니 하는 관념조차 존재하지 않는다. 집단적 차원의 이익이지 개인적 차원의 이익이 아님을 내면화하게 된다. 사람들이 서로의 생산물을 주고받고 각자의 역할을 배분하는 인간의 노동 분업은 철저히 주어진 사회적 관계를 토대로 조직된 방법으로 선물, 재분배, 가정경제(199p)를 통해서 이루어졌다(184-200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