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교자
박완호
아버지는 엄마의 하나뿐인 종교였다.
삐딱하게 기운 살림을 건드리고 가는
이교도들의 거친 발길이야 참을 만했지만,
누구든
아버지를 불경스럽게 입에 올리기라도 하면
종교전쟁도 불사할 태세였던 엄마.
단단한 믿음이 꽃을 피우기도 전
느닷없이 신전을 떠나버린
나의 마리아.
하나뿐인 신도를 잃은 아버지는
세상 절벽 아래를 서성거리다
작은 돌멩이에 걸리기라도 하면
아무 데서나 고꾸라지곤 했다.
나나 누이들은 아무래도
아버지의 신도는 되지 못했지만
한낮에도 해가 뜨지 않는
하루하루를 끼니처럼 이어가며
엄마의 부활처럼
빛나는 죽음을
간절히 꿈꾸던 날도 있었다.
아버지가 엄마의 종교였던
날들은 오래 전에 지나갔지만
어떤 사랑은 가끔
종교보다 강한 무언가가 되기도 한다.
엄마는 죽어서도 살아
나의 신앙이 되었지만,
아버지는 죽고 나서야
엄마의 신도가 되었다.
ㅡ계간『포엠포엠』(2016년 가을호)
∼∼∼∼∼
[시가 주는 여운]
愛之敬之夫婦之禮 (애지경지부부지례) (주)
정환웅
아버지는 엄마의 단 하나의 종교...
엄마는 아버지의 하나뿐인 신도...
유일한 신도가 종교를 버리고 먼저 떠났을 때,
하나뿐인 신도를 잃은 아버지는
평정심을 잃고 마구 흔들렸다.
자식들은 아무래도 아버지의 신도가 되지 못했다.
아버지의 끼니를 챙겨드리면서
우리는 엄마의 부활을 간절하게 꿈꾸었다.
사랑은 종교보다 강한 무엇이 되듯이
엄마는 죽어서도 살아
나의 신앙이 되었다.
아버지는 죽고 나서야 엄마의 신도가 되었다.
배교자 [背敎者]는
믿던 종교를 버렸거나
다른 종교로 바꾼 사람을 의미하는데,
이 시에서는 아버지, 엄마, 누이, 나(남자)중에서
누가 배교자란 말인가?
유일한 종교를 버리고 먼저 간 엄마가 배교자인가?
신의 지위를 스스로 포기하고
늦게나마 엄마의 신도가 된 아버지가 배교자인가?
아버지의 신도는 되지 못했으면서,
엄마라는 신앙을 갖게 된 내가 배교자인가?
(주) 愛之敬之夫婦之禮 (애지경지부부지례) :
서로 사랑하고 공경(恭敬)하는 것이
부부(夫婦) 간(間)의 예의(禮儀)임.
2021. 04. 21
∼∼∼∼∼
고맙소
아티스트 : 조항조
이 나이 먹도록 세상을 잘 모르나 보다
진심을 다해도 나에게 상처를 주네
이 나이 먹도록 사람을 잘 모르나 보다
사람은 보여도 마음은 보이지 않아
이 나이 되어서 그래도 당신을 만나서
고맙소 고맙소 늘 사랑하오
술 취한 그날 밤 손등에 눈물을 떨굴 때
내 손을 감싸며 괜찮아 울어준 사람
세상이 등져도 나라서 함께 할거라고
등뒤에 번지던 눈물이 참 뜨거웠소
이 나이 되어서 그래도 당신을 만나서
고맙소 고맙소 늘 사랑하오
못난 나를 만나서
긴 세월 고생만 시킨 사람
이런 사람이라서 미안하고 아픈 사람
나 당신을 위해 살아가겠소
남겨진 세월도 함께 갑시다
고맙소 고맙소 늘 사랑하오
마로니에
from Cafe 마로니에 그늘아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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