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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장보살 영험록
일본 다나까 소재 지장사
1700년대 초반 21세의 요시꼬(吉子)는 일본 다까다에사는 스즈끼라는 남자와 결혼하였다. 그런데 신방을 치르고 나서야 남편 집안의 젊은 며느리들이 나이 서른에 모두 죽었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더욱이 그와 같은 일이 무려 2백년 동안이나 계속 되었다는 것이다. 나이 서른이면 무조건 죽게 되다니... 크게 상심한 그녀는 친정으로 가서 어머니에게 이야기하였다.
그러자 친정어머니는 잠깐 생각하더니 단호하게 말하였다. 네가 서른살에 죽고 싶거든 10년 조금 못되는 기간이나마 마음껏 즐기면서 편안하게 살고, 서른살을 넘기고 싶거든 오늘부터 지장 보살님께 매달려라. 어떻게 하겠느냐? 지장보살님을 부를께요. 집안 식구들이 방해를 하더라도 상관하지 말고 불러라. 죽는 것은 너다.
그날부터 요시꼬는 쉬임없이 지장보살을 불렀다. 부엌에서 일할 때도 빨래를 할 때도 잠자리속에서도 화장실에서도 지장보살을 불렀다. 이 염불 소리에 처음으로 역정을 내기 시작한 것은 시아버지의 두번째 부인이었다. 그나마 시아버지는 이해를 해주었으나 얼마 지나지 않자 둘째 부인과 하나가 되어 방해하기 시작했고 시부모가 함께 반대를 하자 마침내는 남편까지 염불을 하지 못하게 하였다.
어느 날 남편은 버럭 소리를 질렀다. 지장보살 부르는 소리도 듣기 싫고 꼴도 보기 싫으니 친정으로 가벼려! 요시꼬가 울면서 친정집으로 가자 이번에는 친정어머니가 꾸짖었다. 답답한 것도 너다. 죽는 것도 너다 .남편이 대신 죽어 준다더냐, 시부모가 대신 죽어 준다더냐? 서른살 죽을 고비를 넘기고 싶거든 네가 지장 보살을 불러야 한다. 어떤 방해에도 꺾여서는 안된다. 시집으로 다시 돌아 온 요시꼬는 가족들의 갖은 구박속에서도 지장보살 부르기를 멈추지 않았다.
마침내 서른 살이 되던 해 봄, 요시꼬의 꿈에 사람인지 귀신인지 분간되지 않는 여인이 나타나서 말하였다. 나는 2백년전 이 집안의 남자들에게 깊은 원한을 품고 있으면서 이 집안 며느리들이 서른 살이 되면 모두 죽여 버릴 것을 다짐했다. 그 결과는 너도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네가 지장보살을 열심히 부르니 그 염불 소리에 내 원한이 녹아 차마 죽이지를 못하겠구나. 나도 이제 이 원한의 몸을 벗고 싶다.
그러나 나의 죄업이 너무 깊어 이 귀신의 몸을 나의 힘으로 벗을 수가 없구나. 너에게 부탁하노니 지장보살의 츰부 다라니를 나무판에 새겨 10만장을 찍어라. 그리고 백중날(우란 분재일 음력 7월 15일)음식을 만들어 배에 싣고 스미다가와 강을 오르내리며 음식과 츰부 다라니를 강물에 넣어주도록 해라. 그렇게 하면 그 공덕으로 나는 모든 업을 면하여 좋은 나라에 태어날 수 있게 된다. 하지만 그렇게 해주지 않으면 이 집안의 며느리들은 계속 서른이 되면 죽게 되는 것이다. 이 집안의 잘되고 못되고는 너에 달렸으니 꼭 명심하기바란다.
백중까지 남은 날도 백일도 채 되지 않았지만 요시꼬는 밤잠을 줄여가며 츰부 다라니 10만장을 찍었으며, 가족들의 도움으로 많은 음식을 장만하게 되었다. 백중날 그들 부부는 꿈속에 나타난 영가의 부탁대로 강을 오르내리며 츰부 다라니와 음식을 던져 주었고 그날 밤 부부는 똑같은 꿈을 꾸었다. 스미다가와 강의 공중에서 광명을 발하는 구척 장신의 노스님(지장 보살)이 우뚝 서서 손에 든 줄을 강물 위로 흔들자, 물 속의 귀신들이 그 줄을 잡고 따라 올라가는 것 이었다. 목이 잘린 귀신, 팔다리가 떨어진 귀신, 아기를 안은 귀신, 처녀귀신, 총각 귀신 등 그 수를 헤아릴 수가 없었다.
그 일이 있은 뒤 그 집안의 며느리들이 죽는 일이 없어졌고, 요시꼬는 아흔 살까지 장수하였다. 또 슬하에 십 여명의 자녀를 두었는데, 모두 출세하여 부귀영화를 누렸다. 그들 부부는 보은의 뜻으로 집을 절로 바꾸어 지장사(地藏寺)라 하였다. 지금도 지장사에는 그때의 츰부 다라니판이 보관되어 있으며, 매일 같이 많은 신도들이 영험 있는 이 절을 찾고 있다. 두 손 모아 간절히 ... 지심귀명례 백천방편 교화중생 지장왕보살 마하살 <출전: 영가 천도, 우룡 스님, 효림, 1999년도>
전북 고창 선운사 도솔암 지장보살 영험담
보살님, 오늘은 3천배를 해보시지요. 부천에 사는 자비심 보살은 가끔 고창 선운사 도솔암을 찾아 기도를 드리곤 했는데, 그날따라 내원궁에서 같이 기도하던 스님이 밑도 끝도 없이 3천배를 권하자 의아한 표정을 감출 수 없었다. 그러나, 스님이 하시는 말씀이라 손해볼 것 없다는 생각에 10 시간에 걸쳐 비지땀을 흘리며 3천 배를 마쳤다.
그 다음 날 부천으로 돌아간 보살은 주차장에 남편의 자가용이 없는 모습을 보고는 남편이 외출했나 싶어 열쇠를 꺼내 들었다. 그러나, 집의 문은 열려 있었다. 혹시 도둑이 들었는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보살은 가슴이 두근거렸다. 그런데, 웬걸? 남편이 소파에 앉아 신문을 보고 있다가 반갑게 아내를 맞는 것이었다. 여보, 여보. 나 정말 큰일 날 뻔했어. 죽지 않은 게 정말 믿기지 않아. 영문을 몰라 어리둥절해 있던 보살은 남편의 말을 듣자 등골에 식은 땀이 흘렀다.
그러니까 어제 남편이 자가용을 몰고 나갔는데 아마 속도를 좀 냈던 모양이었다. 그러다가 전봇대와 충돌해서 차가 전복되어 폐차할 지경에 이르렀는데 남편은 털끝 하나 다친 곳이 없었다고 한다. 사건 현장 주변에서 그 광경을 지켜보던 사람들도 하나 같이 기적이 아닐 수 없다고 입을 모았다. 자비심 보살은 그 모든 게 도솔암 내원궁에서 3천배를 드린 덕분이라고 굳게 믿고 있다.
아, 그 때 힘들고 귀찮은 생각에 스님 말씀을 듣지 않았다면 정말 어쩔 뻔했을까? 부처님 고맙고 고맙습니다. 지장보살님, 살펴 주신 덕분에 남편이 철갑 옷을 입은 마냥 조금도 다친 곳이 없으니 정말 정말 감사합니다. 보살은 그 일이 있은 후 형편이 허락하는 한 자주 도솔암을 찾는다고 한다. 하기야 남편의 목숨을 구해주신 지장보살님이 계신 곳인데 아무리 길이 멀다 해도 어찌 자주 찾아오고 싶지 않을 것인가?
도솔암의 지장보살님은 특히 병고로 고생하는 불자들에게 인기가 높은데 언젠가 대구에 사는 말기 유방암 환자였던 한 보살이 찾아와 지극 정성으로 기도한 지 23일째지장보살님이 방광하심과 동시에 그 보살은 건강을 되찾았다고 하는 이야기도 있다. 그 때 방광의 정도가 얼마나 휘황찬란했던지 새벽 도량석을 하던 스님들은 내원궁에 불이 난 줄 알고 허겁지겁 뛰어올라왔을 정도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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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포에 사는 보광화 보살은 육순이 넘으면서부터 꺼림칙한 꿈에 시달려야 했다. 꿈 속에서 젊은 나이에 요절한 친구가 나타나 보살에게 항상 똑같은 말을 하는 것이었다. 자네, 갈 길이 먼데 뭘 그리 꾸물대는가? 빨리 나를 따라 가세. 보광화 보살은 꿈 속에서 너무 피곤하니 5분만 더 잔 후 출발하자고 애걸했다.
그러나 친구는 흉흉한 기세로 지금 떠나지 않으면 안된다고 다그치기 일쑤였는데 그 옆에는 돌아서 있는 탓인지 얼굴이 잘 보이지 않는 여자가 보따리를 들고 서서 있더란다. 딱 5분만, 딱 5분만, 보살은 그렇게 친구와 실랑이를 하다가 잠에서 깨어나곤 했다. 그런데, 문제는 그 꿈을 꾸면 반드시 나쁜 일이 생기는 것이었다.
한 번은 그러한 꿈을 꾼 후 계단에서 굴러 팔이 부러졌고, 또 한번은 연탄가스 중독으로 병원에 실려갔다. 보살은 잠자리에 드는 일조차 두려울 지경이었다. 그러던 중 보살은 도솔암 지장보살님이 영험하시다는 말을 듣고 만사 제쳐 놓고 달려가 기도를 하다가 쉬는 틈을 이용해 한 스님에게 속내를 털어놓았다.
그러자 그 스님은 지장경을 매일 독송하며 지극히 지장보살 염불을 하고 정성스럽게 절을 하라고 가르침을 주셨다고 한다. 그러자 과연 도솔암에 다녀와 매일 지장경을 독송한 이후 보살은 다시는 그 꿈을 꾸지 않을뿐더러 불면증에 시달리는 일도 전혀 없게 되었다고 한다. <출처: 영험도량에서 기도 성취한 이야기 진현종 저 대원미디어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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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도림사 지장보살님의 영험담
1) 우물 자리를 가르쳐 주신 지장보살님
부산 도림사는 사찰의 위치상 상수도 시설을 하기가 불편하다. 그래서 물은 지하수에 의존하는데, 기존의 지하수로는 늘 물이 부족해서 물의 양이 많은 샘을 새로 파려고 했다. 1990년 봄, 기술자를 데려다 여기 저기 적당한 곳 몇 군데를 파 보았는데도 만족할 만한 결과를 얻지 못했다. 그래서 스님은 기술자에게 의지하지 말고 부처님께 의지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고, 지장보살님께 일념으로 [샘 자리를 가르쳐 주십시오]하고 기도를 드렸다.
어느 날 밤, 스님 꿈에 지장보살님이 나타나서 스님을 한참 바라보시다가 아무 말 없이 산으로 올라가신다. 스님은 지장보살님께 합장을 한 채 조용히 쳐다보다가 따라 오라는 뜻이라는 것을 곳 알아차리고 뒤따라 갔다. 산 7부 능선에 다다른 지장보살님은 손을 펴서 작은 거북이 한 마리를 땅 위에 내려놓으니, 거북은 이리저리 한참 기어 다니다가 땅에 구멍을 파고 그 속으로 들어가 버렸다.
다음 날 아침 스님은 꿈에서 본 곳으로 올라가 보았다. 너무나 꿈이 생생해서 거북이가 파고 들어간 지점을 쉽게 찾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잡초를 헤치고 이리 저리 찾고 있는데, 풀숲에 놀랍게도 지난밤에 거북이가 파고 들어간 것과 비슷한 작은 구멍이 있지 않는가! 스님은 확신을 갖고 그 곳을 팠다. 그랬더니 거기서 사시사철 마르지 않는 좋은 물이 많이 나와서, 지금은 그 물로 식수, 생활 용수 ...... 등 모두를 충당하고도 남을만큼 물 걱정 없이 살고 있다.
우물이 완성되고 몇 달이 지나자 스님 꿈에 지장보살님이 또 나타나서 이번에는 금붕어 3마리를 절 입구 잔디 위에 내려 놓고 가신다. 꿈이 좋아서 스님은 지금 그 자리에 작은 연못을 만들어서 금붕어를 기르고 있다. 물이 너무 좋아 금붕어는 특별한 관리를 하지 않아도 생기 있게 잘 살고 있다.
2) 귀에 소리 나는 병을 고친 재일 교포
재일 교포 차□식씨는 오래도록 일본에 살다가 1990년도 봄 한국으로 돌아 와서, 지금은 부산시 동래구 명륜동에 살고 있다. 일본에서는 사업에도 성공해서 돈도 좀 벌었고, 한 때는 민단의 간부직도 지낸 유능한 사람이다. 일본에 있을 때 노후에는 한국에 와서 살려고 부인을 시켜 일본의 재산을 미리 한국으로 가지고 와서 적당한 곳에 투자를 해 놓았었다.
7년전 본 부인이 갑자기 변을 당해 죽자 지금은 한국에 나와 살고 있는데, 본 부인이 일본에서 갖고 온 재산은 어디에 있는지 찾을 길이 없다고 한다. 그래서 차□식씨는 심증이 가는 곳을 모두 탐문해 보았으나 결국 재산의 행방은 알 수 없고 이상한 병만 얻었다. 혼자서 살기가 불편해서 5년 전에 재혼했는데, 재혼한 지 3달 뒤 본 부인이 꿈에 나타나서 차□식씨에게 욕을 하고 머리를 때리는 꿈을 꾸었는데, 그때부터 머리 위에서 이상한 잡음이 나며 두통이 심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온갖 약을 다 써 보고, 여러 병원을 다 찾아 다녔으나 증상은 조금도 좋아지지 않았다.
그후에도 꿈에 본부인이 보이기만하면 이상하게도 좋지 않은 일이 생기고, 두통과 잡음은 더 심해지기만 했다. 절망에 빠진 차□식씨는 어느 날 도림사를 찾아갔다. 그리고 스님의 권유에 따라 지장 기도를 올리기 시작했다. 파 마늘 등 냄새 나는 음식을 먹지 않았음은 물론이고 술과 고기를 삼가하며, 부부 관계를 하지 않고 정성을 다 해서 스님과 함께 새벽 예불을 올렸다.
어느 날 아침, 법당에서 혼자서 절을 하는데 그날은 기분이 좀 좋아서 절을 많이 하기로 결심하고 30번쯤 절을 하고 그만 두려고 했다. 그런데 누군가가 뒤에서 [108배를 해라! 108번 절을 해라!] 하였다. 뒤돌아보니 사람이라고는 아무도 없었다. 그는 놀라움과 두려운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열심히 108배를 올렸다. 스님에게 그 이야기를 하였더니 스님은 그저 가만히 미소짓기만 하였다.
7일 기도를 마친 날 새벽, 차□식씨는 이상한 꿈을 꾸었다. 그의 본부인이 커다란 붉은 연꽃을 손에 들고 골프장 보다 더 널찍한 잔디밭을 천천히 걸어서 산 위로 올라가는 꿈을 꾸었다. 그 꿈을 꾼 다음부터 두통도 없어졌고 머리 위에서 나는 소리도 없어졌다. 차□식씨는 모두가 도림사 지장보살님의 덕이라고 생각하고 지금도 매월 지장재일에는 도림사에 나가 지장보살님께 열심히 기도를 올리고 있다. <원작성자 권영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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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 멧돼지로 현신한 지장보살
우리나라 제일의 생지장도량으로는 보통 철원의 심원사(深源寺)를 꼽는다. 생지장보살(生地藏菩薩)이란 살아계신 지장보살(地藏菩薩)이란 뜻이다. 심원사 법당에 들어서면 크기가 한 자 남짓한 지장보살상을 뵈올 수 있다. 이 지장보살을 뵙고 있노라면 옛날 교복(校服)이 자율화가 되기 이전의 단발머리 여고생이 연상된다.
꼭 단발머리를 빗어 내린 듯한 모습의 지장보살은 수더분하기가 시골의 소녀를 빼다 박은 듯해서 거기에서 그 어떤 숭고미(崇高美)나 경건미(敬虔美, 삼가고 엄숙한 분위기에서 나타나는 아름다움)는 찾아보기가 어렵다. 그만큼 소박한 모습을 하고 있는 분이 바로 생지장보살(生地藏菩薩)이다.
보개산 심원사는 신라 진덕여왕 1(647)년에 그 유명한 영원조사(靈源祖師)가 창건한 절인데 한때는 수행하는 대중들이 천 명을 넘을 때도 있어서 중세에는 매우 큰 절이었음을 알 수 있다. 보개산(寶盖山) 줄기 남쪽으로는 심원사가 있고 북쪽으로는 석대암이라는 조그만 암자가 있었다. 석대암 뒤쪽으로 난 봉우리를 환희봉이라 부르고 있다.
이 보개산 환희봉을 대소라치라 하기도 하는데 그 대소라치 너머에는 수백 호의 화전민이 살고 있었다. 이곳은 워낙 산세가 험준한 데다가 땅이 척박하여 농사를 짓는 것만으로는 생계를 꾸려가기가 매우 어려웠다. 기껏해야 조, 옥수수, 콩, 기장 따위가 고작이었고 그나마 일조량이 모자랄 경우에는 냉해로 흉년이 들곤 했다. 그렇게 되자 마을 사람들은 자연스레 사냥을 곁들이게 되었다.
봄부터 가을까지는 농사를 지었고 겨울 한 철은 사냥을 주업으로 삼았다. 특히 눈이 내리는 날이면 노루나 멧돼지 몰이가 적격이었고 토끼나 족제비도 그런대로 수입이 짭짤했다. 사냥꾼들은 나름대로 수렵대라고 하는 조직을 형성하고 있었다. 수렵대 대장은 이순석이란 사람이었는데 그는 다섯 자 밖에 안 되는 작달막한 키였지만 담이 세기로 소문이 났다. 물론 힘도 장사였고 또 날렵했다.
어느 겨울 하루는 이순석이 친구 한 명을 대동하고 사냥을 나갔다. 창을 들고 활통을 어깨에 메었다. 둘은 대소라치 깊은 골짜기에 이르렀다. 숲은 우거져 한낮인데도 침침했고 겨울이라 을씨년스럽기까지 했다. 눈은 아직 내리지 않았다. 이 골짝 저 골짝을 찾아 헤맸지만 다람쥐 한 마리 얼씬거리지 않았다. 정말이지 그 즈음 들어 처음 있는 일이었다. 이렇게 개미 새끼 한 마리 구경할 수 없는 날은 아직까지 없었다.
여보게, 대장. 오늘은 아무래도 허탕인 것 같네. 참 이상하군. 이렇게 개미 새끼 한 마리 얼씬거리지 않는 적은 없었는데. 친구, 둘이 있을 때는 대장이라 부르지 말고 그냥 이름을 불러 주게. 쑥스럽구먼. 그리고 사냥이란 게 꼭 잡히기를 바랄 순 없지. 어쩌다 운이 좋으면 큰 것이 걸려들지 누가 아는가? 그야 자네 말도 일리가 있기는 하네. 하지만 요즈음 우린 먹을 양식마저 떨어졌다네. 아니, 가을에 수확을 했을 게 아닌가? 이제 초겨울인데 벌써 양식이 떨어지면 보릿고개를 어찌할 셈인가?
쉿! 친구가 손가락을 입에 대며 짧은 파열음을 냈다. 순석이 얼굴을 돌렸다. 저기, 저기 좀 보게. 저게 뭘까? 호랑이 같기도 하구 아니야 곰? 아니 아니, 저것은 멧돼지가 분명해. 친구가 소리를 낮추며 말하는 사이 순석의 손에는 이미 화살을 메긴 활줄이 팽팽하게 당겨지고 있었다. 순석은 손에 땀을 쥐며 시위를 놓았다. 화살은 돼지의 왼쪽 어깻죽지에 정확하게 꽂혔다.
비틀거리며 달아나는 돼지는 노란 털을 지니고 있었다. 아름다운 황금빛 멧돼지였다. 숲 사이로 언뜻언뜻 내리 꽂히는 햇살을 받을 때는 더욱 아름다웠다. 두 사람은 핏자국을 따라 능선과 골짜기를 벌써 몇 개나 넘었다. 계곡에 이르렀을 때 돼지의 흔적은 더 이상 찾을 수 없었다. 그들은 목이 말랐다. 마침 그들이 앉아 있던 옆에 조그마한 웅덩이가 있었다. 타는 갈증을 적시기 위해 그들은 엎드려 한 참 동안 정신없이 마셔 댔다. 순석이 외마디 소리를 질렀다. 어어! 친구가 순석을 바라보았다.
여기 물 속에 뭐가 있어. 물이 출렁이지 않게 잠시만 기다려 봐. 잠시 후 동그라미를 그리며 번져 가던 파장이 멈추고 물은 거울처럼 깨끗했다. 거기에 순석이 방금 전에 쏘았던 화살이 꽂혀 있었다. 순석은 화살을 잡아당겼다. 화살 끝에 돌 하나가 묻어 나왔다. 단발머리를 빗어 내린 것 같은 조그만 석상이었다. 손에는 조그마한 돌멩이가 쥐어져 있었다. 순석은 그 석상이 지장보살임을 간파했다.
언젠가 어떤 스님으로부터 들은 지장보살을 생각해 냈다. 손바닥 위의 밝은 구슬은 너무나 영롱하여 얼음인 듯 비치는 대상에 따라 색깔을 바꿈이 자유롭네. 몇 번이나 분부했던가 오욕의 어둠을 뚫고 나오라고 하지만 그 속에 갇힌 중생 밝은 구슬을 보려 하지 않네. 여보게, 이분은 지장보살님일세. 저 왼손에 들고 계시는 작은 구슬을 보게나. 지장보살은 명주를 들고 계시거든. 그래? 우리 건져 올려 보세.
그들은 있는 힘을 다해 지장보살 석상을 들어 올렸으나 수면까지는 쉽게 떠오르는데 더 이상은 무게 때문에 들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 석상은 크기로 보아 그 석상의 두세 배라도 장정 혼자 충분히 들어 올릴 수 있을 정도로 작았다. 순석은 화살이 꽂힌 석상을 조용히 내려놓으며 합장을 했다. 지장보살님! 저희가 어리석어 성상을 몰라 뵙고 활을 쏘았습니다. 얼마나 어깨가 아프시겠습니까?
하오나 저희들의 어려운 생활 형편도 참작해 주옵소서. 저희들은 농사를 짓는 것만으로는 생계를 이어 나갈 수 없어서 사냥을 하게 되었고 고귀한 생명을 수없이 빼앗았나이다. 보살님께서는 저희들의 잘못을 용서하시옵소서. 만일 저희들을 용서하신다면 내일 다시 찾아 뵙겠으니 그 증거로 샘 가에 나와 앉아 계시옵소서. 그렇게 되면 저희들도 당장에 출가하여 지장보살님을 모시고 지성을 다해 수도를 하겠나이다. 그들은 그처럼 기도를 끝내고 집으로 돌아왔다.
이튿날 순석은 수렵대 3백여 명을 이끌고 지장보살이 잠겨 있는 샘으로 올라갔다. 과연 지장보살 석상은 웅덩이 가에 나와 앉아 계셨다. 이를 본 순석과 그의 친구는 그 자리에서 미리 준비해 간 배코칼로 삭발을 했다. 그리고 수렵대 3백여 명 중에서 많은 사람들이 머리를 깎고 중이 되었다. 그 자리에는 절이 세워졌다. 절 이름을 석대암이라 했다. 석대암에 모셔진 지장보살 석상은 2백여 년 동안 중생들의 귀의처가 되었다.
그러다가 휴전협정이 체결되고 민통선이 이어져 신도들이 참배할 수 없게 되자 석대암에 모셔져 있던 지장보살 석상은 보개산 남쪽 기슭에 자리한 심원사로 이사를 하신 것이다. 그리고 심원사 자리에는 정부로부터 250만 평의 절터를 되찾아 2008년부터 세민스님의 노력으로 원심원사를 복원하고 있다.
지금도 심원사 지장보살상에는 그때 이순석의 화살을 맞은 자국이 왼쪽 어깨에 선명히 나 있다. 이는 지장보살이 살생을 업으로 하고 살아가는 대소라치 사람들에게서 산짐승을 보호하려는 자비심에서 현신한 모습이었다. 그래서 지금도 수렵이나 어업, 또는 정육점, 도살업을 주로 하는 신도들이 심원사를 찾아 지장보살께 참회 기도를 올리고 나면 사업이 더욱 번성한다고 하여 연일 초만원을 이루고 있다.
한 번은 지장보살을 모신 석대암에서 이런 일이 일어나기도 했다. 법당을 맡은 부전스님이 옥등잔에 불을 켜다가 잘못하여 바닥에 떨어뜨리고 말았다. 옥등잔은 절반으로 쫙 갈라지고 못 쓰게 되었다. 부전스님은 송구하기 그지 없었다. 값을 떠나서 성보를 깨뜨렸다는 자책감에 몸 둘 바를 몰라 했다. 그는 다시 다른 등잔을 구하러 요사채로 내려오는데 갑자기 등뒤 법당 쪽에서 무슨 소리가 들렸다.
여보게, 부전. 내가 옥등잔을 붙여 놓았으니 걱정하지 말고 와서 불을 붙여라. 부전은 얼른 되돌아 법당으로 달려갔다. 불을 켜보니 옥등잔은 깨어진 금이 남아 있을 뿐 조금 전처럼 불을 밝힐 수 있었다. 기름도 새지 않았다. 부전은 지장보살 석상 앞에서 무수히 절을 했다. 이 지장보살 석상은 청록색이다. 나중에 여러 번 개금 불사를 했지만 며칠 안 가서 저절로 벗겨지곤 했다고 한다. 그래서 지금은 아예 개금하지 않은 순수한 돌 색깔 그대로 모셔 놓고 있다.
지장성지 원심원사 통일 원력으로 새 아침 밝아 - #해탈의 하늘을 열다
새해 첫날의 해는 동해에서만 뜨는 게 아니다. 내륙의 깊은 산골짜기에도 불끈 주먹을 쥐듯 떠올라 어느 한 곳도 차별하지 않고 고르게 따스한 빛을 쪼여준다. 부처님의 자비광명이 지옥세계에도 비치어 지장보살님의 결 고운 서원 끝이 없듯이. 새해 첫 새벽, 경기도 연천 보개산 원심원사(元深源寺) 생지장도량의 적멸보궁 위 총총 빛나는 별빛 사이로 목탁 소리가 솟아오른다. 새해의 첫 도량석이다. 잠든 만 중생을 깨우는 목탁소리. 무명(無明) 번뇌(煩惱)의 깊은 잠에서 고통 받는 일체 중생에게 해탈의 아침이 왔음을 알리는 도량석이다.
도량석 목탁은 한 곳에서 치지 않는다. 삼천대천세계를 한 걸음 한 걸음으로 디디듯 경내를 돌아다니며 친다. 극락보전에서 천막 법당을 지나 복원을 위한 발굴 현장과 임시 종무소를 비롯한 여러 가건물을 돌며 새해의 첫 새벽이 열리고 있음을 알린다. 골짜기의 초목과 땅속에서 겨울잠을 자는 미물들에게까지 그 소식은 전해지고 원심원사 대중들도 잠을 털고 일어나 극락보전으로 모여든다. 새해의 첫 새벽 예불은 도량석에 이어 애처로운 듯 장쾌하고 간절한 듯 우렁찬 종송(鐘頌)으로 시작된다.
대중은 많지 않다. 반세기 동안 인적이 끊겼던 옛 절터를 복원하려는 원심원사. 주지 세민 스님과 4명의 대중 스님이 1400년 전 심원사(당시 이름은 興林寺)를 세운 영원(靈源)조사의 공덕을 기리며 2008년 첫 새벽 예불을 모시는 극락보전은 엄숙하고 장엄하다. 새롭게 모신 아미타 삼존불과 후불탱, 공덕주를 기다리는 천불과 생지장보살님의 사진이 모셔진 각 단의 불보살님은 보전을 장엄하고 깊고 엄숙한 목소리로 불보살님들을 찬탄하는 스님들은 사뭇 엄숙하다. 석가모니 부처님을 찬탄하고 법계에 가득한 진리를 숭앙하고 문수 보현 관음 지장 등 4대 보살을 찬탄하는 동안 촛불은 춤을 추고 영산 당시 부처님께 부촉 받은 제자들의 무량한 복덕과 역대 조사와 천하종사에서 일체 미진수와 온갖 선지식을 찬탄하는 동안 향은 도솔천으로 피어 오른다.
#세 번의 방광과 아름다운 인연
통일 원력을 담은 도량, 원심원사의 복원 불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새해 첫 새벽 예불. 지난해까지 복원 불사의 중요한 매듭을 다 풀었기에 이제 앞으로 나아가고 위로 오르는 일만 남았다. 원심원사는 한국전쟁 이후 민간인의 출입이 통제된 채 반세기를 닫혀 있었다. 그러나 7년 전부터 복원의 움직임이 꿈틀거렸다. 보개산 원심원사를 중심으로 하는 사찰 토지(약 250만평)를 정부로부터 되찾았고 천불전 터를 발굴조사하며 복원의 근간을 마련했던 것이다.
2005년 7월 세민 스님이 주지로 부임한 이후 복원 불사의 고삐는 바짝 당겨졌다. 그러나 복원불사의 첫 걸림돌은 군부대 연병장을 통과해야 절에 이를 수 있는 진입로. 현실적으로 쉽지만은 않은 길 문제는 세민스님이 사방팔방을 동분서주(東奔西走)한 결과 해결점을 찾았다. 엉킨 실타래는 실마리를 찾는 순간부터 술술 풀리는 법. 복원 불사가 불보살님의 뜻임을 암시하듯이 기이하고 아름다운 인연이 이어지고 있다.
지난해 원심원사에서는 세 차례나 기적 같은 일이 벌어졌고 그로 인해 전국의 불자들이 원심원사 불사의 원력이 범상치 않다고 입에서 입으로 소문을 전하고 있다. 작년 7월과 9월 그리고 10월 지장재일에 원심원사 석대암과 앞산에서 연달아 방광이 있었다. 세 번에 걸친 방광을 목격한 신도들은 1,000여명이 넘는다.
그들은 눈앞에 펼쳐지는 불가사의한 광경에 환희했고 복원 불사가 잘 되면 통일의 길도 열릴 것이란 확신을 가지고 있다. 원심원사의 복원불사에 반가운 인연은 미얀마에서도 이어졌다. 올해 미얀마의 고승 우냐니 사라 스님으로부터 미얀마 정부가 공인하는 부처님 진신사리 3과를 기증받을 예정이다. 원심원사는 진신사리탑을 조성해 모실 계획이다.
#일체 중생의 행복을 긷는 불사
무엇보다 원심원사는 올 봄 1,300년 전 생지장보살상이 출현한 석대암에 지장보살상을 봉안할 계획이다. 석대암은 우리나라 지장신앙의 성지다. 현재 철원 심원사에 모셔진 지장보살상이 출현한 곳이고 수많은 지장 영험 설화의 무대다. 원심원사는 석대암에 높이 5m의 지장보살상을 봉안해 성지로 조성하고 전국의 불자들이 찾아와 지장보살의 가피를 입어 행복을 길어 올릴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이다. 또 현재의 천막 법당 자리에 대웅전을 건립하고 종루와 범종불사도 추진한다.
이와 같은 불사를 위해 원심원사는 납월 8일부터 1029일 조상천도기도를 입재했다. 매주 금요일 천도 기도를 올리고 7주째 되는 날은 고승 대덕을 초청해 설법을 듣는 대법회를 연다. 이렇게 21회를 하고 회향하는 것이 1029일 천도 기도다. 매주 금요일 직접 기도를 주관하는 주지 세민 스님은 원심원사의 복원 불사는 민족의 통일과 지장성지의 복원이라는 큰 의미를 지닌다며 새해에는 조상 천도의 귀한 인연과 뜻 깊은 불사에 동참하는 공덕을 함께 짓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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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가에서 주운 지장보살의 영험
당나라 간주(簡州) 금수현(金水縣)에 살던 등시랑(鄧侍郞)에 관한 이야기이다. 이 사람 은 본래부터 부처님을 믿어왔다. 그는 어느 날 길가에서 지팡이 머리 같은 것을 주웠는데 거기에는 스님의 형상이 새겨져 있었다. 등시랑은 그것을 주어서 집에 가지고 와서 벽에 꽂아 두었는데, 그 뒤 二, 三년이 지나서 등시랑은 병이 들어 죽었다.
염라청에 끌려간 그에게 염라대왕은 매우 못마땅한 얼굴로 쳐다보았는데 그때에 한 스님이 홀연히 나타나니 형용이 매우 누추했으나, 대왕은 벌떡 일어나 자리에서 내려와 공경스러이 합장하며 그 앞에 꿇어 앉아서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하더라. 스님이 답하기를 이 사람은 나의 신도이니 꼭 죄를 사하여 주기를 바라오 하시는 것이었다.
대왕은 대답하기를 이 사람은 죄업이 이미 결정되었고, 또한 수명과 식록까지 모두 다하였으므로 죄를 사해 주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했다. 스님이 다시 말하시기를 내가 옛적에 삼십삼천 선법당(善法堂)에 있을 때, 부처님께서 나에게 부촉하시기를 죄업이 정해진 모든 유정 중생들도 구제하라고 하셨으며, 내가 죄업 중생들을 제도하고자 하는 것은 오늘 처음 시작하는 일도 아니니 이 사람은 그다지 중한 죄를 범한 것도 없는데 어찌 구제 하지 못한단 말이오?" 하셨다.
대왕이 이 말을 듣고 나더니 공손스러운 말로 여쭙기를 대사님 원력이 크고 견고하여 흔들리지 않으시니 마치 금강산과 같습니다. 대사님의 뜻이 그러하시니 이 사람을 곧 인간으로 내보내겠습니다 하더라. 이 말을 들은 스님은 매우 기뻐하시면서 나의 손목을 잡고 오던 길로 다시 인도해 주셨다.
우리 마을 가까이 와서 헤어질 때 스님께 법호를 여쭈니, 스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나는 지장보살이니라. 네가 인간에 있을 때에 길가에서 나의 형상을 보고 잘 알지 못하면서도 소중하게 주어다 너의 집 벽에 꽂아둔 일이 있지 않느냐? 그것은 아이들이 장난으로 지팡이 머리에 내 얼굴만 새겨두고 그 밖의 나머지는 새기지 못한 것이니라. 그래서 나의 형상이 이렇게 추하니라. 네가 나를 소중히 한 마음씨가 갸륵하다.
이 말을 마치자 문득 스님의 모습은 보이지 않더라. 그리고 그는 이제 다시 살아날 수 있게 되었다. 시랑이 깨어난 뒤에 생각이 나서 자기 집 벽에 꽂아둔 지팡이를 다시 보니 과연 그 말씀과 같이 되어 있었다. 그리고 지팡이 가운데가 갈라졌으므로 전단향목을 구하여 다시 五촌(15 Cm) 가량 크기를 보충하여 조성하였다. 시랑이 죽을 곳에서 살려준 지장보살의 은공을 생각하고 정성을 다하여 조성하였던 것이다. 그 뒤로부터는 지장보살 형상이 때때로 광명을 놓아 집안을 밝게 비쳤다.
시랑은 크게 환희심이 나서 이번에는 아주 새로이 지장보살을 크게 조성해 모시고 자기집을 절로 만들었으며, 절 이름을 지장대(地藏臺)라 하고 작은 지팡이 등상까지 함께 모시고 예배 공양하며 염불 기도하기를 쉬지 않았다. 이 소문은 원근에 곧 퍼져서 예배 공양하러 오는 사람들이 모여들어, 지장대는 마침내 큰 절이 되었다. 나무 지장보살 마하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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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든 살의 홍서주 불자님의 이야기
여든을 바라보고 있는 서울의 홍서주 보살이 약 20년 전에 체험한 일이다. 당시 그녀의 아들은 합판상을 경영하고 있었는데, 대리점으로부터 거래대금 300만원을 받지 못하고 있었다. 그 돈을 달라고 하자 대리점 사장은 묘한 제안을 하였다. 지금은 나의 자금 사정이 좋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번에 한 건만 해결하고 나면 아주 괜찮아집니다. 1,500만원만 융통해 주십시오. 300만원도 바로 드리고, 1,500만원은 약속어음을 발행하여 500만원씩 세 달 동안 갚겠습니다. 아들은 300만원을 받을 욕심으로 누나의 남편인 매형에게 1,500만원을 빌려 대리점 사장에게 주었다.
뒤늦게 이 사실을 안 서주보살은 은행에 대리점의 신용을 알아보았더니 언제 부도가 날지 알 수 없다는 것이었다. 당시만 해도 1,500만원은 매우 큰 돈이었고, 잘못되면 딸의 가정에도 큰 회오리가 몰아칠 판이었다. 특별한 방법이 없었던 서주보살은 지장기도를 시작하였다. 매일 오전 10시와 오후 10시에 <지장보살예찬문>을 독송하며 158배씩의 절을 올리고, 지장보살 염불을 하였다. 자비하신 지장보살님께서 이 어려움을 막아주실 것을 확신하면서….
마침내 500만원 1장의 기한이 돌아왔고, 그 전날 밤 보살은 꿈을 꾸었다. 많은 조상들이 배를 타고 떠나려고 하는데, 배가 진흙뻘에 박혀 움직이지 않았다. 모두가 애를 태우고 있을 때 한복차림의 키가 훤칠한 남자가 나타나 배를 밀었고, 배는 물에 떠 순조롭게 바다로 나가는 것이었다.
그러나 은행에서는 오후 5시 10분 전까지도 입금이 되지 않았다고 하였다. 보살은 지난밤의 꿈을 생각하면서 꼭 도와주실 것을 믿고 속으로 소리쳤다. 부처님, 감사합니다. 지장보살님, 감사합니다. 드디어 5시가 되자 은행원이 현찰로 줄까, 수표로 줄까 하고 묻는 것이었다. 보살의 기쁨과 놀라움과 감사는 이루 다 말할 수가 없었다.
그 뒤에도 서주보살은 지장 기도를 계속하였고 두번째 약속 날짜가 다가오자 또 꿈을 꾸었다. 아들이 큰 나뭇가지에 매여 있는 그네를 타고 있는데, 갑자기 한쪽 그넷줄이 끊어지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그네를 멈추려 하였지만, 어찌나 힘차게 흔들리는지 잡을 수가 없었다. 마침내그넷줄이 막 끊어지려는 순간, 지난 번 꿈에 배를 밀어주었던 분이 나타나 나무 위로 뛰어오르더니 말을 하였다. 손에 쥐고 있는 밧줄을 던져라. 어느 새 보살의 손에는 밧줄이 쥐어져 있었고, 그것을 던졌더니 곧바로 받아 끊어지려는 그넷줄을 고쳐 매는 것이었다. 보살은 꿈 속에서도 조이던 가슴을 손으로 쓸어 내리며 좋아하고, 두 번째 약속어음 500만원도 마감시간이 다 되어 해결되었다.
세 번째도 서주보살에게는 현몽이 있었다. 아들과 함께 산 속에서 길을 잃고 헤매고 있을 때 많은 사람들의 모습이 보이는 것이었다. 그들을 따라가자 법당과 비슷한 넓은 방이 나타났으므로 거기로 들어가 대중들과 함께 앉아 있었다. 잠시 뒤 모습이 매우 수려한 스님 한 분이 나타나 문밖에서 안을 살피더니 보살을 보고 손짓을 하며 부르셨다. 길을 잃어 집으로 갈 수가 없지? 이 길을 따라가거라.
보살과 아들이 가르쳐 준 길을 따라 조금 걸어 내려오자 아래쪽에 사는 동네와 빈집이 보이는 것이었다. 물론 세 번째 약속 어음도 잘 해결되어 1,500만원을 모두 받을 수 있었다. 나중에 안 일이었지만 그 대리점은 그 후 곧 부도가 나서 망하였다고 한다. 나무 지장보살 마하살...()()() <출처/산이 다하고 물이 다한 곳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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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방암에 걸린 불자님의 이야기
1996년 여름, 대구에 사는 40대 후반의 주부는 남편과 아이들의 뒷바라지에만 몰두하다가 자신이 유방암에 걸려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녀가 병원을 찾아 진료를 받았을 때에는 유방암이 이미 말기에 이르러 수술로도 어떻게 해볼 수 없는 지경에 이르러 있었다. 불자였던 그녀는 갑자기 찾아 든 죽음의 그림자에 휩싸여 괴로워하다가 문득 결심을 하였다.
그래, 어차피 인생은 한 번 죽기 마련이다. 그리고 지금의 고통이 나의 죄업 때문이 아니더냐. 마지막으로 절에 가서 백일기도를 올리며 업장을 소멸하고 죽음을 편안히 맞이하자. 가족들에게 자신의 뜻을 밝힌 그녀는 선운사 도솔암을 찾아가 지장 기도를 시작하였다. 아픈 몸을 이끌고 365개의 돌계단을 오르내리며 식사를 하는 것도 쉽지 않았으므로 하루 한두 끼만 먹으며 도솔암의 내원궁에서 지장보살의 명호를 부르고 힘닿는 데까지 절을 하였다. 지장보살님, 이 중생의 죄업을 참회합니다. 참회합니다.
23일째 되는 날 밤, 땀과 눈물로 온 몸이 흠뻑 젖은 그녀는 몸을 가누지 못해 쓰러지고 말았다. 그때 어디에선가 희미한 음성이 들려왔다. 정신 차려라. 저승사자가 기다리고 있는데 이렇게 잠만 자고 있어서야 되겠느냐? 그리고는 불단 위의 지장보살님께서 내려와 가슴 뒤쪽의 등을 어루만지더니 대침(大鍼)으로 세 번을 찌르는 것이었다. 지장보살님께서 세 번째 침을 빼는 순간, 그녀는 움찔하며 잠에서 깨어났고, 갑자기 가슴 주위가 시원해짐을 느꼈다.
같은 시각, 도량석을 하던 스님들은 내원궁으로부터 붉고 푸른색의 빛이 하늘로 뻗쳐오르는 것을 보고 환희의 예배를 올렸다. 그날 이후 그녀의 통증은 완전히 사라졌고, 예정했던 백일 기도를 마치고 다시 병원을 찾았을 때는 암에 걸렸던 자취조차 찾을 수가 없었다. 이들 이야기에서 우리가 꼭 새겨야 할 것은 참회와 감사이다.
지장 신앙의 근본 경전인 ≪지장경≫은 지장보살을 중심에 놓고, 중생의 죄업과 고통과 참회와 해탈의 상관 관계를 설하여 놓은 경전이다. 곧 중생의 그릇되고 고통스런 현실은 과거의 죄업에서 비롯되고, 참회를 통하여 지장보살의 가피력(加被力, 부처나 보살이 자비를 베풀어 중생을 이롭게 하는 힘)를 입으면 죄업이 녹아 내리면서 원래의 편안함으로 돌아간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지장 기도를 하는 이의 초점은 참회에 맞추어져야 한다. 지장보살을 생각하고 염불을 하면서 참회를 다하다 보면, 그리고 한 배 한 배 절을 올리며 지장보살과의 인연에 감사를 드리다 보면 어느 순간 진한 눈물이 솟구치면서 업장의 밑바닥이 뚫어지는 것이다. 그렇게만 되면 지장보살이 꿈속에 나타나 가피(加被)를 내린다.
그런데도 기도를 하는 많은 이들은 참회와 감사보다는 매달리기에 급급하다. 물론 간절히 매달리는 것이 나쁜 것은 아니다. 하지만 받고 있는 고난의 원인이 죄업인 만큼 참회하고 반성하고 감사하면서, 스스로가 새롭게 태어나고자 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기적인 기도보다는 참회하고 감사하고 새로운 원을 담아야, 새로운 삶이 싹트는 것이다. 정녕 기도하는 이라면 잘못했습니다, 감사합니다 라는 말이 쉽게 나와야 한다.
그 다음에 ∼하여 주소서. ∼살겠습니다 라는 기원과 맹세가 뒤따라야 한다. 이러한 기도 앞에는 어떠한 고난도 녹아 내리고, 어떠한 어려움도 자취 없이 사라진다. 정녕 참회와 감사가 기도 성취의 비결이거늘, 지장 기도를 하는 이들이 어찌 이를 마다할 것인가! 나무 지장보살 마하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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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로지 할 뿐" 선법경 임순빈
15년 전 직장 선배가 이번 일요일에 별일 없으면 아침 8시까지 동국대 앞에 있는 태극당 앞으로 나오라는 말에 아무 의심없이 따라 나선 것이 부처님과 인연이 시작되었다. 선배를 따라 간 곳은 한달에 한번 가는 불교문화기행 이었는데 충북 보은의 법주사였다. 유교 집안으로 나와 형제들은 기독교 학교를 다녀서 성경이며 찬송가가 더 익숙한 편이었다.
불교 교리는 물론 부처님이 뭔지, 절 3배 하는 것도 모르는 내가 다른 사람들이 법당에 들어가 좌복을 깔고 법사의 선창에 따라 한글 108 대참회문으로 108배를 하는데 나는 한쪽 구석에서 무슨 말을 하는지 들어보기로 하였다. 사람들은 구슬땀을 흘리며 정성껏 절을 하고, 그 내용은 생각없이 할 수 있는 잘못된 일과 몸과 말과 뜻으로 지은 죄업을 참회하고 있었다.
그동안 나는 불교는 할머니들이 불상 앞에 쌀이나 초 등을 올려놓고 복이나 비는 기복 종교쯤으로 생각하고 있었는데 나의 모든 죄업이 몸과 말과 뜻으로 지었다는 것과 다른 종교에는 없는 회향이라는 말이 참 좋았다. 진작 불교가 이런 종교인 줄 알았으면 아까 나도 할 걸 하는 아쉬움과 나도 108 대참회 하러 매달 가는 불교문화기행이 기다려졌다. 더구나 사찰에 있는 모든 조형물들이 불교 정신에 의해 세워졌다는 설명을 듣고는 불교문화를 배우는데 신이 났다. 그리고 나도 다른 사람들처럼 불교 공부도 하고 그런 신행 생활을 하고 싶었다.
당시에는 직장을 다니는 관계로 불교 공부는 잘 할 수 없었지만 직장에서 가까운 조계사에서 108배를 하기도 하였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언제쯤 제대로 불교 공부를 하고 신행 생활을 온전히 해보나 하는 생각이었다. 그 후 퇴직을 하고 능인불교대학을 다니면서 교리 공부를 하고 경전을 배우는 사찰을 찾아 경전 공부를 하면서 집에서는 108배를 했다.
어느 해 겨울 나에게 불교가 무슨 종교인지 알게 해 준 분(불교문화기행 지도법사)이 사람에게서 모든 일이 내 뜻대로 되지 않는 것은 타고난 업보와 뜻하지 않은 장애들이 수시로 찾아 들어 그렇다. 우리가 뜻하는 바를 이루고 공부를 잘하여 향상의 길로 나아가기를 원한다면 한차례 깊은 참회 기도를 하는 것이 좋다.
신년 들어 지장 기도를 한번 해 보는 것이 어떻겠느냐는 말씀에 그러겠다고 하고 이런 형식으로 100일간 해보라고 하셨다. 매일 108배를 하고 별 어려움없이 지내던 나는 그래. 업장만 다 녹이면 내 앞날은 탄탄대로 일거라는 생각이 들자 기도만 잘 회향하면 반드시 신천지가 열릴 것 같았다. 그리고 주변에 기도를 많이 하신 보살님께 여쭈었다. 지장 기도를 잘 하면 기도 성취가 빠르지만 대신 마장도 많다는 얘기와 마장의 사례들을 들었다. 그런 점을 모두 감안하여 집에서 기도하기로 하고 절에 안 오면 궁금해 하실 친한 도반 두 분께만 말씀드렸다.
지장 기도 방법은
1. 먼저 3배를 올리고
2. 지장보살본원경 처음부터 끝까지 한번 독송
3. 나무지장보살 천 번 염송
4. 지장보살 예찬문 외우며 158배
5. 지장보살 예찬문 끝부분에서 지장보살 천번 염송
그리고 기도를 시작하기 전 스스로 다짐하기를
1. 기도 시간에 전화기 코드 빼고
2. 꼭 필요한 일 외에는 전화 및 외출 절대 안함
3. 100일간 오로지 신구의(身口意) 삼업(三業)을 조심하고 지장보살님의 가피(加被) 만을 생각하기로 했다.
지장경을 읽을 때에도 영가에게 들려준다는 생각으로 하고 읽다가 잡념이 들면 읽은 기억이 나는 대목부터 다시 읽었다. 나무지장보살과 지장보살 예찬문을 외우면서 158배, 지장보살 천 번 염송을 하는 동안에는 무조건 잘못했습니다 라고 했다. 그렇게 기도 시작 1주일 후 꿈을 꾸었다.
기도 당시 1년 전 돌아가신 어머님께서 내 옷을 입고서 우리집에 오셨다. 바쁘신 듯 현관에서 내가 다른 사람들하고 좋은데 놀러 가는데 너에게만은 얘기를 하고 가야 할 것 같아서 왔다. 사람들이 기다리니까 빨리 가야겠다고 하시면서 총총히 가시는데 어찌나 섭섭한지.
APT 11층에서 아래를 내려다 보니까 햇빛에 빛나는 잔잔한 바다와 배 한 척, 아무도 없는 깨끗한 백사장과 송림(松林)이 펼쳐져 있고 APT 주차장 앞에는 흰 옷을 입은 사람들이 가득 차 있고 어머님은 그들과 같이 그 배를 타고 같이 가시는 모양이었다. 어머님과 다른 영가님들이 천도되었음을 알고는 열심히 기도해서 어떻게든 기도 성취해야지 하는 마음이 생겼고 더욱더 신심이 났다.
기도를 시작한 53일 뒤 또 꿈을 꾸었다. 지장 기도를 하면 꿈을 많이 꾼다고 했다. 한옥집에서 의사같은 하얀 까운을 입은 거사가 사람들을 진료하고 있었는데 줄이 한참 길었다. 그 집 안에서 큰언니가 나를 불렀다. 의사는 나를 보더니 옷을 다 벗고 엎드려 누우라고 하면서 목부터 허리까지 침을 꽂고는 허리를 문지르는데 허리가 찌릿찌릿 아픈 것이었다. 나는 아픈 데가 없는데 내가 모르는 병이 있었나 생각하고 있는데 다 됐으니 내려 오란다.
옆방으로 가서 내 몸을 보니 온통 생선가시 같은 침이 꽂혀 있었다. 침을 빼고는 그 방을 나왔다. 그렇게 꿈을 깨고는 다음날 기도시간부터 단 5분을 앉아 있을 수 없이 허리가 아프기 시작했다. 이것이 마장인가? 이 마장을 극복하지 못하면 나는 아무 일도 할 수 없다는 생각에 무슨 일이 있어도 해낸다는 것뿐이었다. 그렇게 허리가 아프면서 지장경을 읽는데 경전 위로 개미들이 줄을 지어 지나간다. 손으로 만져보니 아무 것도 잡히는 게 없었다.
몇 년 전 집에 이유없이 개미들이 들끓었던 생각이 났다. 그때 개미에게 진심瞋心을 내고 억지로 죽이지는 않았지만 살생도 했었다. 아아! 그때 개미에게 화를 내고 개미를 죽임에 과보를 받는구나! 인과는 한치의 오차도 없다더니. 화를 내고 살생한 과보를 받는 것이었다. 그 후로는 계속 개미 영가에게 참회하고 허리가 아픈지 2주쯤 된 어느 날 기도시간에 지장경을 읽고 있는데 스르르 예전처럼 허리가 풀리는 것이었다. 그리고는 이번 기도로 모든 업장을 소멸케 해주십사 더욱 간절히 참회하였다.
그 후 80일이 조금 지나 다시 꿈을 꾸었다. 세면대에서 가슴이 답답해서 토하는 꿈을 꾸었다. 입에서 한참동안 피고름이 나오는데 새끼손톱만한 노란 근(종기의 근)이 튀어 나왔다. 종기처럼 근이 나오면 다시 진물이 날 때까지 짜야 한다는 생각에 다시 토하는데 또 피고름이 나오더니 또 같은 크기의 노란 근이 나오면서 피고름이 멈추는 것이었다. 세면대에서 입을 씻고 나오니 만나는 사람마다 오랜만에 보는 것처럼 나를 반가워한다. 기도가 끝나갈 무렵 그동안의 기도생활에 대한 점검을 해 보았다.
70% 정도만 만족할 뿐 100일 회향하고 그 다음날로부터 다시 7일을 하고 마지막 회향을 했다. 기도 회향 후 도반 보살님이 궁금하고 보고 싶다고 전화를 주셨다. 전화 속에서도 느끼시나 보다. 목소리가 아주 부드러워지고 편안해졌다고 하셨다. 이후 만나는 사람마다 얼굴에서 빛이 나고 맑아지고 편안해 보인다고 무엇을 했길래 그렇게 좋아졌느냐고 묻는다.
나의 업을 녹이고 향상의 길로 나아가기를 원하여 시작했던 기도가 어머님과 영가님들의 천도와 신업(身業)과 구업(口業)을 소멸하는 가피를 입게 되었다. 인과는 한치의 오차도 없어 연(緣)이 닿으면 과보를 받는다고 했다. 자기의 업을 녹이고 향상일로(向上一路)를 가고자 하시는 분은 한번 꼭 해보시기를 권해 본다.
가까이 사는 신심 깊은 후배가 가끔 집으로 놀러 온다. 서로 공부이야기도 하고 집안의 일상사에 대한 이야기도 한다. 후배는 늘 나에게 언니는 복이 많은 줄 알라는 말을 한다. 하루는 후배가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중에 금전으로도, 누구의 의지로도 해결할 수 없는 일들을 이야기하다가 집으로 돌아갔고 그들이 도대체 무슨 업과 인연으로 그러한가 혼자서 곰곰 생각해 보았다.
그렇다. 내가 지금은 그런 인연을 만나지 않았을 뿐 앞으로도 다음 생에도 나는 그렇지 않으리라는 법이 없지 않은가. 그런 생각이 들자 산다는 것이 구차하게 느껴졌다. 인간 몸 받아야 또 불법인연 만나겠지만 다시는 인간 몸 받지 말고 성불해야지. 왜 이제까지 성불해야 한다는 생각을 못했을까! 원(願)을 크게 세워야 한다면서 기실 작은 소원에 만족해하고 있었다. 성불해야지하는 생각이 들자 마음이 급해지기 시작했다. 참선을 해야지. 후배는 오래전부터 참선을 해왔고 나에게도 참선을 권해 왔었다.
때마침 참선 공부 하느라 오랫동안 연락이 없던 도반을 만나 힘을 얻은 것을 보자 더욱 더 조바심이 났다. 그리고 수련회에서 배웠던 참선을 하기 시작하고 부처님께 꼬옥 선지식 만나기를, 좋은 도반 만나기를 발원했다. 다행히 기도 공덕으로 공부를 지도해 주실 큰 선지식을 만나 선법문(禪法門)과 화두 드는 법, 공부인의 자세 등 자상한 가르침을 주셨다. 큰스님께서는 무릇 생명 있는 모든 것은 죽음을 가장 두려워한다. 우리가 죽는 순간 어떠한 마음 상태로 가느냐에 따라 내생이 결정된다.
그리고 끊임없이 기도하고 수행하는 것은 임종 그 순간을 위하여 하는 것이다. 그러니 죽을 때까지 화두 잡고 간다는 마음으로 행주좌와 어묵동정에 화두 놓지 말 것을 당부하셨다. 앞으로 나는 선지식의 가르침을 받아 깨친다는 조바심 버리고 오로지 할 뿐 죽음이라는 것도 그렇게 이겨가는 것이 아닌가 한다. 아울러 초발심인 나를 따끔한 조언으로 일깨워 주시는 묘법륜보살님과 따뜻한 격려로 발심케 하는 법공심보살님께 감사드린다.
그동안 탐진치 삼독에 빠져 나라는 상을 버리지 못하여 헐떡이며 어리석게 살아 온 것 깊이 깊이 참회하고 계정혜 삼학을 닦아 바른 행을 실천하면서 부지런히 정진하여 본래 부처인 도리를 밝히는 등불이 될 것을 부처님께 발원합니다. 나무마하반야바라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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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목숨을 구하고 천상에 태어나게 하다
당나라 무주 땅에 살던 조씨 소녀는 부처님께 귀의하여 지장보살 앞에 지극 정성으로 염불하였다. 소녀는 무주 자사의 며느리가 되면서 지장보살을 향한 공경심은 더욱 더 간절하였으나 그의 시부모들은 전혀 신심이 없었다. 조씨는 부모님 등을 위하여 자기가 가진 패물이며, 피륙을 팔아서 지장보살 존상을 조성하기에 이르렀다. 높이는 석 자이고, 금빛이 찬란한 금옷으로 모셔놓고 조석으로 지성을 바쳐 예배 공양하고 또한 염불하였다.
그 후 얼마 지나 그의 아버지는 일이 있어 외출하였는데 그의 집에 밤중에 도적이 들어와 집안을 엿보았다. 도적이 내실 문틈으로 가만히 들여다보니 금빛이 찬란한 지장보살이 앉아 계셨다. 도적은 이를 보자 감히 도적질할 생각을 내지 못하고 담을 넘어 돌아갔다. 그 이튿날 도적은 의관을 점잖게 차리고 그 집에 다시 가보았으나, 안주인 혼자 있을 뿐 밤에 본 지장보살의 성상은 찾아볼 수 없었다.
도적은 더욱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기필 이 댁은 성인이 가호하시는 댁이라는 것을 느끼고 이제까지의 자기 과거를 다 털어놓으며 진정으로 참회하고 공경스런 인사를 드리며 물러갔다. 그 일이 있은 뒤에 조씨 아버지가 먼 길을 가던 도중에서 우연히 과거의 원적 관계자를 만났다. 그는 원한이 아직도 풀리지 않은 듯, 다짜고짜 칼을 빼어 들고 잘 만났다 하면서 덤볐다.
조씨의 아버지는 당황하며 어쩔 줄 모르고 있는데 갑자기 그 앞에 금빛 옷을 입은 스님 한 분이 나타나 원수가 내려치는 칼을 막았다. 원수는 몇 번이고 칼을 휘두르면서 그 스님을 치더니 스님이 머리에 칼을 맞아 땅에 쓰러지자 원한이 풀린 듯 가 버렸다. 원수의 눈에는 스님이 아버지로 보이는 듯 했다.
그의 아버지는 그 도적이 떠난 다음 마치 꿈에서 깨어난 듯 정신을 차려 살펴보았지만 쓰러져 죽은 스님도 보이지 않았고 피 한 방울 찾아볼 수 없었다. 하도 놀랍고 기이하여 그의 아버지는 가던 길을 멈추고 곧바로 염불 잘하는 자기 딸의 집으로 찾아가서 그날 당한 일의 자초지종을 딸에게 말하였다.
부녀가 지장보살 앞에 나아가 존상을 가만히 살펴보니, 지장보살 머리에는 세 군데나 칼 맞은 것 같은 흔적이 보였고, 금빛도 변해 보였다. 부녀는 지장보살 앞에 엎드려 지장보살님이 급할 때 나타나시어 대신 목숨을 구해주고, 묵은 원수의 원한을 풀어준 것을 깊이 감사하면서 머리를 조아렸다. 이 일이 있은 다음부터 그의 부모님은 신심이 생기어 열심히 염불하는 지장보살 신자가 되었던 것이다.
그런 다음 조씨 아버지는 79세에 세상을 떠났다. 죽은 지 35일이 지나서 딸의 꿈에 아버지의 몸에서는 금빛 광명이 나며, 허공을 평지와 같이 자유자재하게 날듯이 다니는 것이었다. 하도 반갑고 신기하여 조씨는 아버지를 향하여 소리쳤다. 아버지, 어디로 가십니까? 그의 아버지가 가까이 오면서 딸에게 자상한 목소리로 말하는 것이었다.
나는 이제 제4천의 동사보처(同事補處)로 가는 길이다. 나뿐만 아니라 천상에 나는 사람들은 모두 지장보살님의 인도를 받아 가느니라. 너도 지장보살님을 더욱 잘 공경하라. 너의 어머니는 13년 뒤에 오며, 너는 25년 뒤에 오고, 너의 남편은 28년 뒤에 올 것이다. 다들 잘 있거라. 이 말을 마치자 아버지의 자취는 알 수 없었다.
과연 그 뒤에 조씨의 어머니나 조씨 자신, 그리고, 조씨 남편은 아버지 말과 같이 세상을 떠났다. 그 뒤로부터 무주 고을 안에 지장보살의 등상이나 화상을 조성하여 예배 공양하는 사람이 많아졌으며, 감응을 받은 사람도 또한 많았다. <출전: 고석훈 번역 우리출판사 지장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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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상을 조성하고 어머니를 지옥고에서 구하여 천상에 태어나게 하다.
당나라 진도독의 딸은 어머니를 잃고 밤낮으로 식음을 전폐하며 울고만 있었다. 그대로 놓아두면 조만간 꼭 죽을 것만 같아 그의 아버지는 딸을 붙들고 백가지로 위로하며, 네가 참된 효녀라면 너의 어머니를 위하여 부처님께 정성을 드리는 것이 좋겠다. 이제 집에 지장보살님의 성상을 모실 터이니 네가 어머니를 위하여 기도를 드리도록 하여라 리고 하였다. 성상이 완성되지 의 딸이 어버지 앞으로 나와 청하였다.
아버지, 이번에 모신 지장보살님은 어머님께서 계셨던 자리에 모시고 싶습니다. 그리고, 어머니 생각이 날 때마다 지장보살님을 우러러보고 지장보살님 염불도 하고자 합니다. 진도독은 딸이 마음을 돌린 것이 기뻐서 딸의 말대로 어머니 침실에 존상을 모시게 해주었다. 그 다음부터 딸은 지장보살님에게 밤낮으로 예배 공양하며 염불을 쉬지 않고, 어머니의 명복을 비는 기도를 쉬지 않았다.
그러는 사이 딸의 마음도 안정되고 텅 비어 쓸쓸한 바람이 부는 듯했던 집안에도 차차 훈기가 도는 어느 날 밤, 진도독의 효녀는 꿈속에서 한 스님을 만났다. 갸륵하다, 효녀여. 너의 어머니는 생전에 지은 죄가 많아 지옥에 있느니라. 나도 옛날 너와 같은 딸이 되었을 때가 있었는데 그 때 나의 아버지는 이름이 시라선견이었고, 어머니의 이름은 열제리였다.
나의 어머니가 돌아가시어 태어난 곳을 몰라 애태우다가 마침내 부처님의 자비하신 인도를 힘입어 어머니가 지옥에 빠져 한없는 고통을 받고 계시는 것을 알고, 부처님께 발원하여 기도하며 어머니로 하여금 천상에 나게 하였더니라. 그 때부터 내가 보리심을 발하여 일체 중생의 고통을 없애 주기로 맹세하였다. 이제 너의 효심을 보니 옛날 생각이 나는구나. 너의 효성이 장하니 내가 지옥에 들어가 방광 설법을 하여 너의 어머니를 죄고에서 건져내어 천상에 나게 하여 주리라.
이 말씀을 마치자 스님은 홀연히 사라져 보이지 않더니 잠시 후 다시 나타났다. 밝은 얼굴에 자비스런 웃음을 띠고 진도독의 딸 가까이에 오셨다. 도독의 딸이 얼핏 보니 스님의 옷자락이 불에 타 있었다. 그래서 이유를 물었더니 스님이 말씀하시기를 내가 지옥에 들어갔을 때 불꽃에 탄 것이라고 하자 스님의 모습은 다시 사라지고 꿈이 깨었다. 진도독의 딸은 꿈을 깨고 나서 어머니가 천상에 태어난 것이 기뻤다. 그리고 애달픈 마음, 그리운 마음, 안타까운 마음, 괴로운 마음, 가슴 터질 듯한 슬픈 마음 그 모두가 사라지고 가슴속이 환히 열리는 듯 하였으며 가슴에는 기쁜 마음이 잠잠히 피어 올랐다. <출전: 지장경(고석훈 번역, 우리출판사 간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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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옹 스님의 효심(孝心) - 이천 영월암
지금으로부터 6백여 년 전 고려의 유명한 스님 나옹화상(법명, 1320∼1376)은 춘설이 어지럽게 흩날리는 길을 시자도 없이 혼자 걷고 있었다. 지금의 양주 땅 회암사에서 설법을 마치고 이천 영월암이 있는 설봉산 기슭을 오르는 스님의 발길은 찌뿌듯한 날씨처럼 무겁기만 했다. 이때였다. 어디선가 가까이서 울리는 요령소리가 스님의 귓전을 울렸다. 『허, 또 누가 이생을 하직한 게로군.』
자신의 출가 당시 화두였던 사람이 오고 가는 생사의 도리를 되뇌이면서 막 산모퉁이를 돌아 서려던 나옹 스님은 초라한 장의 행렬과 마주쳤다. 상여는 물론 상주도 없이 늙수그레한 영감이 요령을 흔들며 상엿소리를 구슬피 메기고, 그 뒤엔 장정 하나가 지게에 관을 메고, 무거운 듯 힘겹게 걷고 있었다. 바로 뒤엔 두 명의 장정이 삽과 곡괭이를 들고 따랐다. 행렬은 스님을 보자 한쪽으로 비켜서면서 허리를 굽혔다.
『누가 갔는데 이처럼 의식도 갖추지 못하고….』 『예, 아랫마을 돌이 어멈이 아직 젊은 나이에 세상을 하직했습니다.』 『거참 안 되었구먼. 얼마 전 아들을 잃고 정신이 이상해졌다더니… 나무 관세음보살』 스님은 마지막 가는 돌이 어멈의 왕생극락을 기원하는 염불을 하고는 다시 가던 길을 재촉했다.
평소 마을을 지나다 몇 번인가 본 돌이 어멈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녀는 아들을 잃고 난 뒤 충격을 받아 남의 집 물건을 예사로 훔치고 자주 마을 사람들과 싸우는 등 포악해졌다. 처음에는 동정의 눈빛으로 바라보던 마을 사람들도 나중엔 하도 말썽을 부리니까 가두어야 한다고 하여 한동안 보이지 않더니 그만 명을 달리하고 만 것이다.
을씨년스런 날씨에 마음마저 착잡한 스님은 문득 출가 전 자신이 고뇌하던 일이 주마등처럼 스쳤다. 스님이 스무살 때였다. 생사고락을 같이 하자고 약속한 절친한 친구가 갑자기 병으로 죽었다. 비통에 잠긴 나옹은 「사람은 죽으면 어디로 가는가」라는 물음을 어른들께 수없이 되풀이했으나 아무도 아는 이가 없었다.
벗과의 사별을 인생의 근본 문제로 받아들인 나옹은 그 길로 공덕산 요연 스님을 찾아갔다. 『여기 온 것은 무슨 물건이냐?』 『말하고 듣고 하는 것이 왔으나 보려 하여도 볼 수 없고 찾으려 하여도 찾을 수 없나이다. 어떻게 닦아야 하겠나이까?』 이 말에 요연 스님은 나옹의 공부가 보통 경지가 아님을 알았다. 『나도 너와 같아서 알 수 없으니 다른 스님께 가서 물어라.』
나옹은 그곳을 떠나 여러 곳으로 돌아다니다가 1344년 양주 회암사에서 4년 동안 밤낮을 가리지 않고 앉아서 용맹정진을 한 끝에 깨달음을 얻었다. 그러나 스님은 더 높은 경지를 체험하기 위해 1347년 중국으로 구법(求法)의 길을 떠났다. 연경 법원사에 도착하여 그 절에 머물고 있던 인도 스님 지공화상을 만나 계오(契悟)했다.
2년간 공부하다 다시 남쪽으로 가서 평산 처림에게 법의와 불자를 받고 사방을 두루 다니며 선지식을 친견하던 스님은 어느 날 어머니의 타계 소식을 들었다. 어머니에 대한 애틋한 정이 솟아올랐으나 스님은 출가 사문의 본분을 내세워 멀리서 왕생극락을 기원할 뿐이었다. 하지만 너무도 오랫동안 잊고 지내온 어머니 생각을 모두 떨칠 수는 없었다.
그날 밤 스님은 선정에 들어 어머니의 행적을 좇았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나옹 스님의 어머니 정씨는 뜻밖에도 환생하지 못하고 무주 고혼이 되어 중음신으로 떠돌고 있는 것이 아닌가? 스님은 자신을 원망했다. 자기를 낳아준 어머니에 대해 그토록 무관심했던 자신의 불효가 한스러웠다.
「자식이 출가하면 구족이 복을 받는다는데 우리 어머님은 업장이 얼마나 두터우시길래 구천을 맴돌고 계실까? 혹시 아들의 모습을 못 보고 눈감으신 정한이 골수에 맺힌 것인 아닐까?」 스님은 지옥고에 허덕이는 어머니를 제도한 목련존자를 생각하며 어머니를 천도하기로 결심했다. 나옹 스님은 영월암 법당 뒤 설봉산 기슭 큰 바위에 모셔진 마애 지장 보살님 앞에서 어머니 천도 기도를 시작했다.
『지장보살, 지장보살….』 지옥의 한 중생까지도 제도하겠다고 서원한 지장보살의 명호를 부르며 어머니의 왕생극락을 기원하는 나옹 스님의 독경은 간정했다. 그렇게 기도하기 49일째 되던 날, 나옹 스님은 철야 정진에 들어갔다. 새벽녘 아직 동이 트기 전 나옹 스님은 지장보살님의 전신에서 발하는 환한 금빛 광채를 보았다. 그것은 눈부신 자비의 방광이었다.
스님은 놀라서 고개를 들고 지장보살의 얼굴을 올려다보았다. 지장 보살님의 눈에선 눈물이 주르르 흐르는 듯했다. 고통받은 지옥 중생 때문에 지옥 문전에서 눈물이 마를 새 없다는 지장보살님이 어머니를 천도하며 기쁨의 눈물을 흘리는 것만 같았다. 「아, 지장보살님께서 내 기도에 감응하시어 눈물로써 현현하고 계시는구나」
나옹 스님은 기도가 성취되어 기뻤다.『어머니, 이제 아들에 대한 섭섭하신 마음을 거두시고 편히 극락에 드십시오.』 기도를 마친 나옹 스님은 선실에 입정하여 이미 천도왕생하신 어머니를 보았다. 그 이후부터 영월암 지장보살님 앞에는 선망 부모의 왕생극락을 빌면서 자신의 업장을 소멸하려는 기도객들의 발길이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다. 나옹 스님은 영월암에서 14안거를 성만하면서 후학을 제접하고 신도들을 교화했다. 이 마애지장 보살상은 지난 1984년 12월 보물 제822호로 지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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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완주 송광사 명부전 지장보살 국가위기마다 땀 흘려
전북 완주 송광사 대웅전의 3불상에서도 눈물이 흐르는 경우가 있다는 것이다. 밀양의 표충비가 임진왜란과 관계돼 있다면 송광사는 병자호란과 깊은 인연을 맺고 있다. 조선조 중기 1620년에 인조왕이 불력(佛力)을 빌려 외침으로부터 국가를 보위하고, 병자호란 때 중국 심양에 잡혀간 소현세자와 봉림대군의 조속한 귀환을 빌기 위해 중창 불사를 한 전형적인 호국사찰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바로 이 절의 본당인 대웅전 삼존불상(석가불, 아미타불, 약사여래불)과 명부전의 지장보살 불상이 국가 위기 때마다 어김없이 땀을 흘린다는 것이다. 이 절의 주지인 지원스님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지난 1993년 송광사 주지로 부임한 이래 내 눈으로 부처님이 땀을 흘리는 것을 4번이나 목격했다. 대웅전의 아미타불은 1996년 11월경 강릉 무장공비 침투사건으로 아군과 공비가 사살되는 어지러운 시점에서부터 땀을 흘리기 시작했다.
이전에는 이런 현상이 없었는데 1995년말노태우전대통령비자금사건과1995년 6월삼풍백화점이무너질무렵에는명부전의지장보살상이엄청나게눈물을흘리는것을보았고1993년 10월 서해 페리호가 변산 앞바다에서 침몰했을 때는 대웅전의 약사여래불이 눈물을 흘렸다. 희한한 것은 대웅전에는 똑같은 조건의 부처님 3분이 모셔져 있는데 눈물을 같이 흘리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 따로따로 흘리니 자연적인 현상이라고 설명하기는 힘들다.
실제로 대웅전의 아미타불과 석가불, 약사여래불에서 물이 흐른 자국이 선명하다. 그리고 대웅전 옆 한 귀퉁이에는 지금까지 땀을 흘린 불상 사진과 날짜를 기입해 전시해 놓고 있었다. 표충비와의 기록을 보면 어느 정도 일치성을 보여주는 것은 송광사 기록을 기준으로 5번(송광사에서 땀 흘린 기록은 8차례)이나 되었다. 이와 같이 홍제사 표충비와 송광사 3불상에 물기가 흘렀던 시기가 같다는 것은 우연의 일치로 볼 수만은 없는 무언가 있다는 설명이다. <나무 지장보살 마하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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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장보살 영험록
필자가(김현준씨-불교신행연구원 원장) 잘 알고 있는 이 스님께서 현재 공부 중이라, 이름만은 밝히지 말라고 하셨으므로 여기에서는 운호라는 가명을 쓰고자 한다. 어려서부터 몸이 유난스레 약하였던 운호스님은 주위로부터 나이 삼십을 넘기기 힘들 것이라는 말을 많이 들었었다. 자주자주 병원 신세를 지면서 근근히 학교를 졸업하고 몇 년 동안 직장을 다니다가 결혼 적령기에 영원 생명을 찾는 공부하고 싶어 출가하였다.
출가 후 스님은 대만으로 유학을 가서 학사학위와 석사학위를 취득하고 귀국하여 다시 강원 공부를 마쳤다. 그러나 부처님의 가르침이 완전한 나의 것이 되기보다는 겉을 맴돈다는 느낌을 저버릴 수 없었다. 공부를 더하고 싶었던 운호스님은 다시 대만으로 갔다. 그러나 약하기 그지 없었던 몸은 공부하고자 하는 마음을 따라주지 않았다.
내가 정녕 출가사문일진대 내 모습을 보는 이나 내 이름을 듣는 이가 환희심을 내어야 마땅하다. 그런데 이렇게 병약하고 무능한 나를 보고 누가 신심을 낼 것인가? 나는 오히려 주위 사람들에게 걱정만 끼치는 존재가 아닌가? 이렇게 슬픈 생각에 잠겨 있던 스님은 때마침 대만에서 유행하고 있던 점찰법(占察法, 십악과 십선을 적은 윷 같은 모양의 목윤(木輪)을 던져 전생의 업을 알아보는 법)을 행하였다.
스님은 ≪점찰선악업보경≫에서 설한대로 지장보살의 명호를 열심히 부른 다음 목륜(木輪)을 던졌다. 그러자 살생업이 많다는 괘가 나왔다. 아, 살생을 많이 한 자는 몸이 약한 과보를 받는다고 했거늘 나의 몸이 약하고 자주 아픈 것이 전생의 업보라는 것을 왜 깨닫지를 못하였던고? 지금 내가 해야 할 것은 그 무엇보다도 죄업을 참회하여 업장을 소멸시키는 일이다. 출가한 후 10년 동안 제대로 기도 한 번 못하였던 지난날을 돌아보며 스님은 지장 기도를 할 것을 결심하였다.
그리고 그 방법으로 택한 것이 ≪지장경≫ 전문을 처음부터 끝까지 1번 독송을 하고, 나무지장 보살을 천 번 부른 다음 <지장예찬문>을 외우며 158배를 한다. 그리고 <지장예찬문> 끝부분에서 지장보살 천 번을 불렀으며 기간을 21일로 정하였다. 스님의 기도 목적은 업장 참회에 있었다.
그런데 막상 기도를 시작하자 원래의 기도 목적과는 달리 집안의 조상들이 꿈에 보이기 시작했다. 이에 스님은 7일 마다 한 번씩 간단한 음식을 마련하여 불보살님과 조상님 그리고 유주무주고혼(有主無主孤魂)들께 시식(施食) 공양을 올리기로 하였다. 그러자 첫 7일째 조상들이 흰 옷을 입고 공양을 받으러 오는 것이었다.
이에 두 번째 7일과 세 번째 7일에는 변식진언(變食眞言)을 외우며 영가들에게 공양을 올리는 것을 관상(觀想)하였다. 음식을 적게 마련하였을지라도 진언을 외우며 관상을 하면 부처님의 위신력에 의해 그 음식이 크게 늘어나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관상을 하여서인지 스님은 공양이 차츰 뷔페식으로 바뀌는 꿈을 꾸었다. 조상님들은 상을 차려 놓은 특별실에서 공양을 들고, 유주무주고혼들은 아주 큰 홀에서 뷔페식으로 공양을 하는 모습이 보이는 것이었다.
그리고 세 번째 7일날에는 모두가 음식을 먹고 천도가 되는 꿈을 꾸었다. 이렇게 스님은 영가천도라는 부수적인 가피를 입은 것이다. 가피를 입어 환희심이 가득하였던 스님은 기도 기간을 백일로 늘여 잡고 더욱 마음을 모아 기도하였다. 30일째 되는 날 스님은 또다시 꿈을 꾸었다.
스님은 지장보살께서 머물러 계신다는 어느 절로 들어가려 하였다. 그러자 우락부락하고 험상궂게 생긴 마구니, 요상하게 생긴 마구니, 심지어는 외국 비구니의 모습을 띤 마구니까지 입구에 일렬로 늘어서서 들어오지 못하도록 막는 것이었다. 이에 스님은 장삼을 크게 휘둘렀고, 그 순간 모든 마구니들은 땅바닥에 엎드리며 항복하였다.
스님이 당당한 걸음으로 절 문 안으로 들어서자 허공으로부터 소리가 들려왔다. 수각(水閣)에서 손을 씻어라. 말씀을 따라 수각에 들어가 손을 씻자 오른손을 씻은 물은 새까맣게 변하였고 왼손을 씻은 물은 반쯤 까만 회색빛이 되었다. 아! 몸으로 지은 신업(身業)이 소멸되었구나. 살생 등의 나쁜 짓을 주로 저지른 것이 오른손이었기에 그 씻은 물이 새까만 색, 왼손은 오른손을 도와 나쁜 업을 짓는 보조역할을 하였기에 그 씻은 물이 회색임을 깨달은 것이다.
이렇게 손을 씻고 신업의 소멸을 느끼고 나자 스님의 몸은 한없이 가벼워졌고 꿈 속에서 허공을 훨훨 날아다니게 되었다. 또 며칠이 지나 35일째 되는 날, 운호스님은 한국의 여러 스님으로부터 사미니계를 받는 꿈을 꾸었고, 65일째 되는 날에는 비구니계를 받는 꿈을 꾸었다. 이것이 자서수계(自誓授戒)이다. 불교의 여러 경전에서는 스스로가 지극한 정성으로 참회하고 발원하여 꿈속에서 불보살님으로부터 직접 수계를 받는 자서수계법을 설하고 있는데 운호스님은 이 법에 의해 수계를 받아 마친 것이다.
그리고 백일 기도를 회향하는 날, 스님은 참으로 의미심장한 꿈을 꾸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치료를 받는다며 노천온천이 있는 지하로 들어가고 있었다. 스님도 그곳으로 가고자 하였으나, 줄이 너무나 길어 어떻게 해야 할지 당황하며 서 있었다. 그때 마침 대만에서 함께 공부를 했던 비구니가 앞쪽에 서 있는 모습이 보였고, 그 비구니는 스님을 손짓하여 부르더니 자기 앞에 서도록 하였다.
마침내 노천온천으로 들어 순서가 되었을 때 대만 비구니는 온천물 속으로 들어갔다. 그러나 운호스님은 왠지 모르게 많은 사람들이 누워 있는 물 속으로 들어가기가 싫어 밖에서 서성거리고 있었다. 스님은 주위를 살피다가 조금 떨어진 반석 위에 까만 옷을 입고 앉아 계시는 아는 처사님을 발견하였다. 처사님은 8년 동안 지장기도를 한 분이었다. 스님은 그분 앞으로 가서 아래의 옷을 모두 벗은 다음 쭈그리고 앉았다.
처사님은 스님의 입 바로 밑 쪽을 한동안 바라보다가 말씀하셨다. 여기에 악귀가 붙어 있노라. 그리고 여드름을 짜듯 두 손가락으로 입 밑을 누르자 고름이 양쪽으로 뻗어나가는 것이었다. 이제 되었다. 앞으로는 삿된 생각만 조심하면 되느니라. 운호스님은 그 말씀 끝에 입으로 지은 구업(口業)이 소멸되었음을 느꼈다. 또한 삿된 생각만 조심하라는 것은 의업(意業)을 조심하면 된다는 깨우침이었다.
환희로움이 온 몸을 감싸고 도는 것을 느끼면서 스님은 벗어 놓은 옷을 입은 다음, 허공을 날아 2층 건물의 옥상에 올라섰다. 그곳에는 스님보다 키가 두 배나 큰 분이 넷이나 있었다. 그때 건물 아래로부터 스님을 찾는 대만 비구니의 음성이 들려왔다. 운호스님, 운호스님 …. 저 여기 있어요. 잘 가요. 서로가 인사를 하며 헤어지는 순간 운호스님은 꿈에서 깨어났고, 백일기도 또한 마쳤다.
그런데 참으로 신통한 변화가 일어났다. 기도 전까지는 경전을 보고 있으면 내용이 분명히 다가오지 않았으나, 기도 후부터는 내용이 너무나 명확하게 이해가 되는 것이었다. 예를 들면 기도 후 스님은 아미타불의 정토 신앙을 믿기 시작하였는데, ≪아미타경≫ 등을 읽으면 삽화가 그려져 있는 동화책을 보듯이 극락 세계의 여러 모습들이 그대로 펼쳐져 보이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경전의 내용이 저절로 이해가 되지 않을 수 없었다. 그야말로 총명득력(聰明得力)! 총명의 능력을 얻은 것이다. 그리고 그토록 잔병치레를 많이 하였던 몸도 그 누구보다 건강하여졌다.
이후 스님은 인도로 가야겠다는 생각이 불현듯 일어나 인도로 떠났고, 그곳에서 도력이 매우 높은 티벳의 고승들을 만나 그 분들의 지도 아래 현재 용맹정진하고 계신다. 스님의 원래 목적은 업장 소멸에 있었고, 처음에는 21일 동안만 기도를 하고자 하였다. 그런데 기도를 시작하자 생각지도 않았던 조상들이 나타났고, 이에 스님은 영가 천도를 해주고자 하였다. 영가들이 지장보살의 가피를 입어 좋은 세상으로 나아가는 것을 관상(觀想)하면서 시식을 행한 결과 많은 영가들이 가피를 입어 삼칠일(21일)만에 모두 천도 되었다.
신심이 크게 일어난 스님은 21일 기도를 백일기도로 연장하여 더욱 열심히 매진한 결과 꿈에서 사미니계와 비구니계를 받는 자서수계를 성취하였으며, 몸으로 지은 죄업인 신업(身業)이 소멸되는 꿈과 입으로 지은 구업(口業)이 소멸되는 가피(加被)를 입었다. 앞으로는 삿된 생각만 조심하면 된다는 말씀과 함께….
이렇게 신업과 구업이 소멸되자 스님에게는 건강과 총명이 가득하여 졌고, 공부를 잘할 수 있는 길도 저절로 열렸던 것이다. 곧 백일지장기도를 통하여 영가 천도, 업장 소멸, 자서 수계, 총명 득력, 건강 및 새로운 스승을 만나 향상의 경지로 나아가는 가피까지도 모두 얻은 것이다. <출처 생활 속의 지장기도/김현준(불교신행연구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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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식진언(變食眞言)
아난이 조용한 곳에 혼자 앉아 있었는데 한밤중에 염구 아귀 하나가 입에서는 불을 뿜고 목구멍은 바늘 끝 같은 모습으로 나타나서 이렇게 말하였다. 그대가 삼일 뒤에는 죽어서 이리로 오게 될 것이다. 아난이 걱정이 되어 말하였다. 어떤 방편을 써야 면할 수 있겠는가?
아귀가 대답했다. 그대가 내일 백천 나유타 항하사 수효의 아귀와 백천 바라문 선인들에게 보시하되, 마가다국에서 쓰는 말(되)로써 그 모두에게 한 말씩의 음식을 보시하고 또 우리들을 위해 불법승 삼보님 전에 공양을 하면 그대의 수명은 연장되고 우리들은 아귀의 고통을 면하고 하늘 세계에 태어나게 될 것이다.
아난이 부처님께 이 사실을 아뢰니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겁내지 말라. 내가 방편으로써 무량위덕(無量威德) 자재광명(自在光明) 승묘력(勝妙力) 변식진언(變食眞言)을 말해 주리니 한량없는 아귀들을 배부르게 하며 또 한량없는 바라문 선인 등에게 최상의 음식을 공양하되 모두가 마가다 나라에서 쓰는 말로 칠칠말의 음식을 받고 모두가 괴로운 몸을 벗어나서 하늘에 태어나게 할 것이니라. 아난아, 네가 이제 이 주문을 받아 지니면 복덕과 수명이 모두 늘어나리라. 주문은 곧 이러하니라.
나막 살바다타 아다 바로기제 옴 삼바라 삼바라 훔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어떤 사람이 수명과 복덕이 늘어나고 번영하기를 바라거든 매일 아침이나 또는 아무 때나 관계없이 깨끗한 그릇 하나에다 맑은 물을 담고 거기에다 국수나 떡이나 밥 등을 조금 띄워서 오른 손에 들고 위의 다라니를 일곱 번 외운 뒤에 다음의 네 부처님의 명호를 부를지니라.
“나무 다보여래, 나무 묘색신여래, 나무 광박신여래, 나무 이포외여래"
다보여래의 명호를 부르면 여러 아귀들의 여러 생 동안의 간탐업을 소멸하고 복덕이 원만해지며,
묘색신여래의 명호를 부르면 여러 아귀들의 추악한 모습이 사라지고 모습이 원만해지며,
광박신여래의 명호를 부르면 여러 아귀들의 목구멍이 커지고 편안해져서 음식을 흡족히 받으며,
이포외여래의 명호를 부르면 여러 아귀들의 두려움이 없어지고 아귀의 길을 벗어나느니라.
이렇게 네 부처님의 명호를 부른 뒤에 손가락을 땅을 향하여 일곱 번 튕기고 이어 밥과 물을 깨끗한 곳에 부어 버릴지니 이렇게 시식을 하면 낱낱 아귀 앞에 낱낱이 마가다 나라의 말(되)로 일곱 말의 음식이 놓여져서 모두가 배불리 먹고 아귀의 몸을 벗어나리라. 아난아, 어떤 비구 비구니 우바새 우바이가 항상 이 진언과 네 부처님의 명호를 염송하고 밥을 베풀어 시식을 하면 백천 부처님께 올린 공덕과 마찬가지로 수승하며 수명과 복이 늘고 건강도 좋아지리라. [구발염구아귀경]
이와 같이 부처님은 우리에게 복을 지을 수 있는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매일 아침이나 점심 저녁 아니면 매 끼니마다 복 짓는 수행을 할 수 있습니다. 다음은 수행하는 방법입니다.
1. 식사 때에 따로 작은 그릇 하나를 준비합니다.
2. 그릇에 깨끗한 물을 조금 담고 밥알을 2알 내지 3알을 떼어 놓습니다.
3. 식사를 마치고 오른손으로 그릇을 받쳐 들고,
4. 변식진언을 7번 외웁니다.
이 때 밥이 변해서 태산같이 많아지는 상상을 하시고 그것이 온 우주 법계에 가득 차는 것을 상상하시면 좋습니다. 상상이 안되는 분은 "이 밥이 변하여 모든 아귀가 배불리 먹을 수 있도록 많아져라." 하시면 됩니다.
5. 네 분 부처님 명호를 한번 부릅니다.
6. 손가락을 꿀밤 때리듯이 땅을 향하여 가볍게 일곱 번 튕깁니다.
7. 마당이 있는 집에서는 정갈한 곳에 부어 줍니다.
아파트인 경우에는 배란다나 부엌 등 정갈한 곳에 두었다가 다음 식사를 하기 전에 씽크대에 붓던지 먹어도 상관 없습니다. 가족이 같이 식사할 때는 각자의 밥에서 2~3알을 떼어서 하시고 변식진언은 혼자하셔도 됩니다. 매일 실천하시어 복을 지으시기 바랍니다. <출처 :법해사(法海寺) 글쓴이 : 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