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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개혁을 기념하며
갈라디아서 6:14,15,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는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 할례나 무할례가 아무 것도 아니로되 다만 새로 지으심을 받는 것만이 중요하니라
오늘은 교회 절기상 종교개혁기념일입니다. 이 날은 1517년 10월 31일에 독일의 비텐베르크 성당의 수도사였고 교수였던 마르틴 루터가 당시에 독일과 각처에 교황이 지시하에 이루어진 면죄부 판매가 비성경적이고 부도덕하고 부패한 일이라고 지적하면서 95개조의 반박문을 비텐베르크 성당 게시판에 게재한 날을 기념합니다. 애초에 이 95개조의 반박문은 당시 학자들, 성직자들, 교수들 간에 토론 주제로 제출하여 라틴말로 써 있었습니다. 하지만 당시 비테베르크에 의하여 금속 인쇄술이 보편화되어 그 95개조 항의문은 독일어로 번역되어 대량 인쇄되어 순식간에 널리 퍼져가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그 동안 로마 교황의 타락한 지배 아래 시달리던 독일 농민들과 많은 세금과 과중하고 잘못된 헌금 강요와 부패하고 왜곡된 교리로 인하여 어두워졌던 신앙 양심들이 일시에 깨어나기 시작했습니다. 그 당시 타락한 신부드리 로마 교황의 승인 아래 전 유럽에 다니면서 면죄부를 판매하는 악한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면죄부를 돈을 주고 사면 그것으로 인하여 모든 죄가 다 사해지고 심지어 죽은 그들의 부모들까지도 연옥의 불꽃 가운데 건져져서 천국에 들어간다고 하는 거짓 교리를 선포한 것ㅇ비니다. 이로 인하여 면죄부를 많은 돈을 주고 사면 그 판대 대금이 부패한 자들과 교황청으로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이 일로 인하여 신앙인들도 분노하고 있던 차에 수도사였던 마르틴 루터가 공개적으로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으심으로 인하여 죄사함을 받으며 진실한 참회로써 사죄함을 받는다는 성경적 진리를 확고하게 선언하면서 면죄부 판매의 부당성을 강력하게 제기한 것입니다. 이를 계기로 독일 사회 전체가 거대한 종교 개혁의 불씨를 날라 퍼뜨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리하여 불과 얼마 안되어 독일의 수많은 지성인들과 제후들, 농민들이 합세하여 마침내 로마 교황이 이끄는 중세 교회의 부패와 부패한 독일 황제 권력과 맞서 싸우기 시작했습니다. 마침내 “오직 성경, 오직 믿음, 오직 은혜”라는 종교 개혁의 슬로건처럼 교회는 성경의 신앙으로 회복되고, 사회는 시민적 자유와 평등이 회복되고, 민족과 나라들이 자유로운 결정권을 가진 독립 국가로 세워지는 게 결정적 전환점이 되었던 것입니다. 물론 개혁의 성과가 단 한번의 항의문 부착의 행동만으로 이루어진 것은 아닙니다. 로마 교황청과 독일 황제의 끊임없는 협박과 회유와 파문과 죽음의 위협과 맞서 루터와 함께하는 많은 뜻있는 사람들과 민중들이 하나가 되어 굳세게 계속 행동하여 얻은 결과입니다. 때로는 칼을 가지고 싸우는 무력 전쟁도 동원되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렇게 양심과 성경의 진리를 지키고자 목숨을 내놓았던 마르틴 루터와 존 칼빈 그리고 뜻을 같이 했던 제후들과 성직자들, 진실한 하나님의 사람들의 뜨거운 개혁 의지가 있었기에 마침내 시간이 흘러 종교개혁이 완성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렇듯 하나님은 각 시대의 황혼 때마다, 종교적 어둠과 지성의 황혼과 사회적 혼란이 깊어지고, 인간성이 짐승의 마음을 닮아 흉포화되고 인간됨을 상실할 그 때마다 하나님의 사람들을 일으키어 그 시대의 새벽을 열곤 하였습니다. 로마 제국의 말기에 세상이 그 생명력을 잃어가고 교회가 이단과 사이비로 길을 잃어갈 때에, 저 아프리카 북부 리비아 출신인 어거스틴이라는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을 통하여 성경의 은혜 신앙을 세상에 밝히 드러내었습니다. 천년의 중세의 부패와 영적 어둠을 루터와 캘빈을 통하여 다시 새벽의 아침으로 밝혔습니다. 또 다시 교회가 침체되고 세속화의 도도한 물결이 세상을 덮을 때에 영국의 청교도 운동과 미국의 요나단 에드워드라는 걸출한 인물들을 통하여 영적 각성이 일어나게 해주셔서 교회를 다시 살려주셨습니다. 그런데 다시 지금은 영적 갱신의 필요성이 절실한 때가 되었습니다.
오늘날 20세기를 거쳐 21세기에 이르렀는데, 세계는 두차례에 걸친 참혹한 세계 대전과 대량산업화와 정보화 시대의 극심한 변화를 경험했습니다. 세계화를 통하여 모든 나라가 밀착된 가운데 기독교 신앙의 영향력은 점점 퇴조하는 있는 추세에 있습니다. 세속 문화의 대유행 속에서 교회의 신앙적 색채도 많은 영향을 받고 교리에 기초한 신앙보다 감정적인 신앙, 체험적 신앙으로 나아가면서, 기초가 없이 표류하고 있는 추세에 있습니다. 미국의 대형 교회들 속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죽으심과 부활의 신앙의 기초는 약화되고 다른 종교들도 다 신실하게 믿으면 구원에 이를 수 있다는 종교 다원주의가 깊숙이 파고들어 있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가 없는 기독교가 미국 교회 안에 많이 퍼져 있습니다. 그리고 세상의 풍조가 하나님의 말씀의 교훈보다 더 강렬한 힘을 발휘하고 있습니다. 세상의 풍조가 허용하면, 동성애도 좋고, 이혼도 좋고, 불륜도 좋고, 거짓과 사기로 떼돈만 벌어도 좋고, 나의 성공을 위해서라면 얼마든지 음모를 꾸며서 상대방을 함정에 빠뜨리고 인신공격과 비방을 해도 상관없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그들은 다 자기가 감리교인임을 자랑하고 자기가 교회의 전통을 지키고 교회의 수호자인 척 선전하며 한 표를 부탁하고 있습니다.
어찌 미국과 유럽뿐이겠습니까? 우리나라도 기독교인이라고 자처하면서도 자기의 동성애를 숨기지 않고 방송에 버젓이 나와서 자랑스럽게 커밍아웃을 자랑합니다. 드라마와 토크쇼에서 동성연애가 아무런 반감없이 나오고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동성연애자들의 에이즈 감염률에 대하여서는 철저히 함구합니다. 설상가상으로 교회의 수가 많아지고 목회자들의 수가 많아지고 그들에게 이런 저런 종교 권력과 문화 권력이 쥐어지면서 타락의 모습들이 사회면 기사에 한 달이 멀다 하고 뜨고 있습니다.
얼마 전에는 통합측 총회장이 성 비위 사건에 연루되어 언론에 오르내리더니 어제 어느 방송사에서 ‘피디수첩’이라는 프로그램에서 다락방의 타락한 목회자들이라는 제목으로 저 부산의 다락방 전도파의 총재 목사인 류광수 목사와 다락방 목회자들의 다수의 타락상이 고발되고 있습니다. 그들은 룸살롱에 드나들고 성매매를 하고 신도를 유린하는 악행을 저질렀고 이에 100여명의 목회자가 탈퇴 성명서를 내며 내부의 문제점을 고발하였습니다. 이 교단은 이미 기독교 다수 교단에서 사이비성 교리가 있다고 지적한 바 있었고 기존 교회들에 내분을 일으키는 주범으로 지목되곤 했습니다. 그런데도 전도의 열성을 내는 교단이라 하여 저는 잠시 다락방 소속 교회에 대하여 구원의 은혜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드러난 결과와 더 자세한 타락의 이유를 교리적으로 좀 더 들여다 보게 되었는데, 그 교리는 곧 구원파 교리와 비슷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복음의 은혜로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모든 죄가 다 사해졌기 때문에 이제 모든 죄는 다 용서받을 수 있다고 보고 죄를 가볍게 여기는 것입니다. 그들은 십자가의 은혜를 남용하면서 자기들의 범죄를 가리는 것으로 오용하며 종교 권력을 자기의 쾌락을 얻는 일에 사용했던 것입니다. 이러한 사이비와 이단의 가르침이 횡행하는 중에 기존 교회 역시 사회의 신뢰를 많이 잃어버린 상황이 현재의 교회의 상황입니다.
그래서 현재의 한국 교회는 양적 성장만을 추구해온 방향성을 재고하고 확고한 성경적 신앙 교리를 고수하는 동시에 거대한 탁류의 강물이 되어 이 시대를 강타하는 세속화의 물결과 맞서서 거룩한 성결을 지켜가야 하는 영적 쇄신이 절실한 절박한 전환점에 서 있다고 할 것입니다. 말하자면 제 2의 종교 개혁과 같은 영적 쇄신이 필요한 때라고 할 것입니다.
오늘날 이단과 사이비들이 창궐하고 세상의 세속화의 물결이 교회 안팎을 흔들고 있는 이 때에 나라는 지속된 북핵 문제와 전쟁의 위기감이 점점 커지고 있고, 국내 사회적으로 마약이 도처에 퍼지고 있고 사회 갈등과 세대 갈등 정치 갈등이 치유하기 어려울 정도로 극심해진 상황입니다. 청년 실업율이 여전히 높고 출산률은 세계에서 최악 상태인 까닭에 나라의 미래가 매우 어두운 상황입니다.
이러한 가운데 올해 7월 18일에는 법원에서 동성애 커플의 건강보험 피부양자 자격을 인정하는 판결을 내렸습니다. 이제 동성애자의 결혼이 합법이 되는 판결이 멀잖아 현실화될 것이 눈앞에 다가온 것입니다. 그렇게 된 선진사회에의 경우를 보면 결국은 다양한 성을 인정하게 되어 미국이나 유럽처럼 자기가 남자라고 생각하는 여성은 아무런 생물학적인 수술 없이도 여자는 남자로 인정받게 될 것입니다. 남자가 자기를 여자로 생각한다면 그는 이제 여자 목욕탕을 아무런 제재없이 들어갈 수 있습니다. 실제로 서구에서 자기를 여자라고 말하던 성전환자가 여자 감옥에 들어가서 많은 여자들을 성폭행한 일이 일어나기도 했습니다.
이런 일들이 우리나라에서도 이제 자연스럽게 일어나서 초등학교에서 선생님들이 아이들에게 이상한 것을 가르치는 것이 강요될 것입니다. 만약 동성애는 성경에서 금한 죄악이라고 설교하면, 성적 지향을 차별하는 설교를 했다고 하여 그 설교자는 법 위반으로 고발을 당하고 감옥에 가는 일이 머잖아 발생하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 우리는 이 거대한 혼란의 와중에서 정신을 차리고 바르고 참된 신앙의 길을 잘 헤아려서 우리 자신이 새롭게 되어야 하고 그 새로워진 신앙과 양심을 따라 행동해야 할 시점에 와 있습니다. 세상을 탓하며 비난과 비판만을 하며 거리를 두는 태도나 나만 홀로 의롭고 거룩하면 된다는 생각도 버려야 하겠습니다. 그렇다고 세상을 향하여 분노하면서 나 자신을 돌아보지 않고 내가 쇄신되지 않은 상태에서 힘을 과시하면서 세상을 압박하는 태도도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가장 올바른 갱신의 길은 우리 자신이 안으로부터 성령, 말씀으로 새로워지는 것입니다.
성령을 받고 시작된 예루살렘의 초대 교회는 그 성도들의 숫자가 얼마 되지 않았으나 예루살렘과 유다와 인근 이방 지역의 사람들에게 칭찬을 받고 그리스도인들이 되려는 구원받는 자의 수가 날마다 더해졌습니다. 이는 그들이 매력 있는 사람들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들 속에는 작은 천국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종교적인 외양보다는 내적인 아름다움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가 읽었던 사도 바울이 갈라디아 교회 성도들에게 했던 말씀이 그러한 핵심을 담고 있습니다.
“할례나 무할례가 아무 것도 아니로되 오직 새로 지으심을 받은 것만이 중요하니라”(갈라디아서 6:15)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우리의 자아가 죽고 옛 사람이 죽고 내 안에 성령으로 새 사람이 살아나고 그리스도와 함께 세상에 대하여 죽고 세상도 내게 죽어서 새로워진 마음과 삶의 모습으로 세상을 새롭게 살리는 삶을 살아간다면 우리는 이 시대의 루터와 그의 친구들이 행한 것같이 거대한 변화를 일으킬 수 있을 것입니다. 세상의 어두움을 걷어내고 새 시대의 영적 쇄신과 사회의 갈등과 혼란을 가라앉히고 자유와 평등과 사랑과 활력으로 새롭게 하고 하나님을 기쁨으로 섬기며 사람들을 살리는 이 시대의 동력으로 주님의 교회들과 우리들이 쓰임받을 수 있을 줄 믿습니다.
이를 위하여 우리 모두 다시 한번 앞서간 믿음의 선진들처럼 목숨을 다해 고수한 하나님 제일주의 신앙을 가집시다. 오직 우리의 구주는 예수 그리스도 한 분뿐임을 확고하게 믿읍시다. 과거에 우상 앞에 절하면 풀부불에 던져넣겠다는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의 서슬퍼런 위협에도 불구하고 자기들은 하나님 한분만을 섬기며 우상 앞에 절하지 않겠다고 담대하게 고백하였던 다니엘의 세 친구처럼 우리 믿음을 초지일관 지킵시다.
주기철 목사님이 감옥에 있을 때에 그 어머니와 아내와 막내 아들을 초대하여 기름진 음식을 차려놓고 먹으라고 하면서 감옥에서 나가면서 평양의 신사 앞으로 지나가면서 차문을 열고 그저 고개만 까딱하고 지나가면 평안히 집으로 돌아가게 해주겠라고 달콤하게 유혹했을 때에 주 목사님은 이 제안을 단호히 거절함으로 즉시 가혹한 매를 심히 맞고 그 앞에서 그의 아내를 욕보임을 당하고 끝내는 감옥에서 고문을 당하하고 순교하였습니다. 그리하여 그의 거룩한 싸움은 마침내 승리하셨습니다. 이처럼 우리도 우리의 생명을 다 걸고 우리 믿음을 지켜갑시다.
우리가 사실 하나님의 은혜로 그 어느 때보다 잘 먹고 잘 살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국민 개인 총 소득이 36,132달러로서 대만보다 일본보다 더 많은 수준에 올랐습니다. 박정희 대통령 집권 초기 60년대에 우리나라 국민 개인 소득이 70달라였습니다. 천지가 개벽할 정도로 우리는 잘 살게 되었습니다. 나라의 지도자들이 열심을 내었고 국민들이 한 마음 한 뜻되어 잘 살아보자고 해서 이렇게 경제적으로 국가적으로 발전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너무 욕심을 부리지 맙시다. 더 잘 사는 사람들을 부러워하면서 서두르지 맙시다. 감사하면서 자족하면서 썩어질 것을 위하여 살지 말고 썩지 아니할 양식을 위하여 일하라고 하신 주님의 교훈을 생각하면서, 우리의 영적 양식을 쌓는데 힘을 다합시다. 주님께서 친히 이르시기를
“나의 양식은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며 그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이것이니라”(요한복음 4:34)
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도 주님을 본받아 주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항상 헤아려 찾고 그 일을 내 삶 속에서 이루려고 하는 거룩한 부담을 가지고 살아갑시다.
아무리 세상적으로 성공할지라도 도덕적으로 타락하고 세상의 손가락질과 비난을 받으면 결국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는 신세가 됩니다. 나 때문에 드높아져야 할 주님의 이름이 도리어 비난의 대상이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아무리 성공한다 해도, 권력과 재물과 인기가 과분하게 주어진다 해도, 그것을 가지고 내 욕망과 내 자랑과 나의 쾌락을 위하여 사용하는 자가 되지 않도록 자기를 끊임없이 쳐야 하겠습니다. 우리의 십자가 대속의 은혜는 죄를 가리는 용도로 주신 것이 아니요 사랑으로 섬기라 주신 것입니다. 죽을 각오로 죄와 싸워 끝까지 성결을 지키내는 자가 됩시다.
그리고 세상의 희망을 주는 사람으로 살아갑시다. 어떤 고난과 역경을 만나더라도 하나님을 믿고 그가 우리를 도와주신다는 약속을 굳게 붙잡고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일어나 믿음으로 끝까지 저항하여 승리하는 자가 됩시다. 인생은 결코 아무렇게나 내던져진 무의미한 존재가 아닙니다. 우리 하나님께서는 풀 한포기도 입히고 하늘의 새 한 마리도 먹이시고 우는 까마귀 새끼 한 마리의 울음소리에도 귀를 열고 들으시는 분이십니다. 그가 친히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써 값주고 사신 우리를 어찌 그냥 내버려두시겠습니까? 그는 우리의 머리카락까지 다 세시고 아시는 분이십니다. 그가 친히 우리를 버리지 아니하시고 결코 떠나지 아니하겠다고 약속하셨으니, 하나님을 굳게 믿고 아무리 험악한 상황을 맞이하더라도 소망을 품고 세상을 살아냅시다. 그리할진대 우리를 통하여 세상은 매력은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세상은 죄악을 부끄러워하게 될 것입니다. 사람들은 희망이라는 단어를 다시 입에 올리기 시작할 것입니다. 다시금 교회에 눈을 돌리게 될 것이며 이 나라가 거룩하게 되고 다시 일어나게 되고 주님이 함께하시는 나라가 되어 세상을 바꾸는 거룩한 변화의 물결이 온 세계로 퍼져나가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