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함안지역유적 답사- 생육신 조려(趙旅)의 유적 2013. 3. 2
함안 서산서원 위치도
경남 함안군 군북면 원북리는 조선 초 생육신의 한 사람인 조려(趙旅, 1420-1489)가 태어나고 여생을 보낸 곳이다. 조려(趙旅)는 단종을 위하여 수절한 생육신(生六臣)의 한 사람이다. 본관은 함안(咸安)이며, 호는 어계(漁溪)이다. 조려(趙旅)는 단종 원년(1453년) 진사시(進士試)에 합격하여 성균관에서 수학하고 있을 때 수양대군(首陽大君)이 왕위를 찬탈(簒奪)하자 절의(節義)를 지키기 위해 이곳 함안으로 물러나 죽을 때까지 그의 호 어계(漁溪)의 함의(含意)와 같이 낚시와 소요(逍遙)로 은거(隱居)하며 단종을 연모(戀慕)하였다. 어계고택과 채미정, 그리고 서산서원 등 마을 곳곳에는 그의 자취가 남아 있다.
서산서원 앞 연당과 다리
서산서원 솟을 대문으로 된 출입문
이러한 어계의 삶을 함안사람들은 중국 주(周)나라 때 불사이군(不事二君)의 충신인 백이(伯夷)와 숙제(叔齋)에 비유하여 원북리 뒷산인 서산(西山)을 백이산(伯夷山)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어계 조려선생의 고택
숙종 15년(1689년)에 단종이 복위되면서 어계 또한 이조참판(吏曹參判)에 증직(贈職)되었고, 숙종 29년(1703년)에는 경상도 유생 곽억령(郭億齡)에 의해 어계사당(漁溪祠堂)이 세워졌으며, 숙종 39년(1713년)에는 '서산서원(西山書院)'이라는 사액(賜額)을 받았다.
어계 조려선생이 낚시질했던 시냇가
<어계고택(漁溪古宅)의 원북재(院北齋)> 어계고택은 마을 안으로 깊숙이 들어서면 있는데, 현재 후손들이 재실(齋室)로 사용하고 있다. 어계고택(漁溪古宅)은 경상남도 유형문화재(有形文化財) 제159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대문채와 원북재(院北齋)라 불리는 재실(齋室), 그리고 사당(祠堂)인 조묘(祧廟)로 구성되어 있다.
어계 조려선생 고택의 출입문인 솟을대문 위에 있는 정려
원북재라 불리는 재실
원북재(院北齋) 왼쪽 담장 가에는 수령(樹齡) 약 500년, 수고(樹高) 20m, 둘레가 3.4m 넘는 커다란 은행나무가 보호수(保護樹)로 지정되어 있다. 가을이 되면 노란 은행 단풍이 원북재(院北齋) 앞뜰을 가득 덮어 고택의 정취를 한층 느끼게 한다고 한다.
수령 500년의 은행나무
원북재(院北齋)는 정면 3칸 측면 2칸의 '一'자형 평면 팔작지붕집인데, 중앙 2칸은 넓은 대청마루이고 좌우는 툇마루가 있는 온돌방이다. 부엌이 따로 없는 것으로 보아 살림집으로 사용되었기보다는 별채이거나 사랑채였을 것으로 여겨진다. 한편 원북재 뒤편에는 조묘(祧廟)가 위치하고 있다. 원북재는 사람이 살고 있지 않은 탓인지 몰라도 관리가 제대로 되어있지 않아 정돈되지 못하고 퇴락(頹落)해 보여 안타까웠다.
사당인 조묘 어계고택은 건물의 형태가 비교적 단순(單純)하고 검약(儉約)한 편으로, 전형적인 조선 후기의 평범한 민가 양식을 띠고 있다. 이는 어계고택이 어계 선생 생전 당시의 건물이 아니고 시대가 한참 지난 후인 조선 후기에 다시 지어졌기 때문인 것으로 생각된다. <생육신을 배향(配享)한 서산서원(西山書院)> 이 서원은 단종 선위(禪位)에 즈음하여 절의(節義)를 지킨 어계(漁溪) 조려(趙旅) 선생이 은둔(隱遁)하였던 이 곳 백이산하(伯夷山下)에 영남 유림(儒林)들이 생육신(生六臣) 어계(漁溪) 조려(趙旅)의 충절(忠節)을 찬양하고 덕의(德義)를 존모(尊慕)하여 영세의 절향지소(節鄕之所)로 삼고자 1703년 숙종 때 창건하였다. 1713년 숙종, 계사년(1713) 서산서원(西山書院)으로 사액(賜額) 되었고, 서산(西山)으로 사액(賜額)한 것은 서원의 동쪽에 백이산(伯夷山)이 있고 생육신이신 조려(趙旅), 이맹전(李孟專), 원호(元昊), 김시습(金時習), 남효온(南孝溫, 성담수(成聃壽) 여섯 분 선생의 절의(節義)가 백이(伯夷)ㆍ숙제(叔齊)에 비견된다는 것이다.
서산서원 강당
서산서원의 출입문
육각정
그러나 이 서원은 고종 신미년(1871)서원철폐령에 의해 훼철(毁撤)되었다. 113년이 지난 후 1980년 정부에 의한 보조와 사림(士林)과 후손들의 성금(誠金)으로 1984년에 사우(祠宇), 강당(講堂), 재료(齋寮), 문(門), 원장(垣墻) 등을 빠짐없이 복원하여 생육신의 절의를 기리고 있다.
생육신 여섯분의 공적을 기록한 비
충의사로 들어가는 경앙문
생육신 여섯분을 배향하는 충의사
<어계(漁溪)의 곧고 맑은 충정(忠貞) - 채미정(采薇亭)> 채미정(采薇亭)은 어계고택(漁溪古宅)으로 들어가는 마을 입구 바로 길가에 있다. 흥선대원군에 의해 서원철폐령이 내려짐에 따라 서산서원이 훼철(毁撤)될 때 서원의 부속정자였던 채미정만 홀로 남았는데, 이 또한 한국전쟁 때 소실되었다가 근래에 복원되었다.
채미정과 연당
청풍대와 문풍루
채미정이란 이름은 주나라 백이伯夷)(와 숙제(叔齊)가 수양산(首陽山)에서 고사리만 캐먹으면서 살았다는 고사(古事)에서 유래하였다. 예전에는 솟을삼문을 지나 작은 연당(蓮塘)을 건너 채미정에 오를 수 있었는데, 솟을삼문 앞으로 철길이 지나가면서 지금은 정자를 둘러싼 담장 왼쪽에 만든 작은 쪽문으로 들어갈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채미정 전경
정면 4칸 측면 4칸으로 이루어진 채미정은 정면 2칸 측면 2칸의 방이 한가운데를 차지하고 있으며, 나머지는 모두 툇마루로 되어 있습니다. 겹처마 팔작지붕의 처마 밑에는 '百世淸風(백세청풍)'이라고 쓴 현판이 걸려있는데 글 내용은 어계의 곧고 맑은 충정(忠貞)을 상징하고 있다.
채미정
채미정과 붙어 있는 언덕 위를 청풍대(淸風臺)라 부르고, 이곳에는 문풍루(聞風樓)란 육각정이 있다. 더운 여름날 이곳에 앉아 있으면 한줄기 청아한 바람이 온몸에 젖은 땀을 말끔히 씻어낸다고 합니다.
문풍루
|
첫댓글 언제 청풍루까지 올라갔노? 부지런히 하셔....본곳이 하도 많아 정리가 안 되었는데
윤중께서 이렇게 자세히 써주니 조금 정리되어가네 ...수고많았네...지금 I pad로 글쓴다
초남 몸도 불편한데, 언제 우리11회
카페에 들어와서 댓글까지 달았나? 고맙네...
그것도 <아이패드>로 글을 썼다니 놀랍네!!
잘보이지도 않을 텐데 말이야...
좋은자료 자세히 안내 해 주어 고맙네...
현장에서 보는듯한 설명과 함께 사진 잘 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