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잔 차의 숲 속의 사원
왓 바퐁을 찾아 떠나다 (1)
글 | 김형근 (본지 편집인)
왓바퐁 입구
태국에서 가장 유명한 지역은 방콕과 치앙마이이다. 한국인 관광객들에게는 방콕, 파타야와 푸켓인지도 모르겠다. 나는 2017년부터 태국 방콕을 비롯하여 아유타야, 수코타이 등 불교유적지와 치앙칸이라는 조그만 도시, 그리고 꽈이강의 다리로 유명한 콰이 지역을 가 보았다. 치앙마이는 아직 방문하지 못했다.
이런 지역들 외에도 불교인들에게는 꼭 방문해야 할 지역으로는 아잔 차 스님의 활동하던 ‘우본랏차타니 주’이다. 이곳은 이산이라는 지역의 한 곳이다.
나는 설날인 2019년 2월 5일 인천공항에서 출발하여 태국 방콕에 도착하여 하루 밤을 지낸 다음 수완나품 공항에서 아잔 차 스님의 활동무대였던 ‘우본랏차타니’ 공항으로 가는 비행기를 타고 갔다. 비행 시간은 1시간 남짓했다. 먼저 이 지역에 대한 소개 글을 인터넷 검색으로 소개한다.
이산
태국 동북부에 있는 지역으로 공식적으로는 "동북 지방"(ภาคตะวันออกเฉียงเหนือ) 이라고 한다. 지리적으로는 산맥을 사이에 두고 태국 본토와 떨어져 있으며, 동쪽의 라오스처럼 메콩 강 수계에 속한다. 면적은 약 17만 km², 인구는 약 2200만 명 정도이다. 주요 도시로는 나콘랏차시마(코랏)와 콘깬, 우돈타니, 우본랏차타니 등의 도시가 있다. 경제적으로는 산업화에 뒤쳐지는 바람에 태국에서 가장 낙후된 지역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있고, 메콩강 수계에 속하기는 하지만 생각보다 농사짓기 좋은 환경이 아니다보니 홍수와 가뭄이 자주난다. 경제개발 과정에서 많은 이산인들이 돈을 벌려고 방콕이나 파타야 등으로 흘러가면서 저임금 노동자로 일했기 때문에 인구수는 상당하지만 태국 내에서 가난뱅이의 동네라면서 무시받는 경향이 강하다. 그래도 21세기 이후로는 탁신의 절대 지지지역으로 탈바꿈되면서 태국 정치판에서는 전혀 무시할 수 없는 동네이기도 하다. 다만, 1980년대와 90년대에는 친 군부 성향의 정당을 지지하는 경향이 상당하기는 했다. 과거에는 라오스의 란쌍 왕국에 속했던 지방으로, 태국 다른 지역과 달리 라오스랑 비슷한 문화를 가지고 있다. 가령 먹는 쌀부터가 태국 본토가 아닌 라오스처럼 차진 쌀을 먹고, 이 지역의 언어(사투리)인 이산어도 중부 태국어보다는 라오어와 가깝다 과거에는 라오 문자가 사용되기도 하였으나 태국 정부의 동화 정책으로 인해 현재 이산어는 태국 문자로 표기되고, 이산인들도 라오스가 가난하고 별 볼일 없는 나라이기 때문에 대다수가 태국인으로써의 정체성을 지니고 있다.
이산지역
우본랏차타니는 태국 이산 지방 남동부에 있는 도시이다.
줄여서 ‘우본’이라고도 한다. 이름은 '연꽃이 만개한 왕의 땅'을 의미한다. 우본은 우본랏차타니 주의 행정 중심이다.
우본의 2000년 인구는 106,552명이다. 이산(I-San)에서 가장 넓은 지역으로 방콕에서 629㎞ 떨어진 곳이다. 이 지역은 크메르 제국의 일부였다. 18세기 후반 이전에 이 지역은 분명히 시암 또는 아유타야 왕국의 바깥쪽이었다.
1767년에 아유타야가 멸망한 후에 카와수아이를 포함한 새로운 부족이 이곳에 정착했다. 태국은 톤부리 왕조 이래로 이이적으로 영향력을 확대하기 시작했다. 1786년에 비엔티안으로부터 도망쳐 온 라오스 왕자 타오 캄퐁은 라마 1세로부터 작위를 받았고 우본랏차타니를 세웠다. 우본랏차타니는몬톤 이산의 행정 중심이었고 이후 몬톤 우본으로 분리되었다. 1925년에 몬톤 나콘랏차시마의 일부가 되었고 1933년에 몬톤제가 폐지되면서 주가 되었다. 1972년까지 우본랏차타니 주는 태국에서 가장 큰 주였다. 1972년에 야소톤 주가, 1993년에 암낫차른 주가 분리된 후에 현재는 5위로 떨어진 상태이다.
윗 글을 통해서 볼 때 ‘우본’지역은 개발이 덜 된 지역이어서 경제적으로는 태국에서 낙후 된 지역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이 지역은 과거 라오스 영토여서 이 지역에서 라오스 말을 많이 사용한다고 한다. 이 지역이 고향인 아잔 차 스님의 설법은 태국어로도 라오 언어로도 한 것은 이러한 배경 때문이다.
우본을 가는 방법은 버스로 가는 방법, 기차로 방법, 그리고 비행기로 가는 방법이 있다. 인터넷 검색을 하면 가는 방법이 알 수 있다. 버스나 기차는 시간이 많이 걸리기 때문에 나는 비행기로 다녀왔다. 비행기는 ‘타이의 미소라는 뜻의 Smile 항공사 비행기로 갔다. 태국 관광청에서 태국 여행의 매력으로 첫 번째로 꼽는 것이 ‘타이의 미소’다. 태국 사람들은 친절하고 웃음으로, 미소로 사람들을 대한다.
수완나품 공항은 언제나 사람들도 넘쳐나는데 우본 가는 게이트에는 나이 든 서양인들이 많이 보였다. 이들이 우본지역에서 젊은 태국인 여성들과 결혼하여 사는 사람이라는 것을 나중에 알았다. 또 이 지역에는 옛날부터 ‘유원’이라 부르는 베트남인들이 많이 거주하고 있다고 한다. 우본 공항 비행기에서 본 우본라차타니 시내는 고층건물은 별로 없었지만 강물이 우본라차타니 시내 외곽을 따라 흐르고 있었다.
‘우본라차타니’ 공항에서 밖으로 나오니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사찰이 아니라 건축중인 이슬람 사원이었다. 태국에 도착하여 방콕 수완나품 공항에서 승객들을 안내하는 사람들 중에도 종종 이슬람 신도들을 볼 수 있었고, 고속도로 변에서도 이슬람 사원들을 종종 볼 수 있었다.
우본라타차니
우본랏타차니 가는 비행기 타는 곳
위빠사나 수행을 전 세계에 알린 스님들
위빠사나 수행을 전 세계에 알리는 데 큰 역할을 한 스님은 미얀마의 마하시 사야도와 태국의 아잔 차 스님을 위시하여 여러 스님이 있다. 이들 중 몇 사람을 활동연도대로 분류하면 다음과 같다.
태국
아잔 문 (1870- 1950)
아잔 붓다다사 (1906 - 1993)
아잔 마하 부와 (1913 - 2011)
아잔 차 (1918 - 1992)
미얀마
순륜 사야도 (1878~1952)
마하시 사야도(1904~1982)
쉐우민 사야도 (1913~2002)
우바킨 (재가신자. 고엔카의 스승. 1899~1971)
*** 참고
한국
경허스님(1849 - 1912)
용성스님(1864 - 1940)
성철스님(1912 ~1993)
중국
허운스님 (1840 ~1959)
징안스님 (1851 ~1912)
칭롱 에카이(1852 ~1922)
태허스님 (1890 ~1947)
비행기에서 본 우돈 시내
우돈시내
우본 시내에서 본 이슬람 사원 건축중인 건물
태국에서는 아잔 차와 아잔 붓다다사(Ajan Buddhadasa)가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졌다. 붓다다사는 공동체인 ‘수안 모크(Suan Mokkh)’운동으로 널리 알려졌다. 그는 틱냑한 스님(1926 ~) 보다 먼저 참여불교를 주장하고 실천한 스님이다. 아잔 문(Phra Ajahn Mun)스님은 아잔 차와 아잔 마하부와 스승이지만 서양인들과 접촉이 별로 없어서 서양에는 아잔 차 보다 덜 알려졌다.
아잔 차
아잔 차 스님은 잭 콘필드 등의 소개로 일찍부터 미국에 알려졌고, 한국에도 1,990년대 이후에 많이 알려졌다. 아잔 차 스님과 아잔 붓다다사 스님의 저서는 영어로 많이 알려졌는데 이 영어 책을 다시 한국어로 번역한 책들이 여러 권이 있다.
‘아잔 차 스님의 오두 막’, ‘반조 마음을 비추다’ 등이 아잔 차 스님 제자들이 영어로 낸 책을 한국어로 번역한 책이다.
잭 콘필드가 쓴 ‘Living Buddhist Master'를 김열권씨가 번역한 ‘위빠사나 열두 선사’ 라는 책에도 아잔 차 스님의 소개가 나온다. (이 책은 최근에는 붓다의 후예, 위빠사나 선사들, 1권 미얀마, 2권 태국 이란 제목으로 나왔다) 또 그의 영국인 제자 아잔 브라흐만이 쓴 책 ‘술취한 코끼리 길들이기’ 등을 통해 아잔 차 스님에 대해, 그의 수행에 대해 많이 소개하고 있다. 현재 아잔 브라흐마는 서양인들에게 중요한 영적 스승이다.
아잔 차는 당대 최고의 영적 스승으로 존경받았고 불교 명상과 지혜로운 삶을 살아가는 방법에 관한 가르침으로 수많은 사람들을 고무시키고 인도했다. 그는 단순함과 버림의 생활을 실천하며 지혜와 유머, 큰 자비심으로 부처님의 가르침을 펼쳤고 서양의 저명한 불교도들에게 큰 영향을 끼쳤다.1918년 태국 북동부에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난 아잔 차 스님은 아홉 살 때 절로 출가했고, 스무 살 되던 해에 비구계를 받았다.
몇 년 후, 아버지의 죽음에 자극받아 고향의 안정된 사찰 생활을 버리고 방랑하는 수행승이 되어 명상에 매진했다. 그는 숲, 동굴, 공동묘지 등에 머무르며 (지난 세기의 가장 유명하고 존경받는 태국의 명상 스승이었던) 아잔 문 스님을 비롯한 몇몇 명상 스승들에게 지도받으며 자신을 단련시켰다.
왓 바퐁(Wat Nong Pah Pong (Short: Wat Pah Pong, Thai: วัดหนองป่าพง))은 아잔 차 스님이 오랫동안 떠돌며 수행한 뒤에 고향에 돌아와 인근 울창한 숲에 머물면서 1954년에 시작되었다. 사람이 살지 않은 그 숲은 코브라와 호랑이, 유령들이 출몰하는 곳으로 알려진 곳이 있는데, 아잔 차 스님에 따르면, 그래서 오히려 숲 속에서 수행하는 승려가 머물기에 딱 알맞은 장소였다. 이곳에 스님을 중심으로 큰 수도원이 자라나기 시작했다. 그의 단순하지만 심오한 가르침의 방식은 특히 서양인들을 끄는 매력이 있었다. 그래서 많은 서양인이 그에게 명상을 지도받기 위해 찾아왔다. 출가자로 수행하려는 서양인들이 늘어나면서, 1975년 그는 그들의 지도를 위한 특별한 사원을 설립했다. 아잔 차 스님은 1992년에 입적했지만 그 후로 그의 많은 제자들이 세계 곳곳에서 부처님의 가르침을 전파하고 있다. 태국 밖에 설립된 분원으로 가장 유명한 곳은 아잔 차 상수 제자인 아잔 수메도 스님이 영국 치트허스트에 설립한 수도원이 유명하고, 또 호주에는 옥스퍼드 대학교 출신인 영국인 아잔 브람이 설립한 수도원이 있다.
미국에서 아잔 차 스님의 제자들이 운영하는 곳은 북가주 레드우드시에 있는 ‘아바야기리 수도원’이 있고, 메사추세에츠 바레의 Insight Meditation society는 그에게서 지도를 받았던 미국인 잭 콘필드가 미얀마 마야시 시야도에게서 지도를 받은 샤론 살츠버그, 무닌드라와 고엔카 수련원에서 수련을 한 조셉 골드스타인 등이 함께 만든 곳이다. 그는 1979년 늦은 봄 이곳을 방문하여 열흘간 머물면서 위빠사나 수행을 지도하였다.
아잔 문
지금 미국은 명상 열풍이다. 태풍이라고 해도 과한 표현이 아니다. 하지만 미주한인 사회는 이 태풍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간략하게 위빠사나 명상과 그 방법에 대해 소개한다.
명상의 방법은 우리들로 하여금 마음을 고요하게 하고 집중시켜 관찰하도록 하는 마음의 훈련이다. 우리들은 항상 욕망, 편견, 조건성과 본능에 이끌려 다닌다. 명상은 정신을 맑게하고 방심하지 않는 수련이며, 끊임없이 계속되는 사건들과 정신작용에 대한 상대적인 조건반응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불교의 명상을 하게 되면 세 가지의 명확한 인식에 도달할 수 있다. 즉 무상(無常), 고(苦), 무아(無我)이다. 마음이 집중되고 관찰됨에 따라 몸과 마음의 현상들이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게 된다. 확실히 알고, 보고, 느끼고, 냄새맡고, 맛보는 모든 것들이 심지어는 이러한 것들을 아는 관찰자까지도 순간순간 변하고 있다. 이러한 끊임없는 흐름이 보다 충분히 자각됨에 따라, 이런 휩쓸림과 집착은 정말 바람직스럽지 않고 고통의 원인이 된다는 것을 알게 된다.
명상자들은 몸과 마음의 모든 사건들이 그 자체에 의해 저절로 일어났다 사라지는 공(空)의 흐름임을 본다. 명상자는 그것의 이면에는 아무것도 없고, 나도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비록 이런 과정이 질서를 갖고, 업의 법칙(因果)를 따르지만 우리들 안에 영원한 자아나 영혼은 발견되지 않는다. 단지 순간순간 일어나고 사라지는 질서 정연한 마음과 몸의 규칙적인 전개의 흐름만 있을 뿐이다.
이것을 명확하게 보는 것, 즉 자아가 비어 있는 사실을 깊이 체험하는 것은 자아로부터 큰 해방이다. 우리들을 이원적인 세계에 묶어두고 본질의 참흐름으로부터 벗어나 서로 상대적으로 분리시켜 두는 것은 다름아닌 영원성에 대한, 행복에 대한, 특히 자아에 대한 착각인 것이다. 모든 조건지워진 현상들이 공(空)임을 깊이 깨달음으로써, 어떤 물건이나 마음 상태를 지속적인 행복의 원천으로 소유하고 집착하려는 욕망에서 벗어날 수가 있는 것이다.
궁극의 해방은 이런 무집착과 균형으로부터 온다. 그것은 모든 고통으로부터 해방이며 평화이다.
명상 수련의 두 가지 방법
첫 번째 방법은 마음의 집중과 깨달음을 성취하기 위하여 전심전력하라.
이러한 방법을 사용하는 곳 중의 하나가 마하시 선원이다.
마하시 방법에서는 하루에 16시간동안 좌선과 경행을 번갈아 가며 계속 수련한다.
두 번째 방법은 아무것도 성취할 것이 없고 어디에도 갈 곳이 없다는 것이다. 깨달으려고 하는 바로 그 노력이 지혜가 생기는 것을 방해한다. 왜나하면 지혜는 결코 욕망으로부터 일어나지 않기 때문이다. 단순해져라. 놓아라. 그리고 바라보라.
자연스러워지라. 바로 지금, 바로 여기 있는 그대로가 전부이다.
아잔 찬, 아잔 붓다다사 등이 이 방법이다.
이상은 ‘위빠사나 열두선사’에서 발췌해 소개한 것이다.
아잔 차 스님의 지도 방식은 대개 솔직하고 단도직입적이었다. 스님의 맑고 유쾌한 성품, 직접적인 수행 방식은 사람들을 감화시키는 힘이 있었다. 아잔 차는 수행자들이 처음부터 내면의 힘과 혼자 힘으로 수행하는 법을 배우기를 바란다. 필요할 때는 질문해도 좋지만, 기본적으로는 마음을 지켜보고, 이해할 수 있는 자신의 능력을 믿고, 체험을 비추어 주는 자신의 지혜를 믿으면서 수행하기를 바라는 것이다. 스님에 따르면 좌선을 할 때 가부좌를 하든, 다른 자세를 취하든 균형 잡히고 바르게 곧추 세운 자세로 앉는 것이 가장 좋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