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령된 행실에서 벗어나라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의 유전한
망령된 행실에서 구속된 것은
은이나 금 같이 없어질 것으로
한 것이 아니요
(벧전1:18)
베드로가 복음을 받아들여
옛 삶으로부터 벗어나
새로운 믿음의 삶을 살게 된
성도들에게 보낸 편지의
한 내용입니다.
이 말씀은 오늘날 성경을 읽는
사람들에게 쓴 글이 아니라
당시에 참된 믿음을 받아들여
그 안에서 행하는
자들을 향한 것입니다.
베드로는 그들을 가리켜
조상의 망령된 행실에서
구속된 자들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렇다면 조상적부터 섬겨왔던
하나님을 어떻게 믿고
섬겼기 때문이었을까요?
망령된 행실이란
제대로 된 지식에 근거하지 않는
행위로써 점철된 삶을 의미합니다.
겉과 속이 다르고
겉으로는 말씀대로 살아서
옳아 보이지만
실제로는 죄와 탐욕과 실수와 연약함이
가득한 삶을 의미합니다.
아마 본문을 읽는 사람들은
'너희가... 망령된 행실에서
구속되었다'는 글을 읽고
그 의미도 모른채 자신이 그렇게
된 줄 알고 아멘으로 받겠지만
아마 자신이 현재 망령된 행실 중에
있음을 알지 못할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그 이유는 복음의 의미를
잘 알지 못하고 있으며
과거의 습관을 지속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조상의 망령된 행실이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율법,
곧 그의 말씀 안에서
행하는 삶을 가리킵니다.
사람은 타고난 죄인입니다.
죄인은 거룩한 말씀대로 살 수 없습니다.
말씀대로 살겠다는 것 자체가
잘못된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하나같이
말씀대로 살려 합니다.
그것이 망령된 행실이 되는 것은
겉으로는 말씀대로 살기 위해
힘쓰고 노력하고 기도하지만
한 개인의 삶으로 돌아가면
죄인의 본성에 따라 행하기 때문입니다.
아마 말씀대로 살려는 의지가
강하면 얼마동안은 개인적 삶에서도
경건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죄의 삶도 동시에
살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세월이 점차 지나게 되고
말씀 안에서 살아야 한다는
긴장감이 사라지게 되면
자기 본성에 충실한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사람은 본래 자기만을 위해
살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자기를 높이게 되어 있으며
높은 가치와 보람을 추구하게 됩니다.
또한 유명해지기를 원하며
사람들의 찬사와 박수,
인정과 사랑을 받고자 합니다.
또한 탐욕과 음란한 정신과
몸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자신을 옳게 보이려고
하는 것이며 한편으로는
자신의 탐욕과 정욕을 채우기 위해
은밀히 활동하는 것입니다.
조상의 망령된 행실이란,
사람들 앞에서는
하나님이 명하신 삶을 살면서도
개인적으로는 죄의 본성에 따른
삶을 사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고도 사람들 앞에서
옳게 행하며 죄없이 사는 자신을
거룩하게 여기고
말씀없이 살아가는 사람들을
판단하거나 정죄하고
자신을 그들과 다른 존재로
알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글을 받는
당시의 성도들도 전에는 그렇게 살았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을
자신에 대한 죽음으로 여기고
스스로의 생명이 죄인됨을 깨닫고,
자기 생명대로 살기를 멈추고,
오직 그리스도께서 이끄시는 대로
살려 하기 때문에
전의 망령된 행실에서
구속되었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망령된 행실에서 구속되었다는 것은
전에 말씀대로 살고자 하는
율법적 삶을 그쳤다는 의미이며,
다시는 죄의 생명으로 살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날마다 혹은 주마다
제사하는 행위,
각각의 절기를 지키며
스스로 말씀을 지키며 살기 위해
기도하며 노력하는 삶을
그쳤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또한 하나님 앞에서 경건히 살고자 하며
그의 말씀대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고자 하는
모든 시도를 멈추었다는 의미입니다.
오늘날의 자기 십자가 없이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고자 하는
자들을 보십시오.
처음엔 순수한 마음으로 시작한
믿음의 삶이 세월이 지나면서
점점 그 각오와 다짐이 약해지면서
모든 종교적 삶은 형식이 되고
마음은 오직 자기 만족과 사랑을 위해
살고 있지 않습니까?
그들의 기도는 이미 변질되어
자신들의 문제가 형통하기를
기도하고 있습니다.
항상 자신과 주변 사람들,
혹은 자신이 속한 교회의 번영을
구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처음부터 자기 십자가가
없었으니 변질되었다고도
할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의 죽음을
자신들의 죽음으로 여긴다면
그렇게 행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미 자신들의 형통과 안녕과
번영을 위한 삶이 그쳐졌을 것입니다.
다시 말해 자신이 죄인이면서
거룩한 삶을 살려하는
망령된 행실을 멈췄을 것입니다.
그리고 오직 그리스도께서
이끄시는 삶을 살았을 것입니다.
망령된 행실이란,
겉과 속이 다른 삶을 의미합니다.
거의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매일 기도하게 될 것입니다.
아니면 매주마다 하나님 앞에 나아가
자신의 삶을 놓고
죄의 고백을 하게 될 것입니다.
말씀대로 살지 못하는 것을
스스로 인정하는 것입니다.
말씀대로 살아야 하지만
살지 못했기 때문에
주마다 혹은 날마다 잘못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얼마동안 하게 되면
자신의 죄성 때문에 말씀대로
살지 못한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하며
다른 삶을 찾아야 정상적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죄짓고 뉘우치는
삶을 너무 오래동안 자주 하다보니
그것을 합리화 하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죄를 지어도 그분이 용서할 것이고,
이미 그분이 다 용서했으니까
죄를 짓고도 안심하는
이상한 현상이 벌어진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이 많으시니
마땅히 용서해 주시는 분이며
이미 십자가에서 모든 죄를
다 용서하셨으니
죄의 행위에 대해 가책을 받을
필요가 없다면서
납득도 안되는 논리를 펴는 것입니다.
그리고 인간은 죄를 지을 수 밖에 없는
연약한 자이니
그가 안아주시고 감싸주시고
새 힘을 주어서 계속해서
인도해 주실 것을 확신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다시 죄를 짓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곧 망령된 행실입니다.
그런데 당시의 성도들은
그런 망령된 행실에
종지부를 찍게 된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을
그런 자신들의 심판으로 여기고
자신들의 죽음으로 받아들였기 때문에
자기 생명으로 살려하는 것을
멈추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말씀대로 바르게 살려는
시도를 멈춘 것입니다.
그리고 오직 그리스도의 나타나심과
그의 오심을 기다리는 자들이
된 것입니다.
곧 복음을 듣고 받아들임으로써
망령된 행실을 그치게 된 것입니다.
베드로는 그런 행실을 멈춘 것은
곧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한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리스도가 피를 흘려 주심으로
자신들의 생명으로 살고자 하는 삶이
종결되었음을 믿음으로
받아들이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거룩한 삶을 살고
돌아서서는 자신의 탐욕과 정욕을
만족시키는 삶을 살고자 하는
망령된 행실에서 벗어난 것입니다.
그들은 종교적 삶을 살지 않습니다.
거룩한 행위를 통해
자신을 거룩하다 하지 않으며
거룩을 위한 노력을 행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오직 그리스도로 살기 위해
그를 바라며
스스로 살기를 거부하고
그가 열어주시는 삶만
살기로 한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피를 믿음으로써
망령된 행실을 그치게 된 것입니다.
만일 그리스도의 피 흘리심을
자신의 생명이 쏟아져 죽음으로
종결되었다는 사실을 믿고
다시는 자기 생명으로 살려하지
않는다면
망령된 행실이 그쳐질 것입니다.
죄의 생명을 가지고 예배를 드리는 것,
그것은 좋아보이나
그 뒤안길을 정직하게 돌아보십시오.
거룩해 보이는 종교적 삶과
죄인의 삶을 매일 혹은 매주
반복하는 자신을 보십시오.
망령된 행실을 그쳐야 합니다.
오늘날의 교회들에서
망령된 행실을 보는 것은
전혀 어렵지 않습니다.
아무리 감추려 하고,
아무리 거룩한 삶을 살려 하지만
돌아서서는 다시 죄의 삶을
반복하지 않습니까?
자신은 그렇지 않다 하고
안심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그것도 자기를 알지 못하는
망령된 행실입니다.
많은 성경지식에도
자기 생명을 처리하지 못했다면
그 행실은 계속될 것입니다.
언제까지 그렇게 살 것입니까?
힘과 능력을 달라하지 마십시오.
그의 십자가의 의미를 잊어버리고
구하는 망령된 행실입니다.
오히려 종교적 삶을 내려놓고
그의 긍휼을 구하며
그를 덧입기를 기다려야 합니다.
19.0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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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창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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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9.13 0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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