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례 요한과 그의 죽음
요한복음 1 : 19 – 34(막6:14–29)
예수님께서 ‘여자가 낳은 자 중에 세례 요한보다 큰 이가 일어남이 없다’(마11:1)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요한은 마치 죄수처럼 목 베임으로 당하고 죽었습니다.
베드로가 옥에 갇혀 죽게 되었을 때 하나님께서 보낸 천사가 옥문을 열고 베드로를 손잡아 데리고 나와 살려주었던 것처럼(행1:1-12) 요한도 하나님께서 왜 살려 주시지 않고 죽도록 내버려 두셨을까 하는질문을 하게 됩니다.
요한이 잡혔다는 말을 듣고 갈릴리로 물러가셔서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하셨다고 성경은 말씀합니다(마4:12;막1:14). 옥에 갇힌 요한은 예수가 갈릴리로 가신 것을 듣고 제자들에게 ‘오실 그이가 당신이냐, 우리가 다른 일을 기다려야 하느냐?’라고 예수께 가서 물어보라고 했습니다(마11:3).
그때 예수님은 그들에게 ‘맹인이 보며 못 걷는 사람이 걸으며 나병환자가 깨끗함을 받으며 못 듣는 자가 들으며 죽은 자가 살아나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 하라.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실족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다’고 하시며 ‘여자가 낳은 자 중에 세례 요한보다 큰 이가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마11:2-11).
세례 요한이 잡혀 옥에 갇히고 악한 자의 손에 의해 목 베임을 당하여 죽었음에도 예수님께서 잠잠하셨을 뿐 아니라 오히려 ‘실족하지 아니하는 자가 복이 있다’고 말씀하신 것은 이해하기 쉽지 않습니다.
유월절(요2:23)에 예수님은 제자들과 유대 땅으로 가서 거기 함께 유하시며 세례를 베풀었습니다. 요한도 옥에 갇히기 전에 살렘 가까운 에논에서 세례를 베풀었습니다.
그때 요한의 제자들은 ‘랍비여 선생님과 함께 요단강 저편에 있던 예수가 세례를 베풀매 사람들이 다 그에게로 간다’고 요한에게 말했습니다.
그래서 요한은 그들에게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요, 그의 앞에 보내심을 받은 자라고 한 것을 증언할 자는 너희라’고 하시면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고 말했습니다.(요3:22-30).
이러한 일들이 있었던 후에 요한이 잡혀 옥에 갇히고 왕의 생일에 목 베임을 당하고 순교했습니다(막6:18-29).
마가복음에는 ‘요한이 잡힌 후 예수께서 갈릴리에 오셔서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하여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막1:14,15)고 말씀했습니다.
마태복음에도 예수께서 ‘이때부터 비로소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으니라’(마4:17)고 말씀했습니다. ‘비로소’라고 한 것은 ‘그제야 처음으로 어떤 일이 이루어졌다’는 뜻으로 공생애 시작을 의미합니다.
요한이 잡히기 전에 광야로 나가서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다고 외치고 사람들에게 세례를 베풀었고 예수님도 제자들을 뽑아 세우고 세례를 베풀었습니다.
요한이 잡힌 즉시 예수님께서 복음 전파를 시작하였다는 것은 요한의 잡힘과 예수님의 공생애가 시작된 것과 관계가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수님과 요한이 세례를 베풀고 복음을 전파하는 것을 보고 유대인들과 예루살렘의 제사장들을 비롯한 바리새인들은 예수에게는 관심이 없고 요한에게 많은 관심을 가졌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요한에게 ‘네가 누구냐’라고 물었고 요한은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라’(20)고 말했습니다. 그들은 다시 ‘그러면 누구냐 엘리아냐’라고 물었고 요한은 ‘나는 아니라’고 말했습니다. 다시 ‘네가 그 선지자냐’고 묻고, 요한은 ‘아니라’고 했습니다(21).
요한은 아니라고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계속 ‘너는 네게 대하여 무엇이라 하느냐’라고 물었고 요한은 ‘나는 선지자 이사야의 말과 같이 주의 길을 곧게 하라고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라’(22,23) 라고 말했습니다.
유대인들은 바리새인들을 보내어 다시 요한에게 묻게 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네가 만일 그리스도도 아니요, 엘리야도 아니요, 그 선지자도 아닐진대 어찌하여 세례를 베풀었느냐’고 물었습니다. 요한은 ‘나는 물로 세례를 베풀거니와 나는 내 뒤에 오시는 그의 신발끈을 풀기도 감당하지 못하노라’고 말했습니다(24-28).
유대인과 바리새인들이 요한에게 묻고 질문한 것을 보면 당시 유대인들과 예루살렘 공회의원들 간에 ‘요한이 그리스도냐’에 대한 심각한 변론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요한은 대제사장인 아버지 사가랴와 어머니 엘리사벳에게서 났고 자랐습니다. 반면에 예수는 나사렛 목수의 아들로 났으며 목수 일을 도우며 자랐습니다. 요한은 금수저로 태어났고 예수는 흙수저로 태어났습니다.
요한이 광야에서 외쳤을 때 온 유대와 요단강 사방에서 다 그에게 나아와 자기들의 죄를 자복하고 요단강에서 세례를 받았습니다(마2:5,6). 예수도 요한에게 세례를 받았습니다.
요한이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에게 ‘독사의 자식들아 누가 너희를 가르쳐 임박한 진노를 피하라 하더냐’라고 무섭게 책망하는 것을 보고 유대인들은 요한을 ‘그리스도’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러나 요한은 그들에게 ‘나는 물로 세례를 베풀거니와 내 뒤에 오시는 이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세례를 베푸실 것이며 손에 키를 들고 알곡은 모아 곳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신다’고 예수님을 최후의 심판의 날에 심판주로 말했습니다(마3:7,11,12).
요한의 제자들이 ‘예수가 세례를 베풀매 사람들이 다 그에게로 간다’고 말하며 예수를 시기하고 질투했습니다(요3:26). 여기에서 요한의 제자들에게 문제가 많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요한의 그들에게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요 그의 앞에 보내심을 받은 자라’고 가르쳐 주며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고 말했습니다(요3:26,28, 30).
요한은 자신의 죽음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나는 쇠하여야 하겠다’는 그 말대로 잡혀 옥에 갇히고 순교의 제물이 되었습니다. 요한의 죽음은 예수님의 죽음을 닮았습니다. 요한의 죽음은 의미가 없는 허무한 죽음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의 죽음은 죄인들의 죄를 대속하는 죽음이었던 것처럼 요한의 죽음은 예수의 복음 전파의 길을 열어주는 선구자로서의 희생된 제물이었습니다.
만약 요한이 죽지 않고 나이 많아서 죽을 때까지 광야에서 외치고 많은 사람에게 세례를 베풀었다면 예수님의 구속 사역에 덕이 되었을까를 생각해 보면, 덕보다는 해가 되었을 것입니다.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5천 명을 배부르게 먹이고도 열두 바구니가 남은 것을 보고 예수님을 억지로 임금으로 삼고자 하는 그들을 예수님께서 흩어 돌려보냈습니다.
예수님은 병 고침을 받고 따르겠다고 하는 그들 모두를 집으로 돌려보냈습니다. 오로지 열두 제자만 붙들고 가르쳐서 사명을 맡기고 교회를 세우게 하셨습니다.
요한의 제자들은 물세례를 받은 육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들은 성령을 알지도 못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제자들은 오순절 성령 강림하심으로 성령을 충만히 받았습니다.
요한이 죽은 후에도 요한의 제자들은 초대교회 안에 많이 있었습니다. 에베소교회에서 바울이 ‘너희가 성령을 받았느냐’라고 물었고, ‘우리는 성령이 계심도 듣지 못하였노라’고 그들은 말했습니다. 바울은 ‘무슨 세례를 받았느냐’고 물었고 그들은 ‘요한의 세례니라’고 대답했습니다(행19:1-7).
에베소 교회뿐 아니라 당시 모든 교회에 요한의 제자들이 침투하여 유대인과 더불어 요한의 세례에 대하여 바리새파와 엣세네파가 예수가 행하시는 세례와 비교하여 변증했습니다(딤전6:4,5).
그래서 바울은 디모데에게 편지를 보내며 ‘어리석고 무식한 변론을 버리라 이에서 다툼이 나는 줄 앎이라’(딤후3:23)고 말했습니다.
초대교회가 지나 중세교회가 재세례파를 이단으로 정죄하고 축출하기까지 엄청난 싸움이 있었습니다. 오늘의 침례교회의 뿌리는 세례 요한의 제자라는 것은 부인할 수 없습니다.
만약 세례 요한이 계속 세례를 베풀고 살았다면, 아브라함의 불의의 아들 이스마엘 자손들이 알라를 믿는 이슬람 종교보다 더 무서운 요한의 재세례파가 교회를 대적하게 되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하나님께서 이러한 것들을 미리 아시고 세례 요한을 일찍 데려가신 것으로 믿습니다.
요한이 죽었음에도 불구하고 재세례를 주장하는 이단들이 오늘에 이르기까지 존재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제자들이 세운 교회는 오늘에 이르기까지 크게 성장하고 구원 사역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요한은 예수님을 보고 “보라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라고 말하고 두 제자를 예수님을 따르게 했습니다(요1:29-42). 두 사람은 안드레와 시몬 베드로 형제로서 예수님의 훌륭한 제자가 되었습니다.
요한은 예수님보다 6개월 먼저 태어나고, 광야에서 외치고 세례를 베푸는 일도 예수님보다 먼저 시작했습니다. 요한이 잡힌 것을 알고 복음을 전하기 시작한 예수님이 서른 살이었기 때문에, 요한도 예수님보더 조금 앞선 젊을 때 잡혀 순교의 제물이 되었습니다.
요한은 광야에서 어려서부터 광야에서 낙타 털옷을 입고 메뚜기와 석청을 먹고 자랐습니다. 때가 되어 복음을 외치고 세례를 베풀다가 잡혀 죽기까지 1년 정도의 아주 짧은 시간에 하나님께서 세상에 보내신 사명을 다하고 순교의 제물이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사랑하시는 사도 요한은 백 세를 살았습니다. 사람들이 살 수 없는 밧모섬에 유배되는 고난도 받았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하늘문을 여시고 새 하늘과 새 땅을 보여주셨습니다.
사도 요한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고 말했습니다(계21:2). 그리고 구멍에서 큰 화덕에서 연기가 올라오는 무저갱(지옥)에서 죽고 싶으나 죽을 수 없는 고통 당하는 사람들도 보았습니다(계9:2,6).
하나님의 나라와 지옥 불 가운데서 고통당하는 지옥을 보고 기록한 요한계시록은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사도 야고보도, 스데반 집사도 아무런 이유도 없이 순교의 제물이 되었습니다. 사람이 오래 사는 것이나 일찍 죽은 것은 절대적인 하나님께서 하시는 것입니다.
사도 야고보도, 스데반 집사도 아무런 이유도 없이 순교의 제물이 되었습니다. 사람이 오래 사는 것이나 일찍 죽은 것은 절대적인 하나님께서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백 세를 살았던 사도 요한도, 일찍 죽은 세례 요한이나 사도 야고보와 스데반 집사도 다 같이 낙원에서 위로받으며 안식하고 있다는 것은 의심하지 않습니다.
사람이 일찍 죽은 것도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사명을 다했기 때문이며, 오래 사는 것도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일이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모두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사명을 끝까지 충성합시다.
최후의 심판의 날에 주님으로부터 ‘내 아버지께 복 받을 자들이여 나와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 된 나라를 상속하라’는 영접을 받고 새 하늘과 새 땅에 들어가서 안식하며 영생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