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기억력을 탓할 수밖에 없다.
그중에서도 사람 이름을 기억하는 능력은 내가 봐도 한심할 정도다. 그냥 그 친구의 이름을 '순이'라고 부른다.
국민학교 4학년의 여름.
콜레라가 우리들을 위협할 즈음, 볼이 터질 듯 탱탱하고, 가만히 있어도 웃고 있는 작은 눈, 동그스럼한 얼굴과 단발머리의 동갑내기 순이가 우리 동네로 이사를 왔다.
시골풍의 아버지와 순이의 어른 모습을 미리 볼 수 있는 순이와 꼭 닮은 순이 엄마, 그리고 순이보다 더 볼이 통통한 남동생의 손을 잡고, 자전거방 호식이네 집 옆의 작은 쪽방으로 이사를 왔다.
어린 우리들은 격식 없이 악수도 없이 몇 번의 눈 맞춤으로 곧바로 친구가 되었고, 좁은 골목에는 두 식구가 늘었다.
우리도 모르는 새 가을은 성큼 우리 앞에 섰고, 골목에서 밤이 오는지도 모르고 놀던 어느 깊은 가을날의 해거름 때.
골목 앞에서 놀던 순이의 놀란 소리에 우리 모두의 눈동자는 골목 입구로 돌아갔다.
"아빠!!??" 놀램과 의문이 가득했던 그 소리.
골목 입구 인도에는 순이의 아빠가 양손에 수갑을 차시고, 인상 무서운 잠바 차림의 두 아저씨 사이에 끼여 서 계셨다.
"엄마는 어데 있노...?"
걱정과 두려움이 섞인 순이 아빠의 눈.
엄마를 애타게 부르는 순이의 부르짖음이 골목을 가를 즈음, 순이 엄마는 허겁지겁 달려 나오시더니, 멈칫 멈추어 섰다가는...
"순이 아부지... 무슨 일인교? 걸맀어예?"
말없이 고개 끄덕이는 아저씨의 그 수갑 찬 손을 잡으며...
"아이고~ 우리 인자 우째 살라꼬~"
순이 엄마 소리 내어 우시고, 순이와 동생도 덩달아 슬피 울었다.
"소원대로 가족들 봤으니 고마 가자."
형사 아저씨들 순이 아빠 등 떠밀며 떠나자, 그 자리 주저앉아 울던 순이 엄마...
"나는 인자 우에 사노... 나는 인자 우에 사노..."
동네 아줌마들 부축해서 집으로 데리고 갈 때까지 넋 놓고 우셨다.
고개 숙이고 끌려가시는 아빠를 저만치 따라가던 순이와 동생도 겁먹은 얼굴로 울며 돌아왔다.
어른들의 아픔과는 상관없이 우리들의 골목은 곧 다시 생기를 찾았고... 들리는 소문에 순이 아빠, 시골에서 무작정 도시로 나와 살길 막막하던 60년대 말, 시작하신 일은 미 8군 피엑스에서 나오는 양담배를 몰래 받아 좌판에 놓고 파시는 일. 그 당시만 해도 양담배 엄히 금하던 시절이라, 몰래하시던 일이었는데, 그만 경찰 검문에 걸리셨단다.
순이 아빠가 끌려가시고 한 달이 지날 무렵.
순이 엄마가 골목 앞 삼거리 식당 술청에서 짙은 화장에 한복 곱게 차려입으시고 젓가락 박자 맞추며 노래하시는 모습을 보았다.
그해 겨울 방학 내내 순이네 쪽방은 우리의 밤마실처가 되었다.
순이 엄마가 술청에 나가면 동그마니 집을 지키는 남매는 우리가 놀러 가면 너무나 반겼고 우리는 밤이 깊을 때까지 다양한 놀이들...
화투로 하는 민화투와 뻥, 공기놀이, 묵찌빠, 벌칙으로는 심패 때리기... 등등. 담요 한 장에 모두 발 디밀어 넣고 옹기종기 둘러앉아하는 귀신이야기, 옛날이야기, 영화 본 이야기... 시간 가는 줄 몰랐다.
가끔은 순이 엄마가 술청에서 손님들이 남긴 닭꼬치니 튀김이니 맛있는 안주감을 가져다주시면 그날은 생일보다 더 즐거운 날이 되었다.
순이 엄마가 일찍 들어오시는 날엔, 순이 엄마 내 손을 꼭 잡으시곤...
"익아 고맙데이... 순이하고 잘 놀아조서 참 고맙데이..."
술냄새나는 목소리로 눈물 글썽이면서 말씀하셨다. 나는 괜히 잘 놀고 고맙다는 말씀 듣기 무안해서 순이 엄마가 두 손 놓으실 때까지 눈 멀뚱멀뚱 뜨고 가만히 숨죽이고 앉아 있었다.
그해 겨울이 끝나고 봄이 올 무렵, 어느 밤.
일찍 우리를 돌려보내고... 순이 엄마 옷 곱게 차려입으시고 순이 아빠 맞이하셨다.
며칠 후... 순이 엄마랑 아빠 싸우는 소리가 순이집 방문턱을 넘은 다음날 순이네 식구는 이사를 갔다.
60년대 말, 대구 수도산 밑에서 내가 경험했던 아름답고도 슬픈 도시의 밤마실 풍경.
첫댓글
마음자리님은 기억력이 참 좋으십니다.
가난했던 시절은 삶이 그런 것 같습니다.
어려서 잘 몰랐지만,
주위에는 밥 굶는 사람이 많았고,
뚜렷한 직업 없는 사람이 많아서.
지게꾼, 날품팔이 하는 사람도 많았는 것 같지만...
옛날에는 '야메'란 말도 성행했는 것 같아요
순이도 지금은 잘 살고 있을 것 같습니다.
그 당시엔 은행 다니는 사람이 가장 출세한 사람인 줄 알며 살았습니다. ㅎㅎ
보슬비님 글 읽다가 옛추억 떠올라 올렸습니다.
어린시절 소꿉친구 순이
마치 '양귀자'작가가 쓴 '원미동 사람들'
단편을 읽은 것같아서요.
초년 고생은 사서도 한다고 하는데요.
순이가 행복하게 잘 살었음 좋겠어요.
볼살이 통통해서 어디서나 사랑 받으며 잘 살고 있을 겁니다. ㅎ
삭제된 댓글 입니다.
밤이면 호롱불 켜고 사시던 큰집과 외가 동네마을이 그렇게 부럽더라고요. 특히 동네 밤마실 다니던 그곳에서 사귄 동무들이...
익이는 순둥이에다 잘 놀았군요.
70 년 초반의 이야기같은데요.
많이 기억하십니다.
기억을 글로 만들기도 쉽지 않은데
참 잘 쓰십니다.
겨울 밤에 듣는 이야기같습니다.
제가 다른 잘 하는 것은 없는데, 추억 샘물 길어올리는 것은 잘 하는 것 같습니다. ㅎㅎ 자화자찬입니다.
어릴 때 가까이 사시던 고모님이 해주시던 옛날 이야기와 누나들이 막내에게 해주던 이야기들을 많이 들어서인가 봅니다.
옛날 가난하던 한국
양키시장 뭐 그런거
많이 듣고 먹고 살았지요.
ㅎㅎ
먹고살기도 힘들었던
슬푼 역사 한국
지금은 배부르지요...ㅎ
우리세대가 최빈국에서 개발도상국으로 이젠 선진국으로까지 올라선 그 모든 과정을 몸소 체험한 세계 유일의 세대아닐까 싶습니다.
그 과정에 수많은 사연과 아픔과 피땀이 스며있겠지요.
돌아보면 다 소중한 기억들입니다.
옛 서민들의 애환을 그린 추억이 담긴
밤마실이네요.
순이는 잘 살고 있겠지요.
추억 담 잘 읽었습니다.
건필 하세요.
사실 역사는 서민들이 써내려간다는 생각이 들곤 합니다.
복을 부를 볼을 가져 초년의 고난이 중년과 말년의 삶을 풍요롭게 만들어주었을 겁니다.
대중가요 중에
"내 이름은 순이" 노랫말처럼
어릴적
님께서 흠모한 순이가
대중가요 가사처럼
에레나가 되지 않기를 빌면서
조심스럽게 글 읽기를 하였습니다.
어릴적 순이를
님께서
꼭 한번 만날 기회가 주어지길
모든 신들께 빌고 빌어 봅니다.
한 담요에 발 같이 넣고 놀았던
그 추억만으로도 오래 행복했습니다.
잘 살고 있으리라 믿으며 살겠습니다.ㅎ
어린 시절
마음 님의 추억의
글을 읽으며
순이의 행복을
빌어봅니다
네. 저도 생각날 때마다 순이의 행복을 빌어 준답니다.
순이와의 추억을 떠올리면
어린 소년으로 돌아가
그 시절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지겠어요.
순이 가족이 부디
행복하게 잘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추억이 참 좋습니다.
언제든 그곳으로 다시 되돌려 보내주니까요.
화목하게 잘 살았을 겁니다.
60년대 말의 쪽방촌의 모습이 그려집니다.
그 형사 가족들 보는 앞에서 수갑을 채우고 끌고 가다니...
인권이 땅에 떨어진 모습이 마음 아픕니다.
저 때가 69년이나 70년이었을 겁니다. 그 당시엔 외국 갔다오면 양담배를 선물할 때였으니까요.ㅎ
시대 따라 인권도 법도 변한 것이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