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 / 심재휘
집을 나서는 아들에게
보람찬 하루라고 말했다
창밖은 봄볕이 묽도록 맑고
그 속으로 피어오르는 삼월처럼 흔들리며
가물거리며 멀어지는 젊음에 대고
아니다 아니다 후회했다
매일이 보람차다면
힘겨워 살 수 있나
행복도 무거워질 때 있으니
맹물 마시듯
의미 없는 날도 있어야지
잘 살려고 애쓰지 않는 날도 있어야지
- 시집 『그래요 그러니까 우리 강릉으로 가요』 (창비, 2022,02)
* 심재휘(沈在暉) 시인
1963년 강원 강릉 출생
1997년 『작가세계』 등단
시집 『적당히 쓸쓸하게 바람 부는』 『그늘』 『중국인 맹인 안마사』 『용서를 배울 만한 시간』 등
현대시동인상, 발견문학상, 김종철문학상 등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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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내세요!” 전에는 힘들어하는 사람을 보면 위로하며 건네던 말이지만
힘내라는 말보다 힘을 달라는 반응 이후엔 꺼리게 됐다.
때로 한마디 말이 많은 위로가 되지만 절박한, 특히 경제적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 이 말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진심을 담은 말도 받아들이는 사람의 상황이나 마음에 따라 왜곡될 수 있다.
시인은 외출하는 아들에게 무심코 “보람찬 하루”라는 말을 건네곤 후회한다.
하루하루가 “보람차다면” 오히려 힘겨울 수 있기 때문이다.
말의 무게를 감당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 선한 말도 상처가 된다.
특히 미래에 대한 걱정으로 스트레스를 받는 ‘젊음’이라면 더 그러하다.
의미 있는 날도 소중하지만 평범하게 사는 게 가장 어렵다고 하지 않던가.
치열한 경쟁과 빠른 속도로 변하는 세상에서 ‘멍 때리는’ 것 같은, 맹물 같은 날도 필요하다.
하루하루가 행복한 날들의 연속이라면 그 행복의 무게를 어찌 감당할 수 있겠는가.
남들보다 느리게 소박하게 살면 어떤가. “봄볕이 묽도록 맑”지 않은가.
김정수(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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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스러운 시에 좀 객쩍은 사담을 얹자면 이렇다.
예전에 전날 술을 아주 많이 마셔서 종일토록 자고 있었는데,
그런 나를 보고는 어머니가 “이놈은 고생하지 말고 편하게 놀고먹고 살라고 아침저녁으로 빌고 빌었더니
정말 주구장창 놀고만 사네”라고 한탄조로 푸념하시는 거였다.
좀 죄송스러웠다. 좀 죄송스러워서 계속 자는 척을 했다.
그런데 그러다 괜히 큭큭 웃음이 났다.
틈만 나면 내게 부지런히 살아라, 열심히 살아라, 허투루 살지 마라
귀에 인이 박이도록 말씀하셨는데 실은 놀고먹고 살길 바라셨다니 말이다.
오늘은 맹물 한 잔 곁에 두고 말간 하늘이나 한참 바라보련다.
- 채상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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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왔다 그냥 가는 꽃, 달, 별, 해, 바람 그리고 당신을 사랑한다. 노래 가사 중에 “사랑이란 게 지겨울 때가 있지”라는 부분에서 고개를 주억거리기도 하고. 무용지유용無用之有用, 수다를 떨면서 친구랑 먼 곳을 여행하기도 한다. 그러니까 나는 은은하게 흐트러지는 사람이 좋다. 머리 가르마처럼 반듯해서 천지간에 자신이 규율이 되는 사람은 무섭다.
시인은 행복을 농담처럼 툭, 치고 지나간다. 돌멩이가 물속에서 가벼워지듯. 연애보다 썸 타는 그때가 더 아찔하듯. 삶이 가벼워지는 한 순간, 물처럼 담담한 무엇이 행복일지도 모른다며 은근하다. 자신의 율법을 강요하지 않는다. “행복도 버거워질 때가 있으니” 시인은 그저 왔다 그냥 가는 “봄볕이 묽도록 맑은” 봄날의 나른함과 의미 ‘없음’의 ‘있음’에 대해 사색한다. “잘 살려고 애쓰지 않는 날도” 괜찮다며 따뜻하다. 시인의 전언으로 남쪽 지방에서는 홍매가 벙글었다는데…,
- 손현숙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