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12 때문에 아버지를 잃은 사람입니다...서울의봄
어머니보고 서울의봄 보러가자는말 전 죽어도 못합니다
전 보지를못하겠습니다..
극중에 저희 아버지 분명 나올거같아서요..
당시 사망자는 4명으로 알고있습니다
김오랑소령 당직병장 계엄실에있던 소령 아저씨
김오랑 소령은 본적없지만 .. 엄청 대단한분으로 알고있지는 않습니다 그저 펑범한 군인?
어머니가 모임에서 봤다고 하시더군요..
저희 아버지께도 깍듯하셧고..
일단 피해자 가족이라 트라우마가 지금으로 부터
50년이 넘었는데도 극복돼지않네요..
하지만 그래도 이참에 이렇게 관심이 생기니..
살아있는 당시 군장병 가족들은 고마워할겁니다
저희아버지는 수도경비사에서 근무하셨고..
체포과정에서 총에맞으시고.. 안암분실로 끌려가서
45일간 고문회유받으시고 ... 그후유증으로 돌아가셧습니다..
당시 아버지는 장기오 여러분이 잘모르는인물일듯합니다
제5공수여단 장기오여단장과 근무하였다가
수도경비사로 막 옮기신지 1년? 정병주사령관밑으로
가고싶었다고 어머니께ㅡ들었습니다..
여하튼 인벤에 글올리는거는 12 12 사태는 정말
피해가족들한테는 죽을때가지 트라우마입니다
그리고 우리아버지가 장태완장군 따라서
12 12 막았다고 애국자는 아니라는거 밝힙니다
어머니말 당연한건데 그걸왜 애국자라고 하니..
어머니는 항상말합니다 군인이 명령을 따라야겠지만
불의를보고도 그대로 따른다면 어찌 군인이겠니
애국자가 아니라 당연한것을 하다 돌아가신거니
원망도 미움도 없어야한다 그렇다고 자랑스럽게 여기지는말아라..도리를 다한거 일뿐..
항상 말씀하십니다
다들 서울의봄 재미있게보시고.. 전두환을 잊지말아주세요..
그리고 지금 정부는 전두환의 발때도 못미치는 쓰레기정부입니다 지금정부도 잊지맙시다..
술먹고 글쓰려니 횡설수설하는데.. 고깝고 그래도
오늘은 비웃는댓글 자제부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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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장식의 오늘-231127-서울의 봄
“니들 그대로 있어. 내가 탱크 몰고 가서 대가리를 뭉개버릴 테니까” 영화 ‘서울의 봄’ 수도경비사령관 이태신이 신군부세력들에게 호통치는 장면입니다. 이태신의 실제 모델인 장태완 수경사령관의 육필 수기를 직접 인용한 대사입니다.
반란군의 쿠데타 성공 이후 장태완 소장은 보안사 서빙고분실에서 고초를 겪고, 이등병으로 강등된 후 예비역 소장으로 전역 당했습니다. 2년간 가택연금을 당했고 실의에 빠진 그의 부친은 곡기를 끊고 술만 마시다 1980년 돌아가셨습니다. 2년 뒤 서울대생이던 장태완 사령관의 아들이 할아버지 산소 옆에서 주검으로 발견됩니다. 정확한 사인이 밝혀지지 않아 의문사로 남았습니다. 장태완 소장은 2010년 7월 79세의 나이로 별세했고 2년 뒤 그의 아내는 유서를 남기고 세상을 떠납니다.
“사령관님 혼자 계시면 적적하시지 않겠습니까”
영화에서 반란군이 공수혁 특전사령관을 체포하러 오자 권총 한 자루 들고 총격전을 벌이다 숨진 오진호 소령의 말입니다. 실제 인물은 김오랑 소령. 그의 아내 백영옥은 충격으로 시신경 마비가 와서 실명하고 고통스럽게 살다가 1991년 6월 숨진 채 발견됐습니다. 경찰은 실족사로 결론 내렸지만 사인에 대한 의문이 남아있습니다.
공수혁의 모델인 정병주 특전사령관은 강제 예편 뒤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을 요구하다 행방불명됩니다. 1989년 3월 서울 교외 야산에서 주검으로 발견됩니다. 경찰은 자살이라고 했지만 당시 중앙일보는 ‘의문의 죽음’ 이라고 보도했습니다.
영화 ‘서울의 봄’ 개봉 다음 날인 11월 23일 전두환 씨 기일에 퇴역군인 등 500여 명이 광화문에 모여 그를 기리는 추모제를 열었습니다. 전 씨의 유족들이 전 씨의 시신을 묻겠다고 한 파주 장사리 주민들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분노하고 있습니다.
전 씨의 미납 추징금은 920여억 원.서울의 봄은 아직, 오지 않았다. 신장식의 오늘이었습니다.
첫댓글 먹먹하네요.
지금 더한놈들이 설치고 있고.
개돼지들은 아직도 정신 못 차리고 있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