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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사무실
요원은 들고 있던 커피잔을 후배의 책상에 내려놓았다. 후배는 읽고 있던 파일을 내려놓고 손을 팔랑팔랑 흔들었다.
“고마워요.”
“뭐 보고 있었어?”
“팀장님이 갑자기 검토하라고 툭 던진 건이요.”
후배가 슬쩍 젖힌 파일의 네임 태그를 확인한 요원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산타의 집 : 산타의 선물 교환 사례집]이라.
“아, [산타의 집] 그거 알지. 잘 공부해봐. 올 해 최악의 사건이니까.”
“그 정도라고요?”
“그 사례집에 의하면 사망자 수 칠십 명 내외로 추정, 그것도 최대한 낙관적인 수치로.”
숨이 막힐 정도로 무거운 숫자가 덜컥 등장하자 후배는 말을 잃었다.
그런 후배의 어깨를 툭 쳐주며 요원은 씁쓸하게 웃었다.
“그리고 생환자는 지금까지 단 한 명 뿐이야. 그 사례집 들고 나온 사람.”
#. 선물 교환 사례 A
1. 이름 : 김장산
2. 나이 및 성별 : 17살 남성
3. 요구한 선물 : “나 너무 배가 고파. 제발 먹을 것 좀 줘.”
4. 선물 가격 : 남자의 양쪽 팔
5. 결과 : 거래 성사. 개처럼 그릇에 얼굴을 쳐박고 미친듯이 생고기를 씹는 남자를 보며 산타가 폭소함.
#. 선물 교환 사례 B
1. 이름 : 이미선
2. 나이 및 성별 : 38살 여성
3. 요구한 선물 : “그 악독한 년놈들이랑, 딸내미까지 세 가족 전부! 모두 차례대로 이 집에 초대해줘.”
4. 선물 가격 : 박제
5. 결과 : 거래 성사. [산타의 집] 벽에 장식된 여자를 보며 산타는 집이 떠나가라 웃음.
2. 산타의 집
창문을 가리고 있던 보라색 커튼을 걷었다.
오두막 바깥을 내다보면 가장 먼저 보이는 것은 펑펑 내리는 함박눈. 얼음조각들이 새까만 하늘을 뿌옇게 채운다.
눈동자를 조금 아래로 내리자 반짝이는 전구가 장식된 울타리가 보인다. 한 번은 빨간색으로, 한 번은 초록색으로 빛나는 전구를 멍하니 구경하다가 시선을 더 아래로.
그제야 비로소 죽은 이들의 몸뚱이가 보인다.
자세도 생김새도 모두 다른 수십 구의 시체가 아무렇게나 널브러져 있었다. 천 조각 하나 걸치지 않은 나체의 몸뚱이들이다. 부릅 뜬 눈알에 둥둥 떠 있는 텅 빈 눈동자들이 빛을 반사했다. 한 번은 빨갛게 반짝, 한 번은 파랗게 반짝.
구역질이 나서 커튼을 다시 치고 거실로 내려갔다. 거실 테이블엔 이미 세 명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순박하게 생긴 아주머니가 나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학생. 와서 앉아.”
빈 의자를 찾아 앉으니 하늘색 셔츠를 입은 남자가 헛기침을 하고 입을 열었다. 이름이 강민성이었던가.
“흠! 지혜 학생도 왔으니 상황을 정리해보죠.”
저 남자는 이 기이한 오두막에서 처음 눈을 떴을 때부터 묘하게 침착했다. 서로 경계하던 사람들을 모두 모아 대화의 장을 연 것도 저 사람이었다.
나는 저 재수없는 남자와 눈도 마주치기 싫어서 고개를 위로 들었다.
‘아, 제기랄.’
그리고는 바로 후회하며 눈을 내리깔았다. 간신히 외면하고 있던 걸 봐버렸다.
그건 거실의 한 쪽 벽면에 못질된 채 매달린 여자였다. 환한 미소를 입에 걸고 상반신만 남아서 벽에 걸려 있다.
벌써 몇 번이나 봤는데도 적응 안 되는 끔찍한 모습이었다.
나는 눈을 감고 심호흡하면서 조곤조곤한 강민성의 목소리를 들었다.
“일단 아까 얘기했던 대로 각자 교환한 ‘선물’부터 공유해봅시다.”
3. 사무실
“[산타의 집]은 살인 게임이야. 사례집을 보면 한 달 간격으로 사람을 납치해서 진행되는 것 같고.”
요원은 후배와 지금까지 알아낸 정보를 공유했다.
“규칙은 간단해. 잠긴 오두막 뒷문을 열고 나가면 탈출이다. 그 열쇠는 오두막 바깥에 있는 우편함 안에 있다.”
허나 함정이 있다면 사람은 오두막 바깥에서 오래 버틸 수 없다는 점. 펑펑 내리는 눈을 맞는 순간 죽게 된다.
“그래서 여기까지 설명한 산타는 바로 선물 교환을 제안해.”
손님들은 하루에 한 번 산타와 선물 교환을 진행한다.
산타는 어디서든 부르면 나타나지만 반드시 혼자 있을 때만 선물 교환에 응해준다.
“큰 것을 요구할수록 대가도 커지는 것 같아. 전형적이고 잔혹한 방식이지.”
하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는 손님들은 어떻게든 이 교환을 통해 우편함에 도달할 방법을 찾아내야 한다. 요원의 설명을 가만히 듣던 후배가 사례집의 한 페이지를 펼쳐서 손가락을 딱 꽂았다.
“아하, 여기 있네요. 사례집.”
#. 선물 교환 사례 C
1. 이름 : 강민성
2. 나이 및 성별 : 27살 남성
3. 요구한 선물 : 오두막 바깥에서 버틸 수 있는 방법.
4. 선물 가격 : “한 쪽 다리를 먹게 해주면 바깥에서 3분 버틸 수 있는 방호복을 줄게.”
5. 결과 : 거래 불발. 일방적으로 교환을 끝냈으나 산타는 전혀 기분 나빠하지 않았음.
#. 선물 교환 사례 D
1. 이름 : 박준미
2. 나이 및 성별 : 41살 여성
3. 요구한 선물 : 지금까지 있었던 모든 선물 교환이 기록된 사례집
4. 선물 가격 : 수명 20년
5. 결과 : 거래 성사. 산타는 의외라는 듯 눈을 동그랗게 뜨고 놀라워 함.
4. 산타의 집
“준미씨, 정말 천재적이네. 어떻게 사례집을 받을 생각을 다 했지?”
자신을 김충현이라고 소개한 늙은 남자가 거듭 감탄했다. 준미 아주머니는 사람 좋게 웃었다.
“저희 딸이 공포 마니아에요. 항상 저한테 와서 이것 저것 이야기를 들려주거든요.”
듣자하니 중학생 딸은 시큰둥한 엄마를 붙들고 이런 저런 괴담에 대한 대처법을 토론하기를 즐겼다고 한다.
“규칙 괴담은 반드시 사례부터, 라고 귀에 딱지가 앉을 정도로 들었어요.”
준미 아주머니는 딸에 대한 칭찬이 퍽 듣기 좋은지 연신 싱글벙글이다.
……솔직히 나도 기발하다고 생각하긴 하는데, 너무 뿌듯해하니까 좀 심술이 나서 조용히 있었다.
“다 읽었어요.”
잠시 후, 강민성이 사례집을 탁 덮으며 말을 쏟아냈다.
“먼저 귀한 정보를 공유해줘서 정말 고맙습니다.”
“아유, 아니에요. 다 같이 합심해서 탈출하기로 했잖아요?”
과연 나라면 수명 20년을 바친 자료를 흔쾌히 나눴을까? 아마 나라면… 이렇게 쉽게는 보여주지 않았겠지.
강민성이 탁자를 톡톡 두드리며 설명을 이어갔다.
“저희보다 먼저 여기 끌려온 사람들은 거의 모두 비슷한 과정으로 비슷한 결말을 맞았어요. 선물 교환으로 얻은 방호복을 입고 우편함에서 뒷문 열쇠를 가져오려고 했네요.”
‘비슷한 과정’까지 말한 강민성은 조금 머뭇거리다 입을 다물었다. 그러나 나는 이미 ‘비슷한 결말’까지 알고 있다.
바깥에 널브러진 수많은 몸뚱이들을 떠올리며 한 마디 거들었다.
“돌아오지 못했죠?”
“네. 단 한 명도요, 지혜 학생.”
강민성이 거실 천장을 힐끗 보고는 갑자기 목소리를 내리깔았다.
다락방에서 코까지 골며 자고 있는 산타가 듣지 못할 정도로 낮게.
“우편함이 그리 멀리 있지 않은데도 모두 실패했습니다. 결론은 하나에요. 산타!”
“산타가 어떻다는 건가?”
“저 놈이 선물의 양을 조절하는 겁니다.”
얼핏 느끼기엔 우편함까지 다녀오기 충분하지만, 사실 절대로 성공할 수 없을 정도로.
나는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절망스러운 결론을 내리는 강민성의 표정이 어둡지 않아서 그랬다.
아니나 다를까 강민성은 바로 덧붙였다.
“저한테 생각이 있습니다. 다들 한 번 보시죠. 네 번째 줄이요.”
#. 선물 교환 사례 E
1. 이름 : 배영록
2. 나이 및 성별 : 31살 남성
3. 요구한 선물 : “방호복 시간을 연장해줘! 20초, 아니 10초만!”
4. 선물 가격 : 산타는 눈물까지 줄줄 흘리며 꺽꺽 웃느라 가격을 말하지도 못함.
5. 결과 : 거래 불발! 아이고! 가엾은 손님은 방호복이 쓸모를 다 해서 그만 죽어버리고 말았어. 바람 빠진 풍선처럼 흐느적흐느적하고, 오두막을 몇 발자국도 안 남겨놓고 말이야.
강민성은 의기양양하게 선언했다.
“이 분의 시신에 열쇠가 있을 겁니다. 내일 모두 함께 여길 나갑시다.”
#. 선물 교환 사례 F
1. 이름 : 강민성
2. 나이 및 성별 : 27살 남성
3. 요구한 선물 : 배영록 씨의 시신이 있는 위치
4. 선물 가격 : “아! 뜀박질 잘하던 그 양반? 손가락 두 개면 충분해.”
5. 결과 : 거래 성사.
#. 선물 교환 사례 G
1. 이름 : 김충현
2. 나이 및 성별 : 49살 남성
3. 요구한 선물 : 바깥에서 30초 버틸 수 있는 방호복
4. 선물 가격 : “고작 30초론 우편함까지도 못 갈텐데? 호호, 상관없다고? 그럼 손가락 세 개만 줘.”
5. 결과 : 거래 성사.
#. 선물 교환 사례 H
1. 이름 : 박준미
2. 나이 및 성별 : 41살 여성
3. 요구한 선물 : 질문에 대한 대답. “바깥에 저렇게 시체가 많은데 왜 집안은 이렇게 깨끗하죠?”
4. 선물 가격 : “그 정도는 무료로 알려줄 수 있지!”
5. 결과 : 산타는 모든 손님이 죽으면 오두막 안을 깨끗하게 청소함.
5.
악몽을 꿨다.
식은땀으로 축축해진 침대에서 허겁지겁 일어나서 밖으로 나왔다.
계단을 내려오다가 조금 놀랐다. 어두컴컴한 거실에 선객이 있어서 그랬다.
“안 자고 뭐하세요?”
테이블에 앉아있던 준미 아주머니가 내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지혜 학생이구나. 학생도 잠이 안 와요?”
“무서운 꿈을 꿨어요.”
대충 대답하면서 옆 자리에 앉았더니 아주머니는 양손으로 내 손을 꼭 쥐고 손등을 살살 쓸어주었다.
쿵쾅거리는 심장이 조금은 진정되는 기분이다.
고마운 마음에 아주머니와 눈을 마주치려고 했는데, 아주머니의 눈동자는 다른 곳을 향하고 있었다.
아무 생각 없이 그 시선을 따라가다가.
“으엑.”
곧장 고개를 내리깔았다. 저 벽에 못박힌 여자는 봐도 봐도 적응이 안 돼!
나는 퉁명스럽게 항의했다.
“뭐 저런 걸 그렇게 뚫어져라 보고 계세요.”
자기 목숨으로 한 가족을 저주해버린 악독한 년. 그 많은 사례들 중에서도 유독 충격적인 내용이라 생생하게 기억난다.
저 여자는 놀랍게도 저런 꼴을 하고서 살아있다고 한다. 박제된 몸에 영원히 갇힌 거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을까.
“왜 저런 선택을 했을까요?”
내 질문에도 아주머니는 대답하지 않고 한동안 내 손등을 쓸기만 했다. 한참을 그렇게 있다가 작은 목소리를 내주었다.
“그러게나 말이에요.”
아주머니는 그 이후로도 하염없이, 박제된 여자를 올려다 보고 있을 뿐이었다.
6.
“나만 믿어.”
김 아저씨는 손가락이 두 개만 남은 손으로 자기 가슴을 탕탕 두드렸다.
30초 짜리 방호복이라는 검은색 우비를 뒤집어 쓴 채였다.
“내가 머리는 영 꽝이지만 몸 쓰는 건 자신 있거든. 이런 거라도 해야지.”
오히려 현관에서 그를 배웅하는 강민성이 더 안절부절하는 모양새였다.
“아저씨. 저기 오두막 방향으로 오른팔을 쭉 뻗은 시체가 배영록씨에요.”
“어. 보인다, 보여. 가깝네. 30초면 차고도 넘친다.”
호언장담한 김 아저씨는 무섭지도 않은 듯 밖으로 걸어 나갔다.
나는 재빨리 현관문 옆 창문에 달라붙었다. 눈보라를 뚫고 성큼성큼 나아가는 아저씨가 보며 속으로 숫자를 셌다. 일, 이, 삼.
구 정도 셌을 때 이미 아저씨는 기괴하게 비틀린 시체 앞에 도달했다.
“그거 맞아요! 그거에요! 아저씨 그 근처 뒤져봐요!”
흥분한 강민성이 방방 뛰며 고래고래 소리지른다.
휘날리는 눈가루 사이로 김아저씨가 보였다가 안 보였다가 했다. 새하얀 세상은 울타리에 매달린 전구가 뿜어내는 빛으로 알록달록 물들었다. 십삼. 십사. 십오. 그 안에서 허우적거리는 김 아저씨의 색깔도 변했다. 한 번은 초록색으로, 한 번은 빨간색으로.
십육, 십칠.
초록색의 아저씨가 시체의 이곳 저곳을 더듬는다, 십팔, 십구.
빨간색의 아저씨가 다급히 뭔가를 소리치며 양팔을 엑스 자로 교차시킨다. 이십, 이십일.
귀가 먹먹했다. 바로 옆에서 강민성이 빨리 오라고 고래고래 악을 지르는 탓이었다. 이십이, 이십삼.
초록색의 아저씨가 몸을 일으킨다. 빨간색의 아저씨가 이쪽을 보고 달린다.
초록색이 뛴다. 빨간색이 뛰고, 초록색이 뛰더니. 그러더니.
그러더니 빨간색은 벌러덩 넘어진다.
삼십오.
삼십육.
#. 선물 교환 사례 I
1. 이름 : 김지혜
2. 나이 및 성별 : 17살 여성
3. 요구한 선물 : 질문에 대한 대답. “왜 배영록의 시체에 열쇠가 없었지?”
4. 선물 가격 : 산타는 기분이 좋은지 술술 대답한다.
5. 결과 : “규칙 하나, 장식 위에는 눈이 쌓이지 않아. 그야 멋지게 만들어 놓은 게 파묻혀버리면 아깝잖아? 그리고 죽은 인간만큼 멋진 장식품은 또 없지!”
당연히 의심했어야 했는데.
왜 이렇게 눈이 펑펑 내리는데 도통 쌓이질 않는지.
조약돌이 박힌 길과 울타리와 우편함이, 빨강과 초록으로 빛나는 전구가, 그리고 죽은 사람들의 벌거벗은 시체가.
한가득 내린 눈에 진작 파묻혀야 할 것들이 버젓이 눈앞에 있는데.
이 순간에도 함박눈이 하염없이 쏟아져 내린다.
저 하얀색 죽음이 쌓인 것들은 결말을 맞이한다. 인간은 죽고, 물건은 녹는다.
김 아저씨가 죽고 김 아저씨의 옷이 녹은 것처럼.
배영록이 죽고 그가 운반하던 열쇠가 녹은 것처럼.
예외는 하나 뿐이다, 크리스마스 장식.
예컨대 옷이 다 녹아서 살이 드러난 채로 엉거주춤 누워있는 김아저씨의 시체 같은.
나는 산타의 대답을 듣고는 망연자실해서 자리에 주저앉았다.
7.
배가 고파서 도저히 잠에 들 수가 없었다.
음식도 물도 없이 거의 이틀 넘게 버텼으니 당연하겠지만.
나는 열심히 뒤척거려보다가 결국 잠을 포기하고 방문을 열었다.
“다 죽겠지. 아마도. 절대 못 벗어나. 산타가 절대 허락하지 않아.”
맞은편 문 안쪽에서 뭔가를 끊임없이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강민성의 방이다.
그는 김 아저씨의 죽음 이후로 완전히 망가져서 저런 상태였다.
양손으로 귀를 꽉 막았다. 바로 옆에 있는 누군가가 미쳐버리는 것은, 내 생각보다 훨씬 더 견디기 힘들었다.
어두운 거실로 뛰쳐 내려갔다. 정신없이 내려와서 인기척을 찾았다. 테이블에 가만히 앉아서 밤을 보내는 준미 아주머니다.
눅진한 안도감이 가슴을 스치는 순간이었다.
미동 없이 앉아있던 준미 아주머니가 갑자기 테이블 위에서 뭔가를 집어 들더니.
“끄억!”
그걸 든 손으로 자기 배를 힘껏 내리쳤다.
나는 순간 머리가 하얘진 채로 허겁지겁 달렸다. 고통에 눈이 뒤집어진 준미 아주머니가 허리를 애벌레처럼 굽히며 꺽꺽거렸다. 나는 정신없이 바들바들 떠는 두 어깨를 잡고 아주머니를 확 끌어안았다.
나는 아무런 말도 못하고 그저 안겨서 엉엉 울었다.
얼마 후 떨림이 잦아든 아주머니의 손이 내 등을 어색하게 툭툭 두드렸다.
“아주머니까지 그러지마요. 제발요. 저 진짜 못 버틸 것 같아요. 그러지 말아 주세요.”
나는 필사적이었다. 내가 내 입에서 무슨 말을 내뱉는 지도 모른 채 횡설수설했다. 아주머니까지 이상해진다면 난 도저히 버틸 수 없다는 확신이 들어서, 그게 너무 무서워서. 꽉 끌어안고 아무 말이나 쏟아내는 내 등을 아주머니의 손이 천천히 쓸었다.
“놀라게 해서 미안해요. 지혜 학생.”
“제발요. 두 번 다신 그러지 마세요.”
“네. 안 그럴 거에요.”
몇 번이고 확답을 받고 나서야 나는 간신히 호흡을 되찾았다. 막상 이 난리가 끝나니 괜히 부끄러워져서 아주머니의 얼굴이 보기가 힘들었다.
고개를 푹 숙이고 있으니 잔잔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학생 덕분에 생각을 바꿨어요. 도저히 이대론 안 되겠어.”
“네?”
그제야 고개를 들어보니 아주머니도 날 보고 있었다.
“지혜 학생은 은서를 닮았거든요. 우리 딸.”
“저는 무서운 거 안 좋아하는데요.”
저 따듯한 눈빛이 내가 아니라 내게 비친 누군가를 향했다는 게 조금 서러워서, 나도 모르게 딱 잘라 말해버렸다. 그래도 아주머니는 빙그레 웃을 뿐이었다.
“지혜학생. 제가 생각이 있는데 제 부탁 한 번 들어줄래요?”
방금 전에 자해를 한 사람이라고는 믿기 힘들 정도로 희망 찬 목소리였다.
#. 선물 교환 사례 J
1. 이름 : 김지혜
2. 나이 및 성별 : 17살 여성
3. 요구한 선물 : 질문에 대한 대답. “배영록씨가 가지고 오던 열쇠가 녹아 없어졌어. 기껏 고생해서 우편함에 가봐도 아무것도 없는 거 아니야?”
4. 선물 가격 : 안 그래도 손님들이 도저히 바깥으로 나갈 생각을 안 해서 지루했던 산타는 흔쾌히 대답했다.
5. 결과 : “아니야! 우편함에는 열쇠가 정말 많아! 이건 공정한 시합이라고!”
#. 선물 교환 사례 K
1. 이름 : (찢어짐)
2. 나이 및 성별 : (찢어짐)
3. 요구한 선물 : 사람을 쉽게 자를 수 있는 날카로운 칼
4. 선물 가격 : 산타는 팔을 요구하려다가, 사람을 죽일 때 방해될 거라는 항의에 수명 5년으로 조건을 바꿔줌.
5. 결과 : 거래 성사
8.
다시 만난 강민성은 완전히 정신병자와 다름 없었다.
흐릿하면서도 텅 빈 눈동자는 마주칠 때마다 소름이 끼쳤다. 뭘 생각하는지 혼자 빠르게 중얼거리다 히죽히죽 웃는 건 덤이었다.
원래도 마주치기 싫은 인간 군상이었지만, 지금은 불쾌하기 짝이 없다.
난 열심히 그를 외면하면서 아주머니에게 선물 교환 결과를 알려주었다.
“아주머니 말이 맞아요. 우편함에는 아직 열쇠가 있어요. 기회가 있어요.”
“기회? 아직도 모르겠어?”
말을 끊고 끼어든 강민성이 이죽거렸다.
“저 산타라는 놈 말이야. 절대 우편함까지 갔다 오게 안 놔둔다. 우린 절대 못 나가. 여기서 굶어 죽든가, 저기 밖에서 죽든가. 처음부터 둘 중 하나였어. 차라리 굶어 죽는 게 나아. 그럼 적어도 저 빌어먹을 산타 놈 웃을 일은 없겠지.”
그 말이 마치 같이 죽자는 저주처럼 들려서 따지고 들려는데 준미 아주머니는 의외로 담담하게 대답했다.
“일단 내 계획부터 들어봐요.”
준미 아주머니가 제안한 것은 이어달리기였다.
첫 주자가 뛰어나가서 우편함에서 열쇠를 찾아 오두막으로 달려온다. 우린 여긴 산타의 함정이 있다고 추측했다. 절대 주자가 방호복의 주어진 시간 안에 오두막까지 돌아올 수 없게 하는 무언가가 있다.
그러나 최대한 달려서 뒤늦게 나간 두 번째 주자에게 열쇠를 넘겨주는 것은 가능하다.
그 지점에서 강민성이 끼어들었다.
“아줌마. 바깥에 누운 저 시체들이 그 생각을 안 해 봤겠어? 그건 말도 안 되는 계획이야.”
사실 나도 이번만큼은 강민성에게 동의했다.
이 계획엔 큰 허점이 있다. 바로 방호복 시간이 다 해버린 첫 주자가 무조건 죽는다는 점이다. 그 점을 짚자 빙긋 웃은 준미 아주머니는 아무렇지도 않은 말투로 이렇게 말한다.
“내가 죽을게요. 나는 여기서 살아서 나갈 생각이 없어요.”
그 한 마디 말이 너무 무거워서 나는 대답을 할 수가 없었다. 강민성은 헛웃음을 쳤다.
“죽겠다는 사람 중에 죽고 싶어하는 사람 봤어?”
남자의 조롱에도 아주머니는 소름끼칠 정도로 침착하게 말을 이었다.
“오두막에 돌아오지 않는 걸 대가로 선물교환을 할게요. 믿기지 않는다면 당신 교환 때 확인해 보세요.”
강민성은 대답하지 못하고 입을 꾹 다물었다. 아주머니는 그 기세로 단호하게 결론을 낸다.
“저번에 민성 씨가 말했죠? 다리 한 쪽에 3분짜리 방호복 하나라고. 두 다리를 써서 방호복 두 개를 구해주세요.”
#. 선물 교환 사례 L
1. 이름 : 박준미
2. 나이 및 성별 : 41살 여성
3. 요구한 선물 : 질문에 대한 대답. “방호복이 나를 지켜주는 건 알겠어. 그러면 내가 들고 있는 뒷문 열쇠까지 지켜주나?”
4. 선물 가격 : 손님은 오두막 밖으로 나가면 절대 오두막으로 돌아오지 않겠다고 맹세함
5. 결과 : “제한 시간 동안은 너도, 네가 쥔 물건도 녹지 않아! 이건 공정한 게임이니까! 내가 장담할게!”
#. 선물 교환 사례 M
1. 이름 : 강민성
2. 나이 및 성별 : 27살 남성
3. 요구한 선물 : 직전 손님의 요구 확인 및 3분 짜리 방호복 두 개
4. 선물 가격 : 손가락 두 개와 양 쪽 다리
5. 결과 : 거래 성사
9. 사무실
사무실의 문이 벌컥 열렸다.
직원 하나가 문고리를 잡고 숨을 헐떡이며 외쳤다.
“그 여학생! 정신 차렸다고 합니다! 지금 부장님도 이동중이십니다!”
“그래?”
빠르게 서류만 챙긴 요원이 어리둥절한 후배에게 설명했다.
“그 유일한 생존자 말하는 거야. 혼수상태에서 깨어난 모양이야. 서두르자고.”
“아하.”
그제야 후배도 허둥지둥 장비를 챙겼다. 생존자가 한 명이라 증언 교차 검증이 힘든 상황. 증인의 기억이 휘발되기 전에 한 조각이라도 더 챙기려면 서둘러야 했다.
10. 산타의 집
강민성은 자기는 도저히 밖으로 나갈 수 없겠다며 선물 교환을 자처했다.
자포자기한 것처럼 보이던 사람이 갑자기 살 수 있다는 희망이 생기니까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변했다. 그게 참 역겨우면서도, 정작 나도 강민성과 다를 게 없다는 자괴감도 들었다.
준미 아주머니와 나는 우비 같은 방호복을 덮어썼다.
아주머니와 눈을 마주치기 힘들다. 우리를 위해 죽겠다는 사람을 대하는 건 생각보다도 훨씬 어렵고 복잡한 일이었다.
“지혜 학생. 오늘 치 선물 교환을 했나요?”
“아, 아직이요.”
갑작스런 아주머니의 질문에 더듬더듬 대답하자 준미 아주머니가 순박한 미소를 지으며 내게 말했다.
“이번 교환에서 혹시 열쇠가 녹지 않는지 물어봤어요. 방호복이 정상적이라면 열쇠도 녹지 않는다고 하더군요.”
“아! 다행이에요!”
“그런데 교환 대가 중에 시력 손상이 있었어요. 그러니 혹시 하나만 부탁해도 될까요?”
#. 선물 교환 사례 N
1. 이름 : 김지혜
2. 나이 및 성별 : 17살 여성
3. 요구한 선물 : 오두막 울타리를 꾸밀 때 사용된 전구. 홀로 초록색과 빨간색 빛을 내는 것.
4. 선물 가격 : 산타가 묘한 웃음을 지으며 제안했다. “배영록 씨의 시체 위치가 손가락 두 개였지? 그럼 이것도 손가락 두 개여야해. 정말 재밌네.”
5. 결과 : 거래 성사
11. 산타의 집
준미 아주머니가 먼저 오두막 밖으로 나간 후 1분이 흘렀다.
문 밖에서 하얀 눈발이 사납게 휘날렸다. 솔직히 말하면 지금도 여길 나가는 게 무서웠다. 하지만 두렵다는 생각이 들 때마다 성큼성큼 먼저 나간 아주머니를 생각했다.
혼자가 아니고 첫 번째도 아니라는 것. 그 생각이 공포를 밀어낸 순간을 놓치지 않고 한 발짝 내딛는다.
본능적으로 지금부터 방호복의 카운트 다운이 시작됐음을 알았다.
뛴다.
사납게 몰아치는 눈발이 얼굴을 마구 때렸다. 찬 기운이 피부에 닿을 때마다 무서워서 다리에 힘이 풀릴 뻔 했다. 간신히 이를 악물고 버틴다.
이 눈은 3분 동안 내게 아무런 문제도 아니야. 이건 가짜야. 길에 눈이 쌓이지도 않잖아. 나는 달리기만 하면 돼. 그것만 생각하며 한 걸음, 또 한 걸음. 어?
이쪽을 향해 달리는 사람의 형체가 보인다.
“여기에요!”
손에 쥔 전구를 마구 흔들며 소리친다.
이건 준미 아주머니의 아이디어였다. 시력을 크게 잃은 아주머니도 볼 수 있는 빛 신호.
초록색, 빨간색.
“여기요!”
아주머니의 고개가 이쪽 방향으로 돌았다. 초록색, 빨간색, 빛이 반짝였다.
눈바람을 뚫고 닿는 광원을 향해 아주머니가 뛰어 온다.
쿵!
마침내 속도를 줄이지 못한 아주머니와 내가 부딪쳤다.
“히익, 힉. 히익.”
아주머니는 바람 빠지는 소리를 내며 목구멍을 넘어오는 숨을 다시 삼키기에 급급했다. 어찌나 사력을 다해 뛰었는지 눈이 반쯤 풀려있었다.
힉 하고 숨을 들이키는 소리 사이로 중얼거림이 들렸다.
히익, 힉, 딸, 우리 딸, 히익. 딸, 마지막, 안아, 히익.
나를 보면서도 내가 아닌 누군가에게 내뱉는 마지막 인사에, 속에서 뭔가가 복받쳐서 아주머니를 힘껏 껴안았다.
어라.
순간 배꼽에 화끈한 느낌이 들고 팔 끝과 다리 끝이 저렸다.
마지막으로 본 것은 배에 깊숙이 박힌 초록색 칼날이었다.
빨간색 칼날이었다.
초록색, 빨간색.
초록색.
12. 병원
“안녕하세요.”
눈이 퉁퉁 부은 여학생이 병원 침대에 누워서 요원을 반겼다.
듣기로는 정신을 차리자마자 엉엉 울었다고 했다. 너무 서럽게 울어서 말도 못 걸었다고.
우는 애를 상대하는 건 질색인지라 조금 늦은 게 오히려 다행이었다.
“생환을 축하해요, 학생. 그리고 미안해요. 좀 무리한 요구를 하러 왔어요.”
비타민 음료를 내려놓은 후배가 조심조심 입을 열었다.
“어떻게 탈출했는지 들을 수 있을까요? 끔찍하겠지만 학생이 기억을 보존해주셔야 최대한 많은 사람을 살릴 수 있어요.”
“아…….”
여학생의 눈가에 또 한 방울 슬픔이 맺힌다. 그녀는 입술을 우물거리다가 간신히 입을 연다.
“저는 아무것도 한 게 없어요. 엄마, 엄마가 절 내보내줬어요.”
13. 산타의 집
한 걸음 한 걸음 걸었다. 그녀에게 방호복을 빼앗긴 여학생의 시체가 땅에 질질 끌렸다.
오두막까지 갈 생각은 아니다. 산타가 집안을 청소해버리기 때문에 거긴 적절하지 않다. 그저 아주 조금이라도, 한 발짝이라도 더 가까워지는 것으로 충분하다. 그래. 시간이 없으니까 이쯤.
그녀는 바닥에 김지혜를 눕히고 그 위에 포개지듯 앉았다. 무서울 정도로 날카로운 칼을 소녀의 배에 들이댔다. 주욱, 하고 너무나도 쉽게 하얀 피부가 갈라졌다. 그리고는 품에서 조심조심 은빛 열쇠를 꺼냈다.
눈이 닿으면 안 되는 이 열쇠를, 절대 눈에 녹지 않는 열쇠함으로 꾸욱 밀어 넣는다.
처음에는 스스로 배를 갈라서 열쇠를 넣으려고 해봤다. 하지만 몇 번을 연습해봐도 영화와는 달랐다. 심한 고통에 근육이 굳어서 아예 움직일 수조차 없었다.
열쇠를 포장할 다른 용기가 필요했다. 이왕이면 가장 변수가 적은 것으로.
박준미는 소중한 열쇠함 위에 풀썩 엎드렸다. 한 조각의 눈송이도 들어갈 수 없게 배와 배를 최대한 맞댔다.
손가락이 세 개만 남은 김지혜의 작은 손을 힐끗 보고, 그 벌어진 입에 전구를 넣었다. 녹지 않고 영원히 빛날 수 있는 전구를.
‘손가락 두 개. 이 미친 곳에서 그 정도면 싼 편이지만.’
우리 딸.
손톱이 예쁜 우리 딸. 그 귀한 손가락은 아껴야 하니까.
이건 그런 계획이었다.
남편의 팔짱을 끼고 내게 이혼해달라고 애원하던 그 년이, 눈을 부릅 뜨고 벽에 걸려있는 걸 봤을 때부터.
사례집을 읽고 한 달 전에 실종된 남편이 어디 있는지 알게 됐을 때부터.
탈출할 생각은 없었다. 탈출시킬 생각 뿐이었다.
“산타. 선물 교환을 하자.”
불발된 거래도 사례집에 남는다.
시체 위에 엎드린 채 박준미는 그게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 선물 교환 사례 O
1. 이름 : 박준미
2. 나이 및 성별 : 41살 여성
3. 요구한 선물 : 질문에 대한 대답? “딸, 똑똑한 우리 딸. 보고 있지? 우편함까지 갈 필요 없어. 빛이 나는 시체를 찾아. 두 구가 포개져 있지? 아래 쪽 시체 뱃속에 열쇠가 있어. 크리스마스 선물. 사랑해. 우리 딸. 세상에서 제일 사.”
4. 선물 가격 : 방호복 시간이 다 해 손님이 요구를 끝내지 못했어. 사실 이미 오늘의 교환을 해버려서 말했어도 거절했을 테지만!
5. 결과 : 거래 불발
#. 선물 교환 사례 P
1. 이름 : 최은서
2. 나이 및 성별 : 15살 여성
3. 요구한 선물 : 지금까지 있었던 모든 선물 교환이 기록된 사례집
4. 선물 가격 : 수명 20년
5. 결과 : 거래 성사.
진짜 대박…
지혜야....ㅜㅜ
와...대박이다...간만에 충격받음
와 링크들어가서 읽어봐 진짜 잘쓰네
진짜 너무너무 재밌다... 푹 빠져서 읽고 한 번 더 읽음 진짜 재밌다 가져와줘서 고마워!!
눈물나 ㅠㅠㅠ
미친...ㅠㅠㅠㅠㅠㅠㅠ
지혜는 뭔 죄냐..
준미씨 머리 좋네
미친미친.....
너무 재밌다
와 다음에 잡혀올 딸을 위해 자기 턴에서 큰그림을 그리고 죽은 거구나... 지혜는 불쌍하지만 ㅜ 준미씨 진짜 레전드다
역대급 재밌다….
와 소름
ㅁㅊ지혜 살았을 줄... 아줌마 딸이 다음ㅔ 들어와서 살았구나
와 이 사람글 장난아니다...존잼
지혜는 ㅜ 끝까지못됐네
이 사람 글 다 재밌다..
와 반전 ㅁㅊㄷ
준미아줌마가 열쇠를 자기 입에 넣고 죽으면 안되나??
그럼 김지혜가 가져가서 본인딸에게 못주니까...ㅠ
와 아주머니 머리 잘쓰셨다
자기턴의 모든 자원을 활용해서 딸 살렸네;;
존잼ㄷㄷㄷ
두 다리없는 강민성은 어쩌지도 못하고 죽을수밖에없을테니까
김지혜만 죽이면 턴 종료네
개재밌다...그리고 개똑똑하네......지혜는...마지막까지 준미 믿었는데ㅠㅠㅠㅠㅠㅠㅠㅠ
너무 슬퍼...ㅜㅜ
하 진짜 너무 재밌다;;
역시 엄마의 사랑 ㅠ개비 껒
지혜씨 불쌍한데 ㅠㅠ 어쩌겠어...ㅠㅠ
아 ㅜㅠㅜㅠㅠ
헉헉 너므 재밋다,,
존잼이다 진짜
헐 지혜 불쌍해..ㅠㅠ
와 재밌다... 엄마ㅠㅠㅠ
재밌다..
지혜 너무 불쌍해ㅜ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