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에 젖은 낙엽
하루 종일 비가 내린다. 비바람에 떨어진 감나무 잎사귀 때문에 뒤뜰이 어지럽다. 장대처럼 내리 꽂히는 빗줄기 때문에 어쩌지 못하다가 비가 잠시 잦아 지 길래 빗자루를 들고 나섰다. 먼저 부러진 잔가지들을 치우고 비에 젖은 감나무 잎들을 쓸어냈다. 비에 젖은 잎사귀가 땅바닥에 달라붙어 있어서 쓸기가 여간 힘든 게 아니다.
젖은 낙엽은 거듭되는 비질에도 잘 떨어지지 않는다. 가지에 매달려있다 가 힘없이 떨어져 버린 낙엽들. 그 낙엽들이 오가는 발길에 짓밟히면서도 쓸려나가지 않으려 발악을 하는 모습이다. 요즈음 사, 오십대 중년 남자들을 보는 것 같아 마음이 처연해진다.
그러나 어찌하랴? 비를 잡은 손에 힘을 준다. 악착같이 하나도 남김없이 다 쓸어냈다. 뒤뜰이 깨끗해졌다. '오찌누레바'는 비에 젖은 낙엽이란 뜻의 일본어다. 정년퇴직을 하여 갈 곳이 없는 남편들이 비에 젖은 낙엽처럼 마누라 곁에 찰싹 들어붙어 사는 남편들을 비하하는 말이다.
기실 그럴 만도 하다. 미래에 대한 준비도 없고, 취미도 별로이며, 비지니스 관계도 젬병인 듯하니 비에 젖은 낙엽이라고 하는 것이다. 즉 별로 쓸모가 없지만 달라붙는 특성을 지니고 있다는 뜻이 내포되어 있다. 허구 헌 날 아내에게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는다는 의미로 '비에 젖은 낙엽'이라 한 것이다. 일본에서 50대 중반에 직장에서 명예퇴직을 당한 사내들을 일컬어 '오찌누레바'라고 부른데서 유래가 되었다 .
한때 나도 공직에서 잘 나가던 때가 있었건만 막상 직장에서 물러나니 남는 것이 시간뿐이었다. 몇 년째 별다른 일거리 없이 지내다 보니 인생을 헛되게 살았다는 생각이 든다. 일년 정도는 바쁘게 살았다. 관광도 하고 산악회도 가입하여 방방곡곡 명산대천을 다니다 보니 그럭저럭 지낼 만했다. 그런데 일년이 지나고 나니 아는 사람도 거북스러워하고 문학회활동도 글다운 글을 발표하고 여유가 있어야 친목도 되는 거지 평생을 남의 손에 의존해서 살아와서인지 아내가 집에 없으면 왠지 불안하고, 식사 하나도 스스로 해결하지 못하는 위인이 되었다. 요즘 코미디 용어로 '이건 아니잖아!'였다.
의존 병이 심해질수록 진드기 같은 남편의 존재를 한없이 귀찮게 생각하는 게 아내다. 장성한 아이들도 별반 관심을 가져 주지 않는다. 카리스마 넘치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눈가에 촉촉이 이슬이 맺히면서 장탄식을 하게 된다. 밤낮 구분 없이 직장 일에 열중하면서 좋은 세월을 다 보내고 아내와 애들은 아빠가 보고 싶다고 집에 일찍 들어오라고 성화를 부리더니 시간이 지날수록 남편과 아버지가 없는 삶에 익숙해졌다. 그들 나름대로 성장하여 결혼을 하고 직장을 따라 떠났다. 한동안 가족들은 가정을 위해 애쓴 나를 이해해 주고 보듬어 주더니 일년 정도 지나니 그야말로 '비에 젖은 낙엽 신세'가 되었다.
'오찌 누레바', 누구나 은퇴를 해야 하는 숙명을 지니고 태어난다. 누구나 낙엽이 되는 시기가 오건만 그걸 잊고 산다. 생의 전반전이 끝나면 후반전을 어떻게 대비해야 할지 냉정한 자기 성찰이 있어야 한다. 요즘 내가 고민하는 화두도 인생 후반전을 어떻게 살아야 할까 하는 점이다.
비에 젖은 낙엽은 마치 마지막 인연의 끈을 놓지 않으려는 듯 발버둥치는 것 같다. 빗자루로 쓸어보면 알 수 있다. 그냥 두면 바람불고 햇살 한 줄기 비치면 스스로 말라 바람에 날려 한곳으로 모인다. 그때 쓸어 담기만 하면 되지만 비를 맞으며 쓸어내는 청소부의 구릿빛 팔뚝엔 모진세월의 흔적이 남는다.
요즘 나는 비에 젖은 낙엽이 되지 않으려고 노력해 보지만 부질없다는 생각이 든다. 머지않아 낙엽이 될 노인들의 생애를 보니 나의 미래를 보는 것처럼 슬프다. 모든 사람이 생,노,병,사의 과정을 거치건만 나는 아니라고 우기고 살아왔다. 청춘이 엊그제였는데 벌써 지인들이 하나둘 병원 중환자실에서 인연의 끈을 잡고 모진세월을 뒤로한 채 '비에 젖은 낙엽' 처 럼 사는 걸 보면 어찌 구슬프다 않겠는가?
생각을 바꾸었다. 긍정의 힘을 발휘하여 새로운 일에 도전해 보기로 했다. 요리사자격증도 따고, 2종 소형 오토바이 면허도 땄으며, 헬스클럽에서 노력하여 노령 미스터 대회에도 도전하고, 수필창작 금요 반에 등록하여 도전하고 있다. 그 결과 이제는 요리에 자신감도 생겨 아내의존병도 사라졌고, 오히려 적극적으로 봉사할 수 있고 나도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나를 그냥 두지 않는다. 낙엽이 된 것도 서러운데 비에 젖은 낙엽은 더 싫다. 젖은 낙엽이 되지 않으려고 발악하는 내가 참으로 아름답다. (2009.9.6.)
첫댓글 어쩐대요? 울 옆지기는 젊어서부터 비에젖은 낙엽인디....
넵!열심히 파이팅하십쇼 보기좋아요 굿^*^
그 좀 표현이 그렇네요.퇴직하고도 일찿아 열심히 사시는 분도 많으시던데요~~~~설마 가족들이 그렇게 생각하실려구요~~~ㅎㅎㅎ
짝짝짝!!!!!!!! 박수 보내 드려요...너무 잘 하셨어요....왜 아내를 붙잡고 서로 스트레스 주고 받으며 살아야 합니까?? 서로의 삶에 행복해야지요....각자의 삶이 충실할때 가족간의 행복도 오리라 믿는답니다....우리 부부도 무던히 그런 일로 싸웠지만 지금은 부부가 같이 스포츠 댄스도 히고 너무 재밌어요...행복은 만들어 가야 하니까요.....행복하세요...
저는여자지만 항상 생각하네요.남자들은 나이들고 나면 그 긴시간을 어찌보낼까?하고...여자들은 집안일이래도 하며 시간을 때우곤 합니다만 .....비켜갈수없는 인생의쓸쓸한 말로가 남에일이 아닙니다.자신을위해,비에젖은 낙엽임을 인정하려하지않고 살고싶은 님에 노력에 박수를 보냅니다.
지금부터시작이네요....건강이 허락할때까지 ..취미생활열심히 하시고..건강하세요...존경!!^^*
비에 젖은 낙엽이 되지 않으려 부지런히 뛰고 달려는 보는데 어디 그게 마음대로 되지 않는것이 우리내 인생사 인것 같기도 하네요만..... 많은 상념으로 머물어 봅니다. 항상 좋은날 되세요. 감사 합니다.
사파리님 멋있습니다. 탁~ 차고 일어서는 님의 모습이 진짜 멋집니다. 요리, 오토바이, 헬스, 글쓰기... 이제 팔방미인되시는 거네요? 조만간 미스터 사파리 되실지도 모르겠네요? ^^*
열심히 사시는 님에게 정말 박수 보내고 싶습니다,,,,,뭐든 성취하는자만이 행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