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뭘 좋아할지 몰라 다 넣어 봤어.’
“선생님, 민철 씨가 조금 달라진 것 같아요.”
매달 이민철 씨 통장사용내역을 정리한다. 11월 통장사용내역을 살피며 신아름 선생님과 이야기 나눈다.
어떤 여름에는 CD를, 어떤 달에는 볼펜을, 또 어느 날에는 모자와 바지를.
지금까지 이민철 씨의 소비 패턴은 주로 그 계절, 그 시기에 꽂힌 물건들을 여러 가게를 다니며
구입하고 모으는 편이었다. 개중에는 이민철 씨가 좋아서 사는 게 있었고,
본인의 취향과는 관계없이 누군가 사는 모습을 보고 따라 사는 것도 많았다.
그래서 이런 이민철 씨의 소비 패턴이 남이 볼 때는 불필요한 것을
쓸데없이 많이 사는 것 같아 보이기도 했다.
그때의 이민철 씨에게는 여러 이유로 필요한 것들이었을 텐데.
구입하는 양이 적지 않고 거의 매일 동일한 물건을 반복해서 구입하니
충분히 그렇게 보였을 것 같기도 하다.
콜라, 컵라면, 꿀꽈배기, 블루베리 스무디, 달걀말이, 닭강정, 갈비찜, 락스, 청소 솔.
요즘 이민철 씨의 통장 내역이 조금 달라졌다.
불과 몇 달 전 통장에는 찍히지 않던 다양한 지출처와 지출 내역이 기록되어 있다.
자취를 시작하고 조금씩 조금씩 변하고 있긴 했지만,
이렇게 다양하게 찍히기 시작한 건 거의 10월쯤부터였던 것 같다.
‘뭘 좋아할지 몰라 다 넣어봤어 도시락.’
11월, 이민철 씨가 구입한 편의점 도시락 이름이다.
아마 이민철 씨가 39년 만에 처음 구입한 편의점 도시락일 것이다.
도시락을 구입하기 전 몇 번 직원에게 물은 적이 있다.
“편의점에도 도시락을 파네요. 도시락 사도 됩니까? 아, 아는 사람이 먹고 있길래.”
취향이 꽤 어른스러운 편인 이민철 씨는 삼시세끼를 집에서 밥과 반찬으로 챙겨 먹는 것을 좋아한다.
가끔 외식할 때도 있지만, 대부분 국밥이나 볶음밥처럼 밥 같은 밥을 선호한다.
정확하게는 때우는 식의 식사를 하지 않으시는 것 같다. 라면도 예외는 아니다.
그런 이민철 씨가 편의점에서 도시락이라니. 꽤 밥 같은 밥처럼 보이지만,
밥을 사는 곳과 먹는 곳도 중요해 보였던 이민철 씨에게는 큰 변화로 느껴진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우연히 편의점에서 도시락을 사 먹는 지인을 보고 샀다고 했는데,
맛과 양과 꽤 이민철 씨 취향에 맞았나 보다.
이민철 씨의 식사로 지금까지의 자취 생활을 정리하자면,
자취를 시작하고 첫해에는 이사한 집에 적응하며 어떻게 끼니를 해결할 것인가에 오롯이 집중했다.
자취 2년 차에 접어든 올해는 끼니를 해결하는 것에서 나아가
무엇을 좋아하고 어떤 걸 먹고 싶은가 고민하며 사셨던 것 같다.
당연히 경험해 보지 못한 것은 이민철 씨의 수많은 지인에게 묻고, 그들이 사는 모습을 보며 배웠다.
시간이 지날수록, 도시락 이름처럼 뭐를 좋아하는지 몰랐던 취향을 알기 위해 매일, 매끼 노력하며 살았다.
그 덕에 이민철 씨가 좋아하는 것들이 하나씩 늘고, 매일 먹는 반찬과 더불어 가끔 찾는 별미로
여러 재미를 함께 누리며 살게 되었다.
“도시락 맛있더라고. 그럼 라면에 밥 말아 먹어도 되죠?”
“네? 그럼요.”
“아, 어제 갈비탕 먹으러 갔는데 따뜻한 국물에 밥 말아 먹으니까 참 맛있더라고.”
“그래서 라면에 밥 말아 드신 겁니까?”
“응, 사장님이 집에서도 말아 먹으면 맛있다 했거든.”
“아, 사장님이 집에서도 그렇게 먹으라고 추천해 주신 겁니까?”
“네.”
“진짜요?”
“응. 라면도 큰 걸 사야 하더라고.”
내년이면 읍에서의 자취 3년 차에 접어든다. 내년이 기대된다.
2024년 12월 4일 수요일, 박효진
그러네요. 이렇게 두고 보니 이민철 씨 자취 첫 해와 올해 달라진 일이 적지 않네요. ‘살면서’ 차츰 일어나는 변화니 그 속도와 실제가 자연스럽게 느껴집니다. 이렇게 돌아보아야 깨달을 만큼요. 시선을 두어 기록으로 남겨 주셔서 고맙습니다. 또 변화할 내년을 기대합니다. 정진호
입주자 분들의 소비 내역을 보고 어떻게 사시는지 상상합니다. 소비 패턴이 제일 많이 변한 분. 신아름
우연히 지인이 먹는 걸 보고, 식당 사장님의 권유로…, 여느 사람이 삶의 지혜를 타인과 관계하며 배우듯 이민철 씨도 그렇게 배운다니 감사합니다. ‘남이 볼 때는 불필요한 것을… 이민철 씨에게는 필요한 것이었을 텐데….’ 이민철 씨의 뜻을 존중하며 기다리는 박효진 선생님 덕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월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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