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책 (空冊 )이란 빌 공 (空) 자와 책 책(冊) 자로 책은 책인데 빈 책이란 의미다 공책이란 말의
유래가 동양인지 서양인지 잘 알지 못하나 아마도 서양에서 먼저 나오지 않았겠나 싶다.
종이의 발명은 중국이 먼저고 인쇄술도 직지가 세계 최초지만 공식적인 교육의 시작은
서양에서 비롯됐다고 보고 있다. 공책을 영어로는 노트북(notebook)이라 하고 줄여서 그냥 노트
(note)라고도 하는데, 노트에는 여러가지 뜻이 있다.메모나 편지,쪽지라는 의미도 있고,지폐,채권이란
뜻도 있다.동사로는,주목하다,언급하다의 뜻도 있다.
내가 공책을 최초로 만난 것은 국민학교에 입학하면서부터였다.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꼭 70년전인 단기 4288년(서기1955년)이었다. 당시에는 서기보다 단기를 썼다. 시골 학교앞
문구점에서 공책을 샀는데 지면이 희고 매끈한 것은 비쌌고 지면이 누런 재생종이는 조금 쌌다.
나는 형편이 넉넉치 않았으므로 주로 재생종이로 된 공책을 샀는데 우리는 종이색깔이 똥처럼
누렇다고 해서 똥종이라 불렀다. 연필심에다 침을 묻혀 꾹꾹 눌러 쓰면 종이가 잘 찢어졌다.
6.25사변이 멎은지도 얼마 되지 않아 나라에서 제대로 생산되는 것은 별로 없었고 종이도 귀했다.
내가 공책을 다 쓰면 공책 바닥은 가위로 잘라서 아버지 담배 말아서 피우는 담배종이로 쓰여졌다.
통시(변소)에는 화장지는 개념조차 없었고 종이도 없어 지푸라기를 구겨서 식구대로 뒷처리를
했으며 어린아이들은 마당에서 뒤를 보게 하고 처리는 키우는 개를 '워리 워리'불러서 처리했으므로
일명 똥개라고 불렀다.
세월이 흐른 다음 우리가 마산으로 내려와 고등학교에 다닐 때까지만 하더라도 마산 변두리인 양덕에
재생종이 공장들이 많았고 폐지를 줍는 큰 통을 등에 지고 다니는 양아치들이 많았다.
우리집도 바닷가에 있었으므로 청소차들이 연탄재와 쓰레기를 매축에 투입하기 위해 버리면 쓰레기
더미를 파헤쳐 폐지를 골라내어 고물상에 가서 팔기도 하였다. 폐지도 서로 주워 가려고 경쟁이 되었으므로
추운 겨울 밤늦게 시린 손으로 폐지를 주워 담았다.
대학을 졸업하고 나선 공책이 필요가 없었으므로 살 일이 없었다. 해군에서 제대를 하고 난 후 송출선원으로
일본회사에 취직이 되어 해기사로 배를 타게 되었다. 내가 탄 배는 벌크선으로 원목을 주로 실었다.
처음에는 북미에서 나는 미송을 일본에 실어 날랐고 다음에는 동남아 라왕과 싱커를 유럽에 실어날랐다.
원목을 하역하기 위해 프랑스 라로셀에 입항했을 때 입항수속을 마치고 정박하는 동안 시내로 상륙을 하였다.
바닷가에 옛날 중세의 성이 남아 있는 아름다운항구로 부두 인근에는 요트장에 호화요트들이 줄지어 늘어서 있었다.
시내 번화가를 구경한 다음 요트 계류장쪽으로 걸어갔더니 문구점이 눈에 띄여 안으로 들어가 둘러 보았다.
볼펜,만년필,샤프펜, 연필 등을 비롯하여 여러 종류의 노트북 들이 진열돼 있었다. 멋진 디자인의 노트북도 있고
지금까지 보지 못한 사각줄 무늬의 노트들도 많았다. 별로 쓸 일도 없었지만 노트가 탐이 나서 각기 다른 디자인의
노트 세권을 샀다. 그리고는 한동안 잊어 버렸다. 배를 내리고 학교로 들어갔다. 다시 공부가 시작되었다. 대학원을
다시 가게 된 것이다. 예전에 산 노트가 나를 인도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노트 세 권중에서 한 권을 박사학위 준비하는데
쓰게 되었다. '사람이 책을 만들고, 책이 사람을 만든다'는 말이 있다. 공책도 메꾸면 책이 되고 사람도 만드는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