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보다 영화같은… 옥수수밭 꿈의 구장으로 날아간 홈런
ML 시카고W-뉴욕 양키스 선수들, 1910년대 복장입고 밭에서 등장
영화 ‘꿈의 구장’처럼 대결 펼쳐… 승부조작 제명된 선수들 기린 작품
주인공 케빈 코스트너도 구장 찾아… “완벽하다. 이곳이 천국인가?” 감격
양팀 모든 득점 8개 홈런으로 나와… 엎치락뒤치락 짜릿한 역전극 펼쳐
1989년 개봉된 영화 ‘꿈의 구장’의 촬영지 미국 아이오와주 다이어스빌 옥수수 밭에 설치된 구장에서 13일 뉴욕 양키스와 시카고 화이트삭스의 경기가 열렸다. 메이저리그 사무국은 이 경기를 앞두고 화이트삭스가 1919년 당시 안방으로 썼던 코미스키 파크를 본뜬 8000석 규모의 임시 경기장을 마련했다. 경기 전 선수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다이어스빌=AP 뉴시스
할리우드 스타 케빈 코스트너(66)가 옥수수 밭을 헤치고 외야에 나타나자 관중석의 7832명이 일제히 환호하기 시작했다. 흰색 셔츠에 선글라스를 낀 채 야구공을 쥐고 나타난 코스트너는 감상에 젖은 듯 야구장을 둘러보고는 내야를 향해 천천히 걸음을 내디뎠다. 뒤이어 메이저리그(MLB) 시카고 화이트삭스와 뉴욕 양키스 선수들이 1910년대 유니폼 복장을 한 채 옥수수 밭을 헤치고 나왔다. 영화 속 한 장면이 현실로 고스란히 재현된 것이다. 경기장 위에서 선수들과 일일이 악수를 나눈 코스트너는 “완벽하다. 이곳이 천국인가? 그렇다”는 소감을 남겼다.
1989년 ‘꿈의 구장(Field of Dreams)’ 영화 포스터. 주연인 케빈 코스트너는 이날 경기장에서 영화 속 대사인 “이곳이 천국인가”를 외쳐 관중의 기립박수를 받았다.
1989년 개봉된 영화 ‘꿈의 구장(Field of Dreams)’이 눈앞의 현실이 됐다. 이 영화 촬영지였던 미국 아이오와주 다이어스빌 옥수수 밭에서 13일 MLB 뉴욕 양키스와 시카고 화이트삭스의 경기가 열렸다. 코스트너가 주연을 맡았던 이 영화는 1919년 MLB 역사상 가장 큰 승부조작 사건인 ‘블랙삭스 스캔들’을 소재로 다뤘다. 코스트너가 연기한 주인공 레이가 ‘야구장을 지으면 그들이 올 것’이라는 계시를 받고 옥수수 밭에 야구장을 만들었고, 블랙삭스 스캔들로 영구 제명된 선수들의 유령이 이곳에서 경기를 펼친다는 판타지 성격의 영화다. 블랙삭스 스캔들은 1919년 월드시리즈에서 시카고 화이트삭스가 신시내티 레즈에 고의로 패배한 사건으로, 연루된 선수 8명이 영구 제명됐다.
MLB 사무국은 이 경기를 앞두고 화이트삭스가 1919년 당시 안방으로 썼던 코미스키 파크를 본뜬 8000석 규모의 임시 경기장을 마련했다. 경기장 건설에는 600만 달러(약 70억 원)가 들었다. 아이오와주에서 MLB 경기가 열리는 건 이번이 처음이며 다이어스빌은 인구 4000명의 소도시이다. 사무국은 애초 지난해 ‘꿈의 구장’ 경기를 치를 생각이었지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일정을 미뤘다.
선수들도 감격스러워했다. 이날 꿈의 구장이란 글자와 영화 속 한 장면이 새겨진 운동화를 신고 경기에 나선 뉴욕 양키스의 우익수 애런 저지는 “선수들이 헤드폰을 벗어던진 건 처음이다. 모두 창문에 붙어 창밖에 펼쳐진 아름다운 풍경을 바라봤다”고 소감을 전했다. 롭 맨프레드 MLB 커미셔너는 “2022년 8월에 ‘꿈의 구장’ 경기를 다시 열 계획”이라고 밝혔다. 관중의 열기도 뜨거웠다. 이날 티켓은 아이오와 지역 주민 및 시카고 화이트삭스 시즌 티켓 소지자에 한해 추첨으로 돌아갔는데 약 400달러(약 47만 원)의 티켓 가격이 암표 시장에서 1400달러(약 164만 원)까지 치솟기도 했다.
경기 내용도 영화 같았다. 안방 팀 시카고 화이트삭스는 7-8로 뒤진 9회말 1사 1루에서 팀 앤더슨이 우측 담장을 넘기는 2점 홈런을 치면서 9-8로 끝내기 역전 승리했다. 9회초 4점을 주며 역전을 허용하고도 다시 경기를 뒤집었다. 공교롭게도 이날 양 팀은 4개씩의 홈런을 터뜨리며 모든 득점을 홈런으로 만들어냈다. 이 경기장의 좌우 담장 길이는 335피트(약 102m), 중간 담장은 400피트(약 122m)로 세인트루이스의 안방인 부시스타디움과 가장 규모가 비슷하다. 끝내기 홈런의 주인공 앤더슨은 1993년생으로 아직 이 영화를 보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강홍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