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밤 늦게 이 글 보고 웃겨서 잠을 설쳤습니다.
한번 보시라고...
장마에 건강하시고, 즐거운 주말 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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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대간 산행일지
김륭
<등산>
정말 뭐가 진정으로 힘든건지 알게 되게 되었다. 강강수월래단들이 가소로울 정도로 쓴 맛을 느껴보았다. 특히 첫날은 정말 무지무지 힘들었다. 지리산에 등산을 갈 때 천왕봉 팻말이 0.8 Km 남았다고 방심하지 말 것을 바란다. 정말 그 다음부터가 지옥이다. 숫자 소숫점 자리수 주제에 거리는 얼마나 먼지...정말 암울했다. 100m달리기 8번만 달리면 된다고 생각하고 뛰었다가 낭패봤다. 그리고 천왕봉말고도 다른 산이 많았다.
천왕봉 다음에 힘들었던게 만복대였다. 만복대는 거리도 꽤 먼 거리였고 나무가 없어 햇빛이 직선으로 쭉 내리쬐고 그놈의 파리새끼들은 얼마나 꼬이던지... 파리도 지리산 파리라서 신기하게 벌처럼 생겼다. 나는 금똥파리라고 불렀는데 정말 보기도 싫다. 이 날에 이렇게 짜증나는데 또 길을 잘못들어 30분정도 시간을 버려서 기분이 더 더러웠다.
등산하면서 생각나는 일들은 이 정도다. 다시는 하기 싫은 최악의 등산이였다.
<숨은 쉬게 해야지...>
정말 선생님들이 원망스러운 주제이다. 처음 지리산 3일을 탈 때 숨을 못쉬어서 죽는 줄 알았다. 짐이 있으니까 일단 어깨에 엄청난 압박이 들어오면서 폐가 답답해서 숨을 못 쉬었다. 지리산 등반 2틀째였던가 매우 가파른 바위들이 많은 길이 있었다. 올라가는데 숨이 목 언저리까지밖에 안들어 왔다.
그냥 혼자 갔으면 잠깐 쉬었을 텐데 황소 동균이형 따라가느라 정신력으로 온 것 같다. 나만 심하게 헐떡거리는 것을 보면 내 폐가 안 좋은가 보다. 선생님들이 다음 백두대간 때 짐 좀 줄여줬음 좋겄다.
<억울>
지리산 2박 3일을 같이한 동지(?)들이 있었다. 바로 화성중학교(?)이다. 이 학교는 전교생이 50명 정도되는 일반학교인데 프로그램을 대안학교 비스무름하게 한다고 하는 좋은 학교이다. 그런데 이 학교 3학년이 무슨 전쟁하듯 더럽게 째려본다. 아오 초면인 주제에 뭘 그리 째려보는지 게다가 키는 다 산만하다. 에효. 그래도 지는 건 별로 안 좋아하는 내 성격이 계속 눈을 마주치라고 하고 있었다. 그랬더니,
"뭘 야려. XX아."
아오... 쌍욕 먹었다. 근데 키 작고 힘 없는 내가 뭘 하겠는가. 그냥 참고 뒷담이나 까지. 그 3학년들만 아니였으면 정이 들었을 수도 있었을 텐데...
<간식>
마리학교에서는 '먹을 것은 곧 권력이다' 이렇듯 먹을 것에 꽤나 예민한 편이다. 그런데 학교에서 육포, 영양갱, 사탕, 자유시간 등 학교에서 좀 부유하게 나눠 주었다. 소금 사탕이란 것도 있었는데 왜 나눠 줬는지 모르겠다. 다 버렸다. 그리고 나누기 귀찮아서였는지 뭔지는 몰라도 간식들을 보급에 밀어 넣은 조가 하나 있었다. 바로 준헌이형, 경언이, 상현이네 조였다. 이들은 처음은 거지처럼 빌빌되면서 얻어먹었지만 나중에는 브루즈아가 되어서 나는 나중을 대비해서 경언과 상현이한테 골구로 바쳤다. 그런데 바친 만큼 못 얻어 먹은 것 같아서 아쉽다.
<지리산 웰빙텔>
등산을 시작해서 처음으로 제대로 푹 잔 곳이다. 이 곳이 아마 지리산을 나온 후의 첫 번째 숙소였을 것이다. 이 날은 쉬엄쉬엄 와서 선두조가 자랑스레 말하는 바나나를 못 먹었다. 그 때는 무지무지 아쉬웠다. 가자마자 방안에서 발냄새가 진득하게 피어나왔다. 힘들어서 털썩 주저 앉고 보니 다들 젖은 머리를 양껏 찰랑이고 있었다. 그리하여 내가 씻을 차례가 되었을 때 갑자기 귀찮아졌다. 내가 씻기가 귀찮을 줄은 몰랐는데 득도했었나 보다. 10분정도 헤벌레 하고 있다가 결국에는 씻었다.
이 지리산웰빙텔의 주인 할아버지는 자신의 호텔(?)을 진정으로 좋아하시는 것 같았다. 그런데 장사가 잘 안 되어 보이는 것 같아 조금 안타까웠다.
이날 저녁은 맛있게 치킨을 뜯었다. 선생님들 돈인지 학부모님들 돈인지는 몰라도 다들 반반치킨을 신나게 뜯어먹었다. 그 다음 등산한지 처음으로 이불에서 잤다. 백두대간 중 행복했던 날이였다.
<군것질>
이번 등산 때 유난히 군것질을 많이 했다. 자비로 있던 6천원 정도를 모두 군것질에 썼다. 이 돈들을 쓰는데 한 몫한 것은 아마 노고단 대피소에서의 '사이다' 였을 것이다. 등산 후 피곤한 몸으로 시원한 사이다를 마신 것은 아마 내 생애에서 가장 맛있게 먹은 사이다가 될 것이라고 생각된다. 그 사이다로 인해서 군것질을 상당히 많이 한 것 같다.
<내리막은 뛰어야 제 맛>
~이라고 동균이형이 말했었다. 아마 수정봉에서 내려 오는 길이였을 것이다. 뛰기 좋은 잘 생긴 내리막길이 쫘악 늘어져 있는데 직선도 아니고 꼬불꼬불해서 레이서가 된 기분 이었다. 발에 불난다는 느낌이 이런 것일까. 한 10분정도를 화끈하게 뛰고나니 발이 후끈후끈하게 달아 오른게 느껴졌다. 발이 금방이라도 터질 것 같았는데 그 기분이 매우 좋았다. 그런데 이 이후로는 너무 힘들어서 뛰지를 못했다.
<나도 처음 오는데...>
이 말이 나온 날은 정말 행복한 날이였다. 선생님들이 오늘은 7km밖에 안 걷는다라고 해서 정말 기분 좋게 출발했다. 갈림길이 제일 많은 날이였는데, 리본과 표시 찾아서 열심히 갔다. 가다가 리본달려고 먼저 출발하신 오세훈쌤을 만났다. 그다음 세훈쌤 뒤로 열심히 따라가는데 다 왔다시피한 지점에서 가파른 산을 하나 더 타고 길도 없는 길을 만들어가며 불도저처럼 뜷어서 갔다. 그리고 도착했더니 훨씬 뒤에 있던 오은숙 선생님과 건우가 있는 것이 아닌가... 오세훈 쌤한테 물어봤더니 "나도 처음 오는데 어떡해."란 대답이 나왔다. 에휴...허무했다.
<산꼭대기>
아마 이 산이 봉화산이였을 것이다. 도착하자마자 시원하고 강렬한 바람이 힘든 것을 날려주었다. 그때까지는 좋았다. 가자마자 쉬지도 못하고 텐트를 치라고 선생님들이 닦달을 하는데 텐트가 팔락팔락 소리를 내며 바람을 타고 난동을 부린다. 그리고 물을 맘대로 못써서 땟국물이 줄줄이 있는 손도 잘 못 씻고 잤다. 게다가 아까 그 시원하고 강렬한 바람이 손과 얼굴을 꽁꽁 얼려놓아서 밖에도 맘대로 못나갔다. 게다가 코펠은 더럽고 쌀도 어쩌다 쏟아서 풀석힌 쌀밥 먹고 되는 게 없었다.
내가 별로 안 좋아하는 사람이 등산을 간다면 산꼭대기에서 텐트치고 자는 것이 등산의 로망이라고 말해 줄 것이다.
<도시락>
산에서 정말 즐거웠던 것이 바로 이 도시락이다. 산에서 도시락을 안싸 점심을 굶는 일은 참을 만하다. 그런데 남이 까먹는 것을 보면 가만히 있고는 못 배긴다. 처음엔 우리도 도시락을 열심히 쌌는데 원래 처음에 잘살면 나중에 가난해 지기 마련이라 나중에는 빌빌 되면서 얻어먹어야 됬다. 얻어먹는 것도 꿀맛이고 싸먹는 것도 꿀맛이다. 우리는 첫날에 도시락을 김하고 밥하고 그냥 말았다가 밥을 통째로 버렸다. 그 다음부터는 그런 밥 버리는 짓 안하고 밥이랑이라고 볶음밥 재료 뭉쳐논 걸 만들어 먹거나 참치와 고추장과 김을 같이 비벼서 먹었는데 정말 꿀맛이였다. 한 입 한 입 넣을 때마다 입안에 행복이 가득 퍼진다. 시간이 없어서 항상 쫓기면서 만든 거였지만 정말 맛있었다.
<진정한 행복?!>
정말 최고의 행복은 최근에 겪었다. 바로 우리의 지친 몸에 날개를 달아준 장마주의보이다. 이것은 남은 이틀을 산행을 안해도 된다는 뜻이다. 정말 10분동안 껴안고 구르고 뛰고 함성을 지르고 난리가 아니였다. 하지만 정말 그만큼 좋았기에 그런 행동을 한것이였다. 행복한 것이 무엇인가를 알게 해줬다. 아 물론 마음 아주 조그만 구석에 계획을 완성하지 못한 아쉬움이 있었지만 그런 것은 순식간에 묻혀버렸다.
이 글을 보는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정말 행복했다.
<멧돼지 고기>
마지막 저녁에 학교에서 고기를 사줬다. 멧돼지 고기를 먹었는데 얇게 썰어져 있어서 엄청 빨리 구워졌다. 매우 배고팠던 우리에겐 빨리 구워지는 게 정말 큰 기쁨을 주었다. 우리 테이블에는 나와 경언, 상현, 아람이였는데 아람이가 고기를 많이 배달해줘서 실컷 잘 먹었다. 그런데 초반에 많이 먹어서 주물럭을 못 먹은 것은 좀 아쉬웠다. 멧돼지 고기는 뭔가 희얀한 냄새가 났는데 딱히 다른 것은 모르겠다.
<경사났네>
이제야 생각나서 쓰는 글인데 마리학교에 커플이 또 생겼다. 무슨 전교생 24명(맞나?) 조그만 학교에 커플이 생겼다 말았다 하는건지. 하지만 이런 것 때문에 자주 즐겁다. 첫 번째는 김경언과 박경민인데, 심우선 누나와 건화형이 중매를 했다. 엄청 열심히 하더니 결국 됬다. 진구하고 박소담도 마지막날에 사귄댄다. 다들 안 깨지고 좀 오래 갔으면 좋겠다.
<백두대간 일지를 마치며...>
쓰다보니까 되게 정신없이 썼던 것 같다. 이 글은 거의 정확히 1시간 30분만에 썼다. 에피소드 위주로 써봤는데 글 내용이 다 심심한 것 같다. 내년에도 이 고생 할 것을 생각하니 앞날이 캄캄하기만 하다. 내년에는 또 어떻게든 되겠지. 백두대간 정말 좋은 프로젝트인 것 같다. 그런데 이런 짓 하는 거 알면 학생들이 들어올랑가 모르겠다. 더 많은 일들이 있는 것 같지만 내 뇌 성능이 이 정도 밖에 안된다.
마리학교 화이팅...
첫댓글 륭이 글솜씨가 예사롭지 않군요......입가에 절로 웃음이 고입니다. 즐겁고 재밌게 학교생활 잘 하고 있군요....
솔직 털털한 륭이의 글맛이 참 좋구만요.. 힘든 산행의 끝이 주는 꿀맛을 기억할겝니다..